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볶음밥의 날 말고도 오늘 일어난 꽤 유명한 사건이 있으니, 바로 영국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HMS 바함(실제 발음은 바럼에 가까움.)이 침몰한 것임.
사실 바함은 1939년 12월, 거의 2대전이 시작되자마자 유보트의 습격을 당했었는데, 다행히 당시 U-30이 발사한 어뢰 한 발은 바함의 승조원 4명을 희생시켰을 뿐 치명상을 주는 것에는 실패했고 바함은 자력항행으로 돌아올 수 있었음. 물론 이를 수리하느라 1940년 6월까지 반년 동안 리타이어해야 했지만.
이에 영국 지중해 함대 총사령관이었던 앤드류 커닝햄 제독은 '바함의 승조원들의 목숨을 불확실한 성과를 위해 내버리는 것' 이라고 주저하였으나, 어쨌든 당장 로멜이 알렉산드리아까지 쳐들어올 기세였으므로 해군성의 지시에 따라 바함을 투입하였음. 바함은 4월 21일부터 성공적으로 포격 임무를 수행하지만 5월 27일 독일 공군의 반격에 중상을 입고 8월까지 리타이어해야 했음.
한편 1941년 11월 12일, 7C형 유보트 U-331은 한 가지 특수 임무를 띄고 살라미스에서 출항하였음. '하이'(상어) 라는 코드네임이 붙은 이 작전은 리비아 해안에 7명의 특전팀을 상륙시켜 살룸과 알렉산드리아를 잇는 철도를 폭파하는 것이었음. 17일 밤 U-331은 일단 특전팀을 상륙시키는 것 까지는 성공했으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작전은 특전팀이 영국군에게 사로잡히고 폭탄도 해체되어 완전히 실패했고, U-331은 날이 밝아오는데도 특전팀이 돌아오지 않자 작전이 실패했다 판단하고 현장을 이탈함.
이후 정상 초계 임무로 돌아간 U-331은 일주일 후인 11월 25일, 모든 잠수함 함장들이 꿈꾸던 기회를 마주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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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1월 25일, 전함 퀸 엘리자베스, 바함, 밸리언트 세 자매와 호위 구축함 디코이, 그리핀, 헤이스티, 핫스퍼, 자칼, 저비스, 킴벌리, 키플링, 네이피어, 니잠으로 이루어진 'A 그룹' 은 벵가지로 향하는 이탈리아 선단을 요격하기 위해 투입된 순양함들로 이루어진 'B 그룹'의 원거리 호위로서 함께 서진하고 있었음. 그리고 이 A 그룹이 U-331의 시야에 딱 들어왔던 것. 거기에 A그룹은 U-331에게 발견된 직후 변침하여 U-331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기 시작했음.
서로 함수를 마주보는 상황에서 U-331은 대담하게도 구축함들의 호위망을 정면에서 돌파했고, 사실상 영거리나 다름없는 거리에서 3척의 전함 중 2번째 위치에 있던 바함에게 함수 어뢰 4발을 일제히 발사하였음.
이하는 당시 U-331의 전쟁일지임.
U-331은 구축함 저비스와 그리핀의 사이를 불과 250m 거리를 두고 돌파했음. 그러나 영국군의 진형이 상당히 밀집되어 있던 탓에 전함 세 척 중 선두에 있던 퀸 엘리자베스는 이미 함수 어뢰관의 발사 제한각을 넘어 있었고, U-331은 급하게 변침하여 두 번째에 있던 바함을 조준하였음. 어찌나 급하게 기동했는지 TDC 계기가 자동 갱신되는 속도가 따라오지를 못해서 여전히 발사 제한각을 벗어났다고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U-331은 계기를 오버라이드해 강제로 어뢰를 발사하였음.
U-331이 발사한 어뢰 4발 중 3발이 불과 24초 후 바함의 좌현, 연돌과 Y 포탑 사이에 명중하였음. 거리는 불과 375m로 어뢰의 안전거리를 고려하면 사실상 영거리나 다름없는 사격이었음.
3발의 어뢰에 피격된 바함은 좌현 선체가 문자 그대로 거의 뜯겨나가다피 되어 집중방호구획이 훤히 드러날 수준의 피해를 입었고, 폭발의 충격에 잠시 우현으로 휘청였다가 순식간에 좌현으로 40도까지 기울었음. 침수를 막을 새도 없이 4분 후에는 횡경사가 거의 수직으로 치달아 연돌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직후 바함이 전복됨과 동시에 그 유명한 장면이 벌어졌음.
바함의 저 대폭발의 원인에 대해서는 뚜렷한 결론 없이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편임. 바함의 기관은 저 순간까지도 계속 작동 중이었는데 연돌로 들어온 해수가 보일러와 접촉하며 폭발을 일으켰다거나, 경사에 탄약이 굴러떨어졌다거나, 4인치 부포 탄약고에서 발생한 화재가 옮겨붙었다거나. 분명한 것은 어떠한 원인으로든 바함의 함미 주포 탄약고가 유폭되었다는 것 뿐임.
당연하겠지만 바함의 승조원 대부분이 저 폭발에 희생되었음. 너무 빠르게 기울기가 증가한 탓에 미처 탈출하지 못한 이들도 많았고, 영상에서 보다시피 폭발하는 순간까지도 우현 선체에 남아 있던 인원들도 적지 않았거든. 폭발 이후 구축함 핫스퍼가 접근해 일몰까지 337명의 생존자를 구조했고, 26일 새벽부터 니잠, 저비스, 자칼이 동참해 도합 449명의 생존자를 구조할 수 있었음. 바함의 승조원 1311명 중 862명이 전사하였으나, 저 400여명의 생존자들조차 저 폭발을 목도한 이들 입장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고 함.
영국 해군은 급격한 사기 저하를 막기 위해(영국은 이미 같은 달에 항모 아크 로열을 지중해에서 잃은 참이었음.) 바함의 침몰 소식을 통제하다가 1942년 1월 27일에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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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런 월척을 낚은 U-331은 여기까진 참 좋았는데 그 뒤로 일이 단단히 꼬이기 시작함. 함장 티젠하우젠은 전쟁일지에 급히 변침하느라 함이 급상승했다고 써 놨는데, 그보다는 급하게 한 발에 1.6톤이 넘는 어뢰 4발을 동시에 쏴 버린 것에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큼.
7형 유보트는 워낙 체급이 작다보니 하루하루 주부식과 식수가 줄어드는 것을 감안해 트림을 조절해야 할 만큼 무게 변화에 민감한 함급이었는데, 계기의 처리 속도가 따라오질 못해 수동으로 오버라이드해야 할 정도로 급한 상황에 함수가 순간적으로 6.5톤이나 가벼워지는 무게 변화를 기관장이 제대로 조절할 수 있었을 가능성은 낮았을 것임.
당연히 어뢰 발사 직후 U-331의 함수는 튀어오르듯 솟구쳐 바함의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밸리언트 전방 150 야드 거리에서 수면을 뚫고 올라왔음. 즉, 800톤 남짓한 잠수함이 33,000톤짜리 전함 앞 130~140m 거리에 놓였던 것임. 간신히 상승을 멈춘 U-331은 있는 힘을 다해 다시 긴급잠항했고, 밸리언트로부터 불과 50야드(45m) 거리를 두고 충돌을 회피할 수 있었음.
하마터면 역사상 2번째로 전함한테 충각당한 잠수함이 될 뻔한 위기를 넘겼지만 U-331의 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 혼비백산해서 잠수를 하긴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심도계를 보니 바늘이 80m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있었던 것.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는지 수압계를 확인하자 수압과 심도 측정에 필요한 해수 유압 밸브가 닫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밸브를 열자 심도계의 바늘이 빙그르 돌아가 267m에 가서 멈춤. 일반 7C형 유보트의 설계상 압궤 심도를 한참 넘은 수심이었던 것.
그 사실에 머리가 새하얘진 U-331은 바로 위에 적 구축함들이 있는데도 압축공기를 넣어 탱크를 불고 안전 심도로 올라왔음. 다행히 U-331은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티젠하우젠 함장은 전쟁일지에다 조선사인 노르트제베르케를 찬양하는 말까지 써 놓음.
물론 이때 영국 구축함들도 멘탈이 죄다 나가 있던 상태라 한참 뒤에야 폭뢰를 던지기 시작했으니 별 문제는 없이 현장을 이탈하는데 성공했지만, 이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티젠하우젠은 살라미스로 귀항한 후 잠수함 사령부로부터 전과에 대한 치하와는 별개로 '단 한 명의 실책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며 극딜을 당해야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