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궁전과 꿈을 꾸는 자에 관한 이야기
여인은 매일 밤 머나먼 궁전에 관한 꿈을 꾸었다. 수많은 코너와 아케이드 그리고 복도가 이 복잡한 건축물을 이루고 있었다. 모든 복도의 끝에는 금테를 두른 은거울이 걸려있었다. 듣기론 국왕은 200년(당시의 역법으로 계산하면 여기에 6년을 더해야했다)을 들여 이 궁전을 설계했으며 왕좌에 앉아 거울을 바라보면 정교하게 기획된 구불구불한 빛의 길을 따라 왕국의 곳곳을 속속들이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꿈속에서 그녀가 복도 끝에 걸린 거울 앞에 선 순간,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건 흐릿한 자신의 그림자뿐이었다. 화려한 옷차림에 가면을 쓴 여인이 아름다운 복도를 지나는 모습은 환한 대낮의 뜨거운 햇살 속에서 더 반짝였다. 그녀는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국왕을 알현해 그에게 무언가를 아려줘야 했다. 그것은 그녀가 이성으로 누를 수 없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난 순간, 결국 내뱉지 못한 그 말은 꿈에서 봤던 거울 속으로 아련하게 사라지곤 했다.
1년이 흐르고, 2년이 흐르고 여인은 매일 똑같은 꿈을 꾸엇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왕좌로 통하는 길을 찾지 못했고 국왕을 직접 만날 수도 없었다. 거울속에 비쳤던 소녀는 어느새 세상에 이름을 떨친 유명한 마법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짧은 꿈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의미 없는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환상같은 그녀의 의지는 여전히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머나먼 그 나라에 관한 단서를 찾게 되었다. 마법사는 모두 부러워하는 명예를 버리고 혼자 여행길에 나섰다. 은은한 달빛을 넘어, 어두운 골짜기를 넘어, 도착한 칠흑 같은 밀림의 깊은 곳에서 그녀는 드디어 꿈속의 그 왕국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왕국은 이미 몇백 년 전, 화재로 전부 불타버린 상태, 과거 화려했던 왕국은 이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시에서 말한 것처럼 말이다.

사라진 아침 바람은 이미 잊히고,
하늘은 결국 노을과 노랫소리를 전부 집어삼켰네.
남은 것이라곤 탑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미약한 불빛뿐,
그 불빛만이 황량한 성의 긴 밤을 지켜주는구나.

그녀는 궁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너진 담벽들 사이에서 발견한 금테 은거울은 이미 산산이 조각난 상태고 그 조각은 먼지 더미 속에 흩어져있었다. 차가운 달빛이 거울 조각에 반사되어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궁전은 그녀가 꿈속에서 봤던 것처럼 크지도, 괴이하지도 않았다. 코너를 몇 번 돌고, 복도 몇 개를 지나고... 여인은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왕좌가 있는 방의 대문을 열었다. 그것은 고리 모양의 대청, 수백 개의 거울이 돌로 만들어진 벽 위에 걸려있었다. 복도에서 봤던 거울과 마찬가지로 그중 대부분은 이미 파괴된 상태, 하지만 마법사는 천천히 수백 년 동안 텅 비어있던 왕좌를 향해 걸어갔다. 왕좌에 앉은 마법사는 여전히 온전하게 남아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 화려한 옷차림에 가면을 쓴 여인이 아름다운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파괴된 거울은 그런 여인의 일천 개의 그림자를 담아내고 있었다.
흠칫 놀란 마법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가면을 쓴 젊은 여인이 바로 그녀 앞에 선 채 조용히 마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인의 눈빛은 그녀가 짐작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슬픔이 담겨있었다. 마법사가 무언가를 말하려던 순간, 여인이 비수를 그녀의 심장에 꽂아 넣었다. 장미처럼 붉은 피가 날카로운 칼날을 따라 천천히 퍼져나갔따. 이때 주위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몇백 년 전 전소된 왕궁을 다시 잠식했다.
그녀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 놀라움, 안도감 등 온갖 표정들이 전부 담겨있었다. 싱긋 미소 짓던 여인이 가면을 벗었다. 가면 아래에는 마법사와 똑같은 얼굴이 숨어있었다. 바싹 마른 여인의 입술이 살짝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마법사는 여인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수십, 수백 년을 넘어 이제는 아련한 꿈이 되어 태양과 함께 사라진 말들... 그 이야기는 수천, 수만 개의 거울 조각에 반사되어 영원한 메아리를 이루고 있었다...


아니 뭔소린데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