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시기의 일본 해군 설계를 돌아볼 때 가장 정당하게 자랑스러운 업적이 있다면 유명한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가 그중 제일일 것이다. 현재까지 건조된 전함들 중 가장 거대한 이 전함들은 배수량 69,100톤에 9문의 18인치 포를 탑재했다. 이 거대한 드레드노트에 대한 해군 설게자들의 자부심은 이 거대한 함정들이 그들의 주 목표인 미국 전함들에 자신들의 주포를 이용해 휼륭한 파괴를 불러일으키기 전에 미군 항모 함재기들에 의해 격침되었다는 것으로 가라앉지 않았다.


이 설계자들이 겪은 비극은 이 새로운 전함들이 취역할 준비가 되기 전에 해상전의 기술이 바뀌었다는 것에 있었다. 이 해군 설계자들의 일관되며, 초인적인 노력을 거쳐 야마토는 마침내 1941년 12월 초, 첫 청사진이 나온지 6년 9개월만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점에서 해군 항공의 발전은 이러한 대형 전투함을 구식으로 만들었다.


야마토급 전함의 건함은 1949년 8월 5일자 공학지에 실린 오스카 파크스 씨가 지적한 것 처럼 과거 건조데이터의 크기를 키우는 것만으론 불가능했다. 실제로 이 전함들은 18인치 포라는, 함에 탑재된 현대 해군 함포중 가장 거대한 포들을 탑재했으며, 이 함정들은 대응방어를 달성해야만 했기에 건함은 극도로 어려웠다. 중요하고 진보된 광범위한 연구와 시험이 불가피했다. 실제로 2년이라는 시간과 23개의 설계도들이 1937년 3월 후반에 최종설계도가 완성될때까지 소모되었다. 50종 이상의 시험함 모형을 이용해 가장 효과적인 선형을 찾기 위해 모형 수조에서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불행히도, 야마토와 무사시의 건함에 관련한 귀중한 자료와 정보 대부분이 1945년 여름 일본의 항복으로 인한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재로 변해버렸다. 이러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은 말할 것도 없이 통탄할 일이였다. 처음부터 함의 설계과정에 참가했던 과학자로서 내 기억이 아직 생생할때 건함의 기록을 남겨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난 느꼈다. 내 프로젝트를 전심전력으로 지원하고 격려해주신 분들 덕에 190년 1월부터 9월까지 일본의 과학잡지 시젠에 긴 기고문을 썼다. 이 기고문들은 1952년 가을에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기고문은 책을 요약한 것 이다.


18인치 포들


전함 야마토의 특별한 점은 그녀의 18인치 포들이다. 그전까지 전함에 달린 가장 거대한 현대식 함포는 16인치였다. 그러나 단 2인치라는 구경 차이는 16인치 포를 장착한 함선들과 18인치 포를 장착한 함선들의 크기, 무게, 기술적 여러움이라는 것의 차이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한다. 16인치 포탄의 무게는 약 2,200파운드였으나 18인치는 3,200파운드로 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18인치 3연장 포탑의 중량은 2,774톤으로 대형구축함만큼 무겁다. 기술적으로, 18인치 포는 수많은 어려움을 만들어냈으며 처음엔 이중 몇몇은 넘을 수 없는 장애물처럼 보였다.


산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일본이 미국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했다. 일본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다고 해군 전략가들이 믿은 것은 각각의 함선들을 굉장히 강력하게 만들어 몇년내로 강력한 공업력을 가진 미국이 1 대 1로는 맞붙길 꺼리게 하는 것이였다. 이것이 일본이 새로운 전함들에 18인치 포를 올린 근본적 이유 중 하나였다.


일본이 중요하게 고려한 다른 사항은 미 해군이 가진 이것과 맞상대할 함선들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 가능한지 여부였다. 만약 일본이 이와 같은 함정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녀는 아마도 굉장히 바람직한 이점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해군 전략가들은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미 해군이 2대양 함대를 준비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였다. 우리의 연구에 따르면, 우린 파나마 운하를 통과 가능한 가장 거대한 함선은 배수량 63,000톤에 최고속도는 약 23노트거나 이보다 더 느릴 것이며, 10문의 16인치 함포를 탑재할 것이라 추정했다.


원 계획


거대한 함선에는 두가지 근본적인 요구사항이 당연히 뒤따랐다. 8문의 16인치 포를 탑재한 무츠와 비교해서, 야마토의 18인치 포 9문의 무게는 아래 표에 잘 묘사되어 있다:



야마토
무츠


(Y)

(M)

(Y)/(M)

포술 장비 무게(톤)

11,802

6,600

2.0

장갑
23,500
10,400
2.3
배수량
68,200
37,000
1.85


1934년 10월, 해군 함정본부는 처음으로 18인치 포를 탑재하는 새로운 전함의 건함을 연구해달라는 군령부의 요청을 받았다. 처음에 군령부가 요구한 속도는 약 30노트였다. 이것은 새로운 미군 전함의 속도가 24, 25노트라는 추정에 의한 계산이였다. 


아직 야마토라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전함의 첫 청사진은 위의 두가지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면서 1935년 3월에 그려졌다. 이 계획은 실제 야마토보다 더 컸다. 길이 294미터, 폭 41.2미터, 배수량 69,500톤에 20만마력의 터바인 엔진을 장착해 최고 속도 31노트를 기록했다. 이 전함이 일본의 전략가들의 눈에는 너무 컸기에 그들은 새로운 전함에 요구하는 속도를 27노트로 줄였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전투함의 속도를 최우선시한 일본군의 전통에는 어려운 일이였다.


그 뒤 또 다른 청사진들이 계속해서 그려져나왔다. 주 엔진을 제외하고는 최종 설계본에 모든 치수가 가까운 청사진은 1936년 7월에 그려졌다. 이 준-최종본은 총 75,000마력의 터바인 엔진을 장착해 이들은 두개의 프로펠러에 연결되었으며, 총 6만마력의 디젤 엔진이 다른 프로펠러 두개에 연결되었다. 두번째 청사진 뒤로 디젤엔진을 주 기관으로 설치하는 것은 모든 청사진에서 일관된 계획이였다. 그때 일본 해군은 강력한 만마력 이상의 힘을 낼수 있는 2행정 복동식 디젤 엔진을 개발한 상태였다. 이것들은 잠수함 모함 타이기, 테수루기자치, 타카사키의 주 엔진으로 장착되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야마토의 주 엔진으로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디젤 엔진은 같은 출력을 내는 터바인 엔진보다 살짝 무거웠으나 연비가 월등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였다. 청사진중 하나에 기재된 터바인과 디젤 엔진의 비교 데이터는 다음과 같다:

축마력

엔진 무게(톤)

제곱피트당 축마력

18노트로 8천마일 항해시 필요한 연료량(톤)
터바인
디젤
115,000

0

4,008
76.5
8,400

45,000

70,000
4,253

70.0

5,700


최종 계획


1936년 7월 준-최종 계획이 완성된 뒤 설계자들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고, 준-최종본 청사진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앞서 언급한 잠수함 모함들에 장착된 고출력 디젤 엔진에서 근본적인 결함이 발견되었다. 야마토의 엔진실은 200밀리 장갑판으로 덮이기에 설치된 엔진에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엔진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 디젤 엔진의 근본적인 문제가 발견되었기에 새로운 전함에 디젤 엔진을 장착한다는 원 계획은 설계자들이 폐기해야만 했고, 추진기관으로 15만 축마력을 내는 터바인 엔진을 사용해야만 했다. 1937년 3월, 최종 설계도가 그려졌다.


주요 수치들은 아래 표와 같다:

수직부 길이

244.0m

전체 길이

263.0m
최대 선폭

38.9m

최소 흘수(만재시)

10.86m

배수량


(시험시)


(만재시)



69,100톤(취역시)


72,809톤(취역시)

만재 중량

6,300톤

항속거리

16노트로 7,200 노티컬 마일

축마력

150,000 마력

엔진

터바인 엔진 4기

증기압 & 온도

제곱센티당 25kg, 섭씨 325도

승조원

약 2,200명(계획)


약 2,500명(실제)


선체 특징


야마토의 선체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것 중 하나는 다른 전함과 비교할 때 배수량대 길이비가 크며, 속도대 길이비는 작다는 것 이다. 나가토의 경우 이 비율은 각각 98.14, 1.001이며 영국의 전함 넬슨의 경우 101, 0.852이나 이 새로운 일본의 전함의 비율은 각각 112.2, 0.94이다. 거기에 더해 그녀의 프리즘 계수는 0.612로 세계의 모든 전투함중 가장 높을 것이다. 이것은 그녀이 거대한 배수량에 비해 넓고, 뚱뚱하며, 흘수가 얕은 전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야마토의 흘수를 최대한 얕게 하는 것은 일본의 해군기지의 항만시설을 고려할때 최우선 고려사항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흘수는 만재시 10.8미터(35피트+)였으며, 이러한 전함이 사용해야 할 드라이독의 진입 수로와 우리 해군 기지 중 일부 지역을 준설해야만 하는 깊이였다. 


선체 항력을 줄이며 추진 효율을 높이는 것은 설계자들이 해결해야 할 다음 과제였다. 다양한 선체 모형으로 수행된 시험들은 도쿄에 위치한 해군 기술개발국내의 모형 수조를 이용해 수행되었다. 이 수조는 이 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것으로, 길이 245.5미터, 폭 12.5미터, 깊이 6.5미터였다.


이러한 철저하며 광범위한 시험을 통해 소수의 해군 설계자만이 계획해본 거대한 구근형 함수를 채택하기로 결정지었다. 달성해낸 결과는 특별했다. 이 함수를 사용함으로서 선체 항력을 27노트에서 8.2%나 줄일 수 있었다. 이 수치는 오스카 파크스 씨가 추정한 일반적인 구근형 함수를 통해 합리적으로 도출해낸 5~6%를 뛰어넘는 것이였다.


빌지 용골(https://www.marinesite.info/2014/10/understand-bilge-keel-and-its-purpose.html)


샤프트 브라켓(https://www.cjrprop.com/products/shaft-brackets/)


샤프트 브라켓과 빌지 용골의 설치를 개선함으로서 추가적으로 선체 저항을 줄일 수 있었다. 유효 마력으로 이를 표현하자면 전자는 1,900 마력, 후자는 475마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구근형 함수로 절약되는 마력까지 포함하자면 총 7,910 EHP, 혹은 15,820 축마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시험항해에서 전속력으로 항해할 때 153,553 축마력을 내는 이 69,500톤짜리 함정은 27.46노트를 달성했다. 그 당시의 유효마력은 76,700 마력으로 계산되었으며, 추진효율은 50%를 달성했다. 표준 속도인 18노트로 항해할 당시의 추진효율은 58.7%였다. 이러한 효율성은 일본 해군의 다른 선박에서는 거의 달성이 불가능했다.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함 중앙부의 외판에 랩 조인트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는 것 이다. 맞대기 접합점은 선체 표면을 더 매끄럽게 해 외판의 마찰저항을 줄이기 위해 오랜 기간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러나 이스즈급 경순양함과 후부키급 구축함들의 하판 외부의 맞대기 접합판에서 심각한 결함이 발견되었다. 이로 인해 야마토급의 외판에 맞대기 접합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가 생겼다. 한편, 선수부와 선미부에선 수압을 크게 받아 중단부에 비해 마찰저항이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발견에 기초해 맞대기 접합판은 야마토의 선수와 선미부에서만 사용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랩 조인트 판으로 덮혔다. 이 방법은 함이 완성되자 매우 효과적이였음이 증명되었다.


선체 구조


선체 구조에서도 요구되는 강도와 그와 동시에 무게를 줄이기 위해 몇몇 새로운 방법들이 적용되었다. 여기 일부 예시가 있다:


먼저 장갑의 일부가 선체 구조의 일부로서 시공되었다. 측면 하부 장갑은 세로 부재로서도 역할을 하도록 시공되었다. 이것은 일본 해군의 설계자를 대표하는 히라가 박사가 이를 경순 후루타카에 처음으로 적용함에 따라 당시 전세계 조선계를 놀라게 한 독특한 방법으로서, 일본 해군이 중(中)장갑판을 시공하는데 있어 사용한 특이한 방법이였다.


두번째로 전기 용접이 광범위하게, 그러나 수직부재는 제외하고서 사용되었다. 일본 해군이 이러한 용접 방식을 선체를 시공하는데 있어 사용하기 시작한 초기 단계였다. 1932년 초, 이러한 용접 방식은 기뢰부설함 야에마야를 건조하는데 있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1934년 3월 완공된 만톤급 잠수함모함 타이기는 일본 해군에서 처음으로 전체가 전기용접으로 건조된 첫 함정이였다.


그러나 후에 일본해군에서 일어난 두가지 역사적인 해상 재해는 조선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했다. 1934년 3월 12일, 최신형 700톤급 어뢰정 토모즈루가 악천후에 사세보 진수부 밖에서 전복되었다. 그 다음해 9월 26일, 4함대가 악천후를 만나 두척의 대형 구축함이 두동강 났으며 다른 함정들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광범위하며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용접방법도 재검토되어 이런 용접방식은 함의 수직부재처럼 중요한 부위에는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되었다.


사실 야마토의 상부구조물 대부분은 전기용접으로 시공되었다. 야마토에서 용접된 가장 거대한 부위는 높이 11미터에 무게 80톤이였다. 야마토의 용접부 전체의 길이를 합하면 총 463,784미터에 달했으며, 추가로 건함 도중 사용된 용접봉의 수는 7,507,536개에 달했다. 그런데, 사용된 리벳의 수는 총 6,153,030개에 달했다.


세번째로, 수직부재는 듀콜강으로 만들어졌으며, 다른 부재들은 저탄소강으로 만들어졌다. 


네번째로, 중앙 종 벌크헤드는 이중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무겁고, 길이 200밀리에 최대 폭 38.9미터에 달하는 갑판장갑판을 지지해야만 했다. 전기 회로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중앙 링 주 전기회로는 이 중앙 벌크헤드의 수밀구획을 통과했다. 


함수에서 함미까지 이어지는 평갑판형 노천갑판은 전함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을 보여주는 특별한 특징이였다. 이 아이디어는 수직 부재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구조물 무게를 줄이기 위해 연속해서 이어나가는 것이였다. 이 방법은 경순 후루타카에 처음 적용된 이후 일본의 전투함 건조에 적용되었다. 


특별히 거대한 2,490톤짜리 함미부를 지탱해야만 하는 야마토의 함미 주물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이는 주강으로 제작되었으며, 91.3톤짜리였다.


18인치 포의 강력한 후폭풍


그녀의 강력한 포격으로 인해 야마토에 탑재된 수많은 시설들에 강력한 후폭풍이 밀어닥칠 것이라 예상되었다. 두문의 16인치 포가 동시에 발사될때의 후폭풍은 포구에서 15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제곱센티당 3.5kg으로 계산되었고, 동일한 거리에서 야마토의 18인치 포 3문의 후폭풍은 약 제곱센티당 7kg에 달했다. 제곱센티당 0.28kg은 함에 탑재된 보트를 때려부술 수 있으며, 제곱센티당 1.16kg은 사람이 입은 옷을 찢고 일시적으로 기절시킬 수 있다고 믿어졌기에 이는 엄청난 수치였다.


그 말은 그녀의 노천갑판에 올려진 어느 보트라도 그녀의 주포가 사격할때 안전한 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였고, 대공포, 대공기관총을 포함한 대공포들은 주포대의 사격 후폭풍에서 보호해줄 보호물을 가지고 있었다. 반데테 보트, 기타 발사체, 커터는 함미 양쪽에 위치한 보트 격납고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노천갑판에 위치한 환풍기의 수는 최소한으로 줄였으며, 후폭풍이 가장 약한 지점에 설치되었다. 후폭풍으로부터 대공포대를 보호해줄 보호물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들이 주포가 발사되는 와중에도 사격이 가능하도록 해 주었으나, 대공포대의 설치는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그러나 개전 이후 강력한 대공화기의 중요성이 날카롭게, 그리고 후엔 쓰게도 현실화되었다. 이 제한은 사라졌으며, 수많은 기관총들이 노천갑판에 후폭풍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어떠한 보호물도 없는 상태로 설치되었다.


기관 배치


야마토의 15만 마력짜리 추진기관은 제곱센티당 25kg, 325도 씨 증기를 사용했으나 이것만이 특별한 점이 아니였으며, 4열로 배치된 점이 눈에 띄었다. 4줄로 배치된 12개의 12,500마력 보일러는 각 줄마다 3개씩 설치되었으며, 각각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줄에 배치된 이 보일러들은 4줄로 배치된 4개의 터바인 엔진 중 하나에 연결되었다. 피해통제와 장갑 방호의 관점에서 자연스럽게도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배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함폭이 넓은 전함만이 가능했으며, 야마토급은 당연히 이것에 속했다. 어떻게 야마토가 각 엔진실 층에서 평방미터당 축마력을 올렸는지는 다음 표에 나와 있다:



축마력

Engine Room Floor Ae (제곱미터)

축마력/Ae

나가토
82,500
516

158

야마토

150,000640

238


장갑 방호


야마토는 현재까지 건조된 전투함 중 가장 중장갑을 둘렀다. 그녀의 바이탈 파트는 측면 410mm 장갑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빅커스-경화장갑판은 2만미터 이상의 거리에서 18인치 포탄을 막을 능력을 주었다. 그녀의 200mm, MNC 갑판장갑은 3만미터 이내에서 발사된 18인치 포탄의 방호가 가능했다. 200mm 갑판장갑은 오직 고도 3,400미터 이상에서 투하한 1톤짜리 철갑폭탄으로만 관통이 가능했다. 장갑으로 보호되는 바이탈 파트를 제하고서도 최상부 갑판의 구조 대부분은 35~50mm CNC 강으로 보호되었으며, 이는 급강하폭격기가 투하하는 250kg 폭탄을 막아내는데 충분했다. 


야마토의 설계단계에서 중장갑판으로 보호되는 바이탈 파트의 부분을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전함과 비교하면: 야마토의 수선부 바이탈 파트의 길이 비율은 53.5%로 넬슨은 54.7%, 나가토는 63.15%다. 그러나 그녀의 낮은 비율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은 이후의 야마토의 안정성은 다른 일본군 주력함보다 더 낫도록 설계되었다.


바이탈파트 주위의 두꺼운 장갑판만이 야마토의 방호능력은 아니였다. 그녀의 조타엔진실(야마토는 주, 부 두가지 조타장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조타 능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였다)은 다른 장갑부만큼 두꺼운 장갑에 보호받았다. 또 다른 점은 야마토의 탄약고 바닥부는 50~80mm 장갑판으로 보호받았다. 이 장갑판들은 탄약고 바닥에서 뻗어나와 수밀구획부의 이중 선저외판까지 이어졌다. 이 아이디어는 함저부에서 폭발한 적의 어뢰나 기뢰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였다.


또 다른 부분은 그녀의 연돌부를 보호하기 위해 기존의 코밍 장갑 대신 시공된 천공형 장갑판이였다. 조심스러운 테스트 후, 직경 180mm의 천공이 있는 380mm 장갑판(구멍부는 장갑판 전체에서 55% 미만)이 채택되었다. 또한 연돌의 경사부는 50mm 장갑판으로 보호되어 폭탄이 12개의 보일러에서 나오는 연기가 나오는 구멍에 설치된 380mm 천공장갑에 도달하기 전에 폭파시켰다. 이 새로운 연돌 보호법은 중량을 크게 줄였다.


야마토의 중량에서 방호를 위해 사용된 중량은 총 톤수에 비하면 높았다. 야마토가 건조되기 전 가장 거대했던 나가토 비율은 30.7%였으며, 야마토는 33.1%였다.


장갑판


해군 기술자들이 10년간 진지하게 연구하였으며 노력을 쏟아부어 완성한 야마토의 장갑판과 관련한 몇가지 중요 요소가 밝혀져야만 한다. 바벳 전방과 측면 장갑은 무게 1,460kg, 초당 500m/s이라는 끔찍한 운동에너지를 가진 탄을 막아내기 위해 각각 560mm,, 410mm 장갑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도로 단단한 표면은 이런 장갑판에 있어 필수 요소였으나, 일반적인 경화 방법은 비싸며, 이러한 두꺼운 장갑판에는 원하는 결과가 나오질 않았다. 따라서 일반적인 경화법 대신, 이러한 두꺼운 장갑판의 표면을 경화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적용되었다. 새로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였다: 표면에서 두께 140mm지점까지 경화가 가능했을 뿐 아니라 생산비도 매우 저렴했다. 


이론적으로, 장갑판의 포탄에 대한 저항력은 일정하지 않다. 이는 최소한 날에 서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거대한 장갑판 조각은 강력한 저항력을 가진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해군은 야마토급 전함에 필요한 대형 장갑판 제조시설을 확장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완전히 무시했다. 기록에 따르면 천만달러 가량이 철판 제조 시설을 확장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 시설에서 제작된 측면장갑의 수치는 다음과 같다: 5.9m, 3.6m, 21.2 제곱미터, 두께 410mm, 무게 68.5톤.


특히 410mm 짜리 측면장갑의 아랫쪽에 가해지는 엄청난 탄 충격을 견뎌내기 위한 장갑층을 만드는 방법도 큰 문제였다. 야마토의 측면장갑은 하부 가장자리에 명충탄의 충격을 받았을때 10도의 각을 주고 설치된 쐐기가 움직이도록 설계되었으나, 취역후에 이것조차 부족했단 사실이 드러났다. 전쟁 도중 그녀는 측면장갑에 어뢰를 맞았으며, 어뢰의 파공은 약 1미터였다.


장갑 보호와 관련된 또 다른 사항은 갑판장갑 하부 700mm로 이어진 9mm 듀콜 강판이였다. 이들의 목적은 적의 폭탄이나 포탄이 갑판장갑에 직격했을때 장갑 볼트나 리벳 머리 부분같은 파편이 튀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였다.


수밀구획


수밀 구획의 수를 늘림으로서 부력을 유지하는데도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이 노력의 결과는 다음 표로 나타난다(수밀구획의 수):



갑판장갑 하부

갑판장갑 상부


야마시로

574

163
737
나가토

865

224
1,089
야마토

1,065

82

1,147


다른 함정에 비해 야마토의 갑판장갑 상부 수밀 구획이 적었던 이유는 야마토의 갑판장갑이 수선보다 비교적 높았기 때문이다. 


선회력


야마토의 선회력은 끝내줬다. 최대 타각 35도로 26노트의 속도로 선회했을때의 전술 반경, 전진, 최대 경사각은 각각 640m, 589m, 9도였다. 이 점은 다른 전함과 비교해 우월한 것으로 분류되었다. 그녀는 선회시 상대적으로 적은 경사각을 만들었으며, 이는 폭탄과 어뢰의 회피, 안정성, 화력관제라는 점에서 유리했는데, 이는 그녀의 시운전 당시 2.6m라는 낮은 그녀의 GM(경심[1] 높이) 덕분이였다. 이점은 한때 외국 비평가로부터 과하다는 평을 받았으나 사실이 아니다. 그녀의 파도 복원 시간은 17.5초로 조선업계에서는 자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수치였다. 


이 기고문의 다른 부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야마토는 두개의 방향타, 주 방향타와 보조 방향타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일반적인 대형 전투함의 쌍 방향타 시스템을 대체하는 것 이였다. 원래 계획은 함수와 함미에 각각 한개의 방향타를 탑재하는 것 으로, 2차대전 초기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가 타에 손상을 입어 후에 기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점을 감안한 것이였다. 그러나 후에 계획은 주 방향타 15미터 전방에 보조 방향타를 설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야마토의 시험항해에서 이 보조 방향타의 예상치 못한 점이 발견되었는데, 설계자들에겐 실망스러운 요소였다. 일단 야마토가 선회를 시작하면 그 선회력이 너무 컸기에 보조 방향타로는 항로를 유지하도록 선회력을 충분히 줄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의 안정성과 균형


일본의 다른 전함과 비교해 야마토는 손상된 상황에서 잘 살아남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결국 침몰하고야 만 야마토와 무사시의 최후의 순간으로 입증되었다.


야마토의 함수부 건현은 10미터였으며 함미부에선 6.4미터였다. 이 점은 각각 7.9미터와 4.8미터였던 나가토의 것에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였다. 이에 따라 그녀의 예비부력은 57,450톤에 달해 나가토의 29,292톤, 후소의 21,300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또한 야마토는 손상된 상황에서 꽤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다. 그녀의 방호부위를 제외한 함수부와 함미부가 모두 침수되어도 그녀는 20도로 기울때까지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다고 판단되었다.


또한 그녀의 균형 능력은 그녀의 전방 건현이 4.5미터로 줄어들고, 전방부가 완전히 파괴되어 침수된 상황에서도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되었다. 1944년 가을 쇼 작전에서의 무사시의 전투보고서에 따르면 그녀의 전방부는 그녀가 결국 침몰하기 전에도 해수면과 높이가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이는 그녀의 전방 탄약고 인근의 수밀구획과 측면 장갑 방호부위가 모두 침수되었기 때문이다.


역침수 및 펌프 시스템


야마토의 역침수와 펌프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도록 설계되었다:(1) 첫 어뢰 명중으로 인한 기움과 안정성은 피해통제시스템이 작동된 이후 5분 이내로 기울기 4도 이내, 함수부와 함미부의 흘수 차 2.3미터 이내로 복구가 가능할 것. (2) 두번째 어뢰 명중으로 인한 기울기와 안정성은 20분 이내로 상단에 명시된 기준을 만족하며 복구가 통제가 가능해야 할것. 


반대측의 피해 통제 탱크를 침수시킴으로서, 야마토는 최대 9.8도, 연료를 반대편 탱크로 이동시킴으로서 추가로 4.5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를 모두 합하면 이 시스템은 야마토가 18.3도로 기울어도 복구가 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기타 특징


일본 전함의 전통적 특징이였던 아이들이 세운 못생긴 블록처럼 생긴 마스트와는 다르게 야마토의 전방 타워 마스트는 훨씬 발전되었으며, 유선형이였다. 이것의 전방과 측면 면적은 각각 159, 310 제곱미터로 나가토의 162, 371 제곱미터보다 훨씬 발전되었다. 


이 타워는 두개의 동심 원통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 꼭대기에는 3중으로 장착된 15미터짜리 거리측정기(이중 하나는 스테레오-인버토 형)와 사격통제장치가 장착되어 있었다. 적기의 기총 소사로부터 함선의 신경을 보호하기 위한 예방책도 취해졌다. 직경 1.5미터짜리 내부 원통은 20mm DS 강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내부에는 통신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내부와 외부 원통 사이의 공간은 통로와 참모 브리핑실, 기타등등으로 사용되었다. 


거주 시설에서 야마토는 놀랄만한 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일본 전투함 중 처음으로 에어컨이 달렸다. 이러한 편안함이 모든 거주공간에 제공되지는 않았으나, 야마토는 일본 해군내에서 가장 편안한 배로 수병들에게 호평받았다.


꼼꼼한 건조 준비


야마토급 전함의 건조가 계획되었을때, 일본에는 이처럼 거대한 함정을 시설의 확장없이 건조가 가능한 조선소가 없었다. 일본 해군은 야마토급 전함 4척을 차례로 건조할 계획이였기에 건조를 맡도록 선택된 조선소에선 특별한 준비가 필요했다. 이러한 준비의 일부에는 드라이독을 확장하고, 거대하고 무거운 18인치 포탑을 운송할 특별한 이동수단을  만들고, 보안상의 이유로 사이잘삼 밧줄 커튼으로 이런 거대한 함정을 가리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야마토가 실제로 건조된 구레 해군 공창의 건조 드라이독의 깊이는 야마토가 도크 내에서 뜰 수 있도록 기존보다 약 1미터 더 깊어졌다. 도크에 걸쳐진 겐트리 크레인의 수송능력도 무거운 장갑판을 들 수 있도록 100톤으로 증가되었다. 여기에 더해 도크의 맨 끝에서 4분의 1 지점까지 지붕을 덮어 근처의 높은 언덕에서 보이는 것을 방지했다.


요코스카 구획에는 이정도 크기의 전함을 건조하기 위해 대형 드라이독이 들어섰고, 후에 시나노라 이름붙여지고 항모로 개장된 야마토급 3번함이 이곳에서 건조되었다.


조선대(https://www.sciencedirect.com/topics/engineering/slipway)


미스비시 중공업의 나가사키 공창은 약간의 시설 확장으로 야마토급 전함을 건조 가능한 또다른 유일한 조선소였다. 구레의 드라이독과는 다르게 조선대가 이 건조를 위해 사용되었다. 기술적으로, 자중 3만톤을 넘어가는 함정의 진수는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야기했으며, 세부 사항은 이 기고문의 다른곳에서 언급할 것이다. 조선대만 강화된 것이 아닌, 작업장과 부두 또한 확장되고 강화되었다. 작업장이 확장된 전체 규모는 거의 24만 제곱미터에 달했다. 350톤급과 150톤급 부유 크레인도 만들어져 조선소가 무거운 장갑판과 포를 장착할 수 있도록 설치되었다. 일본의 주요 해군기지 셋 중 하나인 사세보에서도 야마토급 전함을 수용 가능한 드라이독이 만들어졌다.


무사시의 보안을 지키기 위한 방법중 일부는 흥미롭다. 무사시가 건조되던 조선대는 사이잘삼 밧줄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밧줄의 총 길이는 2,710킬로미터에 달했으며, 그 무게는 408톤에 달했다. 이 사이잘삼 밧줄의 엄청난 수요로 인해 시장에서 이 물건이 일시적으로 부족해졌으며, 이에 어부들이 불만을 토했다.


여기에 추가할 한가지 사항은 구레에서 무사시가 건조되는 나가사키, 혹은 3번함이 건조되는 요코스카로 18인치 포를 수송할 수송선의 건조였다. 이 18인치 포들과 포탑들은 구레 해군 공창에서 만들어졌으며, 이들을 수송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건조된 수송선에 의해 수송되었다.


무사시의 진수


 무사시의 진수 중량은 35,737톤으로 역대 2위였는데, 1위는 퀸 메리의 37,287톤이였기에 더 자세히 설명할 가치가 있는데, 용골의 연성을 30/1000으로 하여 회동압력을 최소화 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이는 그녀의 회동 압력을 원래 계산했을땐 8,300톤이였으나, 이 과정을 통해 7,870톤까지 줄이는데 성공했다(퀸메리의 경우 8,457톤이였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항은 전세계 조선업에서 사용한 것중 가장 거대한 폭 13피트짜리 조선대를 무사시의 진수를 위해 사용했다는 점 이다. 이러한 거대한 조선대를 사용함으로서, 조선대에 가해지는 평균 압력을 평팡피트당 2톤 미만으로 줄였다. 기술적 관점에서 이런 거대한 조선대는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녀의 진수 중량을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한 추가 조치가 이루어졌다. 충분한 선체 강도를 확보한다는 관점에서, 무사시의 선체는 진수 전까지 노천 갑판까지 완성되어야만 했다. 이 경우엔, 그녀의 진수 중랑이 과도해질 것이 우려되었다. 따라서 그녀가 진수된 이후 갑판장갑이 설치될 예정이였다. 그러나 이 것은 갑판장갑 상부의 시공을 마친 이후 갑판장갑을 설치해야만 했기에 극도로 어려웠다. 갑판장갑이 설치될 자리에 임시로 벌크헤드를 설치하는 것은 필수적이였다. 그녀가 진수된 이후, 갑판장갑판은 이 벌크헤드를 대체했다. 이 모든것은 극도로 어려운 작업 끝에서야만 달성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뤄진 이 전함들에 대한 은폐 정책은 무사시의 역사적인 진수식을 조용히 수행하도록 했다. 진수가 이뤄지기 하루 전 오후, 무사시가 건조되던 조선대의 모든 출입구는 외부에서의 어떠한 통지나 연락 없이 봉쇄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진수 시각에 대한 분부를 들은 노동자들은 밤새도록 일했고, 무사시는 다음날 이른 아침에 이러한 행사에는 반드시 이뤄져야만 하는 행사는 거의 없이 진수가 이루어졌다. 나가사키 시에서도, 특히 조선소의 반대편에선 중무장한 경비병들이 사람들이 진수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배치되었다. 


야마토와 무사시의 격침은 막을 수 있었는가?


야마토와 무사시가 얼마나 강력하게 건조되었는지에 대해 묘사한 위의 설명을 본 후라면, 합리적인 질문 하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녀들은 항공어뢰와 폭탄에 의해서만 격침되었는가? 그녀들의 격침은 피할 수 없는 일이였는가?"


1944년 가을 레이테만에서의 무사시의 전투 보고서에 묘사된 바에 의하면, 그녀는 그날 1253시에 미군 함재기들이 두번째로 공습을 가해와 공격을 마칠때까지 총 7발의 폭탄, 9발의 어뢰, 15발 이상의 지근탄을 얻어맞았다. 이러한 피격의 결과로 그녀의 함수부는 3등갑판까지 물이 들어찼으며, 좌현으로 심각하게 기울었다. 그녀의 속도는 22노트까지 줄어든 상태였다. 그러나 이것은 치명타가 아니였다. 사실 그녀의 장갑으로 보호되는 바이탈 파트는 여전히 멀쩡했으며, 피해통제시스템을 통해 그녀의 기울기 또한 거의 원상복구 되었다. 


미군의 3번째 공습이 끝난 뒤, 폭탄 10발이 직격했으며 어뢰 11발을 피격당하면서 무사시는 함수부의 안정성을 상실했고, 그로 인해 기동성을 거의 상실했다. 그녀의 함수가 너무 심각하게 침수당했기에 속도를 6노트로 줄여야만 했다. 아직 그녀는 기울기를 4도로 복구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미군 함재기들의 3번째 공습이 끝나고도 4시간 반이 지났을때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그녀의 기울기가 좌현측으로 급속도로 올라갔으며, 거대한 전함은 마침내 격침되었다.


그녀의 격침에 대한 직접적 원인은 그녀의 함수부가 침수되었으며, 함수갑판에 물이 올라왔다는 것에 기인해야만 한다. 그 결과 그녀의 효율적인 수선상 면적이 너무 줄어들어 그녀는 가능한 한 최악의 상태에 들었다. 그녀의 기울기가 손상된 상태에서의 안정적인 기울기인 약 30도를 넘어섰을때, 그녀는 결국 침몰했다. 이 기고문의 다른 곳에서 이미 언급했던 바와 같이, 함수부 전체가 물에 잠겨 흘수가 5.5미터 증가한 상태에 여전히 건현은 어느정도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녀의 함수 트림이 올라갈 것이라 예상했다. 사실 그녀의 함수부 흘수가 8미터까지 올라간 상태이며, 함수부에 물이 찰랑거린다는 것은 그녀의 탄약고 인근과 양 측면 장갑방호부, 전방 비방호구획의 수밀구획이 모두 피해를 입어 침수되었단 사실을 보여준다. 


무사시를 잃은 또다른 이유는 침수구획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해서 늘어나서이다. 이는 선체의 주요 구획 이외의 부위는 중량을 줄이기 위해 충분한 강도를 확보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함수, 함미, 하부갑판의 수평 벌크헤드는 충분히 튼튼하지 않았다. 


야마토의 자료는 주해하기에 충분치 않다. 함의 부장 노무라 지로 대령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녀는 압도적으로 많은, 천기 이상의 미 항모 함재기들에 의해 공격당했다. 그 결과 그녀는 최소 7발의 대형 폭탄, 수많은 소형 폭탄, 12발의 항공어뢰에 피격당했다. 이 항공어뢰들은 야마토의 좌현측에 집중되었고, 이는 그녀가 빠르게 침몰하는 결과에 기여했을 수 있다. 그녀는 마지막 항공기들이 공격을 마친 뒤 두시간 뒤에 침몰했다.


미 항모 함재기들에 의한 야마토와 무사시의 격침은 유난히 취약하단 점을 증명할 수 없다. 그들은 설계된 대로 강력한 저항력의 한계까지 보여준 뒤에야 격침되었다. 틀림없이 그들은 약간의 결점이 있음에도 이젠 사라진 일본 해군이 건조한 가장 튼튼한 전투함임이 증명되었다.


1. 물체의 가상적인 회전중심


https://www.usni.org/magazines/proceedings/1953/october/design-and-construction-yamato-and-musas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