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모든 글은 위 서적의 내용을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 것임.
PzH 2000 개발사 시리즈
PzH 2000 개발사 - 1편
PzH 2000 개발사 - 3편
PzH 2000 개발사 - 4편
SP 70 프로젝트의 폐기 이후, 참여한 3개국은 관련 지식을 어느정도 얻었으나 이는 동시에 가용 예산의 대부분을 집어삼켰다.
프로젝트가 폐기된지 1년 뒤인 1987년 11월 독일 정부는 혁명적인 신형 포병 시스템 개발 명령을 내렸고, 이번에는 독일군의 요구 사항만을 기초로 하여 개발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PzH 2000이 탄생하였다.
새로운 접근법의 주된 이유는 노후된 M109A3 GE A1/A2 자주포와 견인포들의 교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시장에는 다른 대체제가 없었고, 그나마 제안된 프로젝트는 미국의 XM2001 크루세이더였다. 한편 크루세이더는 매우 비쌀 것으로 예상되었고, 또한 전열화학포와 같은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검증되지 않은 기술들이 사용될 예정이었다. ( 원문은 "Regenerative Liquid-Propellant Gun" 이지만 해당되는 단어를 찾을 수 없었고 세간에 크루세이더의 주포로 알려진 전열화학포로 번역함. )
따라서, 독일은 다시 독자적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 당연하게도, 2002년 5월 크루세이더는 7년에 걸친 개발 끝에 프로젝트가 폐기되었다. )
독일식 설계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전 선택이라는 새로운 방법이 도입되었다. ( To solve the many problems of a solely German design, a new way of pre-selection was introduced. ) 개발사와 WTD 군사시험청의 테스트와 최적화가 서로 분리되어 있고, 이후 부대 시험이 뒤따르던 기존의 개발 절차와는 다르게 이제는 이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 WTD, Wehrtechnische Dienststelle. 국방기술청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듯 )
PzH 2000 프로그램이 시작하면서 Kuka, Porsche, Rheinmetall-Krauss-Maffei 로 구성된 Souther consistory(이후 남팀으로 부름)과, Mak-Kiel, Rheinmetall-Wegmann으로 구성된 Norther Consistory(이후 북팀으로 부름) 이렇게 두 개의 팀이 생겼고, 이 팀들은 1차 테스트 차량을 각자 제작하였다. 참여한 기업들이 탄약 공급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 반해 차체 제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WTD와 육군은 개발 초기 단계부터 목업이나 작동하는 모형 제공뿐만 아니라 특정 기능을 직접 개발하는 등 활발하게 참여하였고, 이러한 접근 방법은 개선 사항의 신속한 반영이 가능했다. 단점은 일부 요소는 개발중인 데에 반해 다른 요소는 이미 테스트 중이었다는 것이었다.
남팀은 레오파르트 2 섀시를 기반으로 6개의 로드휠을 가진 자주포를 개발하였고, 북팀은 여전히 7개의 로드휠을 가진 레오파르트 1의 섀시를 기반으로 개발하였다. 두 섀시 모두 MTU MT881 엔진과 Renk HSWL 284 변속기를 조합한 구동계와 라인메탈에서 제작한 주포를 사용하였다.
( 레오파르트 1 섀시를 기반으로 한 북팀의 모형. 7개의 로드휠을 갖고 있다. )
( 레오파르트 2 섀시를 기반으로 한 남팀의 'Taurus' 모형. )
( 남팀의 'Taurus' 시험 차량. 북팀의 차량과 비교해 밑이 평평한 사이드스커트와 7개의 로드휠로 구분할 수 있다. )
( 시험차량 'Taurus' 의 포탑은 매우 컴팩트했다. 주포 고정장치는 차체의 앞에 위치했고, 6개의 로드휠과 구동륜은 경쟁사에 비해 더 유리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끝에는 북팀의 차량이 선택되었다. )
( 'Taurus' 의 후면 사진. 안테나의 위치와 수납함의 구성, 정비 해치를 볼 수 있다. 오직 한 대의 차량만 이러한 배치로 제작되었다. )
( 남팀과 반대로 북팀은 레오파르트 1의 구동륜을 사용했다. 실증기는 여전히 후기 프로토타입과 양산 차량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
( 북팀의 시험 차량에서는 후방 연막 발사기와 수납 바구니가 테스트되었다. 후기형 프로토타입에서는 제거되었다. )
( 1980년 후반 프로토타입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시험이 실시되었다. 북팀의 시험 차량으로, 추가 지붕 장갑이 장착되어 있다. )
이후의 비교 실험에서 레오파르트 2 섀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더 좋은 반면, 탄약 이송 방법은 북팀의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종합적인 결론은 북팀의 차량이 낫다는 것이었고, 포병대의 기준이 구동륜 문제를 해소하였기 때문이었다. ( as the artillery criteria superseded the running-gear issues. )
얼마 지나지 않아 Wegmann을 주 계약자로 하여 네 대의 PzH 2000 프로토타입 제작 계약이 체결되었다. ( 지금의 Krauss-Maffei-Wegmann )
오늘은 분량이 좀 짧은데 사진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