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공개된 스토리는 다시 쓸 수 없다.


애당초 얘네가 그럴 애들이었으면

처음부터 저 모냥으로 내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난 티바트의 예쁜 캐릭터들이랑

모험하고 싸우고 물고빨고 하려고 이 겜을 시작했으니


스토리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도

씹고 뜯고 바닥까지 싹싹 핥아 먹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토리. 특히

부실하기로 정평이 난 이나즈마 스토리의 한 부분을

대충 내 뇌피셜로 때워 보고자 한다.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바로 여기.


수백 년 째 국방력 혼자 다해쳐먹고

섬도 가르고 뱀도 가르고 못 써는 게 없는 라이덴 쇼군이



왜 육숫거리밖에 안 나는 와타츠미섬 빨갱이들은

진작 회쳐버리지 않고 사라를 굴리는 것인가.


언뜻 이해하기 힘든 쇼군님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앞서 언급된 이나즈마의 한 '제도'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이 어전시합을 보면서


게임에 친숙한 놈은 이걸 생각했을 거고



역사에 관심 있는 놈은 이걸 생각했을 거다.


일단은 이거 진지빠는 글이니까 결투 재판을 보자.



흔히 결투재판이

힘이 곧 정의인 세기말스러운 풍습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이 재판의 주체는 종교였다고 한다.


'신은 곧 정의이니, 올바르다면 신이 지켜줄 것이다.'


정말로 신을 빽으로 둔 사람이면 불도 태우지 못하고

창칼도 피해 갈 테니까.




대충 이런 비슷한 무렵의 '재판'들과 같은 원리였다는 거지.


근데 이나즈마를 보면

마침 신이 진짜로 있다.

게다가 세다.


엄청 세다.



어디 마블 영화에 나와야 될 거 같은

옆동네 틀딱에도 어떻게 비벼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나즈마의 무신(武神)이라고.


이런 환경에서

무(武)의 주관자인 쇼군 앞에서

무예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어전시합이라는 제도가 생겨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리고 마코토라면 몰라도

친해진 행자한테까지 대련을 조를 만큼

뼛속까지 무인인 에이도 이 제도를 긍정적으로 여겼을 거야.


그럼 여기서 살짝 정리를 해 보자.


이나즈마에서 라이덴 쇼군은 무의 정점인 신이고,

그 신은 힘으로 실현하는 정의를 긍정하는 인물이야.


이 가설에 따르면 이해가 되는 다른 스토리도 몇 가지 있지.


라이덴이 천리가 주도하는 질서에 순응하는 것과,


아야토 스토리에서 위장이긴 하지만

봉행 끼리의 내전 위기에서 쇼군의 개입이 언급되지 않은 점.


즉,


이나즈마의 내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어전시합이었다.



이런 추측이 가능해.

쇼군의 안수령에 동의하는 막부군과

폐지를 주장하는 반란군.



그 논쟁의 방식이 전투라면,

무의 주관자인 쇼군은 설령 본인이 그 원인이라고 해도

이 싸움에서 입회인, 심판관의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어.



쇼군의 프로그램 보안 설정을 결투로 해 놓을 만큼

전투광원칙주의자인 에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하겠지.


막부군이 이긴다면 반란군은 숙청되겠지만

만약에 반란군이 이긴다면

라이덴 쇼군은 자신의 선택을 다시 고민해 볼지도 몰라.


자신의 신념을 대변하는 이들이 결투에서 패배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코코미를 비롯한 반란군은 개길 수 있는 거야.

쇼군이 참전하면 전투는커녕 대학살이 일어날 게 뻔하지만,

쇼군이 없는 막부군이라면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덧붙여서 이건 지금까지의 추측보다 더 뇌피셜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안수령 사건 이후의 이나즈마에서

어전시합이나, 비슷한 무력에 의한 의사 집행은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 글의 주제와 더불어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했던 이 장면을 보자.


패배자의 신의 눈을 들고 나타난 낭인이

번개신의 무적의 일태도를 받아내며

잠깐이지만 '번개'의 힘을 가진 신의 눈이 각성한다.


어지간히 스토리를 주의 깊게 읽었어도

도저히 개연성을 찾기 힘들었던 이 장면이 내포하는 것은 아마



불굴(不屈).


인간은 쉽게 패배한다.

생명이란 약하고, 베어낸 다음에는 돌이킬 수도 없이 덧없다.



하지만



패배는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라이덴 에이는 이미 한 번 패배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다시 도전하는 걸 포기했다.



강자의 질서에 순응하고,

백성들의 '염원'에 응답하는 걸 멈추었다.


하지만 대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잠깐의 합에서 그 대답이 전달된 것이다.

친우를 잃고, 나라를 등지고 패주한 뒤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에서



죽음도 끊을 수 없는 불굴의 의지를.


그리고 


진정한 번개신의 인정을.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라이덴 에이는 정말로 많은 면에서 바뀌게 된다.



육체이며, 조력자인 쇼군이 불안을 느끼게 될 만큼.



아마 그 불안은 현실이 될 것이다.


하지만 괜찮을 거다.



몇 번을 베어내도 염원은 이어진다.

패배하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선다.



언젠가 폭정에 맞서게 되는 건

수천수만의 의지가 담긴 꿈(夢想)일 테니까.




요약하자.


1. 이나즈마의 내전은 그 자체로 거대한 어전시합이라 볼 수 있다.

2. 무와 원칙을 숭상하는 에이는 결투의 과정에 관여할 수 없다. 이것이 와타츠미가 살아남은 이유이다.

3. 카즈하와 대면하는 시점에서 에이는 사람들의 염원을 느끼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