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대 내일 오전에 올려야지 하면서 어젯밤에 써놓고 자고 일어났더니 누가 이미 써놔서 부들대면서 올리는거 아님...


https://arca.live/b/gaijin/105007741


여기서 이어짐



독일 잠수함 U-48은 2대전 중 2년의 활동 기간 동안 51척의 선박과 1척의 군함을 격침했음. 사실 그 중 대중적으로 유명한 희생양은 몇 없으나 대서양 전투 중 상당히 비극적인 사건을 하나 일으켰음.


1940년 무렵 영국의 걱정거리는 유보트와 위장순양함들이 도사리는 바다 뿐만이 아니었음. 한창 열을 띄던 영국 항공전의 여파로 본토가 쉴새없이 폭격을 당하고 있었고, 아예 독일군이 해협을 건너 상륙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는 가운데 영국은 필사항전의 준비를 하면서도 자국민의 희생을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해야만 했음. 당시 폭격이라는게 사실상 필연적으로 민간인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였으니 말이야.


이를 두려워하여 개인적인 수단을 이용해 해외로 도피한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영국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주관하여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어린아이들을 폭격 대상이 아닌 외딴 지방이나 해외로 도피시키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였음. 이른바 CORS(Children's Overseas Reception Scheme) 라고 명명된 이 계획을 통해 주관기관인 CORB는 미국, 캐나다 등과 협조하여 대대적인 어린이 피난을 시작하였음. 


전쟁이 한창인데 본토의 국민을 해외로 피난시켜야 한다는 것이 처칠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에게는 영 탐탁치 않은 것이었으나, 뭇 부모들의 마음은 자녀들이 안전한 곳에서 편안히 지내길 바라기 마련이었기에 CORS가 시작된지 불과 수 개월만에 21만 명에 달하는 어린이들이 피난을 신청하게 됨. 물론 영국 의회에서는 이 프로그램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독일에게 협조를 구하거나 최소한 공지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영국 정부와 CORB는 그러한 의견을 기각하고 대신 자국 선단에 여객선을 편입시키는 방법을 택하였음.




그러나 1940년 8월 30일, 이 프로그램이 맞이할 비극을 암시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됨. 뉴질랜드로 향하던 OB 205 선단은 U-60의 습격을 당하게 되었는데, 호위에도 불구하고 2발의 어뢰가 320명의 어린이를 이송하고 있던 여객선 SS 볼런담에 명중하였던 것임. 천만다행으로 볼런담은 침몰하지 않고 물 위에서 버티고 있었던 덕에 어린이들을 포함한 승객들이 모두 탈출하여 생존할 수 있었음. 그러나 볼런담이 예인되어 입항하였을 때, 함수부에 불발된 어뢰 1발이 박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음.


만약 그 어뢰가 제대로 폭발했다면 최악의 가능성이 실현될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음. 그러나 이후에도 영국은 아동 피난을 계속 강행했고, 1940년 9월까지 2,664명의 어린이들을 해외로 도피시켰음. 그리고 우연찮게도 13일의 금요일이었던 1940년 9월 13일, 90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231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선 '시티 오브 베나레스' 가 캐나다를 향해 출항하였음. 그것도 선단 지휘선으로서 에드먼드 매키넌 준장이 승선한 채로.



OB 213 선단에 합류한 시티 오브 베나레스는 높은 긴장감 속에서 첫 4일간의 항해를 이어나갔음. 승객들은 취침 중에도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야 했고, 매일 이함 훈련도 실시되었음. 그러나 9월 17일, 서경 20도선을 통과해 소위 '안전 해역' 으로 진입하자 선단 호위함들은 뱃머리를 돌려 선단에서 이탈하였음. 영국도 호위함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던데다, 프랑스 함락 전까지 독일 잠수함들은 대서양에서의 활동 범위에 큰 제약을 받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호위함들은 그 예상 활동 범위까지만 호위를 제공하고 다른 선단을 지키러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임. 다음 날에는 아예 선단을 해체하여 시티 오브 베나레스 단독으로 항행할 예정이었지.


그리고 17일 2200시 무렵, 유독 강한 돌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시티 오브 베나레스의 선단 지휘관 매키넌 준장은 선박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지그재그 기동을 중단할 것을 지시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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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시 : 중앙에 위치한 여객선을 향해 3, 4번 어뢰발사관으로 어뢰 발사. 각도를 너무 크게 계산한 탓에 두 발 모두 빗나감. 잠시 앞으로 나아가 선단과 나란히 이동함."


"0001시 : 1번 어뢰발사관으로 재공격. 119초 후 선미에 명중. 적선이 정지한 채 구명정을 내리고 있음. SOS 신호 수신. 11,081톤의 '시티 오브 베나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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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블라이히로트 휘하 U-48은 17일 오전 1000시 무렵 호위 없이 나아가던 선단을 발견한 후 야음이 내릴 때까지 미행했고, 선단의 회피기동이 멈추자 공격을 개시하였음. U-48이 발사한 어뢰 한 발은 아동 선실의 바로 뒤쪽, 중앙 화장실 부위에 명중하여 거대한 파공을 뚫었음.


둔중하고 낮은 폭발음과 함께 선체가 흔들리며 조명이 나가자 승객들은 우왕좌왕했고, 베나레스의 선원들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지원한 교사, 간호사 등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는 아동 선실에서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음.



이 자원봉사자들 중 피아니스트였던 메리 코니쉬는 살아남은 아이들을 패기 넘치는 말로 다독였음.


"걱정하지 마렴. 그냥 어뢰일 뿐이란다."


그 사이 예비 전력이 공급되어 시티 오브 베나레스는 가까스로 통제 불능의 패닉 상황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고, 승객들은 가라앉는 여객선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함 위치로 집결하기 시작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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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뢰가 명중하기 직전 잠자리에 들었던 4등 사관 로널드 쿠퍼 또한 침상에서 뛰쳐나와 승객들을 데리고 좌현에 위치한 12번 구명정으로 향하고 있었음. 동인도 선원들(이하 '래스커'(Lascar))은 이미 구명정을 내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쿠퍼는 지체없이 구명정을 내리고 이함할 준비를 하였음.


동력을 상실한 시티 오브 베나레스는 파랑에 떠밀려 좌현으로 크게 기울었고, 선장 랜들스 니콜의 이함 지시 직후 쿠퍼는 6명의 어린이와 그 보호자였던 메리 코니쉬, 오설리반 신부를 태운 12번 구명정을 내리기 시작하였음. 그 와중에도 어린이들의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을 우려한 쿠퍼는 한 선원으로 하여금 다시 아동 선실을 확인해 보도록 하였으나,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 더 이상 수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음.


쿠퍼가 12번 구명정을 내리는 사이 다른 구명정들도 내려지고 있었으나, 상황은 별로 좋지 못했음. 8번 구명정에 타고 있는 어린이 대부분은 심각한 화상을 당한 상태였고, 일부 구명정은 하강 중 악천후 속에서 뒤집혀 그대로 추락하기도 했음. 시티 오브 베나레스의 구명정은 승객과 선원 총원을 수용하기에 충분하였으나 이미 좌현으로 크게 기운 탓에 우현의 구명정은 대부분 사용할 수 없었기에 배에 남아 있는 이들은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물에 뜰만한 것들은 일단 모조리 바깥으로 던지고 있었음. 우현에서도 일부 구명정이 내려지긴 하였으나 풍상측이었던 탓에 구명정이 계속해서 떠밀리며 여객선의 선체에 부딪혔고, 그런 구명정으로 내려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반쯤 자살 행위였음.



12번 구명정이 마지막으로 남자 쿠퍼는 결속을 해제하였고, 다행히 12번 구명정은 무사히 수면에 안착하였음. 쿠퍼는 4명의 래스커와 앞서 아동 선실을 살피도록 파견했던 선원을 먼저 구명정으로 내려보내고 본인은 다시 한 번 갑판을 돌며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한 후 마지막으로 사다리를 타고 구명정으로 내려가 침몰하는 여객선의 선체로부터 떨어뜨렸음.


이 구명정들은 노는 없었지만 숙련되지 않은 사람도 쉽게 다룰 수 있는 플레밍 기어(레버를 앞뒤로 잡아당기면 연결된 크랭크 샤프트가 프로펠러를 회전시키는 장치) 가 있었음.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여객선으로부터 멀어지려던 쿠퍼는 아직 선체 위에 남아있는 래스커 4명을 발견했고, 서둘러 다시 접근해 그들까지 태운 후 다시 거리를 벌렸음. 마침내 2300시 무렵, 시티 오브 베나레스는 좌현으로 뒤집히며 수면 아래로 사라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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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쿠퍼와 같은 시간대에 생존자들을 모으고 있던 이가 있었으니, 사관후보생이었던 데니스 해프너 또한 바삐 움직이며 승객들을 구명정에 태우고 있었음.



사진에서 왼쪽의 인물임.


"우리가 피격당한 밤에 저는 3등 사관과 2000시부터 2400시까지 당직을 서고 있었습니다. 매우 어둡고 흐린데다 바람도 강하고 -아마 보퍼트 등급 8은 됐을 겁니다.- 바다도 거칠었죠. 아주 많이 거칠었어요.


2200시 정각, 좌현 4번 구획에 어뢰가 명중했습니다. 그 바로 위에는 아이들이 자고 있는 침실이 있었고요. 그 직후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고, '구명정을 내려라! 배를 버려라!' 라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기관사들은 피격 후 배를 멈추고 예비 전력을 돌려 탈출이 수월하게끔 했습니다. 다행히 우리 배에는 별다른 화물이 없어서 천천히 가라앉았지만, 아이들을 모두 모으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유사시 아이들이 모이도록 되어 있는 갑판 산책로로 갔지만 나와 있는 아이나 보호자는 몇 없었습니다. 저는 아래로 내려가 아이들의 상황을 확인하고 데리고 나오려 했지만, 이미 폭발에 침실은 박살나고 많은 아이들이 죽거나 다친 상태였습니다. 갑판이 있던 곳에는 뻥 뚫린 구멍과 뒤얽힌 쇳조각만 있을 뿐이더군요. 선미부터 물이 빠르게 차오르는게 보여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요. 가다가 마주친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많은 아이들이 잠옷만 입고 있었습니다.


저는 모두가 -특히 아이들이- 구명정에 타 안전한 거리까지 떨어지게끔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선교로 가서 선장님께 제가 확인한 선에서 아이들을 모두 모아 구명정에 태워 보냈다고 보고했죠. 그가 저보고 가도 좋다고 하길래 '선장님은요?' 라고 묻자 '난 괜찮을걸세.' 라고 하시더군요. 그는 배와 운명을 함께했습니다."


(중략)


"저는 바다로 뛰어들어 배에서 멀리 헤엄쳤습니다. 아직 방한복과 당직 장구류를 걸치고 있어서 구명조끼를 벗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다간 바로 물 밑으로 곤두박질쳤을 테니까요. 결국 계속 수영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눈에 띈 구명정을 향해 헤엄쳤지만 가서 보니 이미 전복된 구명정에 사람들이 매달려서 뒤집힌 배 위로 올라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얼마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헤엄쳤습니다. 아마 거기서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겁니다.


슬슬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졸음이 밀려들 무렵 또다른 구명정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누군가 뻗어준 손을 잡고 구명정 위로 올라온 후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대로 구명정 바닥에 누워 있자니 누군가 제 얼굴에 브랜디를 뿌리길래 그대로 마셨는데, 얼마나 마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효과는 직방이라 곧 괜찮아졌죠.


구명정은 이미 만원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저를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구명정에 장교가 아무도 없어서 제가 장교 비스무리한건가 싶어 끌어올렸다는거죠.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쯤 이야기는 많이 달라졌을겁니다. 그래봤자 전 고작 17살이었지만요.


구명정에 대해 뭣도 모르긴 했지만 어떻게든 사람들을 단합시킬 수 있었습니다. 눈과 진눈깨비가 내리고 계속 물보라가 쳐서 구명정을 덮는 캔버스를 찾아 모두의 몸을 덮었습니다. 정말 끔찍한 날씨였어요. 바다는 거칠고,바람은 보퍼트 등급 8 수준에 집채만한 파도가 솟아올랐다가 내리찍었죠. 거듭 말하지만 정말 끔찍했습니다. 젖은 옷을 입고 당장이라도 얼어죽을 것 같은 추위 속에 앉아 있어야 했어요. 그 브랜디가 제 목숨을 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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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쿠퍼 또한 구명정의 책임자로서 생존자들을 지키고 있었음. 민간인 승객과 아이들의 눈에는 혹한의 황천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구명정보다 -해저로 추락하기 시작한- 여객선이 더 안전해 보였기에 다소의 불만이 있었지만 쿠퍼는 능숙하게 인근의 부유물에 매달려 있는 생존자들을 모으기 위해 돌아다녔음. 그렇게 쿠퍼의 12번 구명정에는 쿠퍼 본인과 6명의 아이, 보호자 2명(코니쉬, 오설리반)을 포함해 총 46명의 인원이 모이게 됨.


시티 오브 베나레스의 피격 이후 마찬가지로 U-48에게 격침당한 상선 '마리나' 의 구명정을 만나 밤을 보낸 쿠퍼는 아직 열악한 기상을 고려해 베나레스의 침몰 위치 인근에 머물며 구명정 앞에 캔버스 천을 묶어 물자를 보관하고 아이들이 따뜻하게 있을 수 있도록 하였음.


코니쉬는 음악가답게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을 달랬고, 다른 어른들도 농담이나 이야기를 들려주고 놀이를 하는 등으로 아이들이 활력을 잃지 않게끔 하기 위해 노력했음.


"너는 지금 진짜 모험 이야기의 영웅이 된 거란다! 칭얼대는 영웅을 본 적 있니?"


코니쉬는 계속해서 아이들의 팔다리를 주물러 얼어붙지 않게끔 하였지만, 표류 3일차가 되자 12번 구명정에도 점차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음. 아직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쉴새없이 흔들리는 비좁은 공간, 상처를 자극하는 바닷물, 갈증과 허기에 점차 예민해진 생존자들은 서로 다투기 시작했음. 계속 젖어있던 발은 참호족에 걸렸고, 일부 인원이 쿠퍼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바닷물을 마시기도 하는 등 건강 문제도 대두되기 시작함. 그나마 표류 4일째인 9월 21일에는 기상이 호전되었지만 근처의 선박이 구조 요청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씁쓸함을 겪어야 했음.


표류 일주일 째가 되자 아이들의 건강에 위험 증세가 나타났음. 발의 통증을 호소하던 한 아이를 시작으로 하나둘 섬망(심각한 과다행각, 환각, 초조함, 떨림 등을 동반하는 착란 상태)에 빠지기 시작하여 육지의 환각을 보는 등 심각한 증상이 발현한 것. 그러나 이제는 어른들도 기력이 쇠해 남자답게 행동하라는 말로 아이들을 떠밀듯 다독일 수 밖에 없었음.


그러나 표류 8일째인 9월 25일 1300시, 한 아이가 구명정을 향해 날아오는 선덜랜드 기를 발견함. 구명정 상공을 두세바퀴 선회한 선덜랜드 기는 발광 신호를 보냈고, 이에 구명정의 신호수가 수신호로 응답하자 선덜랜드 기는 구조대가 오면 사용하라며 조명탄을 투하하고 날아갔음.


이후 1400시 경 다른 비행정이 날아와 식량 꾸러미와 함께 곧 구조대가 올 것이라는 메모를 떨어뜨렸고, 마침내 1630시에 구축함 HMS 앤서니가 도착하여 생존자들을 구조하였음. 안타깝게도 12번 구명정의 46명 중 1명은 구조된 직후 사망하여 쿠퍼의 구명정에서는 6명의 아이를 포함해 총 45명이 생존할 수 있었음. 다행히 아이들은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했고, 한 명이 참호족에 걸린 것 외에는 건강 상 심각한 문제도 없었음.


한편 8일동안 개고생을 한 쿠퍼와 달리 해프너의 구명정은 운 좋게 얼마 지나지 않아 구축함 HMS 허리케인에게 구조되었음. 허리케인은 이를 포함해 총 102명의 생존자를 구조했고, 이로써 총 147명이 시티 오브 베나레스에서 생존할 수 있었음. 쿠퍼는 표류 중의 공로를 인정받아 MBE(훈작)를 수여받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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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퍼를 비롯한 이들이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 했지만 현실은 참담하기 짝이 없었음. 시티 오브 베나레스에 승선해 있던 407명 중 선장과 선단 지휘관 매키넌 준장을 포함해 총 260명이 사망했고, 무엇보다 90명의 어린이 중 77명이 어른도 버티기 벅찬 혹한의 바다에서 생명을 잃고 말았음.


"모든 예방책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로 귀하의 자녀를 이송하던 선박이 9월 17일, 화요일 야간에 어뢰에 피격되었음을 전하게 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귀하의 자녀는 구조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해당 선박에서 더 이상의 생존자가 존재할 가능성은 없음을 알립니다."


- 사망한 아동들의 유족들에게 보내진 서신


당연히 이 사건은 영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고, 영국은 쿠퍼와 코니쉬 등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한편 시티 오브 베나레스가 아동을 이송 중이라는 것을 사전 공지했으나 '야만적인' 독일 잠수함이 이를 격침했다고 대대적으로 비난하였음. 


반면 독일은 그러한 공지를 일절 받지 못했을 뿐더러, 수 차례 자국이 공표한 '위험 해역'에 아이들을 태운 배를 밀어넣은 영국의 과실이라고 반박하였음. 더구나 시티 오브 베나레스는 선단 한가운데서 등화관제를 한 채 항해중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선단 지휘관 매키넌 준장의 지휘선이었으므로 국제법 상으로도 합법적인 공격 목표였다는 것.


"만일 정말 배가 침몰하여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면, 그 살인자는 다름아닌 처칠이다. 이 괴물에게서 신성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세계는 점차 이 자의 진짜 면모를 깨닫고 있다. 인두껍을 뒤집어쓴 마귀 같으니. 아이들을 무장 상선에 태우고 아동 수송선이라고 부르니, 곧 탄약 공장에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고아원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당연하겠지만 시티 오브 베나레스의 침몰 후 CORS는 완전히 중단되었음. 국가를 믿고 아이들을 맡겼더니 그대로 늑대 아가리로 골인시킨 꼴이니 영국 정부와 해군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도 결코 곱지는 못했으니까.



"베나레스의 아이들"



당시 U-48의 함장 하인리히 블라이히로트는 전후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전범재판에 기소당하기도 했으나, 본인은 시티 오브 베나레스의 정체와 아동의 존재에 대해 일절 알지 못했으며, 알 도리도 없었다고 항변하여 무죄 판결을 받았음.


15만 톤을 넘는 전과를 세운 에이스 함장인 블라이히로트가 돌연 심신미약으로 전선에서 물러난 이유가 이 베나레스 사건으로 인한 충격과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나, 블라이히로트 본인은 이 사건에 대한 일체의 책임을 부정하고 유족들에 대한 유감조차 표하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