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념글에 올라온 푸리나의 모티브가 예수라는 글 보고 씀

https://arca.live/b/genshin/91230898

근데 그리 연관은 없을지도



1. 클로린드의 유래

클로린드(Clorinde)의 이름에는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음.

이 이름의 유래는 클로린다(Clorinda)인데, 한 고전작품의 등장인물임.

그 고전작품이란,


16세기 이탈리아 시인 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가 쓴

『해방된 예루살렘(Jerusalem Delivered)』이라는 서사시임.

예루살렘 탈환을 두고 일어났던 제1차 십자군 원정을 소재로 하는데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더해 기독교 시점에서 무슬림의 횡포에 대한 보상심리가 담긴 작품이라

오랜 기간 유럽 전역에서 대흥행함.



2. 정의로운 인물상

이 이야기에는 3명의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소프로니아(Sofronia), 에르미니아(Erminia) 그리고 클로린다(Clorinda)임.

클로린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기독교 신자인 두 연인 소프로니아와 올린도는 기독교 탄압 과정에서 무슬림들에게 범죄자로 내몰려  처형대에 서게 됨.

부당한 죽음으로부터 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타나는게 클로린다의 등장.

위 그림에서 말 탄 여기사가 클로린다임.


클로린다는 무슬림임에도 기독교인을 이런 방식으로 고로시하는게 옳지 못하다 생각하고,

사상적으로 대립관계라 할 지언정 종교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기독교인을 구하는 장면은

클로린다가 기사로서 긍지가 높고 정의로운 인물임을 시사함.


2막에서 클로린드는 자신과 이념이 다른 나비아를 억울한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나타남.

물론 정말로 이념적 대립을 한 건 아니지만

2막 시점에서 푸리나 호위무사인 클로린드와, 폰타인의 심판문화를 싫어하고 푸리나를 의심하는 나비아의 위치는 충분히 대립관계임.

또 자신과 결투를 벌이다 패배했음에도 칼라스의 명예를 존중하여 그의 유언을 기억해주기도 했지.



3. 결투 대리인

클로린다는 한 전투에서 갈릴리의 왕자였던 탄크레디(Tancredi)의 눈에 들게 됨.

탄크레디는 그녀에게 연심을 품었음.

그림 왼쪽에 바보같이 칼 내려놓고 멍하니 클로린다를 바라보는 순애남이 탄크레디.


그녀와 싸우기 싫었던 탄크레디는 그녀가 '결투'에서 다치지 않도록,

왕자로서의 권한을 이용해 일부러 실력이 약간 낮은 기사들을 결투에 내보냈고,

클로린다는 매 결투에서 이기며 용맹함을 과시함.


여기서 말하는 결투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함.


중세유럽에 존재했던 결투재판(Trial by combat)이란 것이 있음.

법에 의한 심판을 거부하고 직접 칼을 맞대어 누가 옳은지를 판가름하는 것.

책상머리에 앉아 책만 바라보는 문과들의 판단보다 자신들의 무예를 더 중시하던 기사들의 성향이 한몫함.


무예 실력이 없는 일반 시민은 대신 결투를 뛰어줄 '대리인'을 변호사처럼 선임할 수 있었는데

이 결투재판에서 성적이 좋은 유능한 싸움꾼을 가리키는 말이 챔피언(Champion)임.

현재 스포츠에서 쓰는 챔피언의 유래이기도 함.


클로린다 이야기에서 말하는 '결투'는 당시 존재하던 이 결투재판을 어레인지한 개념으로,

이슬람과 기독교의 왕이 자기 휘하 기사를 한명씩 매칭해 싸우게 하는것으로

이야기 속에서 다루고 있음.


실제 역사에서 이슬람에는 결투재판이 없었고 오히려 야만적이라며 예수쟁이들을 욕했음.


폰타인에서 심판을 거부한 자는 결투해야 한다는 문화와 클로린드의 신분은,

실존했던 결투재판과 거기서 영감을 가져온 클로린다 캐릭터를 모티브로 한 것 같음.


또 신의 호위기사가 결투 대리인을 맡는다는 설정에 대해서는

실제 결투재판 역시 종교적 의미를 담은 문화인데

"신은 누가 올곧은 사람인지를 알 것이니 결투의 승패가 곧 신이 증명해주는 것과 같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


물론 원본에서 클로린다는 굳이 따지면 탄크레디가 승부조작을 해준 거지만,

클로린다 자체가 꽤 능력있는 여기사로 묘사되는 것도 사실임.



4. 푸리나와의 관계

푸리나는 클로린드를 신뢰하고,

클로린드도 푸리나의 호위기사였으며

인간이 된 푸리나의 집에 가장 먼저 찾아간 인물 역시 클로린드임.


무슬림 모티브 캐릭터가 예수 모티브인 푸리나와 긴밀한 관계인 것이 아이러니한데

사실 원본 이야기에서 클로린다는 결국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는 입체적 인물임.


클로린다는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 탄크레디의 손에 사망하는 비극을 맞게 됨.

어두운 밤 서로 얼굴을 못알아보는 상황에, 무슬림-기독교 사이에 전투 중

탄크레디가 찔러버리고 절규하는 슬픈 씬임.


클로린다는 죽기 전, 기독교인으로 죽고싶다며 자신에게 세례를 내려달라고 함.

그녀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탄크레디가 머리 위에 물을 뿌려주는게 위 그림.


즉, 클로린다는 기독교인으로서 생을 마감하고

위에 묘사된 것처럼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하늘로 올라가는,

기독교적 죽음을 맞게 됨.


기독교라는 키워드 외에는 푸리나와의 연관성에 대한 레퍼런스가 별로 안보임.

플블 출시되어야 뭐가 더 보일듯.



5. 클로린드의 복장

클로린다(Clorinda)라는 이름은 현실에서 꽤 쓰이지만,

여기서 유래한 클로린드(Clorinde)는 인명보다는 배의 이름으로 씀.

특히 프랑스에서 많이 씀.


프랑스에 이 이름을 가진 함선이 꽤 있는데

그 중 최초가 되는건 1801년 데뷔한 프랑스 해군 군함임.


이 배는 안타까운 역사가 있는데

데뷔하고 불과 1년 뒤인 1802년, 프랑스와 영국 간에 있었던 산토 도밍고 봉쇄전에서 영국 해군에 패배하고 배를 빼앗김.

영국은 도발적이게도 클로린드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며 영국군의 배로 계속 사용함.


이후 1808년 프랑스는 더욱 발전된 형태로

클로린드라는 이름의 새로운 함선을 만듦.


그리고 1814년 영국군 함선에 1:2로 다굴 맞고 또 뺏김.

영국은 또 도발하긴 좀 그랬는지 이름을 오로라(Aurora)로 세탁해줌.


아무튼 프랑스는 이 이후로도 클로린드라는 이름을 계승하는 여러 후속기들을 계속 만들었고,

마지막 클로린드가 퇴역한 1991년까지, 나름 프랑스 해군의 일선에서 활약한 이름임.


참고로 클로린드라는 이름의 잠수함도 있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이름을 정말 좋아하는듯


해군을 연상시키는 제복과 총


리본에 그려진 포세이돈의 삼지창


그리고 최초 유출 시의 이름이었던 '캡틴'이 대충 여기서 온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