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genshin/65108363 : 1부

 

전 글에서 이어지는 내용임. 좀 많이 늦은 것 같긴 하지만.

 

현실의 1차 산업 혁명을 보고 그것이 어떻게 폰타인에 반영될 지에 대한 내용을 알아봤는데, 이것만으로는 완벽하게 분석했다고 할 수 없음. 왜냐하면 1차 산업 혁명 시기의 기술 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기술을 폰타인이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따라서 이번에는 2차 산업 혁명을 살펴보도록 하고, 다음 글에선 이 두편의 글을 토대로 폰타인에 대하여 예측해 보도록 하겠음.

 

전 글에서는 2차 산업 혁명을 19세기 중순 ~ 20세기 초라고 정의했는데, 엄밀히 하자면 2차 산업 혁명의 시작과 끝은 정의하는 사람마다 다 기준이 다름. 1차 산업 혁명에 이어져서 내려오는 과정이라, 산업 이전 사회에서 1차 산업 시기의 차이만큼 1차 산업 혁명과 2차 산업 시기의 차이가 급격하지는 않기 때문임.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차이는 심해졌으나, 1차 때 만큼 빠르지는 않았거든.

 

 어찌하였던, 일단 19세기 ~ 20세기 초반의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2차 산업 혁명을 알아보자.


A. 석유

 1차 산업 혁명 시기(이하 1차)의 기계를 위한 주된 연료는 석탄이었음. 정제하기도 쉽고, 생산도 비교적 쉬웠음. 하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고(화력이 떨어지고 같은 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해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함) 효율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으며, 나중에야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석유에 비해 불순물이 많아 오염물질을 더 많이 배출하는 문제도 있음.

 

 2차 산업 혁명 시기(이하 2차)에서는 석유가 연료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함. 석유는 액체라서 석탄보다 더 많이 실을 수 있었고, 화력도 효율도 석탄보다 뛰어난 연료였으니, 석유를 본격적으로 채취할 수 있게 된 시기부터 차차 주력 연료가 석탄에서 석유로 변환되는 것은 당연한 일임.


일단 석유를 얻기 위해선 19세기 초반까지는 탄광에서 광물 사이에 흐르는 원유를 채취하는 것이었음. 추출된 원유는 가연성이긴 하지만 불순물이 상당히 많은데, 이를 그대로 사용하다간 석유 내부의 이물질로 인해 기관이 금방 망가져 버리게 될 것임. 따라서 원유를 정제하여 사용할 수 있는 연료로 가공하여야 함.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영국의 화학자 제임스 영이 1850년 분별 증류법을 개발하면서 가능하게 됨. 석유는 여러 성분이 섞여 있는 혼합물인데, 이 물질 간의 끓는 점이 다 다르고, 찌꺼기는 고체이니 침전되게 됨. 석유를 끓여서 온도마다 증발하는 물질을 단계적으로 추출하면서 다른 성분의 연료를 추출해 내는 것이 바로 분별 증류라고 볼 수 있음.


분별 증류


 근대적인 연료로서의 첫 사용은 1859년 미국의 에드윈 드레이크(Edwin Drake)가 처음으로 현대적인 석유 채취를 성공함으로서 시작되었는데, 기존의 광물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원유를 조금씩 채취하는 것이 아닌, 지금 석유하면 생각나는 물건인 시추기를 사용하여 대량으로 석유를 뽑아내는 형태가 정립되며 석유의 생산이 시작되었음.


에드윈 드레이크의 첫 근대적 석유 시추기


 처음으로 사용된 석유의 종류는 등유였음. 등유를 사용한 석유 램프가 19세기 중반부터 보급되기 시작하며, 인류는 어둠을 극복할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됨. 왜냐하면 기존의 발광원이라면 어둡고 위험한 촛불류, 고래기름을 쓰는 아르강등 등 단점이 극심하거나 위험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결국 해가 지면 더이상의 경제적 활동이 곤란했는데, 그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한 것임.

 

 이후 가스 엔진이라 불리는 가솔린 엔진의 전신이 독일의 니콜라우스 오토(Nikolaus August Otto)에 의해 1872년 상용화되었고, 1885년 현대적인 가솔린 엔진을 장비한 최초의 자동차가 벤츠와 다임러에 의해 개발되며, 20세기가 되며 휘발유 자동차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음. 또한 1897년 독일의 루돌프 디젤(Rudolf Disel)이 경유를 연료로 한 디젤 기관을 개발하면서 석유는 산업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게 된 것임.

 

 

B. 전기

 전기에 대한 연구 자체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지만,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였는데, 1800년 볼타 전지가 개발되며 전류를 생성해낼 수 있게 되었고, 1831년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법칙이 정립되면서 물리적 힘을 전기로 바꾸거나, 또한 이를 반대로 사용하여 전기를 통해 물리적인 힘을 가할 수 있게 되면서 전기를 사용한 각종 기계들이 등장하게 됨.


볼타 전지와 최초의 전동기(모터), 모터 자체는 1821년 개발되었는데, 제대로 된 물건은 1860년대 지멘스가 개발함


 1879년 그 유명한 에디슨이 전구를 실용화하고, 에디슨의 회사가 1882년 처음으로 민간 가정에 직류 전기를 송전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기가 미국을 시작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1886년 최초의 건전지가 개발되면서 휴대용 전자제품의 보급이 시작되었고, 이후 전기는 인류 사회에 있어서 필수적인 물건이 됨.


가스등의 경우, 비록 광량은 뛰어났지만 가정집까지 보급되기엔 시설도 크고 부담스러웠으나, 전구는 적은 부담으로 뛰어난 광량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음. 그 외에도 전신은 먼 거리 간의 빠른 통신을 가능하게 함으로 정보 전달의 가속화를 가져왔고, 전기를 사용하는 여러 전자제품은 가사노동의 부담을 줄여주었으며, 축음기로 인하여 음악의 발전 역시 가속화 되는 등 전자 제품의 발달은 단순히 공학적 발전 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됨.


참고로 에디슨은 전구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했었는데, 알다시피 에디슨은 전구를 직접 개발하지 않았고 자금력을 이용해 상용화시킨 것에 불과함. 실용성 있는 전구 자체는 1860년 영국의 조지프 스완이 개발했는데, 이것을 에디슨이 가로챈 것임. 물론 이것이 에디슨의 명성에 큰 흠을 내기는 했어도, 에디슨이 전구의 실용화가 가능하도록 전구를 개량한 것이나, 전기 사용을 위한 근대적인 인프라를 구축한 것, 에디슨이 전구 외에도 축음기, 장거리 전화, 냉장고 등 다양한 전자 제품을 개발했으며, 미국의 전기 보급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긴 함.



C. 통신

전신에 대해 위에서 잠시 이야기 했는데, 전기를 사용한 통신 자체는 19세기부터 시도되어왔고, 1831년 미국의 물리학자 조제프 헨리(Joseph Henry)가 처음으로 기본 원리를 확립했고, 1845년 이 아이디어를 가로 챈 미국의 화가 새뮤얼 모스(Samuel Morse)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근대적 전신망을 설치 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보게 됨. 




모스 부호는 아주 간단한 체계임. 기본적으로 0과 1의 정보만 전송할 수 있으며, 신호의 길이에 따라 신호의 의미를 구분하고 이를 알파벳으로 바꾸어 해석하는 방식임. 예를 들어 알파벳 'S' 는 (. . .) 로 나타내고, 알파벳 'O'는 (ㅡㅡㅡ) 로 나타내니, 만약 조난을 당해서 'SOS' 신호를 보내야 한다면 (. . . ㅡㅡㅡ . . .)를 치면 되는 것임.


그 전까지 정보를 멀리 전달하기 위해서는 직접 정보가 적힌 문서를 가지고 마차나 철도 등을 사용하여야 했었고, 그나마 빠른 방법이 비둘기를 이용한 전서구였는데, 이젠 정보의 전달을 빛의 속도로 할 수 있게 된 것임. 따라서 근대적인 신문을 통하여 처음으로 제대로 된 속보를 보낼 수 있었음. 


단 이러한 체계는 전선의 연결이 필요한 유선 전신이었고, 무선 전신은 좀 더 시간이 흐른 1890년 이탈리아의 마르코니가 개발하였는데, 전기 방전을 통해 모스 부호 형태의 전자파를 발생시켜 그것을 수신하는 방식이었음.


무선 전신이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바로 해운이었음. 증기선의 개발로 원양 항해가 쉬워지고, 이에 따라 멀리 떨어져 있는 선박 간의 연락이 곤란해졌는데, 무선 전신을 통해 선박간의 교신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훨씬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항해가 가능하게 된 것임. 


그 다음으로 개발된 물건은 부호화 된 문자가 아닌 소리 자체를 전송하는 전화였음. 전화 자체는 안토니오 무치나 필립 라이스 등 벨 이전에도 여러 발명가들이 지속적으로 개발한 물건이었으나, 특허를 내고 실용화한 사람은 바로 그레이엄 벨임. 무치의 특허를 가로채고 소송에 승소해서 좀 더러운 방식으로 특허를 가져오긴 했지만, 어찌 되었던 벨은 최초의 전화기인 자석식 전화기를 실용화 하는데 성공하게 됨.


그레이엄 벨이 실용화한 첫 전화기


초기의 전화기는 사용하기 조금 불편한 형태였음. 일단 이 전화기는 따로 전원을 연결할 필요는 없고, 전화를 걸기 전 레버를 통해 발전기를 돌려 통화에 필요한 전류를 발생시켜 통신선을 통해 교환수에게 신호를 보내면 교환원이 전화를 연결해주는 방식임. 전화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원시적인 형태의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었는데, 소리 자체를 아날로그 형태의 전기 파형으로 전환하여, 그것을 통신선으로 전달하여 이를 다시 전자석에 흘려 전자석을 진동시키고, 이 진동이 곧 수신원에서 나오는 소리가 되는 것임.


따로 전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 지금도 비상 상황 대비용으로 쓰인다고는 하는데, 어찌되었던 전화 한번 하겠다고 레버 빙빙 돌리고 있는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긴 함. 따라서 간단하게 전화를 전송하는데 필요한 전력을 외부에서 공급받게 개량되었고, 이후 전자석을 사용한 자동교환기가 개발되게 됨. 참고로 이 자동교환기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 좀 웃김.


1889년 전화가 실용화 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미국의 장의사였던 알몬 스트로저(Almon Strowger)는 자신의 일거리가 갑작스럽게 계속 감소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이 이유가 바로 교환원의 남편도 장의사라 고인이 생기면 전부 자기 남편에게 일거리를 몰아주도록 전화를 조작했기 때문인 것을 알게 됨. 이에 화난 스트로저가 교환소를 찾아가나, 막상 거기 사장이 교환수 남동생이라 묵살당하게 됨.


결국 분노가 끝까지 치민 스트로저는 전자석을 이용한 자동 전화 교환기를 개발해서 이 부패한 교환수들은 물론 모든 전화 교환수를 실직자로 만들어 버렸다고 함. 참고로 자동 교환기를 위해 전화번호와 전화 다이얼 역시 이 시기에 고안된 것임.


참고로 지금 소개하는 모든 전화는 전부 유선 전화로, 무선 전화가 실용화 된 것은 2차대전 끝나고 한참 뒤라서 이 글에서 다룰 내용은 아님.


D. 교통

철도가 실용화 되었고, 상술했듯이 19세기 말에 개발된 근대적인 자동차는 이후 20세기부터 마차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게 됨. 물론 당시에는 자동차의 가격이 아직 상당히 비쌌으며, 이것이 낮아져서 중산층도 차량의 구매가 가능하게 된 것은 2차 대전 끝나고 현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20세기에도 마차는 일단은 남아있긴 했음.


여기서 잠깐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의 구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음. 가솔린 엔진은 기본적으로 흡기 -> 압축 -> 폭발 -> 배기의 4단계로 작동하게 되며, 엔진의 구조에 따라 크게 2행정과 4행정으로 나누게 됨.

- 2행정은 흡기와 배기, 폭발과 압축을 한번에 하는데, 한번의 사이클에 1회전을 하게 됨. 내구성과 연비는 떨어지지만 힘이 좋고 구조가 간단한 장점이 있음. 

- 4행정은 4개의 단계를 차례대로 밟아가는 형태로, 한번의 사이클에 2회전을 하게 됨. 엔진이 커지고 힘 자체는 2행정보다 떨어지지만 연비가 좋고 내구성이 좋은 장점이 있음.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과 흡사한 구조와 작동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크게 저속의 정압 사이클 엔진과 고속의 복합 사이클 엔진으로 나누어짐. 디젤 엔진은 휘발유 엔진과는 하나 크게 다른 점이 있는데, 가솔린 엔진은 폭발 과정에서 직접 스파크를 이용해 연소를 일으키는 반면에, 디젤 엔진은 압축 착화를 통해 연소를 일으킨다는 것임. 기체가 압축되면 밀도가 올라가며, 기체의 온도가 상승하게 되는데, 이 때 경유의 연소 온도는 휘발유의 그것보다 낮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도 연소가 발생하게 됨.


가솔린 엔진의 2행정과 4행정


참고로 19세기에 증기자동차를 처음으로 개발한 영국은 20세기 초반까지 자동차 역사에서 사라지는데, 이 이유는 영국의 최초의 교통법이자 악법인 적기조례가 그 원인이었음. 증기자동차가 개발 된 이후 실직을 우려한 마부들은 증기 자동차의 위험성과 소음 등을 빌미로 영국 의회에 로비를 하여 자동차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만들게 됨.


이 수준이 어느정도였냐면, 일단 자동차가 마차와 만나면 무조건 정지해서 마차를 먼저 통과시켜야 했고, 최고 속도는 2mph(3km/h)로 제한되어 걷는 속도보다 느리게 달려야 했고, 결정적으로 증기자동차인데 증기를 뿜으면 안되어서 사실상 증기 자동차는 봉인된 상황이었음. 이에 영국 자동차업계는 망해버렸고, 이후 미국과 독일이 내연기관을 사용한 근대적인 자동차를 개발할 때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추태를 보이게 됨.


 철도 역시 발전을 하게 되는데, 전기의 발전으로 전기로 가는 철도가 등장하게 됨. 초기 전기 철도는 배터리를 사용하려고 했는데, 아직 전지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가능 했었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철도 옆에 전기가 흐르는 추가적인 레일을 설치해 전력을 공급받는 제3궤조집전과 철도 위에 전선을 늘어놓아 전기를 공급받는 가공전차선이 개발되었고, 이를 사용한 최초의 전기기관차가 1879년 독일의 지멘스에서 개발되었음. 


이후 1881년 전기 트램이 개발되었으며, 1885년 미국에서 일반 철도의 첫 운영이 시작되었고, 1905년 런던의 도시철도(지하철)에 도입되었고, 1910년대 이후 도시간 간선철도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하였음. 참고로 최초의 지하철인 영국 지하철은 1860년대 개통하였기 때문에 맨 처음에는 증기기관차를 사용하였는데, 이러면 터널 안에서 질식할게 뻔하기 때문에 터널의 윗 부분을 뚫어놨었음. 


20세기가 되면서 새로운 교통수단도 하나 생겼음.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개발한 것임. 최초의 비행기인 플라이어호는 겨우 12초 동안 몇 미터 비행하는 수준이었으나, 이후 항공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게 되며, 1차 세계대전에서 처음으로 군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며 공군이 발생하게 되었음.


물론 초기의 항공기들은 크기도 작았고, 속도도 지금의 고속철도보다 느린 경우가 많았으며, 여압도 안되어 타는 것이 고역이었음. 항속거리도 짧아서 이걸 타고 타국으로 여행을 하거나 대양을 횡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고, 이 때 까지 국가간의 이동은 지상으로는 철도, 해상으로는 증기선에 의지하는 상황이었음. 이후 항공기가 국가 간 이동의 주역이 된 것은 2차 대전이 끝나고 제트 엔진이 민간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라, 이 글에선 더 이상 다루지는 않겠음.



지금까지 2차 산업 혁명 시기 산업과 기술의 발전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봤음. 보다시피 몇몇 내용은 아무리 폰타인이라 하더라도 원신에 나오기 곤란한 것도 있는 것 같고, 티바트에선 경쟁력이 영 떨어지는 기술도 있긴 함. 전 글에서도 이야기 하다시피 지구와 티바트는 다른 세계의 법칙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티바트에서도 무조건 일어난다고 보기 힘듬.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산업 혁명과 근대 기술이 어떻게 폰타인에 반영되는지를 지금까지 인게임에서 나왔던 폰타인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예측해보도록 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