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인공은 통신연결기 J-BAAI 카미카제 호

미츠비시 중공업에서 생산한 97식 사령부 정찰기를 통신연결기로써 운용한 기체인데

여기서 97식 사령부 정찰기는 나름 세계 최초의 전략 정찰기이다


때는 1937년 5월 12일 예정된 조지 6세의 대관식 봉축을 위해 아시아 - 유럽 연락 비행을 계획하고

아사히 신문사에서 일본 제국군 육군한테 의뢰하여 위 97식 사령부 정찰기를 인수 받음

이후 약 50만여통의 앙케이트를 통해 나루히코 왕이 이 기체의 이름을 카미카제 호로 결정


1937년 4월 6일, 당시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대비행이 시작됐음

파일럿 이누마 마사아키와 항해사 츠카고시 켄지가 조종하는 카미카제 호는 타치카와 비행장에서 오후 2시 12분 4초에 이륙하여

타이베이, 하노이, 비엔티안, 콜카타, 카라치, 바스라, 바그다드, 아테네, 로마, 파리를 거쳐서 현지 시각 4월 9일 오후에 런던의 크로이던 공항에 도착했음

이륙 후 평균 속도 300km/h, 총 94시간 17분 56초 동안 15,357km 를 비행한 카미카제 호는

4월 12일 대서양 항로를 통해 도착한 야스히토 덴노 부부를 맞이하며 유럽 각지를 친선 방문했음

이 때 프랑스 르 브루제 공항에 방문했을 때 파일럿과 항해사는 일본인 최초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 받음


이후 5월 12일 조지 6세 대관식의 다큐멘터리 영화 촬영을 끝낸 카미카제 호는 5월 14일 런던에서 이륙, 5월 21일 하네다 공항에 착륙했음

이는 동력기에 의한 세계 최초의 장거리 비행으로 당시 세계 신기록으로 파일럿과 항해사는 일본의 찰스 린드버그로 칭송 받음


하지만 이후 비하인트 스토리는 영 좋지 않은데

파일럿 이누마 마사아키는 아사히 신문사 항공부에서 육군 항공 본부에 촉탁되어 사이공 - 프놈펜 편을 운용하는 연락기 파일럿이 됐는데

1941년 12월 11일, 조국이 태평양 전쟁을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아서 프놈펜 공항의 활주로에 멍하니 서있다가

이착륙하는 아군 군용기의 프로펠러에 빨려들어가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음


항해사 츠카고시 켄지는 타치카와 비행기에서 개발한 신형 정찰기 Ki-77 의 테스트 파일럿이 되어

1943년 7월 7일, 싱가포르에 크림 반도로 향하는 도중 인도향 부근에서 실종됐음

이후 1945년 5월 4일, 아사히 신문사로부터 사망이 확인됨


카미카제 호는 이후 나라현 이코마시에 카미카제 기념관이 세워서 전시, 보관되고 있었지만 태평양 전쟁 도중에 폭격으로 인하여 파괴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