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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드디어 '게임'은 '직업'이 되었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언제까지 게임을 계속할 생각이야?"

주변 사람들에게 이따금씩 이런 말을 듣곤 했습니다.


지금 일본에는 '프로게이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격투 게임, 슈팅 게임, 스포츠 게임, 퍼즐 게임 등 장르는 다양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활동으로 수입을 얻는 사람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죠.

그 중에는 게임으로만 생계를 해결하는 '전업 프로게이머'도 적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회사원으로 일을 하는 동시에 프로게이머로서 국내외의 시합에 출전하는 '겸업 프로게이머'로 오랜 시간 활동해 왔습니다.

이 글의 처음에 적은 말은 그 과정에서 동료나 상사에게 줄곧 들었던 얘기죠.

회사원으로 경험을 쌓으면 쌓을수록 담당하는 업무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책임은 커져 갔습니다.

한편으로는 취미였던 게임 쪽에서도 실력이 늘면서 전적을 쌓고 프로가 되자,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활동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 제한된 시간 속에서 어느 쪽을 우선할 것인가,

어떻게 둘 사이에 밸런스를 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은 저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실업 팀에 소속된 선수 분들이나 본격적인 취미를 가진 일반인에게도 직면한 문제일 겁니다.


일과 게임 두 가지 다 계속하고 싶었던 저는, 그럴 때마다 상사와 상담을 하거나 이직을 하면서 겸업 프로게이머로서 계속 활동했습니다.

그런 생활에 전환기가 되었던 건 2021년. 드디어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 하나만 가지고 생계를 꾸리기로 정했습니다.

그 계기 중 하나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업무는 재택 근무가 중심이 되고 일하는 방식이 변했습니다.

프로게이머로서의 활동에서도 지금까지 당연하게 참가했던 국내외의 대회가 중지되고 온라인 환경으로 변함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죠.

하고 싶은 일이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고 난 이후, '게임을 직업으로 삼자'고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당당히 한 명의 전업 프로게이머가 되었지만,

프로게이머와 사회인이라는 의미에서는 아직도 '두 집 살림'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사를 그만 둔 이후에도 프로게이머로서 격투게임 대회나 이벤트에 출전하는 것과 동시에

e스포츠에 관계된 기업이나 팀을 향한 컨설팅 사업도 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스포츠의 과제는 기업과 선수의 관계성


기업이나 팀을 향한 컨설팅 업무를 시작한 것은, 게임이나 e스포츠 업계에서 프로게이머로서 뿐만이 아니라

회사원으로서의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e스포츠는 지금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점점 주목도가 높아져 e스포츠에 참가하려는 기업도, 프로로 활약하는 게이머도 늘어나고 있죠.

그 와중에 제가 한 명의 프로게이머로서 느낀 과제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과제는 기업과 e스포츠 선수 사이의 관계성입니다.

e스포츠에 참가하는 기업 상당수는 e스포츠에 신규 사업,

말하자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자와의 접점이 되는 마케팅 툴로써 기대를 걸고

대회나 팀, 선수에게 협찬을 하는 등의 형태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기업에서 자본이 융통되면서 선수들은 게임을 생계 수단으로 삼을 수 있게 되고, e스포츠 업계 자체의 환경도 좋아졌습니다.


다만, 기업과 선수의 관계는 아직 얕다는 느낌이 듭니다.

기업은 스폰서로서 선수나 팀에게 돈을 지불하고 선수는 기업의 로고가 들어간 유니폼을 입고 대회에 나가거나 방송을 한다.

단순히 이걸로 끝이라면 쌍방이 손을 잡는 효과는 충분히 발휘되지 않습니다.

사업적인 면에서 투자에 상응하는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기업은 결국 손을 떼게 될 것이고, 선수도 자신의 가치를 올릴 수 없습니다.

"응원할테니 열심히 하세요."라며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을 뿐,

선수에게 어떻게 협력할지 모르는 기업, 그 지원에 어떻게 응해야 할지 모르는 선수가 많은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과제를 해결할 열쇠는 역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봅니다.

기업과 선수가 좀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서로가 할 수 있는 것,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을 논의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기업 단계에서 함께 이벤트 규모를 키우거나, 팬 취향의 정보를 전달하는 등의 활동이 가능해지겠죠.

e스포츠 선수는 게임 유저의 대표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

즉, 유저와 기업을 잇는 '허브'가 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기업과 선수가 서로를 마주볼 수 있게 된다면 그 배후에 있는 무수한 유저의 목소리도 들리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기업의 사원과 프로게이머, 양쪽 경험을 가진 제가 그 둘을 잇는 가교가 될 수 있습니다.

그저 좋아하기만 했을 뿐인 취미였던 게임과 직업생활을 양립하는 생활 속에서 어느새 취미가 직업이 되다니.

몇 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만, 그 속에서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길이 보였습니다.



프로게이머의 은퇴 후 진로를 개척할 수 있을까


두 번째 과제가 프로게이머의 은퇴 후 진로 문제입니다.

현재 e스포츠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저는 프로게이머를 은퇴한 이후를 생각해두지 않으면

나중에는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사람이 적어질 것이라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하고 지명도를 올리면 나중에는 방송이나 대회 해설 등

탤런트 같은 활동을 하는 길이 열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극히 일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죠.

성공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 경우에는

다른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보다도 늦게 사회에 나와 일해야만 하는 현실에 처하게 될 뿐입니다.


당장 저부터도 겸업 프로게이머라는 길을 택했던 건 장래가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프로가 되기 전에 실업 팀에 소속되어 있는 운동선수들의 사례도 직접 조사해본 적이 있죠.

스폰서가 붙은 후에도 프로를 은퇴한 후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늘 생각해왔던 일이고,

지금도 프로게이머로서의 활동과 병행하며 기업 컨설팅 사업을 시작한 것도

어떤 업무가 프로게이머의 은퇴 후 진로가 될 수 있을까 스스로 알아보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프로게이머의 은퇴 후 진로 문제는 제가 인생에서 가장 크게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스포츠 등에서도 은퇴 후 진로는 흔히 나오는 문제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야구나 축구의 경우, 자신의 자식이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프로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렇게 하렴"이라고 말해줄 부모가 많을 겁니다.

그러나 게임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죠.

수입이 얼마나 될지도 알 수 없고, 은퇴 후 진로도 보이지 않기에 부모님 입장에서 본다면 걱정부터 드는 게 당연합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프로게이머를 은퇴한 후의 길이 명확히 보인다면…

저는 조금 더 일찍 전업 프로게이머가 되었겠죠.


이 고민은 앞으로 나타날 신예들에게도 반드시 닥쳐올 문제입니다.

저를 포함한 과거 사람들의 상황은 더 이상 바꿀 수 없더라도, 지금부터 등장할 신예들의 환경은 바꿀 수 있습니다.

"게임은 좋아하지만 장래가 불안해서 프로게이머는 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능한 한 줄이고 싶습니다.


앞에도 적은 기업을 향한 컨설팅 사업은 은퇴 후 진로 문제에도 플러스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프로게이머가 기업과 함께 이벤트나 정보 전달을 같이 할 기회가 늘어나면 이벤트에는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지,

돈은 얼마나 드는지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선수도 체험하게 됩니다.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자신이 받고 있는 금액에 상응하는 비용 대비 효과를 제대로 내고 있는지와 같은 문제도 생각해보게 되겠죠.


무엇보다, 기업과 함께 이러한 활동을 진행함으로 인해 선수가 느끼는 달성감도 크게 늘어날겁니다.

기획부터 같이 땀흘려 고생한 이벤트에서 팬들이 "즐거웠어요"라고 말해준다면,

그리고 직접 응원의 말을 듣게 된다면, "성사해내서 다행이다! 시합도 더 힘내야지."라는 뿌듯함도 분명히 더 강해질테죠.


반대로 말했을 때 프로로 활동하는 도중에 그러한 경험을 쌓고 '업무'를 대하는 마인드가 어느 정도 형성되지 않으면,

프로게이머를 은퇴한 후 게임 이외의 일로 생계를 꾸려야 할 때 마인드를 전환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워지겠죠.

저는 게임을 하면서도 회사원으로서 일을 했기 때문에 '업무라는 건 이런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어린 시절부터 프로가 된 사람은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걸 그만둔 순간 싫어하는 일도 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생기는 차이를 버티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터입니다.


언젠가 게임을 그만두고 완전히 다른 분야의 업무에 들어가게 되든,

스트리머나 해설자로 게임 업계 흥행에 공헌하는 업무를 시작하게 되든,

'라이크 워크(좋아하는 일)'에서 '라이프 워크(평생 하게 될 일)'로 전환하는 과정에는

지금까지 해온 방법이 통하지 않는 순간, 자신이 해 왔던 방법을 바꿔야만 하는 순간이 여러 번 찾아옵니다.

앞으로 프로게이머로 활약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이해한 후에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도록

선수로 활동하는 도중에 마인드를 바꿔나간다.

그게 은퇴 후 진로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될 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생각하는 e스포츠의 과제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양쪽 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도중에 느낀 점들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과제들에 저 스스로가 기업 컨설팅이라는 분야에서 분투하게 된 것은

제가 회사원 시대에 경험했던 것들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시스템 엔지니어로 처음 입사한 회사의 상사는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고객이 곤란해 하고 있는 문제는 일이 된다."

시스템 엔지니어는 고객이 곤란해 하는 문제에 대해 수정이나 개수를 제안하는 직업입니다.

"그렇구나." 하고 납득할 수 밖에 없었죠.


지금 하고 있는 컨설팅 사업에서도 그 점을 절실히 느낍니다.

e스포츠에 참가하려는 기업도, 그 기업들에게 협찬을 받는 선수도 늘어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각자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연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그 해결 방법도 모르고 있습니다.

선수 측으로 눈을 돌려보면 은퇴 후 진로가 보이지 않아 고민을 껴안은 채 활동하고 있는 사람도 꽤 많죠.

어느 쪽이든 곤란해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일이 생겨난다. 그 사실을 실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