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으로 그렇게 개량을 해도 실익이 적다는 게 문제임


이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국가가 투입 가능한 자원은 한정돼 있음.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들은 한정된 자원을 전쟁 발발 가능성과 위협 수준으로 평가한 우선순위에 따라서 자원을 배분함. 오늘날의 미국에게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전장과 가상적은 당연히 서태평양의 중국임. 


그럼 서태평양 전장의 특성에 맞춘 전력 건설이 필요하겠지? 서태평양 전장의 특성은 뭘까? CSIS에서 중국의 타이완 침공 시나리오로 워게임을 실시한 후 발표한 The First Battle of the Next War라는 보고서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있음. 미 공군과 일본 항공자위대가 중국 공군의 피해를 뛰어넘는 엄청난 숫자의 항공기를 손실하는데, 대부분의 손실이 (중국 공군과 달리) 비행 중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파괴된 것이라는 점임.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함. 서태평양 전역에서 미 공군 전술기가 전개 가능한 비행장은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 등으로 매우 한정돼 있는데, 중국군이 항공전에서 학살을 당했음에도 이 소수의 공군기지에 지상발사 탄도탄/순항미사일을 집중해서 지상에 주기돼 있는 미일 전술기들을 무더기로 날려버린 거임. 특히 서태평양 미 공군 최대 기지인 가데나 같은 경우 강화엄체호는커녕 리베트먼트도 제대로 없어서 노천주기하는 비행장이라 더더욱 피해가 심했을 거임.


그럼 미 공군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엄체호 건설, 서태평양의 작은 섬들에 산재한 소규모 비행장을 잽싸게 오가며 전술기를 띄우는 Agile Combat Employment 같은 기동성 있는 전력 운용 등 여러 대응 수단들이 도입되고 있지만 전술기 자체는 대부분의 중국군 탄도탄 사거리 밖, 예를 들어서 괌 기지에서 중국까지 날아올 수 있는 장대한 항속거리를 요구받는 것이 확인됨. NGAD가 F-111 크기의 엄청난 덩치를 가질 거라는 예상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때문이고. 즉, 서태평양이라는 전장에서 운용될 전술기의 CONOPS에는 긴 항속거리가 필수적으로 요구됨.


근데 랩터의 CONOPS가 상정한 전장은? 랩터의 개발계획인 ATF 프로그램은 자그마치 1980년대 말 시작됐고, 이 시기는 소련이 멀쩡히 남아서 전술기 수천대를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굴리던 시절임. 당연히 랩터 역시 중부 유럽을 상정한 CONOPS를 바탕으로 설계됐음. 그리고 지상 각지에 비행장이나 비상활주로가 널려 있던 중부 유럽은 태평양과 달리 광대한 항속거리를 요구하지 않음.


그럼 랩터를 서태평양에서 굴리면 예상되는 결과가 뭐겠음? 떠서 중국 공군기 학살하고 (항속거리가 짧으니 중국과 인접한 기지로) 내려온 다음 지상에서 탄도탄에 떼죽음 당하는 거지 뭐. 그럴 거면 그냥 차라리 대량으로 뽑아서 획득비용이든 운용비용이든 값이라도 싼 F-35 많이 굴리는게 낫다는 게 미 공군 판단인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