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5급 어뢰정은 워썬더 해상전 소련해군의 BR 1.0짜리 예비장비임.


가까스로 내전과 서방 열강들의 개입에서 빠져나온 1920년대 소련 해군은 가상적국으로 상정하던 서방권 열강해군에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함대전을 실질적으로 포기하고 연안에 다가온 적 대형함을 초고속 어뢰정으로 어뢰를 떨궈 공격한 이후 적 대형함이 대응하기 전에 튀는 방식으로 공략하기로 결정내림. 그러나 전통적인 함선 디자인으로는 원하는 초고속을 내기 힘들었고, 이에 비행기가 속도가 빠르니 비행기의 설계를 도입해보는게 어떨까 하고 중앙항공유체역학연구소(TsAGI)와 잘나가던 폭격기 설계기사 안드레이 투폴레프에게 접촉함.



투폴레프 설계국의 첫번째 어뢰정인 Sh-4급 어뢰정. 어뢰정이라 함급이랑 Project 넘버가 구분된게 아닌 Project Sh-4임.


소련해군의 초고속 어뢰정에 대한 투폴레프의 해결책은 간단했는데, 바로 물에 움직이는 비행기를 디자인한 거임. 전체적인 디자인은 비행정에서 본을 떠왔고, 선체 표면은 전통적인 강철이나 목재가 아닌 듀랄루민으로 만들어졌음. 엔진 역시 무거운 해군쪽 기관 대신 폭격기 용으로 수입한 600마력짜리 미국 라이트사제 엔진을 2기 장착했고, 주무장인 450mm 어뢰를 제외한 무장은 최대한 단순화해서 공격해오는 비행기를 쫓아낼 수준의 7.62mm DT 기관총 1정만 달았음. 덕분에 속도는 당시 치고 고속인 45knot(83km/h)까지 올릴 수 있었고, 소련 해군은 이에 만족해서 1928년부터 1932년까지 84척을 주문함.



G-5급 어뢰정은 소련이 독자적으로 만든 두번째 어뢰정이자 첫번째 어뢰정인 Sh-4급 어뢰정의 확장형임.


G-5는 기본적으로 Sh-4의 확대 개량형이었는데, 길이 16.8m, 배수량 10t에 불과해 해상에서의 작전 능력이 안습했던 Sh-4의 덩치를 키워 해상 작전 능력도 높여보고 무장도 강화해보자는 속셈이었음. 최초의 G-5급들인 Series 7형의 경우 길이는 19.1m, 배수량은 15t으로 증가했고, 어뢰 역시 기존의 450mm 어뢰 2발 대신 533mm 2발로 교체할 수 있었음. 대공무장의 경우 Series 7의 경우 Sh-4와 같은 DT기관총 1정이지만 곧이어 나온 Series 8부터는 DT 기관총 2연장으로 증가함. 증가한 배수량에도 불과하고 속도는 52knot(96km/h)까지 올라갔는데 이는 엔진을 AM-34의 해상형 850마력짜리 GAM-34 2기로 바꾼 덕이었음.


소련 해군은 G-5에 만족하고 1933년 Sh-4의 주문을 중단하고 G-5로 갈아타고, 5년동안 84척이 뽑혀나온 Sh-4가 무색하게 1933년부터 1937년까지 5년동안 200척 가까운 수량이 건조됨. 그러나 운용이 지속되면서 문제점이 몇가지 터져나옴. 가장 먼저 지적된 문제점은 듀랄루민으로 만들어진 선체가 바닷물에 의한 부식에 취약해 자주 유지보수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었음. 그러나 소련해군 측에서는 이를 고속 성능을 위한 희생정도로 인식해서 큰 신경을 쓰지 않음. 문제가 된 것은 그 다음의 2가지 지적점인데, 바로 능파성을 비롯한 해양 작전능력이 부족하다는 것과 무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음.


전작 Sh-4에 비해서야 50% 늘은 배수량이지만 겨우 15t에 불과했고, 무장인 7.62mm DT 2정이야 1920년대면 몰라도 전투기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1930년대에는 대공무장으로서 문제가 많았음. 결국 투폴레프는 1938년 새로이 건조되기 시작한 Series 10과 11형부터 함선의 폭을 넓혀 배수량을 16t~20t으로 늘리고 엔진의 출력을 1000마력으로 늘려 문제점을 개선하기로 함. 여기에 추가적으로 더 커진 신형 어뢰정을 개발하기로 하지만, 이건 이번 글에선 중요한 얘기가 아니니 넘어가자. 무장 역시 변경 되었는데, 기존 7.62mm DT가 설치되있던 함교에 12.7mm DShK가 설치되고, 7.62mm DT 1정이 함수에 설치되었음. 그러다가 전쟁 직전인 1941년에 7.62mm DT의 효용성이 다시 한번 의심받아 최종적으로 퇴출되는데, 이게 워썬더 내 G-5급의 무장 상태임.



1940년 레닌그라드에서 순양함 키로프 앞을 지나가는 형식번호 불명의 G-5급 어뢰정


1941년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 시작되자 G-5급 어뢰정은 본래 자신이 상정한 전투환경과 전혀 다른 상황을 맞이하게 됨. 소련 해군은 레닌그라드에서는 독일군과 핀란드군의 기뢰밭 때문에 항구 밖으로 빠져나오질 못하고 그나마 남은 함선만 북극 부근의 무르만스크로 철수했고, 흑해에서는 해군의 양대 모항/건선거가 위치하던 세바스토폴과 니콜라예프가 점령당하는 바람에 대형함들이 손상이라도 당하면 수리하기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자 아예 스탈린의 명령으로 대형함들의 출항이 금지됨. 그나마 상대할 독일 함대라도 남아있으면 좋은데 얘네들은 영국한테 두들겨맞고 마찬가지로 항구에서 안나옴. 결국 G-5급들이 상대해야 할 상대들은 독일 해군의 대형함들이 아닌 E-boat와 같은 고속정, 그리고 도하 작전에 방해를 하는 독일 육군이 되어버림. 이들 상대로 DShK 1정이 빈약해 보이는건 너무나 당연했고, 결국 전쟁이 터진 직후부터 G-5급들은 다시 개량에 들어가게 됨.


가장 먼저 나온 개량형은 DShK를 2정으로 늘리는 방법이었음. 최초의 개량형 Series 11bis에서는 거의 쓸모 없어진 어뢰실 위에 총좌를 설치하였고, 이후의 Series 12와 13에서는 함수에 총좌를 뚫었다. 기존 어뢰정에 대한 개조 역시 진행되었으며, 일부 어뢰정의 경우 계속 개조를 받은 나머지 DShK 3정을 장착하기도 하였다.



Series 11bis의 함미 추가 총좌. 이 경우 어뢰의 운용이 매우 곤란해졌다.


대표적인 Series 12 어뢰정의 모습


항구에서 대기중인 332, 333, 334호. 맨뒤의 332호는 함교의 DshK를 20mm ShVAK으로 교체하였다.



DShK만 3정을 달게 된 어뢰정에 대한 전후 묘사도.


한편 현장에서의 개량은 대함 화력 증가를 위해 추락한 전투기로부터 20mm ShVAK을 장착하거나 지상화력지원을 위해 82mm 8연장 BM-8 로켓발사기를 장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전자가 효용성에 대한 의심과 탄수급의 문제로 현장단계의 개조로 그친데 비해 후자의 경우 1944년에 공장 측에서 직접 어뢰탑재능력을 제거한 후 BM-8-24 24연장 발사기를 달아주는 등 선호받았다.


함교에 ShVAK, 함미에 DShK를 장착한 함번 불명의 G-5급 어뢰정




BM-8-24를 장착한 어뢰정들. 이들은 기본적으로 전방과 후방에 DShK 1정씩을 달고 있었다.



Series 10형, 로켓장착형 G-5, Series 11급이 한데 모인 그림.


비록 이들은 원래 의도하던 대형함에 대한 공격은 거의 시행할 수 없었지만, 독일 고속정단에 대한 랜드리스 수송선단 보호, 도하작전을 펼치는 육군&해군 함정에 접근하는 독일 고속정단 차단 및 지상에 대한 화력지원 등 다양한 임무에 굴려먹힌 붉은 함대의 쏠쏠한 일꾼이었다. 1944년 G-5의 설계를 일신한 신형 고속어뢰정 Project 123bis의 등장과 함께 이들의 양산이 중단되었고, 남아있던 G-5급들 역시 얄타회담을 진행중인 4국 정상들에 대한 대공방어를 마지막으로 2차세계대전에서의 실전을 마무리했다.


전후 G-5급들은 다양한 소련의 위성국과 동맹국으로 팔려갔고, 북한 해군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1949년 5척의 G-5급을 받았다. 그리고 이 중 한척은 유명한 '발찌모르 격침'의 주인공으로 위조된 채 현재 박물관에 전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