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 개정본 올린김에 리월도 올리는게 맞는거같아서...DC 수위조절자 본인 맞음.

차후 스토리에 따라서 수정될 거임.



몬드의 역사가 2700년 전 벤티의 봉기때부터 시작된 것에 비해 리월의 역사는 3700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암왕제군은 6000년 전부터 활동했다.

암앙제군의 행보는 마신을 죽인것이 대부분이나 3700년전 리월을 세운 시점을 기준으로 넷으로 구분할 수 있다.


① 3700년 전 리월건립과 귀종

② 3000년 전 마신전쟁과 마신들

③ 2000년 전 마신전쟁의 끝

④ 1000년 전 마신급 전쟁


1. 3700년 전 리월건립과 귀종



리월의 개척에 대해 남아있는 자료로 천형포의 비석이 있다. 암왕제군은 백성들을 이끌고 천형포를 통해 리월항쪽으로 이주해왔는데


리사교 지역은 청허포 - 성법관문 - 둔옥릉 일대를 의미한다.

청허포의 유적은 암왕제군이 세운 유적이 아닌 다른 마신의 지역이였지만 암왕제군이 죽이고 그 자리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천형포의 비석은 암왕제군이 점령한 후 세운 비석이다.



이후 암왕제군은 천형산을 세우고 그 안에 산휘채를 세웠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무너져있다.



천형포의 물은 천형산이 수원지인데 천형포에는 폭포가 없고 천형산의 물이 천형포 까지 이어지게 되어있다.

즉, 암왕제군이 천형산을 세우기 전 천형포와 성법관문은 운래해에서 들어오는 바닷물로 잠겨있었던 지역이다.



임랑의 청허포 - 성법관문 - 둔옥릉의 골동품 수집 퀘스트를 끝내면 '야타 용왕'에 대한 내용과 '지워진 선인'이라는 키워드가 나오는데



이 야타 용왕에 대해서는 천주 골짜기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절운간이 선인들의 거처이고 암왕제군이 최초의 선인이였으니 제군의 진군은 절운간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천주골짜기의 야타용왕에 대한 비석과 둔옥릉 - 성법관문 - 청허포의 지역이 야타용왕과 관련된 것으로 보면


암왕제군은 절운간에서 백성들을 이끌고 리사교일대와 천추골짜기를 지배하고있던 안하무인이였던 마신 야타용왕을 담궜다.

야타용왕과의 전쟁이 끝난 후 청허포에 점령비를 세우고 천형산을 세워 물길을 막아 그때까지 운래해의 바닷물이 들어오던 리사교 일대를 개척했다.


'마와 신이 뒤섞인 세상에서 천하를 지배할 생각은 없으나 백성의 고통을 지켜볼 수만은 없으니.'


1- 2. 지워진 선인에 대하여


암랑의 골동품 감정에서 선인들을 동물의 형상으로 기록했다하는데

현재 동물형상의 선인은 리수첩산진군, 소월축양진군, 류운차풍진군이 있다.

류운차풍진군의 성격이 가장 오만하고 인간들을 낮게보는 것을보아 암왕제군의 진군에 기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지워진 선인은 누구일까.


지워진 선인에 대한 추측은 둔옥릉의 유적 고찰 일지에서 더 찾아볼 수 있다.

'바위에 숨어있고, 강과 바다를 진압하는 선인'

원신에서 바위속으로 숨어드는 존재로 바위드래곤이 있는데....


무공의 검 스토리에서 남천문 일대의 늙은 바위고룡이 살고있었는데, 암왕제군이 제압한 후 일시적으로 동료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의견차가 생기고 거목에 봉인했다고 전해진다.

남천문은 암왕제군의 진군 경로의 시작지점에 있는데 절운간 호로산 아래에는 복룡목이 있다.

암왕제군의 나이가 6000살이 넘는 것을 보아 무공의 검의 바위고룡과 동일인물로 보인다.


남천문 일대의 바위고룡은 암왕제군의 진군 시작에서 제군에게 제압당하고 일시적으로 동료가 되어 선인으로 대우받았으나

제군과의 견해차에 의해 가차없이 처단된 것으로 보인다.


1-3. 귀종과의 만남



귀리평원 퀘스트 내용으로 보아 귀종은 암왕제군보다 먼저 정착하고 있었던 신이였고 이후 제군이 리월에 정착하자 공동으로 수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귀종과 제군은 속세의 자물쇠를 증표로 모종의 계약을 하고 두 마신의 치세 아래, 리월은 농업으로 번영하게된다.

현재의 상업도시인 리월과 다르게 석문까지 이어지는 논밭에서 농업도시의 모습을 보였고 귀리평원의 폐허는 가장 큰 시장이 열리던 곳이였다.


'세상을 정화하고 백성을 지키는 것 그게 리월 최초의 계약일세'




2. 3000년 전의 마신전쟁


2-1. 귀리평원의 몰락


3000년 전부터 시작되어 1000년간 지속된 마신전쟁으로 귀리평원은 폐허가 되었고 귀리평원의 거주민들은 리월땅으로 이주하게된다.


귀종은 귀리집 4구절을 남기고 죽게된다. 직접 귀종 4훈을 남긴 것인지 그 후에 귀종을 기려 세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암왕제군의 옛 친구라 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진 모르겠다.

일단 야타용왕은 리월 개척기에 죽였고, 오셀은 친구가 아니며, 경책산장의 이무기는 1000년 전에 죽였으니 마신전쟁과는 관련이 없다.

먼지가 가라앉아 표정을 풀었다하고 '계약을 관철하기 위함'임을 보아, 모종의 이유로 모락스는 귀종을 직접 죽여야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천리가 일곱 신위만를 내걸고 마신들의 전쟁을 부추겼다면,

(안드리우스도 자신이 바람신의 신위에 맞지않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소멸하고 육체만을 남겼다.)


최초의 계약인 '세상을 정화하고 백성을 지키는 것' 즉, 백성을 지키는 일에 귀종의 죽음이 불가피했다고 본다.

그러나 가설일 뿐 반암결록 스토리에서 '배반한 친구'의 스토리가 있어서 부동현석의 상과 귀종은 다른 인물일 수 있으니 가설일 뿐이다.


이후 모락스는 바위신의 신위에 올라 리월을 다스린다.



2-2. 바다의 마신



절운기문의 해신궁의 내용에서 바다의 마신에게 신부를 보낸답시고 인신공양을 하는 마을이 있었다.


바다의 마신은 심해 속에 궁전이 있었고 그 곳에는 이전에 보내졌던 신부들이 있었다.

바다의 마신은 신부가 필요하지않았으나 인간들의 보내는 제물 소녀들이 불쌍해서 거두고 있었으나, 그중 한 소녀는 고향을 그리워하게된다.

바다의 마신이 소녀를 가엾이 여겨 고향으로 돌려보내주나, 큰 소라를 주며 인간세상에 후회하는 날이 올것이고 그때 소라를 불라고 한다.

훗날 소녀는 딸을 낳았는데 장로는 그 딸을 해신의 제물로 바친다.

어머니가 된 소녀는 소라를 불러 해신을 소환하고 해신은 마을을 가라앉혀버린다.


라는 내용인데... 천형산만큼 큰 이무기들의 고삐를 쥔 해신이라는 내용에서 소용돌이의 마신 오셀의 형상을 유추할 수 있다.

다가오는 객성 퀘스트에서 봤던 물로 된 이무기들은 오셀 본체가 아닌 물정령 소환수 같은거였겠지.



절운기문 4권에서 무망의 언덕에 살던 이들은 운래해의 바다 마수에게 현혹되어 물 속으로 사라졌다고한다.

해신궁의 내용과 어느정도 비슷한 내용을 보여준다.



문제는 암왕제군의 통치 지역에서 마을 하나가 수장되었는데, 암왕제군이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

수몰된 마을에 가족들이 있던 사람들은 암왕제군에게 탄원하고 제군은 그들과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제군은 참봉의 칼날로 산꼭대기 한구석을 베어낸다.



베어낸 산 (뽑아낸 산)은 거대한 솔개가 되어 바다 마수에게 창처럼 꽃혔다고 하는데



이 내용은 화박연과 관홍의 창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고운각의 지형이 바위신의 창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아래 소용돌이의 마신 오셀은 봉인당하게 된다.

바다의 마신을 소용돌이의 마신 오셀과 동일 인물로 보긴했는데, 야타용왕이 바다의 마신일 수도 있긴하다.

그때 리사교일대는 바다였으니까.


3. 2000년 전 마신전쟁의 끝



기형경의 내용에 의하면 소용돌이의 마신 오셀의 봉인 후 마수들이 대거 탄생하는데 이때 다섯 야차들이 모락스를 따라 리월을 수호한다.

이때의 시점이 오셀의 봉인 직후 잔재들이 일어났을 수도 있지만, 1000년 전 마신급 전투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다.



선중야차 5인은 금붕야차 소만 남기고 사망한다.

PV에서 하나는 행방불명되었다고 하는데, 부사(舎)는 유적을 남기고 생을 마감하러 떠난다.

소는 독의 기운을 열리진심산으로 억누르고 자신의 직책으로 망서객잔에서 고운각을 감시하고있는데.... 타르탈리야가 오셀 봉인 푼거보면 감시가 미흡한것같다.



마신전쟁 후 귀리평원이 파괴되어 농업이 쇠락하자, 리월은 상업과 제조업을 생업으로 삼게된다.

이중 특출난 사람이 칠성이되고 그 아래 8문과 천암군의 조직이 되어 리월은 번창하게 된다.



4. 1000년 전 마신급 전쟁


리월의 전쟁은 2000년 전에 끝난 마신전쟁과 1000년 전의 전쟁 두가지가 있다.

1000년 전 전쟁은 마신전쟁때보다 자료가 애매하고 헷갈려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째서 일어났는지도 알기 어렵다.



천년 전 마신급 전투는 천암단을 결성하게되고 이후 천암군으로 명백이 이어진다.



평할매가 노망이나서 마신전쟁과 헷갈리는지 모르겠는데, 야생유리백합은 귀종의 상징과 같은 꽃으로 귀리평원에서 자랐었다.

야생유리백합은 마신전쟁 후에 멸종하진않고 천년 전 마신급 전투에서 멸종했던것으로 보이는데...



천년 전 전쟁에 대해서는 확실한 유적은 없으나

첫번째로 정세의 아홉기둥의 내용이 1000년 전 전쟁과 맞물릴 수도 있다.

사람 간의 전쟁이였던 것으로 보이고, 모든 문제를 돌기둥으로 해결하는 모락스의 스타일에도 부합하긴하다.



두번째로는 경책산장의 이무기가 있는데, 확실하게 1000년 전 사건이라고 나온다.

리월에서 해를 끼치는 1000년전 마수인걸 보아 '천 년 전 마신급 전투'라는 말과도 부합한다.

(이무기와 오셀의 연관성은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경책산장 총무 약심에 말에 의하면 모락스가 이무기의 유해를 봉인했다고 하는데



5장소에 거쳐서 봉인하였다고 한다.

첫번째부터 동남쪽의 뼈 - 동북쪽의 영혼 - 정북쪽의 정신의 봉인지다.

응고된 피는 선인들이 봉인할때 쓰는 호박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뾰족하게 생겼음.

저 혈석으로 봉인지를 추적했지만 서북쪽의 육신과 서남쪽의 형태는 찾을 수 없었다.


신의 눈이 부여되는게 2000년 전 마신전쟁 이후 일곱 신 체제가 생긴 이후인 것으로 보아

치치가 끝낸 선마대전은 2000년 전 마신전쟁이 아닌 1000년 전 마신급 전쟁인 것 같다.


이후 500년 전 재앙이 일어나자 둔옥릉의 사람들이 떠나 빈 폐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