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gaijin/23771285 이거보고 와라
그래야 이해될거임)



6. 프로젝트 파기


1960년대 당시, 미공군은 50년대에 핵투하를 위한 저고도 비행 전투기 F-105의 후속작으로 F-111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었다.

당시에 RAAF(오스트레일리아 왕립 공군)에서 TSR-2에 관심이 더 많았지만 RAAF는 미국 제조업체로부터 더 좋은 가격과 납품 일정을 제공받음에 따라 F-111을 구입하였다.(그러나 RAAF는 F-111 인도까지 10년을 더 기다렸으며 가격 도한 3배가 넘어갔다.)

RAF(영국 왕립 공군)또한 F-111을 비용 절감 조치로 도입할것을 고려하도록 요청을 받게 되자 이를 취소하는 뜻을 담아 BAC 직원들은 항의 행진을 벌였고, 1964년 새로 집권한 새 노동당 정부 또한 이를 거부했다.


(TSR-2를 끝장낸 장본인 F-111, 그러나 이녀석 역시 도입되지 못했다.)

그러나 곧 모든 시제품 및 동체를 파괴하고 태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1965년 4월 1일에 열린 두 번의 국무회의에서 비용을 이유로 TSR-2 프로젝트를 취소하고 이를 대체할 F-111을 구입 약속 없이 110대를 획득하는 옵션 계약을 따내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두 번 시제기인 XR220의 첫 비행은 공교롭게 발표당일이었으며 해당 기체는 이미 시험장인 Boscombe Down에 전달된 상태였지만 프로젝트 취소로 인해 비행을 하지 못했으며 직원들이 나와 한번만이라도 비행만이라도 허가 받기를 원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채, 첫 시제기인 XR219만이 비행했으며, 1965년 4월 6일, 영국 총리는 하원에서 열린 토론에서 'TSR-2보다 F-111을 도입하는게 더 저렴할 것'이라 공표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완전형 XR220, 그러나 한번도 날지 못했다.)

7. 프로젝트 파기, 그 후


처음 영국은 F-111K를 도입한다고 했지만 다른 대안 두 가지도 고려했다고 했는데 하나는 다쏘사의 미라지 VI와 버캐니어 2-더블-스타라고하는 새로운 공격 시스템 및 정찰 기능을 갖춘 블랙번 버캐니어 S.2를 고려했다고 한다.

최종 결정이 1966년 국방 검토 때까지 보류되었지만 TSR-2의 대체기로써 두 가지 제안은 추진되지 않았다고한다.

국방부 장관이었던 힐리의 메모에는 TSR-2의 대체기로는 F-111이 선호했음을 나타내기도 햇다.


1966년, 국방 검토 이후 영국 항공부는 F-111K와 더불어 AFVG(Anglo French Variable Geometry Aircraft)를 발표했다.

AFVG 또한 F-111처럼 가변식 날개가 적용된 항공기로 장기적으로 F-111를 교체하기 위해 프랑스와 합작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엇다.

(AFVG의 모습, 그러나 이것 역시 끝내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1967년 5월 1일, 힐리는 F-111K/AFVG 조합이 1억 파운드 정도 드는데 반해, TSR-2는 15년 동안 1조 7천억 파운드가 되었을 것이라 주장하면서 논쟁이 발생하기도 했다한다.


1966년 4월에 10대의 F-111K를 주문 67년 4월에 40대를 추가 주문했지만. F-111 프로그램은 파운드화의 환율저하와 함께 TSR-2의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비용상승을 겪었으며, 예상보다 낮은 성능 추정치, 운영 배치 이전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겹치면서 50대의 F-111K의 주문은 1968년 1월에 취소되었으며, 이후 F-4 팬텀 II 과 블랙번 버캐니어를 동시에 운용함에 따라 막을 내렸다.


다행이도 TSR-2 프로젝트로 쌓은 경험은 후에 SEPECAT 재규어파나비아 토네이도를 개발할때 유용하게 사용했다.

(흔히 우리가 아는 SEPECAT 재규어의 모습)

(토네이도의 모습, 사실 TSR-2의 후계기는 이 둘이 아닐까싶다.)


1970년대 후반에 항공 사업가인 Christopher de Vere는 TSR-2 프로젝트를 부활하고자 매우 추측성 있는 타당성 연구를 시작했고 끈질기게 로비했지만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않았다고 한다.


7. 여담

남은 부품은및 시제기들은 폐기되었고 2대의 시제기중 하나인 XR220은 RAF 박물관에 전시되었으며 미쳐만들지못한 XR222는 제국 전쟁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비행한 XR219는 슈베리니스로 이동하여 총격과 파편에 대한 최신 기체와 시스템의 취약성을 테스트하기위한 표적으로 사용되었다한다.(...)

이때 TSR-2 이후, 영국은 독자적인 항공기 개발이 없다. 그래서 별명중에 하나가 영국의 마지막 독자 개발 전투기...

말했듯이 재규어와 토네이도는 TSR-2의 개발경험을 발판 삼아 만들어졌는데 특히 재규어의 날개는 매우 유사하다. 또 그 둘이 TSR-2의 후계기이기도 하니까...

위에 라이트닝을 추월한 사건을 보듯이 TSR-2는 요구조건엔 못미쳤지만 당시엔 엄청난 비행성능을 자랑했다고 한다.

TSR-2이후에 F-111K 도입또한 예산 문제로 취소당했는데 이유가 정말 어이없을정도로 웃기다.
결국 승자는 블랙번 버캐니어인걸로



8. 마치며

이런 시발거 뭔놈의 시제기가 웬만한 다른 실전기체들보다 자료량이 많은지 이유를 알수없다.

이것에 비견되는 사건은 CF-105이다. (검색은 따로해봐라)

참고로 본 1,2편 총합 11,000자가 넘어간다.

TSR-2가 제안으로 넘어간 기념으로 제작했지만 앞으론 그러면 안된다는걸 깨달았다.

다음엔 펄스-도플러 레이더에 관련된 글로 찾아오겠다.

존나게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