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의 휴일 프롤로그 https://arca.live/b/finalgear/34614734

마가렛의 휴일 1화 https://arca.live/b/finalgear/34660791

마가렛의 휴일 2 https://arca.live/b/finalgear/34687902

마가렛의 휴일 3 https://arca.live/b/finalgear/34722517

마가렛의 휴일 최종화 https://arca.live/b/finalgear/347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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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게하, 크래프트 가문의 저택.

 여기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여자가 있다. 

 테이블 위에 마술사들이나 쓸 법한 우스꽝스럽게 각이 진 중절모를 올려둔 여자가 있다. 오른쪽 뺨에 거대한 화상자국이 나 있는 여자가 있다. 고급스러운 앤티크 의자에 어울리지 않게, 다리를 꼬고, 몸을 비틀고 앉아있는 여자가 있다. 손에 쥔 밀크티 잔을 난폭하게 흔들어 차를 뚝뚝 떨어트리고 있는 여자가 있다.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알렉사라고 한다.


 알렉사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 여자.

 밀크티 잔을 든 채, 그 안에 담긴 차를 마시지도 못하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알렉사를 노려보고 있는 여자가 있다.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래서 결국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라? 그 눈은 뭔가요? 이야기가 재미가 없었나요?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당신이었어요. 당신이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당신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지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진짜'가 나타나지 않으니 마지막에라도 한번 정도는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겠죠? 이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런데 저는 이게 좀 궁금하더라구요.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진짜 당신이 나오지 않은게 참 유감스러웠거든요. 본인 입장에서는 어떠십니까? 자신이 나오지 않아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까?

 "저는,"

 "이 집 차 맛있네요. 리필 부탁드립니다."


 알렉사가 메이드를 향해 빈 찻잔을 내민다.

 메이드가 고개를 조아리며 알렉사의 잔 안에 밀크티를 채운다.

 알렉사가 미소를 지으며 손사레를 친다.


 "아하하, 그렇게 무섭게 노려보지 마십시오. 게하는 차가 참 맛있습니다. 헥셀에서는 접하기 힘든 맛이라 기회가 될 때 많이 맛보자고 생각했을 뿐, 딱히 당신의 말을 끊어먹을 의도는 없었으니까요."

 "어째서 제게 이런 이야기를,"

 "누가 당신의 말을 끊을 수 있겠어요!

 그 테이시아 크래프트의 말을!"


 두번이나 말을 끊었다.

 이건 확실히 의도적이다.


 당신의 말 따위 듣고 싶지 않다.

 내 말이나 들어라. 그런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어째서?

 확실한 건, 알렉사가 테이시아를 향해 불쾌한 감정을 지니고 있단 것이다. 테이시아는 굴욕감을 참으며 조심스레 말한다.


 "만약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마가렛은 지금 어디에,"

 "아닛, 크래프트 공녀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겁니까? 사실이라니요? 이건 이야기일 뿐인데요."


 히죽, 알렉사가 미소짓는다.


 "설마, 제 이야기를 사실이라 믿어버린건 아니겠지요?

 릴리안 여왕이 당신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터무니없는 괴소문을."


 곁에서 차를 따르던 메이드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다.

 절대로 알아서는 안되는, 알면 목숨이 위험한 비밀을 들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테이시아가 메이드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저, 저는, 아무것도...!"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귀머거리."

 "네, 네, 저는, 귀머거리입니다!"


 메이드가 허둥지둥 응접실 밖으로 도망치듯 뛰어나간다.

 알렉사가 피식 웃으며 티포트를 들고 스스로 차를 따른다.


 "나가라고 하면 안되지요.

 그러면 제 이야기가 마치 진짜같잖아요?

 그냥 거기 있어라고 해야지요."


 "그 이야기를 한 목적이 뭐지요?"

 "나오미, 미나즈키, 제노비아."


 알렉사는 마치 술을 마시듯 잔에 담긴 차를 들이킨다.


 "헥셀인다운 멋진 근성을 보여준 아이들이지요?"

 "전부 가상의 인물들이지요. 그게 어쨌다고요."

 "......네, 당신이 아는대로 전부 가상의 인물들이죠. 그리고 전부 죽어버렸지요. 그리고 당신은 말해버렸네요."


 알렉사가 잔을 든 손을 활짝 펼친다.


 "그게 어쨌냐고 말이죠."


 값비싼 찻잔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난다.


 "감흥은 없었나요? 당신을 죽이기 위해 노력했던 암살자들이에요. 가상의 캐릭터들이지만요. 하지만 뭐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걸까. 결국 당신에게 단 한명도 도달하지 못하고 죽어버렸지요. 가상의 캐릭터들이지만요. 비록 당신을 죽이려 한 암살자들이지만, 나오미, 미나즈키, 제노비아, 이 세사람 중 진짜 당신을 만나길 원하지 않았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어요. 가상의 캐릭터들이지만요. 좀 기억에 남을까요?"

 "변형자답지 않게 시덥잖은 이야기로군요. 그런 얘기를 하는게 목적이었다면 이만 돌아가주세요. 검술 연습을 할 시간이 더 유익할 거 같으니 말예요."

 "...그러도록 하죠."


 알렉사는 중절모를 집어 머리에 쓴다.


 "유익하지 못한 불청객은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하녀를 바꾸시는게 어떤가요? 몰래카메라가 있을 법한 위치만 피해서 교묘하게 서 있는게 참 재미있는 하녀다 싶거든요. 아마 카메라의 위치는 저기 저 시계 안, 그리고 저 그림의 액자, 아아... 당신이 앉을 자리까지 지정해주는 과잉 친절을 보면 의자 바로 아래에도 카메라가 있을까요? 침실도 확인해보는게 좋겠군요."


 테이시아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달아오른다.

 알렉사가 미소를 짓는다.


 "걱정마십시오. 여왕의 첩자는 아닐테니까. 미인으로 유명한 당신의 사생활을 도촬해서 작은 부수입을 거두는 종자겠지요."

 "당장, 내 집에서 나가세요!"

 "이런이런! 안그래도 나가고 있습니다. 너무 재촉하지 마십시오. 저는 요즘 트렌드를 따라 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하려고 해서요."


 알렉사는 휘파람을 불며 응접실 밖으로 나간다.

 와당탕탕, 바닥의 타일을 뒤집고, 액자를 떼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이런. 사람 말을 너무 잘 믿는단 말이에요.

 귀가 얇으면 사는게 피곤한 법인데."


 저택 현관에 선 알렉사는 휘파람을 불며 우산을 펼친다. 비가 내리는 테이시아 저택의 정원을 걷는다. 저택 응접실 창가에서는 테이시아의 고함소리와, 메이드가 울며 사죄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빗소리에도 지워지지 않는 커다란 소리였다.


 거대한 쇠창살로 이루어진 현관 밖으로 나간다.

 그곳에는 리무진 한대가 알렉사가 나올 때까지 대기하고 서 있었다. 리무진의 앞에 성신교의 검은 로브를 둘러쓴 수녀가 한명 서 있다. 비를 온몸에 맞으며 테이시아 저택을 바라보고 있다. 알렉사는 그에게 우산을 건네며 히죽 웃는다.


 "소꿉친구인데, 만나고 가지 않아도 좋습니까?"


 수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리무진의 문을 연다.


 "테이시아 크래프트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까?"


 알렉사는 리무진에 올라탄다. 수녀에게 손짓한다.


 "당신은 정말로 어리석군요.

 비가 오면 차 안에서 기다리면 될 것을, 왜 굳이 차 밖에 나가서 위험한 일을 겪으려 하는 것인지."


 수녀는 우산을 접고 리무진 안으로 들어간다.

 헥셀 외교관 번호를 단 리무진이 출발한다. 음악도 없이 오직 차 천장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리무진 안에 울려퍼진다. 테이시아 저택이 보이지 않을 때쯤, 수녀가 침묵을 깨트렸다.


 "테이시아 크래프트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까?"

 

 정확히 똑같이, 다시 물었다.


 "그게 중요합니까?"


 알렉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수녀를 바라보았다.


 "당신보다 그들을 잘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알렉사는 등받이에 목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다른 사람에겐 그저 실패한 바보들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수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신은 실패하지 말아주세요."


 알렉사가 손을 뻗어 수녀의 후드를 내린다.

 후드 안에서 드러난 건 금발을 지닌, 새하얀 피부의 여인이다.


 한때 게하의 기사였고,

 한때 게하의 반역자였고,

 한때 테이시아 크래프트로 오해받았고,

 한때 헥셀의 암살자들을 죽였던 여자다.


 그리고 지금은,

 여왕을 죽이기 위해,

 헥셀에 고용된, 

 암살자다.


 "이 이상 이야깃거리가 늘어나는 건, 원치 않습니다."


 암살자를 태운 리무진은 비가 내리는 게하의 거리를 달렸다.

 모든 이야기를 지워버릴 듯한 차가운 빗소리가 거리를 채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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