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의 휴일 프롤로그 https://arca.live/b/finalgear/34614734

마가렛의 휴일 1화 https://arca.live/b/finalgear/34660791

마가렛의 휴일 2 https://arca.live/b/finalgear/34687902

마가렛의 휴일 3 https://arca.live/b/finalgear/3472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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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직, 연결되었군요. 치지직, 마가렛, 아직 그 도시에 있나요?"

 

 마가렛의 귓가에 단 통신기가 작동한다.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아무래도 제가 얻은 정보는 미끼인 것 같습니다. 홀리 보우의 폐기를 마지막까지 반대한 한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요. 물론 그곳에 홀리 보우가 있는 건 사실인듯하지만...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당장 빠져나와주세요."


 하하.

 마가렛은 엎어진 채, 소리없이 히죽 웃었다.

 그야 그럴 것이 베로니카가 지금 준 정보는 마가렛이 전부 알고 있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홀리 보우의 폐기를 마지막까지 반대한 사람?


 그건 틀림없이 테이시아 크래프트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여왕에게 탄원서를 제출한, 게하에서 가장 고결한 귀족. 자신의 소중한 소꿉친구. 그 바보는 언젠가 마가렛의 결백이 밝혀질것이라 믿으며, 어딘가에 폐기된 홀리 보우를 회수하기 위해 남몰래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것이다.


 여왕 릴리안은, 그런 테이시아를 죽이려 한 것이고.

 여기 홀리 보우가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마가렛? 제 말 들리나요? ...제 말이 들리면 이를 두번 부딪혀주세요. 재갈이 물리거나 한 상태라면 무언가를 두번 두드리는 소리를 내주시고요."


 베로니카는 마가렛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눈치챈듯하다.

 마가렛은 작게 앞니를 두번 부딪힌다. 그 골전도음은 확실하게 베로니카에게 전송되었으리라. 


 "어느 정도라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상태입니까? 아니면 완전히 구속된 상태입니까? 전자면 이를 두번, 후자면 이를 네번 부딪혀주세요."


 이를 두번 부딪혔다.


 "그렇다면, 통신기의 리모트 해킹 장치를 활성화해도 괜찮겠습니까? 통신기의 배터리를 전부 소모하게 될테니까, 이건 길어야 10... 아니, 5초밖에 유지할 수 없다고 봐야 할겁니다. 기체가 가까이 있지 않으면 그 5초조차 제대로 컨트롤이 불가능할테고요.

 이제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겠습니다.

 활성화를 바랄 때 이를 두번 부딪혀주세요.

 이대로 대기하겠습니다."


 바로 그때, 타앙 하는 총성이 울려퍼진다.


 "하흑!"


 마가렛이 비명을 억누른다. 통신기 너머에서 베로니카가 놀란 숨을 탄식과 함께 쏟아내는 소리가 들린다. 마가렛의 오른쪽 손등을 향해 총을 쏜 건 제노비아였다.


 철컥.

 경첩이 진퇴하고 탄피가 아래로 쏟아진다.

 새로운 탄환이 자동으로 제노비아의 총에 장전된다.


 "제 말 들리지 않으세요, 테이시아?

 당신의 이름을 말해달라고 말했어요."


 제노비아는 마가렛의 왼쪽 손등을 향해 권총을 겨눈다.


 "목에 힘이 안들어가면 예, 아니오로 대답해도 좋아요. 

 당신은 테이시아 크래프트가 맞습니까?"

 "아니, 오."


 마가렛은 이를 악물며, 눈을 질끈 감으며 답한다.

 제노비아는 방아쇠를 당긴다.


 탕


 "아, 크흑!"


 탄환이 마가렛의 왼쪽 손등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철컥, 다시 탄피가 빠지고 재장전된다.


 "거짓말하면 안돼요.

 거짓말은 사람들을 슬프게 해요."


 제노비아는 울먹이며 마가렛의 앞에 쪼그려 앉는다. 마가렛의 목덜미에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운 총구를 들이댄다. 아니, 정말로 마가렛의 목덜미에는 인두로 지진 듯한 뜨거운 화상 자국이 남는다.


 "하아, 아..."

 "당신도 아프잖아요. 저도 아파요.

 이제 그만 서로 편해져도 되잖아요?"


 마가렛의 목덜미에 닿은 총구,

 그것은 천천히 척추를 따라, 마가렛의 몸을 감싼 드레스를 꾸욱 누르며 아래로 내려간다. 꼬리뼈가 있는 곳까지 도착한 총구는 마가렛의 둔부라인을 타고 내려가, 나이프에 베인 허벅지까지 도달한다. 제노비아가 지혈을 하기 위해 묶어둔 스타킹을 총구 끝으로 건드린다. 그 바람에 상처가 꾸욱 꾸욱 눌려, 아릿한 통증이 밀려온다.


 "나오미가 남긴 흔적인가보네요. 보여주세요."


 타앙.

 탄환이 스타킹으로 만든 매듭을 꿰뚫는다.

 제노비아는 마가렛의 곁에 쪼그려 앉아, 왼손으로 마가렛의 종아리를 붙잡아 들어올린다. 마가렛의 허벅지 위에 난, 붉은 속살이 다 벌어져 드러난 상처를 보고 얼굴이 일그러진다. 총구 끝으로 그 상처를 건드리며 눈물을 왈칵 쏟아낸다. 


 "으흑, 나오미... 나오미..."


 총구 끝이 그 통증 밖에 느껴지지 않는 상처를 헤집고, 붉은 속살에 닿는다.


 "테이시아는, 반드시 내가 죽일게."


 타앙.


 "!!!!!!!!!!!!!!!!!!!!!"


 마가렛의 허벅지 앞쪽에서 뒤쪽으로, 일직선의 구멍이 뚫린다. 총알에 관통되었는데도 피가 솟구쳐나오진 않았다. 교묘하게 동맥과 뼈를 피해 총을 쏜 것이다.


 죽일 생각이 없는거다.

 마가렛이 스스로 테이시아라고 인정하기 전까지,

 제노비아는 절대로 마가렛을 죽이지 않는다.


 철컥, 탄피가 빠진다.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제노비아는 총을 든 채 뒷짐을 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가렛의 뒤편으로 이동한다. 멀쩡한 다리의 오금을 부츠로 짓밟고, 허리를 굽혀 성한 허벅지에 총구를 붙인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테이시아?"

 "내, 이름은, 마가렛이다."

 "유감."


 제노비아가 방아쇠를 당긴다.

 철컥.


 "음?"


 총성은 없었다.

 텅 빈 총신 안을 공이가 드나드는 공허한 소리만 들렸다.


 "죄송해요, 탄창을 교체할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마가렛이 딱딱, 하고.

 이를 부딪힌 것은 그 순간이었다.

 마가렛의 귓가에 매단 통신기가 마치 귀를 태워버릴 것처럼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리모트 해킹, 활성화했습니다!"


 홀리 보우의 엔진이 진동한다. 마가렛이 오른손 엄지를 구부린다. 그러자 마가렛의 오른손 앞에 홀로그램 판넬이 떠오른다. 손등에 총알이 관통한 탓에 검지와 중지가 움직이지 않지만, 상관없었다. 엄지와 약지로 빠르게 판넬을 조작한다.


 "뭐, 뭘 한거야!?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거야!?"


 웅크려 있던 홀리 보우가 몸을 일으킨다.


 "저건, 저건, 테이시아 네 전용기가 아니잖아!"


 제노비아는 절규하며 품에서 탄창을 꺼내 권총에 끼우려 한다. 그러다 앗차하는 표정을 짓는다. 원래 있던 탄창을 뽑아내지 않은 것이다. 탄창 교체 버튼을 누르다 손이 미끄러져, 새 탄창을 바닥에 놓치고 만다.


 "히익!"


 제노비아는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울면서 탄창을 주워든다.

 탄창을 권총에 끼워넣고, 마가렛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그러나 제노비아의 총구 끝에 있는 것은 마가렛이 아니었다.


 게하의 거대한 파이널 기어.

 마가렛이 자랑하는 순백의 전용기.

 홀리 보우의 육중하고 거대한 발끝이었다.


 "네, 전용기는, 아라미스여야하잖아아아아아아!"


 최대 가동시간인 5초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그저 관성의 힘만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미 제노비아는, 홀리보우에게 걷어차이는 미래를 피할 수 없다.

 그 운명은 확정된 것이다.


 "꺄아아아아아아악!"


 홀리보우가 제노비아를 걷어찬다.

 홀리보우는 걷어찬 그 자세로 균형을 잡지 못해, 옆으로 쿠웅 하고 쓰러진다. 공처럼 걷어차인 제노비아는 격납고 반대편 벽까지 튕겨나가 부딪힌다.


 "커허어어어어억!"


 제노비아는 피를 토하며 바닥에 떨어진다.


 "나는, 테이시아 크래프트가, 아니다."


 마가렛은 거의 뒹굴다시피, 바닥을 기며, 마치 자신처럼 쓰러진 홀리보우의 조종간을 향해 기어갔다.


 "나는, 기사, 마가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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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화.

 VS 제노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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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했지만 이제는 낯설게 된 콕핏.

 그 안에 앉아 마가렛은 조종간 위에 피로 물든 손을 얹는다.

 푸른 홀로그램 레이저가 마가렛의 지문 끝에서부터 천천히 올라가 그의 신체를 스캔한다. 레이저가 전신을 훝고 올라가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퍼진다.


 "전용기 활성화 인증, 신체식별코드 확인완료.

 최종인증코드를 입력해주십시오."

 "기사 마가렛, 출격합니다."

 "최종인증 완료.

 기사 마가렛님,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 메시지를 들은 순간, 마가렛은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것은 자신이 설정한 메시지였다. 특별한 기능이 있는건 아니다. 그저 자기 자신이 훈련에 소홀해질까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정기간 이상 전용기에 탑승하지 않으면 이러한 메시지를 내도록 입력해둔 것에 불과했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홀리보우."


 전용기는 도구에 불과하다.

 AI가 있다고 해도 자신이 설정한대로의 대답을 돌려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렛은 홀리보우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저야말로요.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님."

 "린베르 의사신경 접속해줘."

 "린베르 의사신경 접속 개시하겠습니다."


 조종석의 위에서 내려온 작은 금속호스가 마가렛의 목덜미에 닿는다. 그 끝에 달린, 육안으로 확인하기조차 어려운 미세한 나노바늘이 마가렛의 피부 사이를 뚫고 신경에 닿는다. 찌릿, 하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서늘하고도 뜨거운 전율이 전신을 덮친다. 그 호스는 목덜미에만 부착하는 것이 아니었다. 손목과 발목, 무릎과 어깨 등 주요한 관절 부분에 닿는다. 그때마다 마가렛은 쥐가 난 사람처럼 아주 잠깐 근육을 경련시키며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휴우, 너무 오랜만이라서 놀랐네."


 린베르 의사신경.

 아리타에게 기술력을 추월당한 게하가, 여전히 기체대결에서 타국을 뛰어넘는 전투력을 보여주는 건 다 의사신경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일럿의 운동신경을 기체회로에 접속시켜, 마치 자신의 몸을 움직이듯 이상적인 조종을 구현한다. 그것이 바로 린베르 의사신경의 역할이다. 테이시아 크래프트나 쿠죠 아야와 같은 명검사들의 뛰어난 검기를 전용기에서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마가렛이 의사신경에 접속한 건 검기를 발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칼에 베이고 총에 맞은 다리는 그렇다 쳐도, 양손이 총에 맞은 지금 상황에서는 조종 판넬을 조작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쓰러진 홀리 보우가 쿠웅, 쿠웅, 지하의 공기 전체를 진동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가렛은 홀리 보우의 무기인 거대한 망치를 집어들고, 격납고의 출구 쪽으로 향한다. 출구를 가로막은 거대한 벽. 저 너머에는 지상과 연결되어 있는 나선형 통로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이 격납고는 주차장 시설일테니까.


 "열려라!"


 홀리보우의 거대한 망치가 격납고 벽을 때린다. 


 "참깨!"


 얇은 종잇장처럼 출구를 가로막은 격벽이 찢겨나간다.


 "좋아!"


 마가렛은 지상으로 향하는 그 통로를 따라 기체를 발진시킨다.

 이 지긋지긋한 폐허와도 이제 안녕이라 생각하며.




※※※※※※※※※※※※※※※※※





 격벽이 찢어진 격납고.

 파일럿 승강 크레인이 요란한 소음을 내며 진동하고 작동하고 있다. 마치 사각형의 작은 새장같은 승강기 안에는 입과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여자가 있다. 그는 승강기의 쇠창살을 붙잡고 증오에 찬 눈을 뜨고 있다.


 "커헉, 콜록, 콜록!"


 승강기가 향하는 곳은 표준형의 방어형 기체.

 제노비아의 전용기, 히트베리의 콕핏 바로 앞.

 

 "더, 더 가깝게, 더, 가까이."


 제노비아는 승강기의 버튼을 부러진 손가락으로 꾸욱, 꾸욱 누른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콰앙, 승강기가 제노비아의 콕핏에 부딪혀 흔들린다. 그 충격에 제노비아는 털썩, 쓰러진다.


 지금 살아있는 것만 해도 기적이라 할 수 있으리라.

 제노비아의 두 무릎은 꺾여서는 안되는 방향으로 꺾여있다. 무릎만 부서진게 아니다. 거대한 홀리보우의 발에 한번 걷어차인 것만으로, 제노비아의 뼈와 내장은 성한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산산조각나버렸다.


 그럼에도 제노비아는, 움직이고 있었다.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손끝으로 바닥을 긁으며 꿈틀, 꿈틀, 콕핏을 향해 몸을 굴린다. 승강기에서 콕핏 안으로 제노비아의 몸이 떨어진다.


 "커헉!"


 그건 탑승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인형뽑기 기계에서 인형을 떨어트리듯이, 자신의 몸이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난폭하게 뛰어내린 것에 불과했다. 제노비아는 조종간을 향해 파들파들 떨리는 손을 들어올린다. 


 "전용기 활성화 인증, 신체식별코드 확인완료.

 최종인증코드를 입력해주십시오."

 "파일럿 제노비아. 테스트 개시."

 "최종인증 완료. 즐거운 테스트가 될 수 있도록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주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즐거운 테스트라고?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라고?"


 자신이 설정한 메시지다.

 제노비아는 주먹을 들어 난폭하게 조종간을 내려친다.


 "즐거움과 안전 따위는 필요없어!"


 과거의 자신을 부정한다.


 "죽일거다!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내 손으로, 반드시!"

 "주의, 파일럿의 신체에 이상 발생. 테스트를 긴급종료합니다. 긴급종료 시퀀스 개시 5초전."

 "종료하지마! 시퀀스 거부!"

 "시퀀스 거부. 주의, 파일럿의 신체에 이상 발생. 테스트를 긴급종료합니다. 긴급종료 시퀀스 개시 5초전."

 "종료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 깡통이!"


 제노비아가 판넬을 주먹으로 내려친다. 그러나 몇번을 재부팅해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자신의 신체 상태를 감지한 시스템이 기체를 종료시키고 만다.


 왜 이렇게 설계한걸까.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설계를 한 것일까.


 멈춰버린 히트베리의 안에서 제노비아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오열한다. 얼마나 어두운 콕핏 안에서 혼자 울고 있었을까. 제노비아는 무엇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든다.


 "그래, 그게, 있었어."


 제노비아는 손을 자신의 품 안에 집어넣는다. 제노비아의 손 안에 들린 것은 검은 빛으로 빛나는 다크매터다.


 인간에게 괴뢰병을 일으키는 물건이다.

 인간을 기계와 융합한 마리오네트로 만드는 물건이다.


 흑요석처럼 날카로운 다크매터는 제노비아의 손에 상처를 낸다. 손에 고인 피는 뚝뚝 떨어지는 대신,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다크 매터에 엉겨붙는다.


 "반드시, 버텨낸다."


 인간이 다크매터의 침식을 버텨내는 사례는, 바이올렛과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제노비아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바이올렛처럼 운좋은 예외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죽일 때까지는, 버틴다."


 제노비아는 날카로운 다크매터를 양손으로 들어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향해 그 흑요석의 칼날을 찍어내렸다.

 눈을 꿰뚫고 뇌에 다크매터가 직접 닿을 때까지.


 "흐,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제노비아의 비명소리가 히트베리의 콕핏 안을 울렸다.

 그리고, 괴뢰화가 시작되었다.


 제노비아의 눈에서 나무덩굴처럼 뿜어져나온 다크매터의 줄기가, 히트베리의 전 회로를 휘감기 시작했다.




 ※※※※※※※※※※※※※※※※




 분쟁지대의 이름난 도적단, 블랙크루.

 블랙크루의 2대 단장, 아이다는 오늘 매우 기분이 좋았다.


 "여어, 아이보! 그 기체는 여기에 버리고 가는게 어떨까?"


 딱 보기만 해도 양산형이 아니라, 특수 전용형으로 보이는, 간단히 말해 비싸보이는 게하의 기체가 홀로 황야를 질주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함정일까?

 하지만 기체가 향하는 방향은 가까이 있는 게하가 아니다.

 완전히 정반대인 아이타를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답은 단 하나.

 탈영병이다. 아이타는 게하 탈영병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나라가 아닌가? 그레이브나 코렐리아처럼 장군직을 수여받은 사람들도 있고.


 아이다는 거대할 뿐, 그 덩치값을 못하기로 정평이 난 자신의 전용기, 빅 보스의 콕핏 위에서 윙크를 하며, 홀리 보우를 내려다보았다.


 너무나 어이없는 대사, 어이없는 포즈, 어이없는 등장에 마가렛은 할말을 잃고 아이다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 냉정한 시선을 느낀걸까. 아이다는 허둥지둥 변명한다.


 "따, 딱히 그 기체를 가지고 싶어서 그런건 아니라고! 방향을 보니 이제부터 아이타로 가려고 하는거잖아? 게하의 기체를 타고 아이타에 가면 공격당할지도 모른다구?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뺏고 황야에 버려두겠다고 말하는건 아니니까! 기름을 가득 채운 사륜 바이크를 줄게! 마이크가 지난 달에 새로 산 신상 바이크지!"

 "아이다님, 어째서 제 소중한 바이크를!?"

 "저 기체 팔아서 새로 사줄게! 저거랑 비교하면 네 바이크 개쓰레기잖아!"


 상대할 가치가 없다.

 마가렛은 빅보스를 무시하고 지나쳐간다.


 "어, 어어? 가는거야? 그거 역시 버리는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보스! 어쩌죠! 패스당한거 같은데요!"

 "역시 마이크의 고물 바이크가 매력이 없던건가."

 "지난달에 산건데 고물이니 쓰레기니 하지 말아요!"

 "에에잇, 그럼 어쩔 수 없지! 실력행사다!"


 빅보스 위에 서 있던 아이다가, 폴짝 콧핏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수동으로 기어를 조작하는 복잡한 구식 조종간을 붙잡고 홀리 보우를 향해 뒤뚱뒤뚱 쫓아간다.


 "기다려, 탈영병! 기름이 부족할까봐 걱정되면 한통, 아니, 두통 서비스로 줄테니까!"

 "그냥 쏴버리죠!"


 마이크가 초록색 전용기를 조작해 커다란 바주카포를 들어올린다.

 바로 그때였다. 마이크의 전용기가 위에서 아래로 찌그려져 내린 것은. 그 충격에 마이크의 몸이 콧핏에서 튕겨나와 모래 언덕에 처박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마이크!?"


 아이다가 놀라 뒤를 돌아본다.

 아이다의 두 눈이 공포와 경악으로 물든다.


 "저, 저게, 대체... 뭐야..."


 마이크의 전용기를 완전히 파괴한 존재.

 그것은 전용기의 크기에 버금가는, 거대한, 검은, 괴수였다.


 "테, 테헤, 테헤, 테이, 테이힉!"


 온몸이 두터운 다크매터에 감싸인 거대한 괴수.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져내려와 마이크의 전용기를 짓밟았다.

 날개가 달리지도 않았는데, 하늘에서 내려왔다. 아마도 그건, 멀리서 도약해왔기 때문이리라.


 "전부 비켜! 저 커다란 검은 원숭이는 내가 상대한다!"


 아이다는 조종간을 조작해 괴수를 향해 빅보스를 돌진시킨다.


 "어디서 나타난 괴물인지는 모르지만, 이 거대한 빅보스는 무적이라고!"


 그러나 괴수에게 달려가던 빅보스의 속도는 쿵쾅쿵쾅, 쿠웅, 콰앙, 쿠웅, 콰앙, 쿠웅...하고 느려지고 만다. 괴수의 앞에 도달했을 때는 저벅저벅, 하고 걸어가는 정도다.


 "어, 어라?"


 웃고 있는 아이다의 입가가 경련했다.

 아이다는 조종간을 쥔 채 위를 올려다본다.

 아이다의 머리에는 그늘이 드리워져있다.


 "이거, 이렇게, 컸나?"

 "보스! 놈의 발밑을 보십시오!"

 "발밑? 으에에에에엑!?"


 아이다는 조종간에서 일어나 괴수의 발 밑을 본다.

 놀랍게도, 마이크의 부서진 전용기가 거의 다 녹아내린 상태였다. 붉은 용광로처럼 녹은게 아니다. 검게 썩은 야채처럼 녹아버린 전용기의 잔해들이, 중력을 거스르고 괴수의 몸을 타고 올라가 그 크기를 불리고 있다.


 "나보다 큰 놈이면, 못이기잖아..."


 괴수가 양손 깍지를 낀 주먹을 들어올린다. 아이다는 후진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처럼, 파들파들 떨며 괴수를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아이다가 입고 있는 바지는 흥건하게 적셔져 있고, 조종간 바닥으로 뜨겁고 투명한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괴수의 주먹이 빅보스를 내려친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보스!"


 콰앙, 하는 굉음은 아이다의 머리 바로 위에서 울려퍼졌다.


 "에?"


 괴수의 주먹이 마치 거대한 대리석 기둥같은 망치에 가로막혀있다.

 홀리 보우의 망치였다. 아이다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후, 후퇴! 전력으로 후퇴한다!"

 "라져! 보스!"


 블랙크루 도적단은 허둥지둥 도망친다. 황야에 남겨진 것은 마가렛이 탑승하고 있는 홀리 보우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듯 긴 거리를 도약해온 검은 괴수였다. 검은 괴수는 마가렛을 향해 돌진해온다.


 "테이, 테, 테이, 테이이익!"

 "이녀석은, 대체 뭐지..."


 마가렛이 투우사처럼 기체를 슬쩍 옆으로 움직인다. 검은 괴수는 마가렛의 옆으로 빠져나가 모래 언덕에 처박힌다. 그러나 곧바로 머리를 뽑아내고 괴성을 지른다.


 "테이, 시아, 크, 크, 래프트으으으!"


 황야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괴성.

 그 악에 찬 비명소리를 듣고, 마가렛은 깨달았다.

 거대한 원숭이처럼 보이는, 굳이 이름붙이자면 검은 원숭이 왕이라 부르면 될만한 저 괴수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노비아?"

 "테이, 시아, 테이, 시아, 크래, 프트으으!"


 괴수는 홀리 보우를 향해 다시 달려온다. 괴수와 홀리 보우 사이에는 모래 언덕이 몇개나 있지만, 그것을 넘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돌파해서 일직선으로 달려온다. 괴수의 몸이 모래 언덕에 부딪힐 때마다 수백년 동안 쌓였을 모래들이 간헐천처럼 수십미터 상공으로 솟구친다. 모래먼지를 뚫고 검은 원숭이 왕이 깍지낀 주먹을 내려친다.


 "큭!"


 홀리 보우는 양손으로 망치의 자루를 받쳐들고 검은 원숭이 왕의 공격을 흘려낸다. 중량형의 기체라 다행이었다. 만약 경량형의 기체였다면 공격을 흘려내기는 커녕, 곧바로 튕겨나가 쓰러지고 말았겠지.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겁니까, 당신은!"


 마가렛이 외친다.


 "당신이 상대하고 있는 자가 테이시아 크래프트가 아니란 것을!"

 "테이시아, 크래프, 틋!"

 "큭!"


 검은 원숭이 왕이 달려든다.

 홀리보우는 원숭이 왕의 곁으로 파고들어가 육중한 망치로 그 옆구리를 때린다. 검은 원숭이왕의 팔이 산산조각나며 다크 매터의 잔해가 황야에 흩뿌려진다. 분쟁지대의 잔해들을 이용해 급조한 신체인만큼 그 내구성이 뛰어난 건 아닌듯하다.


 "마, 말해, 말해, 테이, 테이시아아아!"


 위력과 스피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기술이 단순했다. 무가에 태어나 기사로써 평생 수련을 쌓아온 마가렛에게 검은 원숭이 왕은, 결코 강한 적이 아니었다. 홀리보우의 망치가 휘둘러지고 검은 원숭이 왕의 반대편 팔이 부서져나간다.


 "테이시아아아!"


 검은 원숭이왕에게 완전히 지혜가 사라진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신체를 재생시킬 재료를 찾기 위해서인지 부서진 마이크의 전용기 잔해 쪽으로 달려간다. 홀리보우에게 몸통박치기를 하는 척 하며, 그 뒤의 잔해로 스쳐지나가려 한다. 


 "이 앞으로는 통행금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가렛에게 유도된 것이었다.

 홀리보우가 전력으로 허리를 비틀어 검은 원숭이왕의 흉부 한복판을 때린다. 다크 매터로 이루어진 검은 원숭이 왕의 가슴이 산산조각 나며, 이제는 절반 밖에 남지 않은 몸이 모래 바닥에 처박힌다.


 더 이상 움직이는게 불가능한지, 아니면 그 거대한 신체의 균형을 잡는 것이 불가능해졌는지, 다크매터의 괴수는 다리를 몇번 바둥거리다 축 늘어진다. 마가렛은 홀리 보우를 쓰러진 괴수 앞으로 이동시킨다.


 "......"


 검은 원숭이 왕의 가슴 한복판, 다크매터에 반쯤 묻힌 채, 다크매터에 얼룩진 새하얀 상반신만 드러나 있는 여자가 있다. 제노비아였다. 제노비아의 왼쪽 눈에는 검고 영롱한 다크매터가 분재처럼 솟아올라있다. 제노비아는 멍청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으로써의 의식은 남아있습니까."

 "테이, 시아..."


 제노비아가 성한 눈을 움직여 마가렛을 올려다본다.

 마가렛은 제노비아를 냉정한 눈으로 내려다본다.


 "저는 테이시아 크래프트가 아닙니다.

 저는 이제 제 정체를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몇번을 묻더라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저는 기사 마가렛입니다."

 "마가, 렛..."


 제노비아의 성한 눈에 눈물이 고인다.


 "마가렛, 우린, 뭘 원한걸까..."

 "제가 하고 싶은 질문입니다. 당신들은 내게, 뭘 원한겁니까."


 제노비아의 뺨을 타고 뜨거운 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제노비아가 아랫입술을 꽈악 깨문다.


 "우리는 그저, 테이시아를,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죽여서, 헥셀의 영웅이 되고 싶었어. 헥셀의 역사로, 기억되고 싶었어."

 "살인은 영웅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행위입니다."

 "알고, 있어. 그래도,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는, 훌륭한 영웅이, 되고 싶었어."


 제노비아가 멍하니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하늘로 솟구쳐오른 언덕의 모래가 이제야 떨어지는지, 모래알갱이가 비처럼 후둑, 후두두둑, 제노비아와 마가렛의 몸 위에 떨어졌다. 사막에 어울리는 모래비였다.


 "영웅이라는게 뭔지 모르겠군요, 이제는."

 "나, 나도, 모르겠어. 머리가 멍해. 나오미가 했던 말도, 미나즈키의 웃음소리도, 흐릿해..."


 제노비아의 동공이 힘없이 마가렛을 향한다.


 "마가렛."

 "왜 그러십니까."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죽이지 못한, 우리에겐, 아무런 가치도 없는거겠지? 우리 같은 어리석고, 한심하고, 나약한, 실패자들의 이야기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거겠지?"


 마가렛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오미와, 미나즈키와,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마가렛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가, 렛."

 "왜 그러십니까."

 "나를, 죽여줘."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검은 원숭이 왕을 이루는 다크매터가, 조금씩 제노비아의 몸을 덮고 있다. 다시 기체를 재구성하려 하는 것이다. 주위를 파괴하고, 기체의 잔해를 흡수하고 끝없이 그 몸집을 부풀리는, 파괴본능 뿐인 괴수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마가렛은 홀리보우를 조작해 망치를 들어올렸다.


 "기사 마가렛,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쓰러트리기 위해 파견된 암살자 일당을 소탕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음을, 여기에서 선언합니다!"


 그 말에 제노비아가 고개를 들어올린다.


 "헥셀의 암살자, 나오미, 미나즈키, 제노비아, 이상 세명은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상대로 절대로 뒤처지지 않고 호각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이에 테이시아 크래프트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으며, 이 사건은 게하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마가렛의 말은 이어졌다.


 "헥셀의 자부심을 드높이기 위해 타국의 영웅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행위! 이에 기사 마가렛은 나오미, 미나즈키를 처형했으며, 지금 여기에서 마지막 암살자인 제노비아를 처형하겠습니다!"


 마가렛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오미, 미나즈키, 제노비아, 이상 세 암살자를, 저는, 저, 기사 마가렛은, 게하는, 그리고, 헥셀은, 이 대륙에 존재하는 인간 모두가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마가렛은 홀리 보우를 조작했다.

 홀리보우가 거대한 망치를 제노비아의 몸 위로 찍어내린다.


 "고마워."


 제노비아는 미소를 지었다.

 다크매터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사막에 내리는 모래비는 그칠줄을 모르고 계속 내렸다.

 그건 오늘 같은 날에 매우 어울리는 날씨라고, 마가렛은 생각했다.


 고독한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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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완결.


다음편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