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러 전쟁에서 한 러시아 전차병이 명언을 하였는데 바로





"화력이 부족합니다... 너무 부족합니다... 125mm로는 콘크리트도 못 뚫어요.."


그렇다. 기열찐빠소추인 125mm로는 화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이 생각을 옛날 화살을 사용할때도 생각했고,머스킷,대포,폭탄이 나올때마다 화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1988년 소련군은 오도짜세기합 화력을 가진 신형 152mm 활강포가 개발됨에 따라 차세대 주력전차 사업을 우랄바곤자보드에게 제안하게 되었고 UVZ 니즈니타길에 위치한 UKBTM 기갑 병기 설계국에서 개선-88이라는 차세대 전차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돼었다. 오비옉트 195를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UKBTM측은 이에 더불어 오비옉트 477A이나 키로프 측에서 내놓은 오비옉트 299와 같은 대형 차체를 선보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오비옉트 195이다!




당시 소련군은 UKBTM오비옉트 187이라는 신형 전차를 봤지만 어떠한 이유로 오비옉트 187은 개발이 취소되었다.

하지만 UKBTM은 이에 포기하지 않고 오비옉트 187에서 얻은 노하우와 기술을 토대로 오비옉트 477A에 비견하는 차세대 주력전차를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하게 되었다.

먼저 기존 T-72 차체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전차의 설계도를 그리는 방법을 택하였는데,

그렇게 UKBTM의 기갑 설계팀은 새로운 차체를 고안해왔다.

오비옉트 195 차체 설계도


우선 기존 소련의 주력전차보다 보기륜이 1개 더 늘어나고 차체도 더 길어졌다.

오비옉트 195의 새로운 차체는 현대적인 전차의 전면과 X자형 디젤엔진과 파워팩 장착을 위하여 넓어진 후방 엔진룸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T-72 차체의 기반으로 했으나 사실상 다른 차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개발 도중 소련이 붕괴하는 사건으로 잠시 멈췄지만 1992년 우랄바잔고드는 스베르들롭스크 연방구 지사가 옐친에게 로비를 엄청 한 덕분에(?) 러시아 연방에서 운용 가능한 전차설계 - 생산기업으로 활동하는 곳으로 인정받고 결국 쿠빈카에 위치한 GABTU(러시아 연방 국방부 기갑기계화총국)은 오비옉트 477A의 요구 성능에 맞춘 오비옉트 187A의 기술적 노하우를 이용하여 차세대 주력전차를 개발하기로 결정되었다.

따지고보면 개선-88 프로젝트의 모든 전차의 토대는 오비옉트 187A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비옉트 195의 추정 도면


그렇게 러시아군은 GABTU에게 T-90EA(초기기획 명칭)의 3가지의 목표를 제시하였다.

1. T-72 공장에서 생산 할 수 있도록 만들 것.

2. 열화판이였던 오비옉트 188의 기술을 도입할 것.

3.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차세대 주력전차를 만들 것.


1번은 당시 경제가 박살났는데 옐친이 더 개박살내자 돈이 하도 없던 러시아 연방은 새로운 생산 공장을 지을 수 없자 T-72 생산 공장에서 생산 할 수 있도록 만들라고 지시하였으며

2번은 1번과 마찬가지로 돈이 없던 상황이라 오비옉트 188의 가격도 내리고 싸게 만들겸 오비옉트 188의 부품과 기술을 최대한 재사용 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뭘 할려고 하면 경제가 발목을 잡는 러시아 답다...

그렇게 1993년 러시아 연방의 국방부는 T-95라는 신형 차세대 주력전차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UKBTM을 책임지던 블라디미르 프로킨은 쿠빈카 기갑연구소에게 오비옉트 477A에 대한 설계자료 및 기술을 요청하였고 허가를 받아 오비옉트 477A의 설계자료 및 기술을 제공받게 되었다.


오비옉트 477A의 외형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하리코프 설계국은 자기 것이라고 노발대발 할 수 있었지만 당시 프로킨에게 넘어간 문서는 소련 국방부의 자료였으며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연방이 모든 것 을 승계받아 문서의 주인 또한 러시아 연방에게 넘어간 것이며

이러한 기밀자료는 개선-88 주요기획단계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경제다!

당시 90년대의 러시아 연방의 경제는 눈물이 날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였는데,(옐친도 한 몫했다)

FCS,포탄,주포,트랜스미션,엔진 등 신기술을 적용시키기엔 돈이 너무 없던 것이다! 그렇게 기술력 퇴화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체첸전으로 돈은 더 없어지니, 당시 개선-88의 기갑 설계자들은

"이걸 어떻게 개발하라는 거야? 돈이 있어야 말이지;;"

이 반응은 당연한게 당시 개선-88 프로젝트에 정부가 지원한 연구 비용은 0루블.

즉 연구 비용도 주지 않았던 것이다...(돈이 없으니 나원..)


오비옉트 195의 그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

을 외치는 3명의 인원이 있었는데 바로

GABTU 국장 세르게이 마예프

UKBTM 설계국 국장 블라디미르 포트킨

UVZ 사장 니콜라이 말리흐


그렇게 이 세명의 인원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노력하였다.

말리흐는  언젠가 전세계에 오비옉트 195를 수출하겠다는 훌룡한 비지니스맨 정신으로 T-90S 수출에 성공하여 그 자금으로 오비옉트 195의 개발과 공장 현대화에 투자하였고,

마예프 군의 역량을 어찌됐든 투자하여 이 계획이 어떻게든 고사하지 않도록 피가 나는 노력을 하였으며

포트킨은 이 연구개발을 성공시키기 위해 2000년에 첫 시제전차를 내놓겠다는 목표로 자신과 개발진들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였다.



수출에 성공한 T-90S


이 노력을 하늘에 있는 신도 안것일까?

그 노력의 결과로, 2000년이 되자 루시판 고난의 행군이 지남과 동시에, 죽어가던 러시아 연방 기갑의 꿈을 깨운 시제 전차.

오비옉트 195의 등장으로, 이 세명이 포기하지 않고 피땀눈물을 흘려가며 노력한 결과 오비옉트 195는 개발을 성공하게 된다.

만약 이 세명이 없었더라면 오비옉트 195는 없었으며 지금의 T-14 아르마타의 자리 또한 다른 전차가 차지했을 것이다.

그 만큼 이 세명은 엄청난 노력을 했다...

하지만 모두가 이 눈물나는 여행을 박수치며 축하해줄때 오비옉트 195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블라디미르 포트킨은 시제전차가 나오기 전 심장마비로 자신의 책상에서 과로사로 사망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이는 정말 힘들고 피땀눈물을 흘려가며 죽어갈 정도로 고생하고 노력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 이였다.



블라디미르 이바노비치 포트킨 집에 걸려있는 추모비


"이집에는 전차 설계자가 살았다. T-90의 아버지이자, 훌룡한 전차 설계자였던. 블라디미르 이바노비치 포트킨"

그렇게 하나의 전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바쳤던 이를 위해, 전차는 모두의 염원을 담아 작게나마 살아 움직일 수 있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전차가 바로 오비옉트 195이다.



 

오비옉트 195


ㅡ제원ㅡ

중량 : 50~58톤(자료마다 차이가 있음.)

승무원 : 3명 또는 2명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 3명 : 운전수,포수,전차장 / 2명 : 운전수,포수-전차장)
포 길이 포함 전장 : 약 11M (포 제외 차체 전장 - 약 8M)
전차 크기 : 3.3M ㅣ 차체 전고 : 1.78M / 너비 : 3.6m / 지상고 : 580mm
바퀴지름 : 780mm
지면 차지 넓이 : 5.96M2

방호력 : 전면기준 약 1000MM 방호력 / 렐릭트(전면), 콘탁트-5(측면 스커트)
엔진 : A-85-3 X자형 1500마력 엔진 장착.
속도 : 도로 기준 75km/h 이상  험지 기준 50km/h 이상
가속력 : 10초내 전차 70km/h 돌파.
주무장 : 152mm 2A83 활강포, 23발 장착 (예비탄 합기준 40발) / 포 수명 280발 / 포압 7700ATM / 구경장 :47구경~52구경
부무장 : 30MM 동축기관포 2A42 1정(다른 자료에선 12.7MM KORD 기관총이 사용됨) / 12.7MM 코르드 기관총 1정

기타 : 다중채널(일반,열상,IR,레이다) 화력통제장치 장착 , 2E58M 스테빌라이저 장착
KAZ 능방 방어 장치 , 쉬탄다르트 , 쉬토라-2 장착



2000년대 초 니킬라다길에서 찍은걸로 추정되는 152mm 2A83포 성능 실험 모델



2000년대 초에 나온 시제전차는 152mm포와 신형 무인포탑을 실험하기 위해 나온 전차이다.

195477A 성능과 거의 맞먹는 수준의 전차이며 477A의 완벽함을 위해 복잡한 구조를 담지않기위해 전면적인 구조 단순화를 시도하여 신뢰성이 447A보다 높아졌으며.

이렇게 나온 195를 본 장성들은 충격을 먹었으며 몇몇 군사전문가들은 이 전차를 "20세기 말에 나온 티거전차" , 에이브람스는 망했다." 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그만큼 그 당시로썬 아주 혁신적인 설계였던 것이다.



 

오비옉트 299와 477A에서 보여준 장갑캡슐 개념


이 장갑캡슐 개념은 '차체중 가장 단단한 전면에 승무원들을 탑승시키고 포탑은 전부 무인화 시킨' 라는 개념이였는데

만약 이 개념을 적용시킨다면 195는 60톤이 넘는 무거운 몸무게를 가지게 되었을 테지만 299에서 가져온 혁신적인 기술로,

195는 50~58톤의 몸무게를 가지게 되었으며 여타 소련전차과는 다르게 승무원실부터 엔진룸에 이르기까지 모둔게 장갑으로 완전히 격리되어있어 유사시 화재발생,포탄 유폭으로인한 폭발이 일어난다고 한들 승무원은 살아나올 수 있었다!




오비옉트 195에 장착된 152MM 2A83 활강포


2A83 주포는 정확도가 매우 높은 주포로 포 성능 실험모델에서 테스트한 결과 5km라는 경이롭고 정신나간 사거리를 가지고 있다.

195의 2A83주포는 152mm 날탄과 대전차고폭탄,고폭탄,대전차 미사일들을 발사 할수 있으며 1980m/s 포구속도로 발사 할 수 있다.

포 수명은 280발이며 포압은 7700ATM이다. 또한 195에는 47~52 구경장을 장착하여 테스트 하였으며, 135mm 부터 140mm, 152mm 활강포를 장착하여 실험 하였다.


여담으로 이 주포는 아직 시험장에서도 계속 쓰이고 있다.



2A83에 사용된 신형 그리펠 1,2152MM 날개안정분리철갑탄


이 녀석의 길이는 무려 1200mm.....로 1024mmRHA 관통력을 가지고 있다.




 

오비옉트 195의 신형 포탄 장전기


장전장치는 신형 수직형 회전식 자동장전 장치로, 수직 케로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또한 기존의 447A에 장착되었던 장전장치 였으며 447A의 장전장치를 그대로 가져온지라 447A가 겪었던 안전성 문제가 있었는데

이는 즉응탄을 약간 희생하는걸로 해결하였다.


195에 장착된 신형 X 자형 A-85-3 디젤 엔진


이 녀석은 X 자형 디젤엔진의 완성형이며 기존의 냉각시스템을 개선한 이 엔진은 195를 10톤이나 더 가벼운 80U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가속도또한 기존 소련전차와는 다른 빠른 가속도를 보여주었는데, 무려 70km/h를 10초 내에 가속 할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러시아 연방의 신형 전차에서도 보기 힘든 스펙이였으며 A-85-3의 엔진 수명은 1000시간 이상으로, 당시 엄청난 경제난과 다양한 이유로 파괴된 기술력을 보아, 이 정도의 성능을 내는 엔진을 만드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였다!


1,1A,2호 프로토타입은 모두 다른 엔진을 사용하였는데

1호 프로토타입은 ChTZ 엔진 개발 설계국에서 개발한 1500마력의 A-85-3 X 자형 디젤 엔진을 사용하였고

1A호 프로토타입은 KB 엔진 개발 설계국에서 개발한 1650마력의 X 자형 디젤 엔진을 사용,

2호 프로토타입은 V.Ya Klimov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공장에서 개발한 1500마력의 가스터빈 엔진을 사용하였다.


여담으로 구상당시 가스터빈엔진을 사용하기로 하였지만 결국에는 디젤엔진이 장착되었다.



오비옉트 195의 크기 (1A호 시제전차)


???:"넌 뭐이리 크냐! 모두의 희망과 염원을 먹고 자란덕에, 큰 몸집을 가지게 되었소!"


크기가 큰만큼 전차 조종부 내부도 넓었는데 약 2.3m의 공간이 있었다! 만약 이 크기를 보고

"뭐야, 왜이리 작냐 공간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존 T-72,T-80의 공간에서 1일만 생활해보자. 그럼 저 2.3m의 공간이 넓어보일것이다!

또한 높은 편의성또한 가지고 있었는데 얼마나 편하면 조종석이 무슨 쇼파(?!?!)급으로 장착 되어있고, 조이스틱을 이용하여 조종이 가능한 만큼 편의성면에선 서방전차보다도 좋았다고 한다.

증거없는 거짓이라고 하지만 마예프국장의 언급에 따르면 M1에이브람스를 탑승할 기회가 있었는데 국장이 직접 탑승해보고 서방 전차보다도 편하다고 할 정도로 호헌장담 하는걸 보면 정말 편한듯 하다.

이는 구소련의 슬프고 아픈 '승무원 편의성 생각무'개념을 완전히 탈피하여 반짝일 정도로 진화한 것이다!



오비옉트 195에 장착된 2E58 사격통제장치


다가올 미래전을 위하여 195는 KAZ와 다양한 감지센서들을 장착하여 기계비전(컴퓨터 디지털변환기)를 구현하려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썬 도저히 쉬탄다르트 하드킬 장치와 쉬토라,소프트킬 장치를 능동방어체계에 통합할순 없었던 듯 보이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서방측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가진 동구권의 소련의 후예인 러시아의 기술론 통합할수 없었으며

다시 말하지만 이 전차는 루시판 고난의 경제 속에서 세명의 인원이 피땀눈물을 흘려가며 겨우 만들어넨 전차임을 잊지말자.

하지만 2008년 어떻게든 통합하여 2008년 아프가니트 통합능동방어 시스템으로 구현되었다.



오비옉트 195에 장착된 정보통제시스템 TIUS


이는 전차 내의 시스템 점검을 하여, 승무원의 부담을 줄어주며, ESU TZ (전술통합지휘체계 및 네트워크 시스템)과 연동되어

디지털 정보를 통하여 승무원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탄약과 연료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전차 장비시스템 상태를 승무원 디스플레이어에 보여주어 전차 상태또한 알 수 있었다.

또한 IR장치와 NPO 오리온에서 개발한 열화상 카메라10km탐지가 가능한 레이더를 장착하였으며 핵전쟁을 대비하여 방사선 차폐제, 81mm 902B Tucha 연막 발사기가 장착된다.


디지털 장비는 2호 프로토타입 실험 전차에서 장착되어 테스트가 진행되었는데,

IUS-1D , 1ETs41-1 , APKN-A , RSA-1 , 1ETs69 , 3ETs18 , PUT , PUM , BUVO , RSA-1 , BGD32-1 , ED-66A , EDM-66 , ED-43 , AS195-1 제품에 대한 테스트를 모두 성공적으로 완료하였으며 이는 ESU TZ의 시스템 연동성이 얼마나 훌룡했는지 보여주는 결과였다.



오비옉트 195의 방어력


오비옉트 195쉬탄다르트 하드킬 장비를 장착하였다.

이는 현대 러시아의 하드킬 시스템인데 드로즈드아레나결합형 하드킬 시스템이다.

쉬토라-2쉬토라-1의 개선된 소프트킬 장비이며 방어력또한 기존 소련전차와는 차원이 다르게 강화가 되었는데,

자료가 없지만 복합장갑으로 보호받는 전면방어력이 약 1000mm로 가장 두꺼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당시 최고의 성능을 보여주던 4S23 렐릭트와 측면에는 콘탁트-5를 장착하였으며,

이후 개발된 다양한 저피탐지성 위장막 니키드카등의 보호막을 설치하여 저피탐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으며,

또한 현재 러시아 전차병들이 입는 카브보이 전차복오비옉트 195를 위해 제작되었던 전차복이였다.


카브보이 전차복


여담으로 4S23 렐릭트오비옉트 195 전용 반응 장갑이였다.



 

기동시험중이던 오비옉트 195 2호 시제전차의 사진 (2008년)


이 녀석은 기동력또한 기존 소련전차와는 차원이 달랐는데 전고가 매우 높았고, 스마트 서스펜션의 높은 성능으로 험지구동력이 매우 높았다. 또한 몇몇 군사전문가들은 이 전차의 높은 전고가 산악지방과 도시지역에서의 전투에서 매우 좋은 성능을 보여줄 것이라고 언급한 만큼 기동력이 뛰어 났었다.



하지만 오비옉트 195는 여기서부터 천천히 망해가기 시작하는데......


원래대로라면 2005년 테스트를 보고 완료한 후, 100~300대로 양산시작될 예정이였지만. 다양한 결함들이 발견되어 시제품은 1호,2호,3호 전차도 생산하여 기술적 안전성을 찾으려고 하였다. 특히 중요한 문제점으로는 2A83의 주포성능과는 별개로 포신수명이 치명적인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얼마나 심각했냐면 초기 2A83의 포신 수명은 무려 83발로 얼마 쓰지도 않고 버려야 할 정도로 저열하고 처참한 수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포 발사시 내부의 압력문제로, 이 압력을 버틸수 있게 두께를 조정하는 등, 수 많은 노력을 펼치면서 어떻게든 포신 수명을

83발에서 280발로 늘렸지만, 기존 125mm 주포와 비교하면 여전히 처참한 포신 수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아직도 어떻게 해결해야 했을지 의문일 정도로 해결방법이 안나왔으며 T-14도 이러한 문제로 125mm 주포를 사용중이다.


동구스 훈련장에서 찍은 오비옉트 195 2호 시제전차 (2008년)


195 시제전차의 기록에 따르면, 총 287발을 테스트 하였으며 1만 5000km를 주행했다는 기록을 보아, 포신 수명 테스트를 계속 진행하여 고치기위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있으며 그 결과 280발이란 포신수명이 나온듯 하다.

그렇게 마예프측은 국방부에게 모든 기술을 보완할 3호 시제전차를 생산할 5억 루블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더이상 늘어나는 개발비용을 국방부는 탐탁치 않게 여겼는지, 연구개발비용을 추가하지 않고, 이 전차는 충분히 복잡하고 비싸다3호 시제전차 생산을 꺼려했다.

당시 마예프가 퇴임할 시절. 오비옉트 195의 개발비는 22억 루블에서 남은 비용 7억 루블중 4억 루블이 생산비용 (약 1억 루블 부족) 나머지 3억 루블은 국가주도시험에 사용될 비용이였다. 마예프 국방부에게

"그렇소, 이 전차는 비싸고 복잡하지만, 7억 루블이 아깝다고 아낀다면, 나중에는 비용이 더 비싸지고, 성능도 뒤떨어지게 '과단순화' 될 것입니다. 그럼 이 전차의 질은 점점 더 떨어지게 되겠지. 그렇게 당신들이 전차를 병신으로 만드는거요!"

라며 국방부에게 일갈했다.

그렇게 2009년 오비옉트 195가 도입된다는 소식에 서방 전문가들과 군사동향전문지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도입소식은 거짓이였다.

하지만 오비옉트 195는 모든 테스트를 거치고 통과하여 양산되기만 하면 됐지만 이 포포프킨 개새끼가 어이없는 이유로 오비옉트 195의 도입은 좌절되고 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전 러시아 연방 국방부 장관 씹새끼


이새끼와



우리의 영원한 개새끼 세르듀코프 국방부 장관 시절 포포프킨 진짜 개새끼 대장(당시 러시아군 소속 병기총관리장)


이새끼 덕분에 오비옉트 195는 도입이 취소되었다.

특히 포포프킨개새끼가 한 망언중 하나는....


"뭬야? 시발 이 소련내나는 전차는?!?!  1988년에 시작되서 만든 전차라고? 이거 완전 민주주의 사회에는 안어울리는 씹 빨갱이 장비에다가 고물이잖아! 꺼져 할카스 새끼야! 그리고 지금 이 전차가 필요해? 안필요해!!! 차라리 쫌 있으면 T-90M 나오니까 그걸 쓰고말지! 그리고 T-90M이 맘에 안들면 시장에 아직 많이 풀려있는 레오파르트2를 수입하는게 낫지!!!"


그렇다. 이 포포프킨 개새끼는 존나 무능한 새끼였던 것이다...

그렇게 병기총관리장이였던 포포프킨을 막을자는 GABTU에는 아무도없었으며 그저 이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였다...

이를 본 세계의 많은 군사 전문가들과 전차 개발자들은 포포프킨에게 온갓욕이란 욕은 다하였는데

몇몇 군사 전문가들은

"무능한 행정부의 발광"

"이건 의도된 살인이야. 씨발 어떤 새끼가 돈 처맥인거야?!"

"4월의 암흑기"(당시 4월에 이러한 결정이 내려져 4월의 암흑기라고 볼리기도 하다.)

등 전세계의 수많은 군사 전문가들과 전차 개발자,밀덕들이 포포프킨을 욕했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세계 최초의 무인포탑 전차

기존 소련/러시아와는 다른 획기적인 전차

세계 최초의 3.5세대 혹은 4세대 전차

존나게 강한 화력을 가진 전차

집같은 편안함을 가진 전차

등, 수 많은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으며, 외형또한 기존 동구권스타일의 전차이면서 서방의 전차와 닮은점이 많아 수많은 밀덕들이 이 전차를 좋아했다.



2011년에 찍힌 마지막 오비옉트 195 전차. (2호 시제전차)


하지만 포포프킨의 언급이 당연히 어이없던 UVZ는 2011년 4월 7일 시에코 사장마저

"우리는 계속해서 오비옉트 195의 연구를 지속할것"

이라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보도된적 있었다.

하지만 당시 밀덕계에선 모두가 포포프킨의 직급을 알고있던지라

"사실상 T-95는 끝났다!"

라는 말이 돌면서 결국.....

역사 속으로 잊혀지게 되는 결말을 마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비옉트 195가 완전히 죽은것은 또 아닌게,

2009년 혹은 그 전부터 하나의 계획이 꿈틀대고 있었는데

오비옉트 195 개발팀은 자신들의 전차가 거부됐다는 것에 방황을 하다, 다른 버림받은 오비옉트 640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뒤, UVZ에선 오비옉트 195 개발팀에게 말을하였다.


"오비옉트 195는 이제 T-95가 아니다."


"그럼 오비옉트 195는 이제 뭡니까?!"


"오비옉트 195는 새로운 전차의 기반이 될 것이다. 너의 동료 전차와 함께 말이다."


"..? 이제와서 또 새로운 전차....? 뭐, 더이상 남은것도 없는데 까짓거 돕죠 뭐..."


"이런일을 할 수밖에 없어서 미안하네... 오비옉트 195의 존재는 사라질거지만. 네 후손은 널 분명히 기억할꺼야."

그렇게 오비옉트 195오비옉트 640과 함께 하이로우믹스를 하여 하나의 후손을 낳게 되는데...



아르마타 전차


"아버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고 이번에는 도입되겠습니다!!!"


그렇다. 2009년, 우리가 아는 T-14 아르마타의 첫 시작이며, 이 시작은 오비옉트 195의 희생이였던 것이다.

(오비옉트 640도 곁다리로 쪼끔)


하지만 아르마타의 첫 시작은 매우 초라하였다. 저 모습에서 보이다시피, 2011년에 나타난 초기 설계작은 그저 6륜 T-95라는 것 말곤 생각 나는것이 없었다. 신형관측장비125mm  2A82-1M 신형주포 장착, 그 외에는 달라진 부분이 없다할 지경이였다.

지금의 아르마타오비옉트 195의 기초적인 성능이 비슷하다.


대형화 통합플랫폼


하지만 아르마타는 어느정도 경제가 안정되는 2010년 이후에 나왔으며 대형화 통합플랫폼 이라는 프로젝트로 간신히 개발될 수 있는 막차를 탈 수 있었다.

그렇게 미래기갑연구안아르마타에 붙여졌고, 자신의 아버지인 오비옉트 195에선 찾아볼수 없었던 모듈형차체를 채택하고, 당시에는 도입못한 다양한 신기술. 특히 센서기술과 경량화 장갑,신형반응장갑,소프트웨어,포탑 무인화,네트워크 등등

높은 안전성을 보여주며 도입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초라하게 시작하였던 아르마타 2015년, 자신의 아버지인 오비옉트 195가 그토록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모스크바에서의 행진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같이 위풍당당하고 예쁜모습으로 행진을 하며,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5년에 처음으로 찍힌 T-14 아르마타 전차


"내 엔진 속에 숨겨진 아버지.... 들리십니까....? 여기가 모스크바에요...."


그렇게 T-14 아르마타 전차는 자신의 아버지. 오비옉트 195GABTU 국장 세르게이 마예프 , UKBTM 설계국 국장 블라디미르 포트킨 , UVZ 사장 니콜라이 말리흐 3명의 인원이 피땀눈물을 흘려가고, 과로사로 고생한 결과로 나올 수 있었던 러시아 기갑의 미래였다!



하지만 이녀석도 운이 안좋은게 사람 잘못만나서 정부에서 T-14 아르마타 생산하라고 준 돈을 다 먹고 튄놈을 만나니,

이녀석도 자신의 아버지처럼 양산이 중단되었다...



여담으로 그 T-14 아르마타 전차는 우-러 전쟁터에서 프로파간다 사진을 촬영하며, 어디선가는 또 전투에 참여했다는 말이 들리는 등 러시아 기갑으로써 살아움직이고 있다.(?)




이미 지나간 물건에 만약에라는 것은 없지만,

만약에 포포프킨개새끼세르듀코프씹새끼오비옉트 195 개발및 도입을 중단하지 않았더라면 

2006년에는 T-95라는 이름으로 100대의 초기생산분.

2007년에는 300대로 늘어났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2021년 쯤에는 대략 500~700대 T-95가 생산되었고, 그 전차는 T-90M,T-72B3 등 다른 친구들과 함께 우-러 전쟁에 투입되었을 것이다.




소신발언) 썬더에 오비옉트 195 추가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