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쪽 밀덕들에겐 이 유도탄이 "에로폭탄" 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이유는 실험 도중 통제불능이 되어 여탕으로 낙하한 사건이 일어나 여종업원 1명과 이용객 1명이 사망하고 당시 3층 800평의 목조 건물이였던 여관을 전소시킨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968년, 종전 전의 사건사고들을 조사한 기사에서는 해당 여관은 일본 아타미현에 있는 타마노이 여관이라고 하는데

폭탄 낙하사고 이후에 4만엔(현재기준 1억5천만엔)의 위로금과 특별 자재 배급권을 보상받았으나

전쟁 말기의 초인플레이션으로 돈은 휴지가 되고 겨우 옷장 하나 만들 정도의 자재 배급권으로는 여관 재건은 꿈도 못 꿨기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여관은 폐허 상태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후 어찌어찌 다시 지어서 영업했지만 버블을 못이기고 망해서 현재는 공터 상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