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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ㅇㅇ(반고닉)

파블로와 미켈


CRIMINAL


"데려다 주지 못해서 미안하오."


자신을 호위하는 우락부락한 흑표범 수인들조차 어린아이로 보이게 할 만큼 커다란 키와 그에 걸맞는 떡 벌어진 어깨, 매번 만드는 옷마다 로열패밀리들이 열광하는 디자이너의 수트가, 터질것처럼 꿈틀대는 거대한 근육들이 위협적으로 보이는, 그러나 행동과 목소리만큼은 무겁고 정중한 흰사자 수인. 그는 지금 자신과 커플로 디자인 된 수트를 입은 도베르만 수인을 품에 안은 채 그를 데려갈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내가 더 오래 못있어서 미안하죠."

"당신은 항상 상냥하구려."


그의 가슴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지만, 남들보다 꽤 큰 키를 가진 남자다운 근육질 몸매의 도베르만 수인, 미켈은 자신을 안고있느라 살짝 구겨진 파블로의 정장 매무새를 바로 잡아주었다. 파블로는 그런 미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미켈이 살짝 놀란듯 움찔하며 붉어진 얼굴로 파블로를 바라보았다.


"당신 손이 허전하군. 내일 사람을 보내리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보석들을 좀 봐야겠소."

"하하! 보석이 어울릴 손은 아니지 않아요?"


말처럼, 미켈의 손은 험한 과거를 지나온 사람처럼 꽤나 거칠었다. 그러나, 파블로의 커다란 손 위에선 마치 장난감처럼 작고 사랑스러워 보이기 까지 했다. 


"사실 보석이 이 아름다운 손을 가릴까 걱정이라오."


그러며 고개를 숙여 손등에 살며시 입을 맞추는 파블로를 보며, 미켈은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이태리 남자들 특유의 멘트가 낯간지럽지만, 파블로의 진심이 느껴져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이윽고 파블로의 하수인이 차를 몰고 와 뒷문을 연다. 미켈은 파블로의 목덜미에 팔을 감고 안기듯 입을 맞춘 뒤 차에 탔다.


"난폭하게 운전하지 말고, 나의 피앙세를 잘 모시게."

"예."


하수인은 그의 보스에게 짧지만 격식있게 목례를 하고 운전석에 탔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옷을 입은 교양있는 부인들이 파블로의 뒤에 우뚝 서있는 고건물, 스칼라 극장으로 까르르 떠들며 들어간다. 오페라가 곧 시작될 것이다. 차가 떠난 뒤 파블로는 아까와는 다른 무감한 얼굴로 뒤로 단정히 묶인 갈기털을 풀고, 신사적으로 보이기 위해 착용했던 왼쪽 눈의 모노클을 빼 품 속에 넣었다. 그리고 넥타이를 끌러, 셔츠 단추를 두개 푼 뒤 숨을 내쉰다. 살짝 드러난 그의 엄청난 크기의 대흉근이 숨에 맞춰 꿀럭거렸다.


"준비해라."


낮은 파블로의 목소리에 흑표범 수인들이 짧게 목례했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곧 비가 내릴것처럼 공기는 축축해서 무거웠다.





"그럼 미켈님. 내일 모시러 오겠습니다."

"고마워요."


미켈은 하수인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그의 차가 멀어지는걸 보며 숨을 내쉬었다. 미켈의 화려한 정장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가 내린곳은 떼르미니 역 근처의 할렘가 초입구. 미켈은 넥타이를 풀고 바쁘게 복잡한 골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이 거기 샌님."


할렘의 잔챙인가. 미켈은 자신을 불러세우는 한무리의 하이에나 수인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그들이 꽤 세련된 정장을 입고있는걸 보며 혀를 찼다. 미켈은 골목 안으로 내달렸다.


"잡아!"

"돈 주앙의 애인이다! 잡아!"


할렘가의 주민들이 추격전을 벌이는 미켈과 하이에나 수인들을 보며 겁에 질려 움츠러들고, 그들 사이로 내달리는 미켈은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장애물을 넘고 차대며 추격을 방해했다.


"애먹이게 하는군!"


품 속에서 하이에나 수인이 꺼낸건 투검이었다. 미켈은 뒤를 흘깃 보고는 스로잉 나이프가 날아오기 전에 좁은 골목으로 좌회하여 검을 피해냈다. 그리곤 품속에서 재빨리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왜?"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심드렁하면서도 꽤 묵직한 목소리에 미켈이 미간을 찡그렸다.


"왜는 무슨! 지금 보고있죠! 좀 도와줘봐요!"

"나참. 왼쪽의 회색주택 보여?"

"보여요!"

"비상계단으로 2층 으로 올라간다음 복도 반대편 창문으로 뛰어내려."

"젠장, 알겠어요!"


미켈은 비상계단이 있는 회색 건물로 달려가 계단을 올랐다. 좁은 건물 복도를 내달리는데, 하이에나 놈들이 던지는 검에 다행히 찔리지는 않았지만, 양복 군데군데가 찢어져버렸다.


"젠장. 이게 얼마짜린..데!"


 팔을 교차해 얼굴을 감싸고 그대로 유리창 밖으로 뛰어든 미켈은 어딘가 푹신한 곳으로 떨어진 느낌과 함께 코가 썩는듯한 악취에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들었다. 미켈이 떨어진 곳은 쓰레기들로 가득한 암롤트럭의 적재부 위였다. 차량의 백미러에 능글맞게 웃고있는 중년의 늑대수인, 존이 보였다. 하이에나들은 멀어지는 쓰레기 차량위의 미켈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미켈은 그들에게 주먹감자를 날리곤 조수석 문을 열어 들어갔다.


"이런 미친! 좀 제대로된 차 끌고오면 어디가 덧나요?"

"쿠션 빵빵한 매트리스까지 생각해온건데 뭐가 불만이야?"


능글맞게 웃는 존을 조수석에 앉아 몸에 묻어난 악취를 빼기 위해 향수를 뿌리는 미켈이 죽일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서, 뭐 좀 건졌나? 아니면 즐거운 데이트만 했나?"

"즐겁기는. 아직까지 나한테 자기 신분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어요. 오페라는 곧 시작될거에요. 거기서 거래를 할 생각인것 같고요."

"오페라라...오늘 하는 극이면 '시몬 보카네그라'겠군. 자타가 공인하는 주세페 베르디의 걸작이지. 나도 가서 들어보고 싶군."

"젠장! 이 되도않는 남창짓은 언제까지 해야되는건데요!"


미켈이 성질을 내며 넥타이를 풀어 헤쳐 내팽개치려다가, 문득 이 넥타이도 한달 생활비의 몇배는 된다는 사실을 깨닫곤 얌전히 품안에 넣었다. 존은 혀를 끌끌차며 비가 슬슬 내리기 시작하는 거리위로 차를 내몬다.


"날이 거지같군."


미켈은 인상을 찌푸린 채 비가내리는 이태리 거리를 바라본다. 딱 12년전의 이런 날씨의 어느날이 기억났다. 마약에 쩌든 아버지가 총으로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마저 쏘려던 그 날을. 그 흔들리는 총구와 눈동자로 침을 흘리던 추악한 아비의 말로를.


'괜찮니?'


그런 자신을 구제한, 당시 FBI 소속 신참 요원이었던 존. 그의 손에 거둬져 존의 후원을 통해 자란 미켈은 총명한 머리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FBI에 헤드헌팅 되어 존과 이번 미션의 현장수행요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멕시코를 주름잡고, 이젠 유럽에까지 마수를 뻗고 있는 마피아, 돈 주앙패밀리의 마약 유통경로를 파헤치는 일. 그를 위해 미켈은 수컷을 좋아하는 돈 주앙패밀리의 보스, 파블로의 관심을 끄는 어린 애인이 되어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었다.


'사실 애인이 된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미켈이 파블로를 처음만났을 때를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사실 FBI의 목적은 미켈을 조직원으로 잠입시키는 것이었지만, 모종의 일을 계기로 파블로가 미켈에게 구애를 시작하며 이를 보고받은 수뇌부가 작전을 변경한 것이다.


"젠장.."


이태리의 거리가 보이는 차창 유리에, 자신의 모습이 반쯤 투명하게 비쳐 보인다. 꾸물한 날씨에 잠긴 이태리의 거리는 꽤 낭만적이었다. 그 거리를 누군가와 걷는 상상을 하던 미켈은 퍼뜩 놀랐다. 자신을 보던 순간부터 얼굴을 붉히던 그 커다란, 하얀 사자가 생각났던 것이다. 미켈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좋아하는건, 존 아저씨라고.'


미켈은 그렇게 되뇌였다. 그리곤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존. 이번 일이 끝나면 말이죠."


존이 미켈을 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계속 말하라는 제스쳐였다. 


"뭐, 휴가도 같이 나올테니 어디 좋은 섬에 휴양이라도 같이 다녀오는건 어때요?"

"섬? 휴양? 뭐하러 그런델 남자 둘이 가냐?"


미켈은 말문이 막혔다. 존이 저렇게 나올때마다 미켈은 속이 상했다. 자신이 FBI에 들어간 이유, 모두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라고 알고 있고, 그렇게 미켈을 소개했지만, 아니었다. 오로지 미켈은 자신이 구원받은 날, 그날부터 봐 왔던 존의 등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할 말 없게 만드는덴 선수네요."


미켈은 잔뜩 골이난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대답했다. 그러나 왜인지 미켈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이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티를 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존도 어느 때는 미켈을 애인대하듯 다정히 대하곤 했다. 미켈의 응석에 잠자리를 같이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존은 그저 미켈의 후원자이자 직장선배로 돌아갔다. 


"다 왔다."


미켈의 숙소에 멈춘 쓰레기 차. 하지만 미켈은 왜인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존은 심통이 잔뜩 난 미켈의 표정을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해주면 잘 풀린다는 것도 알지.'


존은 손을 들어 미켈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고 볼에 입을 살짝 맞췄다. 당황한 눈을 한 미켈의 귀가 쫑긋쫑긋 거렸다.


"좋아. 대신 일정은 네가 확실히 짜둬라."

"진짜죠?"


미켈은 아까완 다르게 화색이 되어 차에서 내렸다. 존은 피식 웃으며 다시 차량을 몰아 도로 너머로 사라져갔다. 미켈은 웃으며 춤을추듯 경쾌한 발걸음으로 허름한 호스텔에 들어갔다. 그리고, 골목에서 카메라를 들고있던 흑표범 하나가 미켈이 들어간 호스텔의 입구를 바라보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좋아. 시작해볼까? 돈 주앙. 그 하얀 털 아래 시커먼 속내좀 보여달라고."


미켈은 방으로 들어와 노트북을 켜고 도청 프로그램을 더블 클릭했다. 아까 파블로의 정장을 매만지며 몰래 붙여둔 도청장치와 연결을 시도했다. 곧, 감청 헤드폰을 낀 미켈의 귀로 스칼라 극장안의 오페라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좋은 목소리군.]


파블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마 이태리의 정치계 거물들이 관람하는 같은 층계의 한 석에서 오페라를 감상중인 듯 했다. 그러나 미켈이 수집한 정보대로라면, 곧 파블로는 그 정치계 거물들 중 한명과 접근해 물건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 정치인이 누구인지 밝혀내서 마약 유통경로를 추적하는게 미켈의 작전이었다.


[쉬, 자네는 말하지 말게. 다른 목소리가 섞이면 방해되지 않나.]


미켈이 혀를 찼다. 시몬 보카네그라의 '가슴이 불타네'가 헤드폰을 통해 들려왔다. 과연, 존이 말한대로 악단의 웅장한 협주가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넘버였다. 쓸데없는 생각을 고개를 저으며 털어낸 미켈이 도청에 집중했다.


[고개만 끄덕이게. 자네는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 있는가?]


대답은 없었다. 엉뚱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미켈은, 파블로가 생각보다 감성적인 면모가 있지 하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샌드위치의 포장을 뜯었다. 파블로는 상대의 말 없는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낮게 그릉거렸다.


[그래. 그럼 하나 더 묻겠네. 그 자가 나를 미워한다면? 나를 싫어한다면, 아니, 나를 제거하려고까지 한다면 자네는 포기할건가?]


둔탁한 손으로 치는 짧은 박수소리.


[훌륭해. 나 역시 그렇거든. 그러한 마음까지 접어내게 만든다면 더 없이 훌륭한 엔딩이겠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마치 속삭이듯, 그러나 도청기에다 직접 대고 말하는 듯 아까보다 더욱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고있소 피앙세?]


집중하던 미켈은 헤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파블로의 목소리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샌드위치를 집어던졌다.


[세 시간 뒤 불가리 호텔의 스위트에서 만나지. 파블로를 만나러 왔다고 프론트에서 말하시오. 곧 사람을 보내겠소.]


숨을 헐떡이는 미켈의 귀로, 파블로의 목소리가 이어져 들려온다.


[나의 피앙세가 충성하는게 미국인지, 아니면 늙고, 애처로운 회색늑대 한마린지. 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말이오.]


존이 잡힌건가? 언제부터 알아차린거지? 미켈은 어딘가에 감금되어 고문당하는 존을 생각하자 정신이 아득해지는걸 느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그런 추악한 짓은, 적어도 당신에겐 하지 않으니까.]


마치 미켈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한 파블로의 이어진 말에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이 그를 잠식했다.


'언제부터 눈치챈거지?'


한참을 눈을 질끈 감은채 여러 생각을 하던 미켈은 서랍을 열었다. 바레타와 탄약이 가득 든 탄창. 둘을 조립하며 미켈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문 바깥에서 나는 인기척에, 미켈은 애써 긴장한 표정을 숨기며 품안에 권총을 숨겼다.


노크소리.




"도착했습니다."


하수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차를 몰아 불가리 호텔에 세웠다. 미켈은 그런 하수인을 쏘아보며 차를 나섰다. 품에있는 총이 뺏기지도 않았다. 그저, 정말 여느날과 같이 자신을 데리러 온 그대로였다.


"이쪽입니다. 필요하신게 있다면 프론트콜을 이용해주세요."


스위트룸으로 안내 받은 미켈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치 왕실처럼 꾸며놓은 인테리어와 값비싸보이는 장식의 가구들로 채워진 드넓은 방에, 이태리의 야경을 바라보며 검은 실크 가운을 입고 있는 위압적인 거구의 하얀 사자, 돈 주앙의 보스, 파블로가 보였다.


"왔소?"


미켈은 대답대신 품속에서 총을 꺼내 파블로를 겨눴다. 파블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럴줄 알았다는, 그러나 조금 상처라는 듯 미간을 찌푸린다.


"무슨 꿍꿍이지?"

"인사부터 해도 시간은 많다오. 일단 좀 앉으시오."


파블로는 커다란, 왕이 앉을법한 화려한 장식의 의자에 앉았다. 미켈이 총을 겨눈채 다가가자, 그 앞의 테이블에 쓰레기 차 안에서 찍힌 미켈과 존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엔 새빨간 장미 다발이 있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오페라를 보고 꽃을 사왔소. 그런데 당신은 나를 위해 납탄을 가져왔군."


파블로가 물끄러미 자신을 겨누고있는 베레타의 총구를 바라본다. 미켈은 침을 꿀꺽 삼키고 위협하듯 총구를 더욱 가까이 댔다.


"무슨 목적인지 말 해. 돈 주앙."

"사랑하는 것이오?"

"뭐?"

"그 회색늑대를 사랑하냐 물었소."


파블로는 총구가 미간을 노리고 있음에도 아랑곳않고, 커다란 손을 뻗어 장미 아래의 사진들을 들어 바라보았다.


"이름. 미켈 제닉 피어스. 23세. 마약중독자 아버지에게 살해당할 뻔 한 날 존 도널드 마이어스 FBI요원에게 구조. 그에게 후원을 받으며 뛰어난 지능과 월등한 신체능력으로 FBI에 헤드헌팅. 이런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소."


경악하는 미켈을 바라보는 파블로의 눈동자엔 어떠한 흔들림도 없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게 줬던 애정은 진실이었으니까."


파블로는 미켈의 신상정보를 읊으며 사진을 한장 한장 귀찮다는 듯 땅에 던져 버렸다. 그러나, 단 한장만을 놓지 못했다.


"그러나, 개는 충성심이 강한 동물이라던데."


부들거리며 인상을 꾸기는 파블로. 미켈은 그의 그런 표정을 처음 보았기에 당황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나에게 중요한건 이런것이오."


파블로가 테이블에 내려놓은 마지막 한장의 사진은, 아까 차 안에서 존이 미켈의 볼에 입을 맞추는 장면과 부끄러운 눈동자로 어쩔줄 몰라하는 미켈의 모습이었다.


"어째서 이 빌어먹을 회색늑대에게도 이런 표정을 보여주는걸까. 계속해서 생각했다오."

"뭐?"

"나는 그걸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오."

"뭘 말 하는거냐고!"

"나를 사랑하시오? 미켈."


미켈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겨우 고작, 이런 이유로 자신의 뒤를 캐고다닌 요원을 눈 앞에 두고 무방비 상태로 있는 파블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자신의 마음도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존에게 애처롭게 매달리던 시간들보다, 파블로의 애정을 듬뿍 받던 찰나가 줬던 행복감이, 그렇게 만들었다.


"대답이 없다면 나를 미워하는 것이오?"

"난, 나는."

"나는 그저, 임무를 위해 제거해야하는 대상이었소?"


파블로가 벌떡 일어섰다. 갑자기 거대한 산맥이 우뚝 솟아오른것 같은 느낌에 미켈의 귀가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하고 바짝 섰다. 파블로는 자신에게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는 미켈의 얼굴을 보며 이를 질끈 물었다.


"쏘시오."

"뭐?"

"쏘라고 말했소. 여기서 날 죽이는게 당신의 목표는 아니겠지만, 거대한 카르텔에 흠집을 내기엔 충분하겠지."


맞는 말이다. 이 넓은 스위트룸엔 아무도 없었다. 늘 그의 그림자같던 흑표범들도, 그 무엇도 없었다. 그저 미켈과 파블로 뿐이었다. 그러나 왜인지, 바레타의 방아쇠가 무겁다. 왜 당기지 못하는걸까. 왜 지금, 심장이 뛰는걸까.


"어째서 혼자 있는거지?"

"부하들은 나를 견제하는 상대 조직을 소탕하러 보냈소. 아마 지금쯤 보스의 목에 톱질을 하고 있겠지. 당신을 습격했다고 들어서,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매장하라 했소."


파블로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움찔하는 미켈을 지나쳐 드링크 바로 가 온더락잔에 얼음을 담고 위스키를 따랐다. 


"나한테 원하는게 뭐야?"


미켈이 입을 열었다. 파블로는 위스키를 단숨에 마시고, 혀를 빼내어 입술을 핥는다. 


"나는 당신이라는 보석을 원하오."

"왜? 왜...나는...나는...당신의 적이잖아."

"당신은 나의 적이 아니오. 미켈."

"넌 마약을 불법으로 유통하는 악당이잖아. 나는, 나는 미국의 요원이잖아. 그리고, 내가, 내가 사랑하는건..."

"이제 내가 되겠지."


불꽃이 타오르는 눈빛으로, 파블로가 가운을 거칠게 벗어던졌다. 실오라기 하나없는 파블로의 거대한 근육질 나신이 미켈의 눈에 들어왔다. 미켈은 침을 꿀꺽 삼킨다. 손을 떤다. 자신의 아비처럼. 마약에 중독된것도 아닌데, 아닌데도 미켈은 손을 미친듯이 떨어댄다. 성큼 다가온 파블로가 총의 등을 감싸쥔다. 이끈다. 총을 뺏긴다. 미켈은 너무나도 쉽게 손을 놓는다.파블로의 손에서 탄창이 빠지고 그것들은 마치 전희를 방해하는 옷가지들처럼, 미켈의 옷과 함께 땅바닥에 던져진다. 


"당신이 나를 강렬히 미워한다면, 강렬함만 남기고 미움은 지우면 돼."


미켈은 발버둥치지만, 파블로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자신의 마음을 이길 수 없다. 돈과 권력을위해 마약과 무기를 밀매하는 죄악의 상징같은 남자가 준 달콤함이, 자신을 함락시켰다는걸 깨닫는다. 


"당신이 나에게 달콤한 거짓말을 했다면, 달콤함만 남기고 거짓은 지우면 돼."


침대 위로 던져진 미켈은 보석같은 샹들리에를 본다. 그리고 그 위로 덮쳐드는 파블로를 보며 어느새, 자신의 자지가 단단하게 서 있음을 깨달았다. 그의 헝크러진 갈기털과 깊은 두 눈동자가 미켈을 매료한다.


"나는 당신이, 누군가에게 충성한다면, 충성만을 남기고 누군가를 지우면 되는거야."


자신을 조금 거칠게 안아 드는 파블로의 품에 안겨, 미켈은 그의 근육 아래로 강렬한 사랑의 박동이 들려옴을 느꼈다. 미켈은 애써 존을 생각하며 뿌리치려 했지만, 존을 생각하는 마음 사이로 파블로와의 기억이 검은 뿌리처럼 뻗어나기 시작했다.


"왜?"


미켈이 물었다.


"사랑하기 때문이오."


파블로가 대답했다.


그렇게나 듣고싶었던 말이었다.


파블로가 아닌, 존에게서.


그러나 항상 듣고싶은 말과 보내고 싶은 시간은 파블로가 주었다.


적이라면 산채로 목을 뜯는다고 들었다. 감정이 없다고 들었다. 아주 위험한 인물이라고, 멕시코의 하얀 악마라고. 그렇게 정보를 전해받고, 머릿속에 파블로라는 인물을 그렸었다. 그러나 눈앞의 하얀 사자는 자신에게만은 하나도 무해하지 않은, 그저 자상한, 커다란 수컷이었다.


"나, 나는.. 난..."


파블로가 아닌 존에게서 듣고싶었다? 미켈의 뛰는 고동이 물었다. 이 시간을 기다리진 않았어? 그와의 미래가 어떨지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어?


위험한, 그러나 언뜻 비추는 해답. 미켈은 가슴에 묻힌 고개를 부비며 위스키와, 머스키한 그의 체취를 한껏 맡는다.


"사랑으로 가공된 보석. 나의 미켈. 나만의 미켈."


키스. 파블로가 거대한 입을 열어, 그 안에서 끈적한 위스키향이 남은 쌉싸름한 혀로 미켈의 입술을 핥는다. 미켈은 거부하면서도, 어쩔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연다. 두 혀가 섞인다. 미켈은 파블로의 억센 두 팔을 꼭 잡았다. 파블로는 한 손으로는 미켈의 등 허리를 매만지면서, 다른 손으로는 미켈의 딱딱해진 젖꼭지를 살짝 건드렸다.


"흐읍..."


미켈의 신음에 파블로가 활짝 웃으며 그를 꽉 껴안는다. 갑작스런 압박에 숨이막히는 미켈은, 아득한 깊은 물 속에 빠진 것처럼, 파블로의 두 팔을 더욱 꼭 잡았다. 미켈의 손에 그리스 신전의 기둥같은, 딱딱하고 뜨거운 근육질의 팔이 느껴졌다. 잘 훈련된 요원인 자신을 암컷처럼 애원하게 만드는 그 단단하고 거대한 팔뚝. 헤집다가 잡아낸다. 핏줄이 박동하는 단단한 근육에 수컷으로써 경외감과 암컷으로써의 복종욕을 동시에 느낀다.


"하으, 하으읍!"


파블로는 구석구석 미켈의 미끈한 근육질의 몸을 자신의 커다란 혀로 핥으며 건드렸다. 미켈은 누운채로 척추를 세우며 덮쳐오는 오르가즘에 전율했다. 이미, 존은 잊은지 오래였다. 미켈은 파블로의 이름을 외쳤다. 파블로는 프리컴으로 뒤덮인, 자신의 거대한 물건을 쥐어 미켈을 안아올려 그것과 마주시켰다.


"하아...파..파블로..."


미켈은 그것을 두손으로 매만졌다가, 혀로 핥았다가, 이내 입안 가득 탐욕스럽게 밀어넣는다. 숨이 막힐정도로 거대한 자지에 미켈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파블로는 프리컴을 계속해서 흘려대며 자신의 커다란 가슴근육을 난폭하게 주물렀다. 혀를 빼물고 자신의 유두와 대흉근을 주무르는 파블로는 흉포한 수컷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미켈의 엉덩이를 보며 더욱 뜨거워진 자지를 입에서 뺀 파블로는 부드럽게 미켈의 다리를 잡고 벌렸다.


"어디든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군."


만족스러운 으르렁소리와 함께 미켈의, 자신보다 훨씬 작은 자지에서 프리컴이 꿀럭대는걸 본 파블로는 고개를 숙여 커다란 혀로 미켈의 자지를 포함한 아랫배를 핥짝였다. 사랑의 미약이 흐르는 피앙세의 자지를 마음껏 탐닉한 파블로는 미켈의 구멍에 두꺼운 손가락을 살며시 넣어 휘저었다.


"하윽, 하아으윽!"

"사랑하오. 미켈."

"파, 파블로..."


미켈은 갈구하는 눈빛으로 자신의 안을 후벼들어오는 파블로의 손가락에 전율했다. 더욱 애처롭게, 혀를 빼내고 파블로의 어깨를 부여잡고 신음하는 미켈을 보며 파블로는 딱딱해질대로 딱딱해진 물건의 끝을 살며시 벌어진 미켈의 구멍에 삽입하기 시작했다.


"아, 아파...아파요..."

"괜찮소."


미켈을 품안으로 감싸안으며 자지를 전립선까지 밀어넣은 파블로는 입을 쩍 벌리고 혀를 내민채 온몸이 뜨거워지는 야릇한 기분을 느꼈다.


"아윽..아..아.."

"허억...허억..."


그리고, 파블로의 고 신전의 기둥같이 두꺼운 허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수컷중의 수컷이 내는 엄청난 힘에 미켈은, 미친듯이 요동하는 침대 위에서 난파선의 선원처럼 이불과 파블로의 손을 맞잡고 고통과 쾌락을 즐겼다. 미켈은 눈이 반쯤 돌아가서 혀를 뺀채 기절할것같은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파블로의 이름만을 애처롭게 외칠뿐이었다.


"아, 파블로. 파블로오..."


파블로의 자지는 미켈의 안에서 사정없이 움직여댔다. 전립선을 묵직하게 쑤셔대는 거대한 자지에, 불룩해진 복부 위로 미켈의 자지가 정액을 뿜어댔다. 그럼에도 파블로는 계속해서 미켈의 구멍을 쑤셔댔다. 결장을 따라 긁어대는 파블로의 자지 핏줄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미켈은 쾌락후에 느껴지는 날카로워진 감각에 비명을 지르며 몸서리를 쳤지만 잔뜩 흥분한 파블로는 미켈을 거대한 몸뚱이로 깔아뭉게며 안은채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계속해서 박아댔다.


"나, 나 진짜 이상해. 이상해요...제발, 아파...아픈데..기분좋아...좋아...파블로..."

"지금 굉장히 아름답소. 피앙세."


파블로는 상냥하게, 그러나 거칠게. 자지를 꽂은채로 미켈을 그대로 들어올린다. 에이스 요원인 미켈이 자지에 후장이 쑤셔진채로 마치 뱃머리처럼 허공에 들렸다. 놀라운 괴력으로 미켈과 하나가 된 파블로가 쿵쿵 땅을 울리며 테라스로 향했다. 아찔한 감각속에서 테라스의 난간을 잡은 미켈은 이태리의 야경을 뒤로 한 채 파블로에게 들린채로 암컷처럼 발정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파블로! 파블로..."

"미켈. 당신은 보석이야..."


파블로의 자지에서 드디어 뜨거운 물이 솟는게 느껴졌다. 미켈은 자신의 구멍에서 뜨거운 하얀 즙이 엄청나게 쏟아져 내리면서도, 동시에 더욱 많은양이 엄청난 기세로 울컥울컥 역류하여 식도를 타고 올라 혀에까지 와닿는걸 느끼곤, 그 농축된 수컷의 맛에 또 사정해버렸다.


"하윽, 후으으윽, 으흐윽..."


파블로는 아직도 정액이 꿀럭거리며 나오는 자지를 미켈의 구멍에 넣은채로 미켈을 강하게 감싸안았다. 미켈은 이 지독한, 마약같은 시간에 취해, 파블로에게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되뇌일 뿐이었다.





"비가 그칠 기색이 없군."


존은 한동안 연락이안되던 미켈이 만나자고 한 골목가에서 우울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인기척에 앞을 보니 비를 맞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미켈이 서있음을 알고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인사라도 하지 그래?"


그러나 미켈은, 인사대신 품속에서 장전된 바레타를 꺼냈다. 놀란 존은 어떤 말도 하지못하고, 다만 빗속에서, 한치의 미동도 없는 미켈의 총구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정지한 듯 했다.


"이런. 잠깐 이야기만 한다는 것 아니었소?"


골목 안으로 거대한 하얀 사자 하나가 우산을 든 채 들어온다. 그리곤 자신이 젖는것엔 괘념치 않는지 미켈만을 위해 우산을 씌워준다. 


"도, 돈 주앙?"

"반갑소. 존 요원. 인사하시오. 이쪽은 내 피앙세."


그리고 미켈의 손에서 총을 부드럽게 쥐어든 파블로는 품 속으로 권총을 집어넣었다.


"우산을 씌워주러 오지 않았다면 나의 사랑의 손에 더러운 종자의 피를 묻힐뻔 했군."

"무슨짓이라도 한건가?"

"천만에."


파블로가 웃으며 빗속에서 미켈을 향해 커다란 손을 뻗었다. 미켈은 익숙한듯 그의 팔에 얼굴을 살짝 부비다가 고개를 숙인 파블로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존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얀 사자가 승리자의 미소를 짓는다.


"아름다운 원석을 곁에 두고도 깎지 않으면 보석이 될 수 없지.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 말을 남기고, 비가 거세졌다. 존의 앞엔 세찬 비줄기만 보였고, 존이 허겁지겁 달려갔을땐, 골목엔 비에 젖은 회색늑대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