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요일 밤입니다. 폴붕군들, 그리고 신도 여러분.


바로 앞까지 다가온 세기말, 아까운 시간과 삶을 핵전쟁 이후의 미국 땅에서 소비하는 신도 여러분들을, 조금이나마 유익함과 웃음이 가득한 시간으로 채울 수 있게끔 보잘것없는 양치기 소년인 저, 김폴붕 목사가 여러분을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예배는, "어떻게 하면 간만에 추가된 하우징 번들을 활용하여 기존에 없던 새로운 캠프를 만들 수 있을까" 입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23년 8월 16일 오전 2시부로 화이트스프링 키트가 아톰샵에 입고되었습니다. (재탕인지는 알 수 없군요.)


깨끗한 벽과 지붕. 깔끔한 바닥과 사치스러워 보이는 가구들까지. 항상 그렇듯이 보기엔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실상은 어떠할까요.




더 볼 것도 없군요. 외주마저 이 키트를 볼썽사나운 2층 연립 주택과 단조롭기 짝이 없는 지붕을 덮어씌워 재개발 지역에 빼곡히 아파트만큼이나 심심한 건축물로 타락시켰습니다.


웅장한 화이트스프링을 어설프게 흉내낸 이 키트로, 지상의 응급구호단과 지하의 엔클레이브를 통틀어 에팔레치아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로 가득한 그 열정과 감동을 표현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폴챈에 상주하는 발광구울들이 선보이는 화려한 캠프들을 보고 패기넘치게 도전했다가, 나온 결과물이 대용량 컨테이너/혹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상주할법한 깍두기형 건물이라는 사실에 절망한 경험이 있는 신도 여러분이라면 쉽게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마세요. 비록 웅장한 건축물로 감동과 전율을 선사할 수 없어도,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으로 정의되는 검소함과 간결함은 언제나 답을 향해 우리를 인도하지요.


재능도 없고, 검소한 삶을 실천하기도 싫어도 괜찮습니다. 5평 남진한 공간에 자신의 사상을 우겨넣거나 웅장한 건축물로 감동과 전율을 선사할 필요도 없지요. 비록 필자처럼 실력이 부족해도,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보이시는지요. 미합중국의 선지자들은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 1달러 지폐 뒷면을 주목하십시요. 아닙니다. 신을 저버리고 돈놀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배금주의자들의 궁전을 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차피 그만한 크기의 건축물은 세울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전지전능한 주께서 사치를 금하시기에, 우리가 세울 건축물의 크기는 자그만해야 하고 검소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화이트하우스가 아닌 그 위에 적힌 문구에 주목하도록 하지요.


"In God We Trust"


그렇습니다. 미니멀도, 모더니즘도, 클래식함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우린 신의 품에서 해답을 찾아야만 합니다.

다들 짐작했겠지만 이번 하우징 테마는 다름아닌 하느님의 집이요. 신성한 주님의 성전입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신께 봉사하는 하느님의 집을 건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성전을 쌓아올리기 전, 마땅히 이 땅에 그분의 복음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적절한 부지의 선정이 필요하겠지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별을 따라 아기 예수를 찾는 동방성자의 마음으로 걷고 또 걸은 끝에 서머스빌이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비록 작디작고 인구도 천을 채우지 않는 보잘것없는 마을이나 어디 예수께서는 찬란한 왕궁 아래에서 생을 시작하셨던가요. 마굿간에 몸소 임하신 왕중왕의 행적을 본받아 가장 낮은 곳에 임한다는 마음으로 저는 이곳에 자리잡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성전의 토대를 다지던 도중 저 멀리 이곳의 마을 주민들을 목도하였습니다.


파이프를 두들겨 만든 조잡한 총을 꼬나쥐고 못마땅한 듯이 이곳을 흘겨보는 게, 아무래도 컷트로스 라 불리는 잔악한 레이더의 무리인 것 같군요.


허나 바로 그러하기에 더더욱 주님의 복음과 은총이 필요한 것입니다.





비록 서머스빌의 원주민들이 사납고 포악한 레이더들이기는 하나, 머잖아 성전이 세워지면 주님의 따뜻한 은총으로 이들은 곧 기름 부음을 받고 주님의 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특히 안면에 해골 문신을 새긴 이들에게는 따로 세례명을 정해두었습니다.


베드로, 요한, 프란치스카. 이 셋은 제가 따로 주님의 이름으로 성화를 베풀었습니다.


신자 여러분. 이 운 좋은 신도들을 위해 함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주님. 부디 이들이 하늘나라에선 타인의 것을 욕심내지 않고, 간음하지 않으며 안식일을 지키는 성실한 신도로 거듭나도록 이끌어 주소서.




성실하고 신실한 목자는 항상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철심을 불우한 이웃들에게 저렴한 값에 배풀고, 남은 석회만을 발라 성전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거듭 강조드리지만 이는 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 타인에게 배풀기 위함이며 부실공사는 더더욱 아닙니다.


하얗고, 순수한 백색의 건물은 순결한 처녀의 몸으로 주를 잉태하신 성모를 기리는 상징이기에, 저는 순백의 석회로 성전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이 자그마한 기둥은 그만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틀어져 버렸습니다. 비록 성전의 기반이라고는 하나, 무생물에게 십자가를 이고 골고다 언덕을 오른 예수님의 자세를 기대하기란 아무래도 무리였던 모양입니다. 


결국 제 피 같은 캡으로 이전에 배풀었던 자비를 다시끔 거두어들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부디 이 가엽고 어리석은 당신의 목자를 용서하시길.





얼추 완성된 교회의 전면부입니다. 


보기 좋군요. 허나 아직 부족합니다. 토대가 제대로 맞춰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지창조의 7일간, 하느님께서는 첫째날에 해와 달을 띄우시고 그 다음에 땅과 물을 내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6일째에 비로소 인간을 빚으셨지요.


만일 인간이 첫째날이나 두번째 날에 빚어졌다면, 열을 받지 못해 얼어 죽고, 발 디딜 곳이 없어 떨어졌으며, 또한 목말라 죽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토대가 부실하다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토대를 닦았습니다. 하느님이 7일 걸려 하신 작업을 저는 중간에 작업물이 날아가 4시간만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 단순한 작업조차 조악한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기괴하고 기묘하며 복잡한 세상의 이치로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하신 하늘 위의 그분께 또 다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7일째가 되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검소하신 우리의 주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조차 첨탑 위에 내걸어서는 안된다는 교시를 내리셨습니다.

때문에 저는 그분의 뜻을 받들어 그보다 아래에 십자가를 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그분의 상징과 소명을 벽에 새기고 정갈하게 안을 단장하면 드디어 완성입니다. 


비록 보잘것없지만, 그분의 은총이 이 자그마한 교회를 시작으로 전 미국에 퍼져나가길 소망하며 

하늘 위의 하늘. 천외천인 그분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스로 땅에 임하신 주님. 주님께 영광이 있음을 제가 믿습니다.


작을 두드려 맞고, 빰과 가래침을 받으시며 모욕당할지라도


요로 하는 가여운 이들에게 낮은 자세로 임하신 주님. 


디어 추수의 시기가 찾아왔음을 제가 믿나이다. 잘 익은 낫알 


알, 한 알을 당신께서 따스히 품으실 것을 제가 믿나이다.


과 그림과 우상으로 섬기는 이들을 사랑하시는 주님. 그러나 


를 자초하고 죄지은 이들에게는 누구보다 냉혹하신 주님. 


작하겠습니다. 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 부르트고 갈라지더라도 당신의 족적을 따르며 그리한다면 


, 그때서야 비로소 구원의 문은 열릴 것이라 믿겠습니다.







토-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