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부순애물 채널

나는 한창 세상 만물이 신기한 열 두 살이었다.




그러니, 그런 깡촌에서의 2주일이 얼마나 길고도 지루했을지, 다들 이해 할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알겠지?"




나는 명절때나 잠깐 보는, 어색한 사이의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피사의 사탑 프라모델 박스를 든 채 물끄러미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나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올려 감쌌다. 나랑 같은 색의 털, 그러나 늘 맡던 부모님의 것보단 좀더 햇볕에 바래고, 늙은 세포에서 풍기는 어색한 냄새가 코끝을 불안하게 간지럽혔다.




"가면 언제오는 것이여?"




"2주 있다 올게요. 일이 바빠지면 좀 더 있을수도 있고요."




짧고 힘있게 뻗은 갈색털이 인상적인 아버지는, 열정이 충만한 사업가였다. 그 좋아하는 일 때문에 어머니랑도 이혼하고, 여동생과 나를 나눠 양육하기로 한 아버지는, 나보다도 일이 더 중요했던건지 이후로도 일이 바쁠때면 나를 시골집에 맡기곤 하셨다. 아버지는 쪼그려 앉아 시무룩한 표정의 나를 보았다.




"운서야. 미안해. 착하게 있을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올 땐 경복궁 프라모델 사다 줄게. 라며 흙먼지를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차를 몰아 구불구불한 시골길 너머로 사라지는 검은 차의 뒷꽁무니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구, 영감. 애가 무슨 그런걸 먹는다 그려."




"아이 와그려! 나 어릴땐 이런거만 있으면 엄니한티 솥 거덜낸다고 등짝맞고 그렸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간만에 보는 손주에게 맛있는걸 해주신다고 고기를 삶네 굽네 하며 옥신각신 하고 있었고, 나는 조용히 마루에 앉아 해가 조금씩 저물어가는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집 주변 야트막한 돌담 끝에서, 굉장히 덩치가 큰 갈색 암컷 곰 수인과, 그 자식으로 보이는 키는 작지만 덩치는 다부져보이는 수컷 곰 수인이 나타났다. 분명 명절때마다 내 또래의 아이들은 없다고 들은 동네였는데, 그 수컷 곰수인은 덩치가 많이 큰 편이었지만 그래도 나보다 두 세살정도밖에 많은 정도로 보였다.




'외국인인가?'




대문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어 다가오는 두 곰수인 모자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둘 다 돌담 위로 몸이 보일만큼 거대했는데, 여태까지 본 경험 중 그렇게 키가 큰 수인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두 곰수인은 고개만 빼죽 튀어나온 나를 보고 깜짝 놀랐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알수없는 눈빛을 교환했다.




"안녕하세요?"




내성적인 성격인 내가 그 때, 그렇게 인사를 하며 나간 것이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따분함과 무료함이 내 등을 떠밀었던 걸까, 아니면 무언가, 어떤 인연의 실 같은 것이 나와 형을 당겼던 걸까. 막 변성기가 지나 꽤나 낮은 목소리로 안녕이라고 말을 한 웅태형의 첫 모습은 아직도 기억속에 선연하다. 그리고 인사를 주고받은 바로 그 다음순간, 할머니가 달려와 나를 감추듯이 자신의 품으로 감싸안고 두 곰수인을 노려보던 것까지. 그리고, 그 둘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종종걸음으로 꽤 가까운 그들의 집으로 멀어져갔다.




"아유! 운서야! 그러면 안디야!"




"왜요? 저는 인사만 했는데..."




"저거 바다건너에서 온 귀신이다 귀신! 아주 남편도 잡아먹고 무서운 것이여."




"저 아줌마랑 형이요?"




그런 마을이었다. 도심지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예전에 전쟁조차 피해갔다던 그런 시골 깡촌. 동네의 알코올 중독자 아저씨가 결혼중매 업체에서 싼 돈으로 사온 러시아 어느 시골마을에서 온 아줌마.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인 웅태형. 그리고, 어느날 죽은 아저씨. 마을사람들은 간이 돌덩이가 되서 죽었건 뭐가 어쨌건 아내가 병수발을 제대로 못했네, 아내가 죽였네 등 모든 탓을 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그녀에게로 돌렸던 것이다. 나는 까치발을 들고 돌담 너머 두 곰수인이 들어간 집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있는 웅태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계속 여기 왔던거네?"




"응. 근데 나 형 처음봐."




"어쩔수 없는겨. 설 쇨때는 나도 웃말에 가니까."




 다음날, 웅태형이 할머니 집에 찾아와 돌담 바깥에서 나를 넌지시 불러냈다. 자초 사정을 들은 나는, 당시에는 왜 웅태형과 웅태형네 아주머니가 그렇게 마을에서 없는사람처럼 지내야 하는지 몰랐지만, 어찌됐든 남은 2주라는 시간동안 함께 놀 상대가 생겨 아주 들떴었다. 웅태형은 모르는게 없었다. 서울에서 온 나를 데리고 지루하기만 했던 시골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이게 깨여."




"깨가 여기서 나온다고?"




"그려. 그리고 그 이파리는 상추여."




"와, 진짜? 그러고보니까 깻잎냄새가 나!"




나는 깨와 깻잎이 한 뿌리에서 나온다는 걸 보고 굉장히 신기해했고, 그런 나를 보며 웅태형은 뭔가 뿌듯한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신나서 더 많은걸 알려주려 했다.




"저건 뭐야 형? 사과야?"




"대추여. 있어봐."




나랑 두살 차이인데도, 키랑 덩치가 한창 커 까치발만으로 어른들도 닿기 힘들법한 대추 열메에 손이 닿은 웅태형이 살짝 갈색 얼룩이 감도는 탐스런 대추알을 하나 따 내 손에 쥐어주었다.




"먹어 봐. 대추 보고 그냥 가면 늙는디여."




"대, 대추면 그 삼계탕에 들어가는 쭈글쭈글한거 아냐? 맛없는거?"




"맛있어. 먹어봐."




나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대추를 베어물었다. 아. 난 그날의 풋 대추 맛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사과같으면서도, 살짝 퍼석한, 그러나 달큰한 향기가 입안에 퍼졌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형을 바라보았고, 형도 대추 하나를 따 그 커다란 입으로 아작 씹으며 씩 웃은뒤 나를 보았다. 그렇게, 거짓말처럼 영원할 것 같던 2주의 절반이 벌써 지나가고 있었다.




"내일은 저 산앞에서 보는겨.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으로 데려가줄거여."




"응! 형 내일봐!"




나는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후다닥 먹고 몸을 씻은 뒤 쿰쿰한 냄새가 나는 이불에 쏙 들어갔다. 아직 해도 지지않은 시간이었지만, 빨리 잠에 들어 다음날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기대에 두근거리는 마음때문인지 나는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고, 내가 가져온 피사의 사탑 프라모델 박스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있는걸 보게됐다.




'아, 저거 내일 가져가야지!'




그렇게 시간이 얼렁뚱땅 지나, 나는 곤히 잠에 들었다.








"운서야! 여여!"




그렇게 손을 흔들지 않아도 커다란 웅태형은 잘보이는데, 내가 저 멀리서 보일때부터 형은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프라모델 박스를 든채 달려가 산 입구에서 기다리는 형에게 도착했다.




"그게 뭐여?"




"이거 피사의 사탑! 오늘 같이 조립하자!"




"그려. 암튼 산이 꽤 험하니까 조심혀."




"응!"




막 낙엽이 들기 시작한 산의 나무들은 무성했고, 솔과 젖은 잎들로 싱그러운 향을 내뿜고 있었다. 형은 중간중간 내가 힘들까 멈춰서서 신기한 벌레가 있으면 소개해주고, 먹을만한 머루열매를 보면 따서 나눠주곤 했다.




"헥헥, 형. 아직도 멀었어?"




"힘들어?"




아무래도 나보다 덩치도 훨씬 크고 산골에서 뛰논 형을 따라잡는건 서울 샌님이었던 내겐 힘든일이었다. 게다가, 등산로를 갖춰놓은 관광용 산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가끔은 땅이 푹푹꺼지는 진짜 야생산길을 처음 경험해 본 것이었고, 괜히 가져왔다며 프라모델 박스를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형이 내 앞에서 쭈그려 앉아 너른 등을 보였다.




"자, 업혀."




"형 힘들텐데.."




"내가 얼마나 장사인디 그려. 업혀."




그러면서 나를 업어든 형은 씩씩하게 산길을 오르며, 자기가 마을에서 제일 무거운 들돌을 작년에 번쩍 들었다느니, 웃마을 녀석들이랑 씨름을 해서 진적이 없다느니 자랑을 늘어놓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때문에 형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얼마나 올라갔을까.




"다 왔다."




어느새 살짝 해가 지려는 하늘과, 형의 어깨너머로 바라보는 조그만 점 같은 마을. 그리고 그너머의 세상. 나는 탄성을 지르며 그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었다. 형은 너른 바위에 자리를 잡고 나를 내려줬다. 나와 형은 나란히 앉아 선선한 가을바람과 아름다운 산세를 즐겼다.




"그래서 그건 뭐여?"




한참 경치구경을 하다, 형이 프라모델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포장을 뜯어 프라모델 상자를 열었다. 나에게는 익숙한 조립부품들을 본 형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이게뭐인겨?"




"이걸 다 조립하면 멋진 피사의 사탑이 되는거야!"




"서울애들은 이런걸 하고 노는겨? 어려워보이는디..."




형과 조립을 하려고 가져왔지만, 손이 섬세하지 못한 형은 우물쭈물 하기 일쑤였고, 거의 나 혼자서 탑을 완성했다. 판 위에 기울어진 탑 모형물을 보며 형은 눈을 초롱거리며 물었다.




"이게 진짜 있는거여?"




"응! 그럼~ 아마 우리가 올라온 산만큼 클걸?"




"와, 그런데 어찌 이게 안무너지고 버티는겨?"




"원래 피사의 사탑을 지을때..."




한참을 신나서 설명을 하던 나는 형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걸 보고 말을 멈췄다.




"어, 어렵나?"




"너는 어찌 그런걸 다 아는겨? 진짜 똑똑하다."




어느새 동경하게 된 형에게 그런 칭찬을 받아서 그런지 얼굴이 붉어지고 쑥쓰러워졌다.




"나는 나중에 커서 건축가가 되고싶거든."




"건축가?"




"응! 엄청나게 멋있는 건물을 짓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럼 형을 꼭 불러."




가을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를 사근사근 간지럽히고 있었다. 나는 나보다 짙은, 갈색의 털을 가진 눈 앞의 듬직한 곰수인의 깊은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의 눈에 비치는, 어리고도 순수한, 나.




"너는 힘이 약하니까, 너 대신에 집 지어줄게."




그 말을 들은 나는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왜웃는겨?"




"형! 요샌 다 기계들이 지어줘!"




"그, 그런겨?"




물론, 집짓는데 사람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나 선뜻 집을 지어주겠다고 한 형이 나는, 너무나 너무나 좋았다. 그때의 바람, 노을, 낙엽과 솔냄새, 벌레들의 찌릉거리는 소리까지도 앞으로 평생의 행복한 기억이 되어 나를 지탱해 줄 것을 알았던건지.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며 콩닥거리는 심장소리와 당시의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조심혀! 발빠지면 다친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여긴 서울이 아니었음을 망각이라도 한 건지, 시골은 해가 지는 시간이 다르기라도 한건지 잠깐의 노을 뒤에 산은 금방 어둠으로 물들었다. 서울의 산들처럼 등산로의 등불도 없어서, 나는 말그대로 공포만화책에 나온 산길을 걷는것처럼 바들바들 떨며 형의 손을 꼭 잡고 한 손에는 피사의 사탑을 든 채 위태롭게 길을 걷고 있었다. 그나마, 형의 두툼하고 커다란 손을 잡고 있어 많이 무섭지는 않았다.




"꾸웍!"




"헉!"




"놀라지 말어. 고라니여."




마치 귀신의 비명소리같은 고라니의 울음을 듣고 화들짝 놀란 내가 깜짝놀라 형에게 가까이 달라붙자, 형이 잡은 손을 풀고 내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추운 가을밤에 포근히 덮어주는 형의 온기가 날 안심시켰다. 그렇게 잠깐 멈춰있던 우리는 다시 산길을 조심조심 내려가기 시작했다.




"악!"




그러다, 덤불에 발을 잘못디딘 내가 푹 꺼지는 땅에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모형을 놓쳤다. 그냥 놓아버렸으면 될걸, 나는 바보처럼 그걸 잡겠다고 형의 손을 놓고 팔을 뻗었다가 푹 꺼진 덤불아래로 넘어져 구릉 밑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어, 어어?"




형이 당황하는 목소리가 아득히 멀어지고, 나는 구르고 구르다가 어느 나무에 부딪혀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어린 나에겐 너무 가혹한 고통이 밀려왔다.




"아윽!"




"운서야!"




저 멀리서 형의 목소리가 작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한참을 굴러서 그런지 제대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눈 앞은 그저 암흑이었다. 아까의 산은 없었다. 그저 끝없는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어린 늑대인 나는,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움츠릴 뿐이었다.




"흑...흐윽..."




간신히 흐느끼는게 전부인 나는 나무 근처에서 몸을 웅크린채 벌벌 떨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름다웠던 벌레들의 울음소리는 이제 유령들이 내는 기괴한 속삭임 같았고, 손발이 덜덜 떨리도록 추운 산의 밤공기가 가혹하게 내 몸을 뱀처럼 스치듯이 지나갔다.




'어, 어떡하지? 할머니도 걱정 많이 하실텐데...형이 날 발견 못하면 어떡하지?'




무서운 상상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얼마나 한참을 울다가, 조금 지쳤던건지 나는 살짝 잠에 들었다. 그러다, 근처에 난 인기척에 나는 놀라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어둠속에 무언가 거대한게 서 있었다. 나는 겁을먹고 뒤로 기었지만, 이내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헤유, 겨우 찾았네. 괜찮여?"




"형!"




나는 욱씬거리는 몸을 일으켜 형의 품에 안겼다. 나를 다독이는 형의 품에서 그제서야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형은 그런 나를 안은채로 주저 앉아 숨을 길게 내쉬었다.




"미안혀. 내가 해지는 시간을 생각 했어야 되는디."




"으으, 아니야 형. 흑. 내가 미안해."




"니가 뭘 잘못한게 있어. 으이그, 그 모형 아까워서 어쩌냐."




"괘, 괜찮아. 어차피, 한 번 만들었으니까 됐어..."




"에이 그래도 너 엄청 좋아하는거 같던디 아까보니께."




어둠 속이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아까와 달랐다. 나는 부드럽고, 커다란 형의 따뜻한 품에서, 자연스럽게 형의 심장쪽에 귀를 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형이 나처럼, 거세게 심장이 쿵닥거리고 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묘한 공기였다. 정말, 묘한 공기였다.




"형이 나중에 지어줄게."




"피사의 사탑을?"




"응! 형이 들돌도 얼마나 쉽게 드는디 그 까짓거 몇번 쌓으면 되는거 아니겠어?"




그게 참 어찌나 바보같고도, 어찌나 위안이 되었던지. 나는 킥킥 웃다가 어느새 긴장이 풀려 형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잠에 들락말락 할 때, 형의 숨이 잠시 왼쪽 귀에서 커다랗게 들리고, 내 볼에 따뜻한, 아주 따뜻한 무언가가 살짝 닿았다가 만 기억이 끝이었다.




"그러니께 꼭 만나자. 형이랑..."












"아이구 얘 일어났네!"




"아이구 운서야!"




눈을 떴을땐 할머니댁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날 내려다 보고 계셨고, 나는 늘 자던 이불에서 눈을떴다. 한참을 혼난 나는 그 다음부터 아버지가 올 때까지 집밖으로 나가는걸 금지당했다. 형은, 그날 나를 업고 늦은 밤에 우리집에 도착해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홍두깨로 얻어맞고는 집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어머니, 아버지. 그럼 갈게요. 운서야. 인사드려야지."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차 뒤에 타서 시골집을 뒤로했다. 차에 시동이 걸리고, 나는 유리창 너머로 손을 흔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라, 웅태형의 집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자동차에서 나는 창문을 열어 반짝거리는 눈으로 형네 집을 바라보았다.




"우운서야아!"




거기엔 형이 있었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나도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더니 피식 웃으시며 말했다.




"원 녀석 덩치하고는. 친구니?"




"네. 나중에 꼭 만나기로 했어요."




"그래?"




"저랑, 피사의 사탑 만들기로 했어요!"




아득히, 멀리멀리 점이 될 때까지, 형은 계속 손을 흔들었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다음 명절날. 형과 아주머니는 사라지고 그곳은 빈 집이 되어있었다. 어디에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바다건너 지들 도깨비라나로 갔겄지. 할머니의 구시렁거리는 소리만 들으며 나는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아, 진 실장! 현장에는 왠일이야?"




"설계자가 현장에 안와봐서 쓰나요. 설계도랑 틀어진데는 없나 확인도 해야하고..."




"에이~참 내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나는 안전모를 쓰고 아틀리에 건설현장으로 들어갔다. 매캐한 먼지 사이로 올라선 철파이프들을 보며 나는 탄성을 질렀다.




"이야. 벌써 각파이프가 올라섰네? 작업자가 많이 붙었어요?"




"아니, 아니야. 근데 진짜 물건이 있어. 어찌나 힘이 좋은지 다 달라붙어야 하나 올릴거 혼자서 하나씩 번쩍번쩍 든다니까?"




그러면서 저 멀리 노동자중 하나를 가리키는 현장소장의 손가락을 따라 내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노란 안전모를 쓴, 남들보다 얼굴 두개는 더 올라간 키와 씨름선수보다 더 거대한 덩치. 그리고, 짙은 갈색의 털.




"지, 진 실장?"




"형!"




나는 걷다가, 달린다. 그때처럼. 그때처럼 형을 향해 달려간다.




깊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나를 알아본다. 활짝 웃는다.




입안 베어문 대추내음이




가을의 바람이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추억이 스쳐간다.




"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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