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8일, 일본 항복 3일 후 미육군항공대 기술병들이 스위스로 몰려듬.



2차 세계대전 유럽 공중전투 기간 동안 스위스에 불시착하거나 나포된 미군 기체들을 


스위스 정부와 협상을 통해 수리 후 영국으로 돌려 보내거나, 스크랩 처리를 하기 위해서 스위스 땅을 밟은거임.



수리하기 어려운 기체들은 윗 짤들 처럼 가차없이 해체했는데, 약 345톤 정도의 고철이 나왔음.



스위스에 있었던 수량이



B-17 30대

B-24 41대

P-51 1대



였다고 하니 적잖은 수의 기체들이 있었던 건데, 참고로 추락한 기체들 제외한 수치임.












1945년 12월 6일을 끝으로 해당 작업은 마무리 됨



이후 스위스 정부는 미국에게 4,964,992 스위스 프랑을 청구하는데 전쟁 당시 억류된 승무원들에 대한 숙식비 및 비행장에 주기 중이었던 미군 기체들에 대한 유지비 청구내역 이었음.


미국과 스위스는 해당 비용 문제로 거의 2년간 줄다리기를 함


스위스 정부가 4,520,000 스위스 프랑 (당시 미화 104,000달러) 으로 좀 깎아준 후에 커티스 르메이가 1947년 12월 22일 스위스로 직접 날아가서 1948년 1월 26일 해당 비용을 지불한다는 합의 각서에 싸인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