"나랑... 놀아줄거지 ?"


가넷이 섬뜩한 눈빛으로 놀아달라고 나에게 종용하고 있다.

피곤해지긴 하지만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뭔가 내가 잘못한 것 같아 보이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어두운 일족의 저택 내 가넷의 방에서 나는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때는 며칠 전 아케나인 연속 실종 사건 막을 내린 이후였다.

오토하와 나는 그 사건 이후로 그녀의 속죄를 돕기 위해 같이 살고 있었다. 그녀와의 속죄도 그렇고 재회하였기에 더할 나위없는 기쁨으로 사랑도 나누고 서로를 문책하기도 하였다.

또한 휴일에는 놀이공원도 같이 놀러간다거나 그녀의 의상실에 가서 작업을 돕기도 하였다.


"오토하의 곁에 언제나 있어준다는 달링에게 내가 상으로 무릎배게와 쓰담쓰담 해줄게"


방주로 함께 돌아오면 항상 하는 일상 다반사였다. 

오토하가 점점 생기를 찾게 되었고 더이상 스스로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의연한 모습을 보니 정말 다행이었다.

그녀가 괜찮다면 긴 시간 동안 그녀와 함께 연애해본 후 청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에버톡이 울렸었는데 확인해보니 가넷한테서 와있었다. 첫 내용이 "구원자님" 이라 되어있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답을 줬었는데...

그 뒤로 올라온 메시지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공포를 선사했다.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며칠전에 봤어','나 말고 다른 여자가 생긴거야?','구원자님은 나만 바라봐주기로 했잖아. 어째서 나한테 이럴 수 있어?','하지만 괜찮아. 내가 구원자님과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정령이니까.','걱정하지마 구원자님. 구원자님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나는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기대해(하트)'


순간 가넷한테서 공포의 복수심 같은 것을 느꼈었다.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읽기만 하고 답을 주지 않았었다.

그 이후로도 가넷한테서만 에버톡이 거진 100개가 하루에 쌓이다시피 왔기에 전혀 답을 할 수가 없었고 공무에도 지장이 생겨버렸다.


그를 눈치챘을까 ? 오토하가 나를 걱정하며 물었다.


"달링. 요즘 얼굴에 근심이 한가득 내려앉았네. 무슨 일 있어?"


"아... 그냥 요즘따라 공무시즌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공무가 3배로 쌓이는 것 같아서 말이지"


가넷 이야기를 했다가는 오토하가 전기톱 들고 바로 가넷을 찾아내서 죽일 것임을 염려하였기에 대충 공무가 많다고 둘러댔다.

오토하는 그런 나를 잠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빤히 쳐다봤지만 이내 내 뺨에 자신의 손을 대며 위로해주었다.


"그렇구나... 힘들면 언제든지 나에게 의지해도 돼. 이야기 했잖아? 나도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달링에게 울면서 매달리고 싶다고. 달링도 나에게 좀 더 감정적으로 의지해도 되니까.. 나는 달링을 사랑하니까. 좀 더.. 나를 믿어주고 솔직하게 털어놔줬으면 좋겠어."


"고마워... 정말로 힘들 때 있다면 그렇게 할게."


다행히 오토하가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허나 가넷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일말의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설마 무슨 일 하겠어? 하고 잠깐 방심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 생각은 곧 틀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나는 아케나인 성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었다. 평소 루틴보다 좀 더 일찍 나갔고 평소 가는 길목보다 살짝 돌아서 성으로 향했다.


'오늘도 출근길은 안전할라나... 불안하긴 하지만 뭐 있겠나. 공무가 많은게 원인이라고 생각해야겠다-'


하고 아케나인 광장 쪽으로 발을 들이려는 그 순간, 뒤통수에 매서운 충격이 나를 덮쳤다.


"잡.았.다. 구원자님 히히"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나는 소리도 지르지도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에 누워버렸다.

곧 이어 상대를 바라보려고 했으나 시야가 곧바로 흐려져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제길 가넷. 너가 숨어있었던거냐.."


"응, 맞아. 에버톡도 읽지 않고... 나와 함께 있어주지는 못할망정 다른 여자랑 있었잖아? 하지만 이제는 걱정마. 구원자님은 내가 지킬거야. 더이상 아무도 구원자님 옆에는 오지 않게 내가 잘할테니까... 저택으로 가서 맛있는 식사를 캐럿과 함께하자? 맛있는 애플파이 잘 구워놨으니까. 셋이서 맛있게 주스와 함께 오붓하게 보내자. 꺄하하 !"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대강 이런 상황이었다. 이제서야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가넷은 결국 나와 오토하와 같이 있는 모습을 뭐 어떻게 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의상실 근방과 귀가길에 어디서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웃으면서 말하지만 다른 의미로 그 웃음에는 분노가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가넷... 이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업무를 봐야 돼. 공무가 산더미인데 여기서 그럴 여유가 없단 말이야. 그런 내가 없으면 성에서 난리 날텐데... 어쩌려고 이러는거야?"


"안 돼 ! 구원자님이 공무를 보느라 고생하는 것은 알아. 하지만.. 구원자님 옆에 있는 여자가 너무 불길했어. 무기도 역시 심상치 않은 것을 들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구원자님이 나를 바라봐주지 않았다는거야. 나는 그게 너무나 화가 나. 이제는 못 참겠어. 이렇게 하면 구원자님은 이제 나만 바라봐줄거고 나는 구원자님을 지킬 수 있고. 일석이조잖아? 거부하지 말아줘."


안 그래도 오토하의 곁에 계속 있어주겠다는 약속을 했었는데 가넷이 여기에 개입하다니 참 골치가 아파도 단단히 아파지게 생겼다.

어떻게 해야 가넷이 나를 놓아줄려나 싶어서 머리를 한참 굴려보고 있는데.. 가넷의 에버폰이 갑자기 울렸다.


"뭐지? 아 뭐야... 멜피스잖아? 훗... 오늘은 얘한테 어떤 드레스코드를 시착시킬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 되었네. 구원자님 ? 나 전화받고 올테니까 얌전히 기다릴..."


하는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지금 타이밍 아니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고 말이다. 

이 타이밍 아니면 나는 평생 여기에 갇히리라


'도망가자. 최대한 빨리'


나는 그렇게 가넷의 방에서 뛰쳐나갔다. 가넷의 표정 변화가 스쳐보이긴 했어도,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성공하면 업무 복귀 및 오토하와의 약속 지키기이지만 실패하면 영원한 감금이 된다.

그렇게 나는 일족 저택 서편 계단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다.


"...하핫. 구원자님. 나와 술래잡기 하고 싶다는거지 ? 놀아달라는 표현을 이렇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뭐 상관은 없을거야. 왜냐면 구원자님은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 할테니까. 정확히 3분 시간 줄게. 지금 도망갈 수 있을 때 멀리 도망가. 어차피 구원자님은 내가 지킨다는 명제는 참으로 성립되니까 ! 꺄하하하하하하하 !!!!"


가넷의 외침이 무섭게 들려온다. 하지만 이미 격차는 벌어졌으니 괜찮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서편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1층에 도달하지 않는다. 뭔가 이상함을 직감하고 복도를 타고 동편 계단 타고 내려가보기도 했으나..

어째서인지 출입문은 고사하고 1층도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계단에 부착된 층수 안내 표지는 어째서인지 빈 안내판으로 되어있었다.


마치 사마의가 제갈공명의 팔괘진을 뚫지 못하는 미로와 같은 상황이 나에게 벌어진 것처럼 어디로 가도 끝없는 복도, 끝없는 계단만 펼쳐질 뿐이었다.

브라이스의 상태를 보러 갔을 때 분명 저택의 구조는 어느정도 파악을 해두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새 바뀐건가 ?

가넷이 제시한 시간은 3분에 수렴하고 있었고 나는 점차 혼돈의 카오스에 빠지고 있는데 가넷의 외침이 들렸다.


"3분 ! 구원자님 ? 이제 나 출발할게 ? 그럼 얌전히 기다려줘 ?"


이러다가 내가 잡혀서 끌려들어갈 확률이 거진 90%로 올라가고 있었기에 그냥 아무 방이나 잡고 들어갔다.

뭐라도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살 수 있다하지 아니한가. 그렇게 바로 실행에 옮겼는데...


'어...? 뭐야 왜 캐럿들이... 설마 여긴...?'


설마가 그 설마다. 아무 방 잡고 들어왔는데 결국 원점이 되었다. 즉 나는 가넷의 방에 내 발로 직접 들어온 것이다.

캐럿들이 잔뜩 쌓인 모습들, 을씨년스러운 방의 등불, 그리고 벽쪽에 놓인 화로 등 나는 직감했다. 그리고 캐럿 중 하나가 나에게 무어라고 말하였는데 자세히 들어봤다.


"결국 탈출에 실패했구나. 불쌍한 구원자님. 불쌍한 구원자님. 그녀에게서 도망치지 못하였다니. 안타까운 구원자님. 하지만 괜찮아. 우리와 놀자. 우리와 놀면 불안감과 걱정이 없어질거야."


미칠 것 같았다. 탈출 못 한 것도 서러워죽겠는데 캐럿의 말을 듣고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상태에까지 빠지게 되었다.

다시 나가려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섬뜩한 한마디가 먼저 한발 빠르게 문 열림과 동시에 들려왔다.


"찾.았.다. 구원자님 ? 결국은 나에게서 도망가지 못했네? 하지만 그래도 내 방에 어떻게 들어와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구나. 너무 다행이야. 구원자님이 아직 날 바라보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말이야. 그럼 우리 식사하자? 맛있는 애플파이도 있고 구원자님이 좋아하는 오렌지 주스도 구비해놨으니 싫지 않을거야?"


"가넷... 제발 이러지 마. 제발 날 저택에서 내보내줘 !!"


점점 미쳐버리는게 느껴서 결국 내 입에서 샤우팅이 나왔다. 

그 소리에 충격을 받았는지 가넷이 약간 넋 나간 얼굴을 하더니 나에게 울상을 짓고 말했다.


"구원자님...? 왜 그러는거야..? 우리 오랜만에 만나서 얼굴 이렇게 보고 같이 이렇게 있는데... 이게 그렇게 싫은거야...? 우리 술래잡기도 했는데.. 방금까지 재밌게 놀았던 것 아니었어?"


"제발 그러지 말아줘. 가넷이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이런 것은 오히려 내가 너에 대한 좋은 감정만 상쇄될 뿐이야. 술래잡기라... 그래 확실히 그 순간만큼은 너에게는 즐거웠다 할 수야 있겠지 나는 아니야."


여기서는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확실하게 말해야 뭐든 결과가 떨어진다 싶어서 느낀 것을 그대로 가넷에게 말했다.

이를 듣고는 가넷이 주저앉았다. 이후 표정이 점차 일그러지더니 곧이어 그 표정은 눈물과 함께 공포스러운 웃음으로 바뀌면서 말했다.


"그래... 구원자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하는구나... 그래서.. 에버톡도 모조리 읽지 않고... 나를 바라봐주지도 않았고 !! 예상은 했는데 그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까.. 내 마음조차도 무너지는게 느껴져 구원자님..."


"가넷... 나는 너가 싫다고 하지 않았어. 그저 너의 행동이-"


"거짓말 치지 마 !! 그 발언 자체가 나를 싫어한다는 반증이잖아 !! 이제는 못 참아... 구원자님은 나만 바라봐주는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이젠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어야겠어...!"


가넷한테서 빨간 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가넷의 역린을 기어코 건들고야 만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한테는 좋아하는 정령이 있다. 그녀를 곁에 두고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고 사랑을 주고 싶은 상대는 따로 있었기에.

지금의 가넷은 나를 강제로 붙들려고 하고 있다. 저기에 당하는 순간 내가 캐럿이 될 것은 안봐도 눈에 훤했다.


"가넷... 제발 이러지 마. 이럴수록 너만 비참해지는거야....! 너가 이런다고 얻는 것은 없으니까 !"


"조용히 해 ! 이제... 나만의 캐럿이 되어줘야겠어 !!!!!"


그녀의 일갈과 함께 실이 나를 덮치려 하는 순간 나는 이제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또한 오토하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생각하려고 한 순간,


"달링 !!!!!!!"


밑층에서 문이 강제로 차임 당하여 열리며 다급하게 나를 찾는 외침이 들려왔다. 달링의 말 한마디.

오토하가 이 저택에 들어온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녀가 이 저택에 쳐들어온 것이 맞을 것이다.


"뭐야...? 설마 그 여자가 여기 들어온 거야...?"


그 소리를 들은 가넷이 당황하는 그 때 밑층에서 우당탕 거리며 전기톱 소리와 무기끼리 맞받아치는 소리 그리고 정령들의 신음과 함께 피 튀겨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무래도 밑층에서 오토하가 다른 밤의 일족 정령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 뻔했다. 그녀를 말리러 가려고 생각한 찰나-


"구원자님은 여기있어."


가넷이 내 망토를 잡고 벽쪽에 던졌다. 순간 충격이 얼얼해서 가넷을 멍하니 바라봤으나 가넷의 표정은 무서웠다.


"내가 정리하고 올거니까... 구원자님은 여기서 조용히 그리고 얌전히 있어줘야해? 내가... 구원자님에 어울리는 정령이니까. 그래. 저 아이를 처리하고 나면 나는 곧 구원자님의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 아핫... 하하핫.... 하하하하하하 !!!"


"안돼... 가넷... 제발 그러지 마...!"


가넷은 그 말과 함께 캐럿과 저주용 못을 들고 방을 나갔다. 나 역시 뛰쳐나가려고 했으나 방문이 굳게 닫히며 밖에서 잠기고 말았다.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는거지 ? 오토하가 가넷과 싸워서 죽으면 어떡하지 ? 그녀와 한 약속을 내가 못 지키면 어떡하지 ?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 속에 있었지만 결국 최선은 답은 나오지 않았고 방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中편에서 계속 이어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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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길어져서 中,下편으로 나누어 쓰려고 하나 상황에 따라서 바로 下편으로 넘어갈 수도 있음


-가넷 배드엔딩과 오토하 트루 엔딩이 가미되어있기에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주의 바람.


-모든 것은 픽션임을 유의. 최대한 캐릭 특성을 살려보려 함.


-항상 글 잘 봐줘서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