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 사진, 우측은 미해군항공대 첫 에이스인 데이비드 잉걸스 대위


미 해군 예비역 소속 파일럿 찰스 헤젤틴 하만(1494호 해군 조종사)은 전군을 통틀어 처음으로 명예훈장을 수훈하게 된 조종사였다. 그는 1918년 8월 21일에 오스트리아-헝가리 해안(현재의 크로아티아)에서 격추된 조지 M. 루드로우 소위(342호 해군 조종사)를 구조해 처음으로 명예훈장을 받은 조종사가 되었다. 미 육군은 전쟁동안 두명의 조종사가 명예훈장을 수훈했는데 에디 라인베커 대위가 1918년 9월 25일의 행동으로 명예훈장을 수훈받았으며 루크 주니어 중위가 1918년 9월 29일의 행동으로 사후 수훈받았다. 미 해병대 조종사 랄프 탈봇 소위 또한 1918년 10월 8일과 14일의 행동으로 국가 최고의 명예를 받았으나 그것을 받기도 전에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1차대전기간동안 협상국의 일부로 참전한 이탈리아 정부의 초청으로 미 해군은 베니스에서 50마일 떨어진 포르토 코르시니의 이탈리아 수상기 기지에 공동 항공기지를 만들었다. 1918년 7월 24일 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독일과 동맹이였다) 항공기가 기지를 공습했으나 다행히도 별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미군 기지는 곧 작전을 개시했으며 아드리안 해의 유일한 미 해군 항공기지였다. 1918년 8월 21일에 미 해군 매시 M.5 수상기(이태리제 작은 단좌 수상전투기)가 첫 전투임무를 수행했는데 이탈리아 M.8 수상폭격기가 잘 방호된 폴라 해군기지 상공에 삐라를 투하하는 것을 호위하는 임무였다. 다섯기의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알바트로스 육상전투기와 두기의 수상기가 호위임무를 수행중이던 미군기와 교전을 개시했다.


폴라 인근에서 독파이트가 이어지는 동안 조지 루드로우 소위가 조종하던 M.5는 피격당했고 심각한 피해를 입어 폴라 해안에서 3마일 떨어진 곳에 불시착했고 그는 포로로 잡힐 것을 걱정해야만 했다(오스트리아군은 자국 영토내에서 비행한 조종사가 격추되면 처형했다). 루드로우가 그의 항공기를 자침시키자 찰스 하만은 그의 옆에 자신의 항공기를 착수시켰다. 하만의 항공기도 교전동안 손상되었고 두명의 무게를 견디도록 설계되지 않았음에도 루드로우의 항공기가 가라앉는 동안 자신의 항공기에 태웠다. 하만은 추가로 증원된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수색기를 피해가면서 간신히 항공기를 이륙시키는데 성공하였고 포르토 코르시니에 도착해 착수시킨 직후 그의 항공기는 두명의 무게를 견디질 못하고 가라앉고 말았다. 하만은 그의 행동으로 명예훈장을 수훈받았고 이탈리아에서 군인 용맹장 또한 수훈받았다. 루드로우는 해군 십자장을 수훈받았으며 하만은 1918년 10월에 정식으로 소위로 임관하였으나 1919년 6월 14일에 버지니아 랭글리에서 M.5기를 타던중 추락사했다. 1918년 9월 15일에 미 해군 항공예비역 소속 루이스 J. 베르간 소위와 사수인 토마스 L. 머피 또한 포르토 코르시니에서 M.8기를 타던 중 추락사했다.


구축함 USS 하만(DD-412)는 찰스 하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이름 지어졌으며 미드웨이 전투도중 피격당한 USS 요크타운(CV-5)의 측면에서 지원하던중 일본군 잠수함 I-168에 의해 승조원 80명과 함께 격침되었다. 후에 에드솔급 호위구축함에 하만이라는 이름이 계승되었으며(DE-131) 2차대전 종전까지 복무했다.


하만 소위의 명예훈장 인증서는 다음과 같다:


"1918년 8월 21일에 하만 소위는 다른 세기의 항공기와 함께 순찰을 돌던중 압도적인 숫자의 적 육상기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수상기 조종사로서 매우 영웅적인 행동을 취하였다. 교전도중 조지 M. 루드로우 소위의 항공기가 격추되어 폴라에서 5 노티컬마일 떨어진 바다에 추락하자 하만 소위는 즉시 하강후 착수하여 고장난 항공기 옆에 붙어 루드로우 소위를 구조하였다. 그의 항공기는 두명이 탈것을 염두하지 않고 설계되었으며 오스트리아군 항공기의 공격 위험이 있었음에도 그는 포르토 코르시니에 도착하는데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