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대략 1991~1992년

문방구 앞에선 스파 일러스트가 그려진 카드를 팔고, 스트리트 파이터 관련 애니메이션과 만화책등이 수입되고 심지어 국내에선 가두쟁패전이란 해적판 특촬물이 제작되는등 전국이 스파라는 이름의 열병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당시 난 스파를 해본일이 없었음

담임선생님, 부모님이 오락실에 다니면 비행청소년이 된다고 했기때문에 어른말 잘듣는 아이였던 난 홀로 오락실에 들어가본일이 없었고(종종 아빠나 친척형이랑 가기는 함, 문제는 아빠랑 가서는 둘이같이 썬더드래곤이란 슈팅게임을 했고 친척형이랑 갔을땐 왜인지 스파를 해볼 엄두를 못냄, 교복입은 형들이 왕창 서있어서), 메가드라이브용으로 스파가 나왔다는 사실조차 몰랐기때문에 반 친구들 스파얘기하는거 귀동냥하면서, 비디오가게에서 스파 애니나(이것조차 일부를 제외하면 해적판이거나 대만제 만화거나 그랬음) 특촬물을 빌려보며 스파에 대한 갈증을 달래곤 했지

문제는 내가 스파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사모으던 스트리트파이터 카드조차 엄마가 금지해버렸다는 거, 내가 장난감을 뭘 사든 엄마는 보통 터치를 안했는데 어디서 스파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지 '그거 싸우는거지? 그런거 보면 나쁜사람 된다'며 저것마저 금지해버린 것임!

그렇게 내가 스파앓이로 미쳐가던 그때 옆집에 살던 5촌(나보다 3살 아래)과 대화를 나누다가 거의 안선생님! 농구가 하고싶어요...급으로 절규하듯 스파를 하고싶단 말을 했더니 얘가 나 집에가서 하라며 메가드라이브판 스파2를 꺼내옴

와 시발... 류의 멋진(스파앓이가 너무도 심해서 심지어 섹시하게까지 느껴짐) 일러스트가 그려져있는 케이스를 딱 받아드는데

그 순간이 너무도 비현실적이었어

정말 이거 꿈인가 싶었던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음

그대로 바로 집에 달려가 게임기를 꺼내고 팩을 꽂는데 그 시간이 너무도 길게느껴짐, 그럴리가 없는데도 왜인지 내 게임기에서 스파가 안돌아갈것 같은, 게임이 안켜질 것 같은 불안감마저 들더라

그러나 게임은 정상적으로 켜졌고



세가 로고가 사라진 뒤

잊을수없는 그 음악! 띠띠띠띠 띠띠띠띠 띠띠띠띠

당연히 캐릭터창이 뜨자마자 류를 골라서 메뉴얼을 참고해가며(기술표가 있었는데 파동권을 쓰면 하도오겐이란 음성이 나온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던걸로 기억) 내 첫 파동권이 작렬할때 엄청난 전율을 느낌


하도오~겐!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데 어떻게해도 발차기가 안나가더라

알고보니 스파는 6버튼용 게임인데

정발된 메가드라이브 초기형(삼성 슈퍼겜보이)은 3버튼 패드가 동봉되어있기 때문에 이걸로 스파를 정상적으로 플레이하는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음

그럼에도 셀렉트 버튼으로 손발을 바꿔가며 꾸역꾸역 플레이하던 그때, 스파2를 빌린지 며칠 지나지않아서 아빠가 싱가포르로 출장을 나갔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싱가포르에서 집에 있는것과 성능적으론 아무것도 다를게없는 메가드라이브2를 사왔고, 이 아시아판 메가드라이브 2에는

6버튼 패드가 2개 동봉되어있었음!(북미정발판 제네시스는 계속 3버튼 패드만 동봉)

이 무슨 기적이냐...! 마치 하늘이 나에게 스파를 하라고 계시를 내리고 있지 않은가

이런 우연과 우연의 만남으로 나는 교복입은 형들이 드글거리는 오락실에 가지 않고도 내 방에서, 가끔은 친구들을 초대해가며 스파2를 오롯이 즐길 수 있었지

전캐릭터 엔딩만 수십번은 본것같다

아직도 눈감으면 사가트 대처법이 떠오를 정도

그리고 5촌이 빌려준(그러나 돌려달라고 안해서 내가 가져버린, 쟤네집이 워낙 부자라 그런지 쟨 뭐 빌려주면 돌려받으려고 하지 않았음) 팩은 스파가 질릴즈음

사촌동생이 갖고있던 메가드라이브판 아랑전설과 맞교환했고

이것이 내가 KOF에 입문하게된 계기가 됨(일단 테리가 나오니까 흥미를 가짐)

그뒤로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굵직한 격겜이 나올적마다 강박적으로 구입해가며 플레이하고 접기를 반복하고있지

그야말로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