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준 군대도 반란 일으킴.


물론 훈련대 자체가 일본이 갑오개혁 당시에 만든 신식 군대였긴 한데

을미사변 당시 훈련대가 일본 공사의 지시에 따라 일본군과 함께함.


사실 고종도 훈련대가 믿음직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연대장을 믿을만한 홍계훈으로 교체하고

궁궐 수비는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시위대(侍衛隊)에게 맡겼지만


시위대는 유감스럽게도 넉넉하지 못한 탄약 사정, 흥선대원군의 등장으로 인해 제압 당함.


을미사변 이후 일본은 아무튼 조선인이 핵심이었다고 책임을 떠넘겼고

을미사변에 가담한 대대장 이두황, 우범선, 이진호는 일본으로 망명하게 됨.

(나중에 이두황, 이진호는 통감부 설립 이후 돌아왔고 우범선은 일본에서 암살 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