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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견은 목줄에 매이길 바란다>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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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타 공화국 북동부 지방의 마을, 금룬가.

 게하 제국과 치열한 일진일퇴가 벌어지고 있는 최전선. 그 전선에 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보급 거점으로 쓰이고 있는 북방항구도시다.


 금룬가는 군의 통제 하에 들어가 있어 치안상황이 좋고, 구호물자 비축분도 많다. 인근 지역의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기지는 아니지만, 군인들은 자신들의 보급품까지 피난민들에게 나눠주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공화국 지도자 그레이샤 장군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복지정책의 실천이다.


 금룬가에는 수많은 피난민들이 구호물자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줄을 서 있었고, 그들 나름의 암시장까지 열고 있을 정도였다. 아마 금룬가 항구 역사 상 이보다 더 사람들로 북적였던 때는 없었으리라.


 앞으로도 없으리라.

 짧았던 금룬가의 전성기는 어제 끝났다.


 "아아. 사람들은 어째서 군의 거점으로 피난을 오는걸까요. 보급거점보다 더 위험한 장소는 없는건데요."

 "반역자 그레이샤가 일부러 죽어라고 모아둔거 아냐?"

 "덕분에 우리는 일이 편해졌지만요."


 폐허가 되어버린 금룬가 거점.

 피난민을 수용하던 건물도, 군 물자를 담아두고 있던 창고도 전부 무너지고 불타고 말았다. 생존자는 없다. 적의 목적은 물자의 탈취가 아니라, 보급 거점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희 넷보고 끊어진 가설망을 복구하라니.

 너무하지 않나요. 저희는 통신병과도 아닌데."

 "어쩔 수 없어. 비밀작전인데 정식부대를 투입하는 건 위험이 너무 크잖아. 소수정예인 편이 오히려 안전해."

 "와! 소수정예! 아니아니, 소수정예 아니잖아요. 저희 가운데 폐급도 하나 있고."


 투덜거리는 말만 내뱉고 있는 건, 너저분한 금발을 길게 늘어트리고 있는, 음침해보이는 소녀였다. 필사적으로 그 소녀를 달래고 있는 건, 머리카락이 새하얀 소녀. 하얀 머리카락 군데군데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것으로 보아, 붉었던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세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너저분한 제식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군복을 입어도 될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다.


 군복을 입은 소녀가 네명. 전부 십대 초반의 어린 소녀들이다. 그들은 괭이와 삽을 들고 폐허를 파헤치고 있다.


 "으아아아아아악!"


 그들 중에서 가장 어려보이는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무너진 건물 잔해 위에서 파들파들 떨며 주저앉는다.


 "네, 레나타, 레나타 언니! 여, 여기, 여기!"

 "뭔데, 스위티."


 레나타라 불린, 머리가 새하얗게 세어버린 소녀가 울고 있는 스위티 가까이 다가간다. 스위티의 발소리 탓인걸까. 폐허 속에서 피에 물든 손이 불쑥 튀어나온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끔찍하게 찢어진 팔이, 파들거리며 잔해 타이로 손을 뻗고 있었다.

 아니, 팔만이 아니었다. 그 틈새 아래로 보이는 남자의 머리는 뇌가 드러날 정도로 깨져 있는데다, 꺾여서는 안되는 방향으로 목이 뒤틀려있다. 그런데도 그 남자는 필사적으로 손을 잔해 틈으로 뻗고 있었다.


 "흐응."


 레나타는 한숨같은 콧소리를 길게 낸 뒤, 주저앉은 스위티를 바라본다.


 "스위티는, 이거 처음 보나보네."

 "이, 이게 뭔데요?"

 "이게 바로 괴뢰병 감염자야. 피난민들 사이에 감염자를 끼워 침투시킨거야. 우리 극야대대는 그 뒤처리를 하고 있는거지."


 스위티가 울면서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다.


 "그럼, 우리도, 우리도 위험한거 아니에요? 우리도 여기있으면..."

 "어... 아니, 그건 아니야. 우리는 괴뢰병 백신을 맞았으니까."

 "그 백신이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믿어요! 물백신이라는 말도 있는데!"

 "스위티, 전쟁터에선 뭐라도 믿지 않으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어."


 레나타는 들고 있던 삽으로 잔해 속을 쑤셔박는다. 잔해 틈에서 튀어나온 피와 뇌수가 레나타의 군복 위로 튀어오른다. 레나타는 장갑을 낀 손으로 잔해를 들어내고, 남자의 사체를 그 안에서 끌어낸다.


 "구, 그웨에에엑!"


 스위티는 입을 막은 채로 구토하고 만다.

 그 모습을 본 너저분한 금발머리 소녀, 아프라가 역정을 낸다.


 "미쳤어요! 아까운 보급품을 처먹어 놓고 왜 토하는건데요! 뱉지마요! 당장 삼켜요!"

 "게흐흑! 구웩! 시, 싫어! 저런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 구웨엑!"

 "그거 입 밖으로 흘리면 내일까지 밥 없을줄 알아요!"


 스위티가 구토를 하건 말건, 레나타는 묵묵히 삽으로 바닥을 파고 폐허의 잔해를 파헤쳐간다. 그 아래 마침내 나타난건, 선이 끊어진 통신장비였다. 레나타가 아프라를 향해 손을 흔든다.


 "마지막 통신노드 찾았어, 아프라!"

 "레나타는 역시 일하는 속도가 빠르네요. 어어, 거기... 광견씨! 쟤 이름이 뭐였죠?"

 "광견소대에서 파견온 애? 베르나데트일걸."

 "맞아요, 베르나데트! 그쪽 노드 연결 끝났으면 저희 있는데까지 선 끌고 와요! 빨리 끝내고 쉬어요!"


 마지막으로 이름이 불린 소녀.

 등에 수십킬로그램이나 되는, 전선타래를 짊어지고 있는, 흑발의 소녀였다. 미용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머리를 자른 탓에, 머리는 까치집처럼 더벅이 되어있다.

 다른 세사람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전장에 나와있던 탓인지 더러운 화약과 기름때가 온몸에 가득 밴 초라한 모양새다. 베르나데트라 불린 소녀는 레나타가 있는 곳까지 다가가, 전선타래를 내려놓는다.

 베르나데트는 울고 있는 스위티를 보더니, 그의 곁에 무릎을 꿇고 눈을 마주친다.


 "괜찮아?" 

 "이제 싫어... 전쟁터 따위... 이제 싫어..."

 "물 마실래? 박하잎을 섞은거야. 마시면 기분이 나아질거야."


 베르나데트는 스위티의 등을 쓰다듬는다. 그러나 스위티는 이를 악물고 흐느낄 뿐이다. 괴뢰병 감염자를 실제로 본 충격에 패닉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극야부대에 강제징집된 소녀병들이 통과의례처럼 겪는 일이다. 이 상태가 오래되는 건 좋지 않다. '전의상실유발자'로 분류되어 처분당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스위티가 울건 말건, 레나타과 아프라는 신경도 쓰지 않고 노드 연결작업을 한다. 전선을 전부 연결한 뒤, 손바닥만한 단말기를 켠다. 단말기에서 방송이 나오면 통신망 탈취 성공, 나오지 않으면 다시 처음부터 모든 노드를 점검해야 한다.


 [지지직, 속보입니다.]

 "오, 나온다, 나와."

 "이제 쉴 수 있게 되었네."


 레나타가 미소를 지었고, 아프라는 팔뚝을 걷어붙인다.


 "복귀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장난감이나 좀 찾아볼까요?"

 "아프라는 여전하네. 피난민이니까 몸에 귀중품들을 많이 갖고 있겠지만."

 "그건 레나타 드릴게요. 저는 장난감만 있으면 충분해요. 아리타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장난감만큼은 수상할 정도로 퀄리티가 높게 잘 만들거든요."


 아프라와 레나타는 라디오를 켜둔 채, 폐허의 잔허를 삽과 곡괭이로 뒤적인다. 좀비화된 인간을 찍어 토막내고, 몸에 숨겨둔 시계나 목걸이, 반지 같은 귀중품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와! 이거! 츠바메 피규어에요!

 이거 정말 가지고 싶었는데!"


 아프라는 아이들의 피와 살점으로 얼룩진 인형과 장난감들을 발견할 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행복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베르나데트는 눈 앞의 금은보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오직 통신장비 복구라는 임무에만 관심이 있다는 듯 노드 가까이 다가가 라디오의 음량을 켠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아리타의 모건 헤링 총사령관이 분쟁지역 내의 아리타 군 전군 철수를 골자로 하는 평화협정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따라 오늘 오전 10시 10분, 게하의 빌헬름 베렌포드 참모총장은 리사 황제를 대리하여 평화협정에 서명하였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라디오를 바라보았다.

 아프라가 피에 물든 장난감들을 품에 끌어안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보급이 떨어진 상태에서, 반역자 모건의 군대를 밀어냈단거야? 해머 장군의 부대는 연료도 거의 다 떨어진 상태였잖아."


 레나타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통신망도 없이 진격한거네. 통신이 없으면 싸울 수 없을거라는 적의 안일한 판단을 역으로 이용한거지. 대단해, 해머 장군님."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듯이.

 아프라가 머리를 난폭하게 긁적인다.


 "아니, 아니, 그건 말도 안되잖아. 통신망 없이 어떻게 전쟁을 하는데. 뭔가 좀 이상한데. 아리타 폭도들을 모두 죽이지 않으면 전쟁은 끝나지 않는거 아니었어? 이 전쟁은, 어느 한쪽이 다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댔잖아. 이렇게 간단히?"

 "모건의 군대가 다 죽은거야. 게하가 이긴거야."


 전쟁이란, 한쪽의 군대가 다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게하의 군대는 아직 건재하니, 아리타의 군대가 전멸한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에서는 그들의 인식을 깨트리는 속보가 이어진다.


 [리사 황제의 국장은 내일부터 나흘간 이어질 예정이며, 추모 행사를 위하여 게하 제국은 전군을 분쟁지역에서 철수시킬 예정입니다.]


 베르나데트의 두 눈이 당혹으로 커졌다.

 추모기간. 그것은 황제가 죽었다는 말이 아닌가.


 [한편 아리타 공화국은 게하의 노예병 운용에 관한 청문회와 군사감찰권을 요구했습니다. 베렌포드 총사령관은, 노예병에 관한 소문은 단순히 후방지원을 할 뿐인 사회비보장국민 인력이 와전된 것이며, 미성년자를 군에 강제 징집했다는 것은 특히 악랄한 날조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아프라 멍한 얼굴로 라디오를 바라본다.


 "저기, 레나타. 청문회랑 군사감찰은, 진쪽이 받는거 아닌가요?"


 레나타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렇,긴 하지만 이번은 특별한거 아닐까? 평화를 위해 서로..."

 "리사 황제 폐하, 돌아가셨댔지요? 그런데 돌아가신 이유는 안나왔지요?"


 레나타가 침묵한다.

 어떻게든 지금 뉴스를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려 해도, 긍정할 수가 없었다.


 게하 제국은 졌다.

 아리타 공화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러니 청문회를 당하고, 군사감찰을 받아야 하고, 미성년자 노예병을 운용한 적이 없다고 필사적으로 변명해야 하는 처지까지 몰린 것이다.


 "그래서 중간 보고 하라는 독촉이 없던거군요.

 통신망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어진거지요. 우리, 진짜로 삽질했네요. 문자 그대로."


 아프라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레나타는 두꺼운 금반지를 손 안에서 튕겼다 굴렸다 하며 멍한 표정을 짓는다.


 "공화국은, 우리같은 병사를 '노예병'이라고 부르는거지?"

 "그렇겠지요."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사회비보장국민일 뿐인데."

 "공화국 놈들 눈에는 그게 그거처럼 보이겠지요."

 "슬프네."

 

 레나타가 고개를 떨구었다.

 아프라가 씨익 웃으며 레나타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걱정마세요. 설마 우리한테 나쁜 일이 일어나겠어요? 대대장님이 저흴 지켜줄거에요."

 "그렇겠지?"

 "물론이지요. 공화국은 자꾸 사회비보장국민 계급을 가지고 시비를 걸잖아요. 게하의 전통도 모르면서. 하지만 저희에겐 오히려 잘 된 기회일지도 몰라요.

 국장님이 그러셨잖아요. 전쟁이 끝나면 저희들 모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될거라고요. 전쟁에 참여한 비보장국민들 모두가 삼등국민이 될거라고요. 과장이 있긴 하지만 최소한 저희 극야대대원들은 삼등국민이 될 수 있을거에요!"

 "우리가 삼등국민이?"

 "그래요! 정식병이 될 수 있어요! 기숙사에서 살 수 있고 급식도 먹을 수 있어요! 군대에 들어와 누렸던 평온하고 안정된 생활이 평생 유지되는거에요!"


 레나타의 눈이 반짝반짝하게 빛난다.


 "군대에서 누렸던 평온한 생활이, 평생 유지..."

 "빨리 철수 준비나 하러 돌아가죠. 머지 않아 여기에도 아리타군이 들이닥칠거에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면 삼등국민도 될 수 없어요."


 아프라가 일어나서 손을 흔든다.


 "광견 씨, 들었죠?

 어서 본대로 복귀해요.

 거기 폐급 끌고 오세요!"


 스위티는, 여전히 쪼그려 앉아 울고만 있다.

 베르나데트는 아프라에게서 등을 돌린채 답한다.


 "이제 돌아갈 필요는 없지 않아?"

 "음? 설마 탈영하겠다는 뜻인가요? 이제와서?"


 베르나데트가 흘끗, 아프라를 바라본다.


 "내가 탈영하던 말던, 네가 무슨 상관인데."


 아프라가 푸훕, 하고 입을 가리며 웃는다.


 "아, 하긴 그렇네요. 저희 극야대대는 그저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 모를 노예들의 집합소일 뿐이죠! 저희들 사이에는 같은 부대라는 소속감도, 전우애 따위도 없지요! 다른 소대가 뭘 하는지, 어디까지 내몰렸는지 서로 알지도 못해요!"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부정하고 싶어하기도 한,

 악에 찬 웃음소리였다.


 "광견소대가 전멸했다? 생존자는 한명이다? 그러니까 그 한명을 소대에서 받아줘라? 그런데 그 한명 분의 보급은 없다? 당신이 저희 소대에 끼친 피해는 알고 말하는거 맞죠? 당신이 먹은 통조림과 물이 누구껀지는 알고 그렇게 쌀쌀맞게 말하는거 맞죠?"

 "진정해, 아프라. 광견 애들이 원래 좀 사회성이 떨어진다잖아."

 "탈영을 할거면 처음부터 하던가! 그래요, 가버려요! 평생 그렇게 사회비보장계급으로 살다 죽어요! 거기, 폐급! 지금 광견이 한 말 들었지요? 전쟁은 끝났어요! 당신 이제 탈영해도 뭐라 할 어른은 없어요! 이대로 탈영해버려요!"

 "베르나데트, 너도 미안하다고 말해. 전쟁의 결과가 이래서 허탈해진건 알지만 너 잘못 생각하고 있어. 탈영은 진짜 아냐. 지금까지 힘들었는데, 함께 돌아가서 같이 보상을 받아야지."


 베르나데트는 대답했다.


 "스위티는 진정시킨 뒤 보낼게.

 하지만 나는, 복귀하지 않아."


 레나타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베르나데트. 전쟁이 끝났으니까, 급료를 정산받을 수 있을텐데. 게다가 넌 제일 위험한 곳에 내몰린 광견 출신이야! 넌 광견의 유일한 생존자고! 소대의 전공을 온전히 네것으로 인정받아서 사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은혜도 모르는 개새끼는 내버려둬요, 레나타."


 아프라는 진정된 듯 한숨을 쉰다.

 그는 베르나데트의 군용백팩을 집어든다.


 "광견, 당신의 급여채권은 제가 가져갈게요."

 "마음대로."

 "아프라, 너!"

 "상관없다잖아요. 안챙기는 쪽이 미친거지요."


 아프라는, 귀중품들을 군용배낭에 가득 채워넣고 자리를 떠난다. 레나타는 어쩔 줄 몰라하다, 폐허 속에서 발견한 물과 통조림, 초콜릿 같은 피에 물든 식료품들을 바닥에 쌓아두고 아프라의 뒤를 따른다.


 "둘 다 이거 먹고, 기운 차리고 돌아와.

 아프라는, 두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는거야."


 그러나 베르나데트는 울고 있는 스위티의 곁에 주저앉아 멍하니, 지직거리는 라디오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극야의 대대장은 말했다.

 공화국 군대를 모두 죽이지 않으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전쟁은 끝났다.

 리사 황제가 죽음으로써.


 베르나데트는, 명령받았다.

 공화국 군대를 죽여, 전쟁을 끝내라고.


 하지만 전쟁은 끝났다.

 베르나데트와 무관한 사건으로 인하여.


 "아직, 적들을 다 죽이지 못했는데."


 베르나데트는 폐허 위에 주저앉은채,

 멍하니 중얼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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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개선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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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선기사단.

 그건 삼년 전, 공화국과 제국 사이 평화협정이 체결됨과 동시에 결성된 기사단이다. 표면상으로는 평화협정에 공을 세운 자들을 모아 결성한, 릴리안 황제 직속기사단이다.


 "외람되오나, 제 소견엔 예산 확보가 시급하다고 봅니다만."

 "제국 방방 곳곳에 승리를 알리는 것이 개선기사단의 임무야! 예산 확보를 하기에 앞서 중요한 것은 아직 승리를 얻지 못한 참전용사들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지! 예산확보는 그 뒤의 문제야!"


 게하 제국 중서부 변경지방, 이글란 마을.

 그 산간마을 입구에, 기사 제복을 입은 두명의 여자가 서 있다.


 한명은 군 행사 때나 걸칠 듯한, 안감이 붉은 천으로 대져 있는 예식용 제복을 걸치고 있는 푸른 은발의 여자다. 개선장군이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그 여자의 뺨에는 그 부분의 피부를 도려낸 것처럼 보이는 사각형의 붉은 흉터자국이 있다. 특이하게도 그 여자는 허리춤에 검 대신 우산을 차고 있었다.


 다른 한명은 평범한 기사 제복을 입고 있는, 갈색 머리의 소녀였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 끝에는 고양이 모양 스트랩이 달려 흔들리고 있었지만, 이에 대해 뭐라 할 사람은 이 자리에 없다. 갈색 머리 소녀는 남부 변경 도시 메리다 영주의 딸, 에스메랄다 메리다였기 때문이다. 에스메랄다는 개선장군의 뺨에 있는 흉터를 바라본다.


 개선기사단장 엘로이스 빅토리아 장군.


 새 황제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급조된 예식용 기사단이라는 직위와, 유례없는 초고속 특진으로 인해, 제국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군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결성 당시 일만명에 달했던 개선기사단의 규모는 릴리안 황제의 대관식 직후 정식편제가 9명이라는 초 미니멀리즘 부대가 되어버렸다. 그나마도 6명은 은퇴를 앞두고 일년치 유급휴가를 몰아쓰는데 바쁜 늙은 노병들이다. 기사단장 엘로이스 빅토리아와 신참기사 에스메랄다 메리다를 제외하면, 개선기사단에는 가용가능한 정규 군인이 한명도 없는 셈이다.


 편성가용인원 3명.

 원래 개선기사단은 전후에 편성되는 이벤트 기사단인만큼 규모와 예산도 금방 깎이는 법이지만, 실가용 3명 수준으로 몰락하는 건 제국 역사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기사단에 배속된 가용인원 모두가 퇴역신청서를 내버렸기 때문이다. 불명예스러운 오명만 남은 패전기사단에서 일하고 싶진 않단 뜻이겠지.


 그건 에스메랄다도 마찬가지였다.

 기껏 노력해서 기사단에 들어왔는데 패전장군 밑에 배속되다니. 에스메랄다는 이마를 짚으며 앓는 소리를 낸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는 해도 말이죠. 급료가 나오질 않는다니. 기사의 삶은 참 서글프네요."

 "우리의 급료는 전액 연금으로 들어가니까 당연한 거 잖니."

 "연금으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급료를 내줄 예산이 없어서 연금공단에 지불책임을 떠넘긴거잖아요."

 "급료가 필요하니? 출장비도, 의복도, 식사도, 숙소도 전부 군에서 지원해줘. 어딜 가던 확실한 신원보장이 되고, 군인이라고 존경까지 받아. 기차도 무료로 탈 수 있고. 이 이상 바랄게 뭐가 있니?"

 "디스토피아적인 사고방식이네요, 정말."


 에스메랄다는 메리다 가문의 일곱번째 딸이다.

 일곱번째 딸인 자신이 당주 자리를 이을 수는 없다.

 하물며 막내딸이라는 밑바닥을 기는 서열 때문에 영지를 나눠달라고 요구하기에도 애매한 위치다. 그래서 에스메랄다는 기사가 되어 자신이 메리다 가문의 영지를 물려받을 자격을 갖추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하지만 배속받은 곳이 개선기사단이라는 전보를 받았을 때는, 너무 절망해서 선채로 오줌을 지릴 뻔 했다. 아니, 진짜로 찔끔 쌌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메리다의 첫째부터 다섯째까지 전부 명문기사단에 들어갔다. 전쟁도 끝났는데 무리하게 자리를 만들었다. 에스메랄다를 받아줄만한 기사단은 예산도 인력도 없는 릴리안 황실 직속 개선기사단 뿐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전쟁유공자 실태 파악이 우선이야.

 이글란 마을에서는 수상할 정도로 유공자 연금신청이 없어."

 "이 마을에는 참전용사가 없나보죠."

 "그럴리가 있니. 저길 보렴."


 엘로이스가 마을 입구 근처에 있는 묘지를 가리킨다.

 에스메랄다가 인상을 찌푸린다.


 "우와, 마을 입구에 묘지가 잔뜩. 기분나빠..."

 "불경한 소리 하지마렴. 산간지방이라 짐승이 묘지를 파헤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삶의 지혜지."

 "지혜가 기분나빠..."

 "저기 묻힌 남자의 이름은 아스톨 마니에. 성광기사단에서 근무하던 중사였다네."

 "어떻게 알아요?"

 "나는 측지병 출신이거든. 묘비에 써 있어. 마니에 씨를 포함해 군인이 묻힌 묘지가 스물, 아니, 스물 둘이네."

 "스물둘이요!? 마을 크기에 비해 좀 많지 않아요!?"


 에스메랄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엘로이스가 한숨을 푸욱 쉰다.


 "지난 전쟁 때, 마을 단위로 부대를 짜는 기사단장들도 있었거든. 폭격에 맞아 한 마을 젊은이들이 전멸해버렸다... 제법 많이 있던 일이야. 난 그런 끔찍한 광경을 눈 앞에서 직접 목격한 적도 있단다. 측지병이라 참호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덕에 살았지.

 물론, 실제로 저런 이름의 군인들이 있었는지는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이 마을 젊은이들 대부분이 전쟁 중에 희생되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일거야."

 "정말 이상하네요. 저렇게 많이 죽었는데 왜 아무도 보상신청을 안했을까요."

 "그러게 말야. 이 마을은 보상금 신청 기록이 전혀 없어."


 에스메랄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전부 고아였다거나. 아니면 유족들도 세상을 떠났다거나?"

 "희생자가 네다섯명만 되었어도 그렇게 덮고 넘어갈 수 있겠지. 하지만 스물두명이야. 저들의 유족이 없을거라 생각하긴 힘들어. 게다가 이 피해규모면 유족이 아니더라도, 마을 단위에서 소송단을 꾸려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고. 세상 물정이 어두워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주민면담을 할 필요가 있겠네요."


 엘로이스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뜬다.

 그는 에스메랄다의 어깨에 턱, 손을 얹으며 웃는다.


 "주민면담이라니. 훌륭하구나, 에스메랄다!

 평민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으려 하다니! 요즘 보기 드문 진취적인 귀족 영애야! 너는 틀림없이 칭송받는 영주가 될거야!"

 "......영주가 될 수 있다면, 이지만요."


 엘로이스에게 칭찬받아도 전혀 기쁘지 않다는 듯, 에스메랄다가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던 에스메랄다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엘로이스 단장님, 저거."

 "응? 뭐니?"

 "저기 물지게를 지고 가는 애, 군용 점퍼 입고 있어요." 


 엘로이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에스메랄다가 보는 방향을 바라본다.

 물을 가득 담은 지게를 짊어진 소녀가 마을 방향으로 오고 있다. 멀리 떨어진 샘에서 물을 길어오는 모양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소녀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앙상하게 말라보이는 소녀다. 펑퍼짐한 점퍼로 몸을 감싸지 않았으면 상당히 비참해보이는 몰골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소녀와 엘로이스의 눈이 마주친다.


 "......"

 "......"


 소녀는 잠시 그 자리에서 멈춰서서, 엘로이스를 바라본다. 그러나 엘로이스에게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눈을 돌리고 그대로 지나쳐 마을로 들어갈 뿐이다.

 에스메랄다가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불쌍해라. 유족이 틀림없어요.

 저 옷은 틀림없이 오빠의 유품이겠죠."


 그러나 엘로이스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퇴역군인이네."

 "네? 말도 안돼요. 저보다 어려보이는데요."

 "아까 멈췄을 때, 오른손을 들어올리려했어. 그리고 발꿈치를 붙이려고 했지. 무의식적으로 상급자에 대한 경례를 하려고 한거야."

 "저 조그만 애가 스무살이 넘었을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기사를 보면 경례하는 애는 많아요."

 "하지만 여자 기사 둘이 서 있을 때, 누가 더 상급자인지 알아보는 애는 별로 없어. 저 애는 내가 계급이 더 높다는 걸 알아보고 경례를 하려 했어."


 엘로이스는 소녀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볼 뿐이다.


 "에스메랄다, 너는 이장을 만나 주민면담을 준비해줘. 그동안 나는 저 애와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


 그 소녀가 신경쓰여 견딜 수 없다는 듯한, 눈이었다.




 #################################


 이글란 마을의 하나 뿐인 빵집.

 이곳에서는 단순히 빵만 팔 뿐만 아니라, 빵에 곁들여 먹을 부식들도 팔고 있다. 노인들 대부분은 접시에 빵과 부식을 담아 가게 한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간다.


 "어서오세요. 어라, 벌써 온거야?"


 빵집에 검은 머리의 소녀가 들어온다. 

 군용점퍼를 입은 소녀가 빵집 주인인 듯한, 굵은 팔을 지닌 청년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오늘은 샘에 물이 많이 고여있었어요."

 "곧 비가 쏟아지겠구만. 수고했다, 베르나데트."


 베르나데트는 흘끔, 진열대 한가운데 있던 애플파이를 본다. 젊은 남자는 그런 베르나데트의 시선을 못본 척하고, 진열대 아래에서 봉투를 꺼낸다.


 "넉넉하게 넣었으니 가져가렴."


 베르나데트가 애플파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거, 주실 수는 없나요?"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하다, 베르나데트. 단골이 맡긴 사과로 만든 파이라서."

 "한조각만이라도 괜찮아요."

 "보기에만 그럴싸하지, 설탕이 안들어가서 맛이 없어."

 "괜찮아요. 먹어보고 싶어요. 한조각만 주세요."


 베르나데트는 물러날 생각이 없어보인다.

 남자는 집게를 들어, 파이를 집어 봉투에 담는다.


 "하는 수 없지. 두조각 가져가라."

 "한조각이면, 충분해요."

 "너 답지 않게 고집을 부리는구나.

 요즘 체력이 떨어진거냐?"


 그 순간, 베르나데트의 눈빛이 흔들린다.

 남자가 그의 손에 봉투를 쥐여준다.


 "많이 먹고 빨리 나아."

 "감사합니다."

 "내가 더 고맙지. 산 건너 샘까지 물을 길어와주니까 말야. 덕분에, 이런 다리로도 빵을 만들 수 있게 되었어. 아무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남자가 왼발로 툭툭, 바닥을 건드린다.

 아니, 왼발이 아니었다. 나무를 다듬어 만든 조악한 의족이었다. 식당 구석에 앉아있던 노인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알먼, 잘먹었네."

 "매번 감사합니다, 어르신."

 "나야말로 아침부터 식당을 열어줘서 고맙지."


 노인이 식당을 나가자, 베르나데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인이 있던 테이블로 다가간다. 오일 파스타와 샐러드, 빵조각이 멀건 오트밀 죽 그릇 위에 둥둥 떠 있다. 한쪽 다리가 없는 식당주인을 위해, 치우기 쉽도록 잔반을 한 그릇에 모은 모양새다.


 "......"


 베르나데트는 스푼을 들어 그것을 퍼먹기 시작한다.

 지저분한 잔반 모음이지만 거리껴하는 모양새는 전혀 없다. 마치 자신은 잔반을 먹고 사는 들개라는 듯. 남자는 그 모습을 외면하듯 주방 안으로 돌아간다.


 시골 마을 어디에나 한두명 정도는 있는 잡역부.

 일당을 숙박료와 식비로 전부 써버리는 품앗이꾼.

 그것이 바로 베르나데트다.


 그 잔반마저도, 베르나데트는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깊이 음미하고 있다. 제대로 된 빵과 부식이 봉투 안에 들어있는데도, 그것에는 손을 댈 수 없다는 듯이.


 빵집 입구의 종이 울린 건, 바로 그때였다.


 "근사한 냄새로군요. 이 식당은 이런 아침부터 영업을 하고 있는건가요. 부지런하시네요."


 새하얀 제복을 걸친 기사가 빵집 안에 들어온다.

 붉은 안감을 안쪽에 덧댄 화려한 예식용 기사복을 걸친 여자.

 베르나데트는 순간, 숟가락질을 멈추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여자가 손을 흔든다.


 "좋은 아침이란다, 제군."

 "......"


 베르나데트는 눈을 아래로 내려깔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숟가락을 움직여 죽을 퍼먹기 시작한다. 주방에 있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주방에서 뛰쳐나온다.


 "기사님이십니까!? 무엇을 드릴까요?"

 "아, 이 말빵 향이 좋군요. 여기 있는 말빵을 먹을게요. 가능하면 따뜻한 차도 한 주전자 가져다주세요."

 "차는 무엇으로... 준비된게 많지는 않습니다."

 "엉겅퀴 뿌리를 달인거면 충분해요."


 말빵은, 야생초와 겨, 밀가루를 섞어 만든 싸구려 빵이다. 행군 중에 말에게 영양보충을 위해 먹이는 빵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기사들이 말빵을 사는 건 의외로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말빵을 주문하며 따뜻한 차를 요구하는 기사는, 흔치않다. 말빵과 뜨거운 엉겅퀴 차. 그건 딱딱한 말빵을 차에 적셔 먹으려고 하는, 가난한 빈민들만 요구하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진심인가?'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븐 안에 차를 담은 주전자를 넣는다. 그러는 사이 기사는 식당 안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텅 빈 테이블에 앉는 것이 아니다.

 유일하게 사람이 있는 자리.

 베르나데트가 앉아있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는다.


 "......"


 기사가 앉은 것을 눈치챘을텐데도, 베르나데트는 식사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소녀의 숟가락질은 현저히 느려졌다. 그릇이 텅 비어버리면 고개를 들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식사를 의도적으로 늦추고 있는 것이다.


 기사는 미소를 지으며, 베르나데트를 바라본다.


 "식사를 방해해서 미안해.

 나는 엘로이스 빅토리아라고 한단다.

 소속부대는 개선기사단, 계급은 소장이야.

 네 소속과 성명을 밝혀줄 수 있겠니?"

 "......"

 

 탁, 하고 베르나데트가 숟가락을 일부러 소리나게 내려놓는다. 대화를 할 의지가 생긴건 아니었다. 베르나데트는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오른손을 펼친다.


 손바닥 한가운데 사각형의 바코드가 새겨져 있다.

 사회비보장국민 코드다.


 그걸 본 엘로이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 이렇게 말하고 싶은건가보네.

 사회비보장국민이 어떻게 군인이 되냐.

 나는 군인이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라.

 그런 말을 하고 있는거지, 지금?"


 베르나데트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시 숟가락을 들어 죽을 퍼먹을 뿐이다.


 바로 그때였다.

 베르나데트의 죽그릇에, 팅, 하고 작은 아크릴판이 부딪힌 것은. 베르나데트는 그 아크릴판을 보고 눈을 크게 뜬다. 이것이 무엇이냐는 듯 엘로이스를 바라본다.


 아크릴판 사이에 박제된 것.

 그것은 인간의 피부였다.

 비보장 바코드가 새겨진 피부.


 "여기 붙어있던거야."


 엘로이스가 자신의 왼쪽 뺨 아래 난 붉은 흉터를 검지로 문지른다.


 "사회비보장국민이 군인이 되는 경우도 있어.

 여기 있는 내가, 그리고 여기 있는 네가 그 살아있는 증거야."


 베르나데트는 엘로이스의 흉터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엘로이스가 눈웃음을 짓는다.


 "너는 군인이었어.

 반론할 말 있니?"


 베르나데트가 엘로이스를 노려보며 답한다.


 "저는, 군인이, 아닙니다."


 앙상하게 초췌해진 몸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든, 청명한듯하면서도 무거운 목소리였다. 엘로이스가 듣기 좋은 음악을 들은 사람처럼 눈꺼풀을 반쯤 내려까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목소리를 들려주는구나.

 응, 아주 듣기 좋은 목소리야. 발음도 좋고, 발성도 좋고. 어절마다 끊어서 명확히 말하는 버릇도 들어있고. 그 부분까지 착실하게 군인의 목소리네. 어째서 군인이었던걸 숨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숨긴 적 없습니다."


 베르나데트는 빠르게 엘로이스의 말을 끊는다.


 "군복은, 헌옷 가게에서 샀습니다."

 "지금 입고 있는 군복은 네가 지급받은 보급품이잖니."


 그 말에 베르나데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엘로이스가 검지를 들어 베르나데트의 왼팔을 가리킨다.


 "그쪽만 깨끗하잖아. 최근에 부대 마크를 뜯어낸거지. 민간인이라면, 기사단 마크를 뜯어내고 입을 일은 없어. 오히려 어느 기사단의 군복이라고 자랑스레 입고 다니겠지."


 베르나데트가 마치 자조하듯,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억측입니다. 만약 제가 군인 신분을 숨기려 한다면, 처음부터 부대마크를 뜯어냈겠지요. 이렇게 흔적이 남을 정도로 뒤늦게 뜯어낼 이유가 있을까요?"

 "듣고보니 그렇네."


 엘로이스가 양손을 깍지끼고, 그 위에 턱을 괸다.


 "이 마을에 오고 난 뒤, 마크를 떼어낸 이유를 들려줄 수 있니?"


 베르나데트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엘로이스의 눈을 피하며 말을 더듬는다.


 "저는, 원래 이 마을 사람입니다."

 "하얀 페인트 자국이 마크를 따라 떨어진게 보여. 하얀색 페인트는 인가받은 공공시설물에만 칠할 수 있지. 이 근방에서 새로 공공건물을 신축한 동네라면... 알제네? 군청이 생겼으니까. 너는 잠깐 알제에 머물렀을거야. 그러다 이 마을에 정착하며 마크를 뗀거지."

 "지난 가을에 알제에서 공사판 아르바이트를 잠깐 했습니다. 그때 페인트가 묻어서 떼어낸 것 뿐입니다. 지저분하니까요."

 "지저분한 걸로 치면 네 부츠가 더하지. 냄새가 지독하잖니."

 "폐가 된다면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어. 네가 신고 있는 부츠는 북방군용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건 따뜻하지만 땀이 잘 차서 금방 냄새가 나거든. 남부지방에서 신을 물건이 아니야. 너는 이 마을 사람인데도 왜 그런 더운 신발을 신는거니?"


 베르나데트는 고개를 숙인 채, 다리를 떨고 있다.

 동요하고 있다.


 엘로이스는 그런 베르나데트를 지긋이 바라본다.

 군인연금신청을 하지 않는 마을에 사는 군인이다.

 자신이 군인이었다는걸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군인이다.


 '어쩌면, 연금미신청과 관련이 있을지도.'


 엘로이스가 생각에 잠긴 사이 주방에서 남자가 달려온다.


 "듣자듣자하니, 너무하시군!

 베르나데트를 괴롭히지 마세요!"


 남자는 콰앙, 하고 난폭하게 찻잔을 내려놓는다.

 엘로이스가 활짝 웃으며 남자를 바라본다.


 "아하하, 괴롭히려던 건 아닙니다.

 퇴역군인 현황을 조사하는게 저희 일이라서요. 얘 이름은 베르나데트라고 하나요? 제가 보기에는 군인 기질이 몸에 배어있는 애인데. 혹시 얘 부모나 친척 중에 군인이 있나요?"

 "이 애는 내 사촌동생입니다! 가족 중에 군인은 없어요!"


 거짓말이다.

 남자의 말투는 전형적인 남부사람들의 억센 억양이다. 이 남자가 베르나데트의 친척이 맞다면, 베르나데트가 조용한 북부 억양을 쓸 리가 없다.


 바로 그때였다.

 콰앙, 하고 포성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에 베르나데트가 벌떡 일어나 엘로이스의 멱살을 붙잡는다.


 "무슨!?"


 베르나데트는 그대로 몸을 낮춰 테이블 아래 엎드린다. 멱살을 붙잡힌 엘로이스 또한 베르나데트에게 끌려 테이블 아래 끌려 들어간 모양이 되고 만다. 베르나데트는 창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중얼거린다.


 "린베르 초기형 오스필드 기계포..."


 빵집 주인만이 혀를 차며 창 밖을 바라본다.


 "또 왔군. 블랙크루 도적단 놈들."

 "블랙크루 도적단?"

 "이대로 몸을 숨기고 계세요. 기사가 있다는 걸 알면 저놈들이 어떤 소란을 피울지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여자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꺄아아아악! 내 몸에서, 당장 손을 떼세요!"

 "어이, 어떻게 된거야! 기사다! 여자 기사가 있잖아!"

 "여자로 만든 기사... 이건 몹시 귀하군!"


 엘로이스가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에스메랄다! 아얏!?"


 급하게 벌떡 일어나느라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힌다. 빵집 주인이 문 앞을 가로막고 선다.


 "나가면 안됩니다! 저놈들은 기사에게 자비가 없어요!"

 "그렇다면 평민에겐 더더욱 자비가 없지 않겠습니까!"

 "안됩니다!"


 다가오는 엘로이스의 가슴을 빵집주인이 밀쳐낸다.

 빵집 주인이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외친다.


 "기사님은 여길 떠나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전 여기 살아야 한단 말입니다!

 놈들에게 보복당하는 건 저에요!"


 엘로이스는 빵집 주인을 노려본다.

 그는 물러설 기색이 없다.


 "좋아요."


 엘로이스가 주방쪽을 검지로 가리킨다.


 "뒷문으로 돌아나갈게요. 그럼 여기서 나온줄 모르겠지요."

 "일을 더 크게 만들지 마세요. 그냥 조용히 이 안에서..."

 "그것까지 막는다면 당신도 도적단과 한패로 간주하고 베어버리겠습니다."


 엘로이스가 허리춤에 찬 우산에 손을 가져다댄다.

 남자는 겁에 질린 채 고개를 돌린다.


 "마음대로 하세요."

 "협조해줘서 감사합니다."


 엘로이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테이블 아래 쪼그려앉은 베르나데트를 바라본다.


 "즐거운 식사를 방해해서 미안했어, 산골 아가씨."

 "......별로 그렇지도 않았어요."

 

 그렇지 않다는 건 뭘 부정하는걸까.

 즐거운 식사였다는 걸 부정하는걸까.

 미안하다는 사과를 거절하는걸까.

 그것도 아니면...


 "나는 앞으로 사흘간 이 마을에 있을 예정이니, 군인연금을 신청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찾아오렴. 너는, 너의 과거를 보상받을 자격이 있을거란다."


 엘로이스는 그렇게 말하며 뒷문을 통해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남자가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저 여자는.

 베르나데트가 군인이었을리 없잖아."


 그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베르나데트는 그저 테이블 아래에 몸을 숨긴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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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견 2부를 올리려고 보니 기존 1부와 변경점이 너무 많아져서 1부를 다시 올리기로 했어. 주 변경점은 극야 관련 설정 반영. 릴리안이 일으킨 침략 전쟁 이전 시점에서 진행되고 있어. 그래서 프레비아/파비아/린도 아직 게하 진영이지. (인게임 시점보다 과거이야기란 듯). 릴리안은 3부부터 등장.


하루에 한토막씩 올릴 예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