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유명한 전함이기도 하니 비스마르크의 불운한 최후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진 편임.



거기에 묻힌 한 가지 이야기는 바로 그 럭키샷을 만든 영국 항모 아크 로열의 최후에 관한 것임. 사실 아크 로열은 이때의 운빨에 대한 업보인지 어쩌면 비스마르크보다도 더한 불운을 겪었음.


이하는 아크 로열을 격침시킨 U-81이 당시 상황을 기록한 항박일지 내용임.


1515시 : 남동쪽에서 비행정 발견. 원을 그리며 비행 중. 곧이어 항공기 다수 발견. 대부분 전투기임.


1550시 : 방위 120도에서 영국 전함 함대 발견. 긴급잠항!


1600시 : 리벤지급이나 말라야급 전함 1척, 항공모함 아크 로열, 퓨리어스(아거스를 착각한 것으로 추정됨), 3~4척의 최신식 대형 구축함들과 다른 구축함 3척이 포함된 영국 함대. 서쪽으로 향하며 일렬로 40도 변침. 약 15분마다 최대 50도씩 변침하고 있음. 구축함들이 대잠 진형을 짜고 호위 중. 한 척은 함대의 우측 전방 8,000 m 정도 앞에 위치하여 원거리 견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임.


15~20기 정도의 항공기들이 함대 상공 약 100 m 고도에서 원형 비행 중. 수상기들이 외측에, 바퀴 달린 비행기들은 2~3기씩 편대 비행하며 직접 호위 중.


1636시 : 영국 전함의 근접 호위와 원거리 호위 사이로 어뢰 4발 산개 발사. 조준점 함수 전방 10 m. 함수각 82도, 함수 우향. 적함 속도 16 노트, 거리 3,000 ~ 4,000 m. 산개 거리 150 m. 어뢰 항주 심도 5 m.


발사 직후 함이 수면 위로 떠오르려고 함. 전 대원 함수로 집합 후 5.35 m (뒷내용을 보아 아마 T=35 m 를 잘못 쓴 것으로 보임. 175 m 라는 뜻.) 로 긴급 잠항. 항공기에 대비하여 T=40 m 로 잠항.


6분 6초 후전함에 명중 (매우 강력한 폭발). 7분 43초 후 또다른 어뢰 폭발음 청취. 아마 진형 좌측 구축함들 중 하나나 아크 로열에게 명중한 것 같음. 2번째 어뢰가 명중한 함선의 거리는 '에토' (G7e 어뢰의 애칭) 의 감속을 고려하면 약 6,500 m 정도로 추정됨.


T=60 m 로 잠항. 자이로스코프와 냉각기 차단, 전력 90 볼트로 감소, 심도계 다이얼 정지, 외부 벤트 폐쇄. T=65 m 로 잠항했다가 이후 T=50 m 로 올라와 북동쪽으로 이탈.


1725시 ~ 2220시 : 3척의 구축함들로부터 162발의 폭뢰 공격. 별다른 효과 없음. 폭뢰 소음이 점차 뒤쪽으로 사라짐. 북진 시작.


2222시 : 부상. 구축함들은 약 8,000 ~ 10,000 m 후방에 있음. 스페인 해안의 등대 외에는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 음탐장이 매우 근접해 있다고 보고했던 상선이나 호위함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음. 북동쪽으로 저속 전진. 매우 밝은 해상 인광.


2224시 : 전보 수신.

'레슈케와 구겐베르거에게 : '로이터' 가 아크 로열의 침몰을 보도함. 성과나 관측 결과를 보고할 것.'


0553시 : 전보 송신.

'U-81 로부터 : 11월 13일 1636시에 전함, 아크 로열, 퓨리어스를 향해 어뢰 4발 산개 발사. 첫 어뢰는 전함에 명중된 것으로 추정됨. 2번째 어뢰도 명중했으나 대상이 불확실함. CG 7645 해역.'


2000시 : 군 소식통과 여타 보고들을 종합한 결과 11월 13일의 첫 어뢰에 말라야가 명중되고 2번째 어뢰에 아크 로열이 격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됨. 적함 속도는 17노트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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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81이 말라야를 향해 쏜 어뢰의 발사제원은 말 그대로 엉터리였음. 추정 속도는 실제보다 2노트 정도 차이가 났고, 거리는 3~4 km 정도로 추정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5 km 이상의 초장거리. 이 모양이니 당연히 원래 표적이었던 말라야에게 맞을 리는 없었음. 


그리고 U-81이 말라야를 향해 발사한 어뢰 중 1발이 말라야의 한참 뒤에서 함재기들을 착함시키기 위해 잠시 변침했던 아크 로열의 정 중앙에 깔끔히 명중하게 됨.


더 얼척이 없는건 어뢰가 명중한 시간으로, 유보트들이 사용하던 G7e 어뢰는 고정적으로 30노트 속도로 5,000 m의 사거리를 지니므로 약 5분 24초 후에는 최대 사거리 도달 후 배터리가 소진되어 점점 속도가 줄어들다가 해저로 가라앉게 됨. 특히 초기 G7e 어뢰의 경우는 무게중심이 잘 맞지를 않아서 속도가 느리면 제 심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가라앉는 경향이 심했고.


그런데 U-81이 발사한 첫 번째 어뢰는 6분 6초 후 아크 로열에 명중하였음. 즉 최대 사거리인 5,000 m 에 도달하고 나서도 장장 42초를 더 항주한 후에 명중했다는 것. 


더구나 위에 서술했듯 아크 로열은 함재기들을 착함시키기 위해 좌현으로 변침하던 중 함체가 기운 사이 드러난 우현 하부에 어뢰를 얻어맞은 터라 왠만한 어뢰 공격에는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 현측의 3중 보호 구획이 죄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음. 완전히 무방비한 부위에서 터진 U-81의 어뢰는 아크 로열의 선체를 120 피트 이상 찢어발겨놨고, 당연히 엄청난 양의 침수가 시작됨.



이후 아크 로열은 22,000톤짜리 항모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이 어뢰 1발에 온갖 악재가 겹친 결과(손상통제 실패, 인원 통제 실패, 태생적 설계 취약점, 조류로 인한 예인작업 지연 등등) 지브롤터에서 고작 30마일 떨어진 곳에서 침몰해버림. 한편 한참 뒤에야 자기가 뭘 때렸는지 알게 된 U-81은 스스로도 얼척이 없었는지 '무슨 처녀가 애 낳는 소리냐' 고 반응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