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저번 시미터 F.1에 대한 글을 쓰고나서 추천을 받았는데 시빅슨이 있었더라고
그래서 이번엔 시빅슨에 대해 시부려보겠다.
(이번엔 연도별로 나눠봄)


1. 도입배경
1946년, 드 해빌랜드사는 영국 해군과 함께 향후 레이더 장비 제트 전투기의 요구 조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것이 시초라 볼수있다.
이 논의에서 1인승으로는 레이더 및 항법장치를 다룰수 없다고 판단, 2인승으로 결정 되었으며,
해상에서의 안전요소(볼터현상시 재이륙 및 이함등과 같은)를 위해 2개의 엔진, 후퇴익이, 마지막으로 고고도 및 항공모함에서의 이착함을 위해 적당한 날개 하중을 갖고 매우 좋은 플랩이 필요할것이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드 해빌랜드사는 이러한 조건을 위해 외형 개발을 추진하기로 시작, 이를 DH 110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DH 110은 시빅슨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다.


(Sea Vixen, 혹은 DH 110의 모습)


2-1. 개발과정

시빅슨은 드 해빌랜드사의 뱀파이어와 베놈의 트윈붐테일 디자인을 채택했다.
또한 모든 기체의 재질을 금속으로, 45도로 꺽여진 날개, 마지막으로 4개의 30mm ADEN 기관포를 장착할 계획이었다.

(고티어 영국의 무한단물, 30mm ADEN 기관포의 모습) 


또한 시빅슨은 스로이스 Avon 터보 팬 엔진을 달았는데 이 엔진은 전에 작성했던 시미터 F.1의 엔진과 동일한 엔진이었다.
이 엔진을 사용해서 하강할때 음속을 돌파할수있었다. 이 때문에 시빅슨은 영국 최초의 초음속을 돌파한 2인승 제트기란 칭호를 얻었다.


1947년 1월, 영국 항공부(British Air Ministry)는 영국 공군과 영국 해군에 배치하기 위해 야간 전투기와 관련된 Specifications N.40/46F.44/46를 발행했다. 그리고 곧바로 드 해빌랜드사는 DH 110(시빅슨)의 제안서를 양쪽 모두에 제출했다.
처음 영국 공군에 제출한 버전은 Metrovick F.9 엔진이 탑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후 Metrovick사가 엔진 사업부를 매각,
이를 암스트롱 시들리사가 구매를 함으로써 이 엔진은 암스트롤 시들리 사파이어(Armstrong Siddelley Sapfire)로 알려졌다고 한다.
당연히 드 해빌랜드사에선 이에 대응하여 무려 9가지나 되는 프로토타입을 영국 공군에 제출하였으며
이때 경쟁사의 제트기가 바로 글로스터 자밸린이었다.


(Armstrong Siddelley Sapfire의 모습, 후에 개량된 후 글로스터 자밸린에 탑재되었다.) 

(영국 공군에 시빅슨 프로토타입을 제출할 당시에 경쟁기체, 글로스터 자밸린의 모습)


1949년초까지 시빅슨(DH 110)의 설계는 F4/48, F5/49라는 장거리 영국 공군용 전투기와 N.40/46의 해군 야간 전투기 및 N.8/49의 해군 타격기, 이렇게 4가지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F4/48용으로 3개, 영국 공군 및 영국 해군 공동 개발용으로 4개, 나머지 3개의 역할에 2개씩해서 7월, 13의 프로토타입을 주문할 준비가 끝났다.

그러나 1949년, 영국 해군은 드 해빌랜드 시 베놈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당연하게도 개발비용이었다.
시 베놈은 원본인 베놈을 해군용으로 바꿔주면 되기에 시빅슨보다 개발 비용이 저렴했으며 F4U 콜세어와 드 해빌랜드 시 호넷을 대체할 야간 전투기를 즉시 대체할수 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영국 공군은 여러개의 프로토타입을 두 개의 프로토타입으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불리한 요건에도 드 해빌랜드사는 관심을 받기 위해 시빅슨 제작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시빅슨의 자리를 위협한 시 베놈의 원본, 베놈의 모습이다. 아이러니하게  시 베놈 역시, 드 해빌랜드의 작품이었다)

1951년 9월 26일, 드디어 첫번째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시험 조종사는 존 커닝햄이, 장소는 Hatfield Aerodrome에서 첫 비행을 했다.

첫 시험비행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항공기의 성능이 기대치를 초과하는 위엄을 달성했다.

이후 이 프로토타입은 음속을 돌파하면서 계속 시험비행을 진행했다.

(첫번째 조종사, 존 커닝햄의 사진)

그러나 1952년 9월 6일, 판버러 에어쇼에서 시빅슨이 시연비행을 하던 도중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는데, 저고도 비행중에 음속을 돌파한 직후, 항공기가 산산히 분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조종사 존 데리와 비행을 관찰하던 토니 리처드를 포함한 31명의 사람이 사망했다.
(후에 사고조사를 끝내고 내린 결론은 날개 모서리 부분의 설계 결함으로 밝혀진다)

여담으로 이 사건이후 영국 에어쇼의 안전 규정이 대폭 개편됬다고 한다.


(존 데리의 모습, 안타깝게도 설계 결함으로 인해 죽은 인물이다.)

(주의 : 심약자는 시청에 주의)

(1952년, 판버러 에어쇼 당시에 일어난 시빅슨 프로토타입이 조각나 추락한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2-2. 재설계와 해군의 도입

첫 번째 프로토타입의 손실에 대응하여 두 번째 프로토타입은 설계를 수정하였다.
이 설계에서 완전히 움직이는 테일 플레인(fail plane)과 캠버형 리딩 엣지 확장이 주를 이루었다.
수정 된 두번째 프로토타입은 1954년 7월까지 비행하지 않았다고한다.
이러한 변경으로 인해 급강하를 해도 음속을 돌파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하 0.95)

이에 맞춰 영국 공군은 글로스터 자밸린을 도입하므로써 시빅슨 도입을 포기했으나,
영국 해군은 이 항공기를 임시로 사용하여 해군 항공대의 대체 항공기로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1955년 2월, 영국 해군은 110대의 항공기를 주문, 이때부터 DH 110이 아닌 시빅슨(Sea Vixen)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글로스터 자벨린의 모습, 워썬더내에선 황벨린이라고 불린다.)


드 해빌랜드사는 항공모함에서의 운용을 위해 개조하는 기간에 다른곳도 변경하였는데
이는1950년대 무기, 화기 통제 시스템, 레이더 장비와 조종석 계측기와 같은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항공기에 통합 무기 시스템이라는 개념이 확산,
레이더와 같은 센서가 내비게이션과 무기 시스템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역시 요인중 하나였다.
드 해빌랜드사는 이러한것들을 시빅슨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항공 저자인 데이비드 홉스에 따르면 이 비행기가 이런 방식으로 설계된 최초의 영국 전투기였다고 한다.)


1955년 6월, 세미-내비게이션을 단 프로토타입 XF828항공모함 비행갑판에서의 적합성 시험을 확인하기 위해 완성되었다.

비행갑판에서의 적합성을 위해 날개 선행, 가장자리의 프로파일 변경과 날개 강화, 캐터펄트 발사를 위한 언더윙 고정 지점 및 어레스팅 후크 장착 등 여러 가지가 변경되었지만, XF828날개를 접는 메커니즘과 무장을 위한 파일런이 없었다.

1955년 6월 20일, 시빅슨은 도싯에 있는 드해빌랜드 시설에서 첫 비행, 다음 해에 영국 해군의 HMS Ark Royal에서 처음으로 착함을 했다.


(HMS Ark Royal에 착함하는 시빅슨의 모습)

1956년 4월, 드디어 최종 생산 도면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완전히 해군 전투기로 변경된 시빅슨은 이전의 프로토타입에 비해 많은 곳이 개선되었는데, 여기엔 동력식 접이식 날개, 착함시 금속 피로를 견딜 수 있느 착륙 장치 보강, 조종 가능한 노즈 휠, 수정된 꼬리 날개, 무기 장착을 위한 동체 재설계 등등 여러가지가 변경되었다.

1957년 3월 20일, 첫번째 시빅슨(Sea Vixen FAW.20)이 첫 비행을 했다. 이 항공기는 핸들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두 번째 항공기는 엔지니어링(장비 정비) 시험용으로, 세 번째는 레이더 시험용으로 사용되었다.

1959년 7월 2일, 드디어 시빅슨을 처음 사용한 해군 비행대가 결성되었다.


3. 제원
시빅슨은 해군 함대 방공 제트전투기이며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레이더와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했다.
시빅슨이 도입됐을 당시엔 미사일, 로켓, 폭탄을 단독으로 장착가능한 최초의 영국 항공기였으며, 기본 무장(기관포)가 없이 운용한 최초의 전투기였다.

시빅슨 FAW.1은 4개의 드 해빌랜드 파이어 스트릭(De Havilland Firestreak) 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하였으며 (현재 썬더내에 자벨린 미사일)
FAW.2는 나중에 레드 탑(Red Top)미사일을 탑재할수 있었다.

(파이어 스트릭 미사일의 모습)

(레드 탑 미사일의 모습)

기관포 같은 경우, 원래는 4정을 달 예정이었지만 미사일 만능주의에 의해 제거되었다.
마지막으로 레드 탑 미사일은 무장 관제사가 운용하는 AI.18 레이더로 표적지식을 했다고 한다.


시빅슨은 FAW.1 버전과 개량형인 FAW.2버전이 존재한다.

시빅슨은 함대 방공 역할 외에도 2개의 2인치 로켓팩(51mm)과 AGM-12 공대지 미사일, 4개의 500파운드(227kg) 혹은 2개의 1000파운드(454kg)
무유도 폭탄으로 무장하여 지상 공격 역할에도 쓰였다고 한다.
게다가 시빅슨은 항속거리 증가를 위해 공중급유기에서의 재급유를 위한 탐침을 장작했다.
마지막으로 FAW.1은 자유낙하 핵폭탄도 장비할수 있도록 허가했다.

시빅슨은 스로이스 Avon 208 터보 팬 엔진으로 구동되었으며 최고속도 1,110km/h이며 항속거리는 1,000km였다.

(스로이스 Avon 208 터보 팬 엔진의 모습, 이 엔진은 시미터 F.1에도 장착했다)


시빅슨은 조종사와 무장관제가, 2명이 탑승한다. 조종사의 콕핏은 동체 왼쪽에 있었으며 무장 관제사는 오른쪽 아래부분에 탑승했다.
이 무장 관제사가 탑승한 부분은 석탄 투입구(Coal Hole)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이 위치가 동체 깊숙이 있어 어두웠다고 한다.

(옆에 아주 작은 네모난 창이 일명 석탄 투입구(Coal Hole)라고 불린 무장 관제사의 좌석이다.)

두 좌석모두 높이 조절이 가능한 Martin-Baker Mk.4 탈출 좌석이 장착되었고
승무원들은 통풍이 잘되는 G-Suit를 제공했으며, 승무원의 편안함을 위해 적당한 습도 및 온도를 제공하는 회로로 구성된 단일 중앙 집중식 서비스 커넥터를 가졌다고 한다.

(Martin-Baker Mk.4 탈출 좌석의 모습)

시빅슨의 비행 제어장치는 상대적으로 복잡했으며, 동력이 공급되는 테일 플레인, 에일러론, 방향타를 제어했다. 이러한 방식은 엔진 고장과 같은 전기 출력이 없어도 작동할수 있었다.

또한 날개의 기하학적 특성 때문에 3단면 플랩 배치를 사용, 항법, 비행 계측 및 통신 장비에 위치 표시기, 자이로, 요 및 피치 댐핑
그리고 오토파일럿과 전술 항공 항법 시스템(TACAN), 초고주파수(UHF) 무선 시스템이 포함되었다.

(시빅슨 FAW.2에 달리는 무장의 모습)


4. 추가적인 개량

초기 FAW.1 이후, 드 해빌랜드사는 개선된 모델 개발을 진행했으며
후에 FAW.2가 개발되었다. FAW.2레드탑 공대공 미사일과 더불어 SNEB 로켓포드 4개, AGM-12 불펍 공대지 미사일도 탑재할수 있었다.


또한 확장된 테일 붐을 통해 추가적인 연료 탱크를 탑재할수 있었으며, 향상된 탈출 좌석과 ECM장비를 위한 추가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으로 인해 FAW.2는 더 이상 1000파운드 폭탄을 탑재할수 없었다.

1962년, 시빅슨 FAW.2는 첫 비행을 했으며 1964년 전방 비행대부터 운용되기 시작했다.
총 29대가 새로 생산되었으며, 67대의 FAW.1이 FAW.2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5. 운용 역사

시빅슨은 여러 작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데

1961년, 이라크의 압둘 카림 카심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합병하겠다고 위협, 이에 쿠웨이트가 지원을 요청했으며
영국은 다수의 함정을 파견했는데 이때 함대에 있는 시빅슨이 이 지역을 순찰했다.
이에 카심 대통령은 이러한 공격적인 행동을 그만두었으며, 쿠웨이트를 둘러싼 전쟁을 피할수 있었다.

(압둘 카림 카심 대통령의 모습, 만일 이 사람이 공격적 행동을 계속했었으면 걸프전이 더 앞당겨서 발발했을수도 있다.)

두 번째는 1964년 1월 아프리카 탕가니카가 독립했음에도 Tanganyika Rifles이라는 단체가 NCO와 영국 장교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 직후 발생했다.
이때 수도인 다르에스살람 공항을 점령했으며, HMS Centaur에 영국 45명의 해병대 소속 특공대를 파견했다. 이때 시빅슨은 헬기로 상륙하는 해병대를 엄호 하는 등 여러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이 작전은 다행이도 공적으로 끝났다고한다.

(당시 Tanganyika Rifles의 모습)

이 외에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대립을 막는데도 기여했으며, 로디지아에서 베이라 패트롤(Beira Patrol)임무도 참여했다.

시빅슨은 총 145대 생산, 55대가 사고로 손실되었다. 또한 시빅슨의 프로토타입 2대도 손실되었다.
시빅슨 무려 38%의 손실률을 기록했으며, 이중 30건은(54%)는 매우 치명적 사고, 21건은 조종사, 무장관제사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시빅슨 FAW.11966년, 개량형인 FAW.2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순차적으로 퇴역했으며
1972년, FAW.2도 팬텀 FG.1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퇴역하게 되었다.

퇴역한 후에 적은 수는 타란트 러쉬튼 비행장(Tarrant Rushton Airfield)에 있는 FR 항공으로 보내졌으며,
이중에서도 일부는 RAF 란베드르(RAF Llanbedr)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그 중에서 XP924가 현재 시빅슨중에서 유일하게 비행 가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017년, 에어쇼 도중에 유압 결함으로 인해 손실되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비행이 가능했던 XP924, 2017년 에어쇼에서 소실된것이 너무나 아깝다.)


6. 짧은 여담

후에 드 해빌랜드사가 호커 시들리사로 합병되었기 때문에 '호커 시들리 시빅슨'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탈출 좌석을 바꾸기 전, 무장관제사 자리는 탈출하기전, 따로 해치를 분리해서 탈출해야했다.
이 녀석도 손실률이 높은데 시미터와 마찬가지로 작은 항공모함에서의 운용과 복잡한 비행제어 시스템때문이다.
XP 924는 2015년 에어쇼에서 비행했으며 이때 사람들이 시빅슨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아름다워 '세상에서 아름다운 전투기'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7. 마치며...

술 처먹고 할거 없다고 이 글을 썼다. 그래서 오타나 잘못 해석한 정보가 있을수 있으니 댓글에 적어주길 바란다.
이번에도 2시간정도 걸려서 작성했다.

썬더에서 시빅슨이 나오면 아마 시미터와 팬텀 FG.1사이에 나오는게 맞는거 같다.
다음엔 자벨린에 대해 적어볼려고 한다.
재밌게 봤으면 추천좀 눌러주면 고맙겠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대략 6800~7000자 정도 된다.)


수정 : Avon 208 엔진 사진이 사파이어로 잘못올라가서 사진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