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겜에 스발란케란 이름이 나온다길래 그 원전인 마야 신화의 한 에피소드를 소개해보려고 함.


우선 마야 문명의 신화는 아즈텍보단 보존 유물이나 자료가 부족해서 아직 많은 신들이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황임.



그나마 16세기경, 과테말라 마야 문명의 '끼체족'이란 사람들이 '포폴 부'라는 서사시를 남겼고, 이 서사시를 통해 마야의 신화를 어느정도 엿볼 수 있음.


이 서사시는 쿠쿨칸의 천지창조와 인류의 탄생, 그리고 해와 달이 된 쌍둥이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음.


스발린케는 이중 해와 달이 된 쌍둥이 이야기속 주인공임.


일단 해당 이야기는 다음과 같음.



머나먼 옛날. 세상에는 물로 가득한 지하세계 '시발바'(Xibalba)가 있었다.


시발바에는 수많은 악신과 악마들이 있었으며, 그 지배자는 운-카메(Hun-came, 첫번째 죽음)와 부쿱-카메(Vucub-came, 일곱번째 죽음)라는 두 죽음의 신이었다.


한편, 지상에는 공놀이에 뛰어난 두 쌍둥이가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운-우나푸(Hun-Hunapu)와 부쿱-우나푸(Vucub-Hunapu)였다.



이들은 공놀이로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지하세계의 신들을 짜증나게 만들었고, 화가 난 시발바의 신들은 이들에게 공놀이 승부를 제안했다.

(마야 문명권에서 공놀이는 단순 스포츠가 아닌 신을 모시는 제의나 마찬가지였다.)


문제가 있다면 시발바라는 환경 그 자체였다.


시발바는 발을 들이는 자에게 온갖 시련을 내릴 뿐더러 가는 길조차 혼돈이었다.


시발바로 가기 위해선 전갈이 우글거리는 강, 물이 아닌 피가 흐르는 강, 고름이 흐르는 강을 건너야 했다.


세 강을 건너면 시발바의 신들이 모인 만마전이 나오는데, 이곳엔 방문객을 조롱하는 모형이 가득할뿐더러 방문객이 앉아야 할 의자는 뜨겁게 불로 달궈져 있었다.


이렇게 온갖 시련에 진이 빠진 쌍둥이는 결국 공놀이에서 패배했고, 신들은 이를 조롱거리로 삼고자 쌍둥이를 죽인 뒤 운-우나푸의 머리를 잘라 사람 머리 모양 열매가 열리는 나무에 매달았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스큅이라는 여신이 운-우나푸의 머리를 매단 나무에 가까이 갔다, 운-우나푸의 머리가 뿌린 수액을 맞아 임신하는 사건이 터졌다.



시발바의 신들은 그녀가 남자와 몰래 만난 줄 알고 올빼미를 불러 그녀를 죽이고자 했다.

(중앙아메리카에서 올빼미는 죽음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스퀵에 설득에 올빼미는 그녀가 인간 세상에 도망가도록 놔두었고, 수액을 뭉쳐 스퀵을 죽인 뒤 그 심장을 챙겨왔다고 거짓으로 고했다.


무사히 도망친 스퀵은 쌍둥이를 낳았다.


그 이름은 우나푸(Hunapu)와 스발란케(Xbalanque)였다.


형 쪽인 우나푸가 좀더 체격이 좋고 키가 커서 구별되었다고 한다.


성장한 형제는 폭풍의 신 '우라칸'(Huracan. 하늘의 중심)의 명을 받들어 여러 과제를 해결하고 다녔다.

(이 우라칸은 아즈텍에서도 숭배된 신인데, 그쪽 동네에서 동일시한 신이 바로 테스카틀리포카다.)


해와 달을 사칭한 괴조 '부쿱 카퀵스'(Vucub Caquix. 일곱번째 앵무새)

악어의 형상을 한 악마 지팍나(Zipacna)


산을 무너뜨리는 지진의 신 카브라칸(Cabracan)이 이 쌍둥이가 해치운 대표적인 괴물들이다.


이후 쌍둥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공놀이를 했는데, 시발바의 신들은 다시 공의 울림이 들리자 당황했다.


우나푸 형제의 자손까지 죽이고자, 시발바의 신들은 다시 도전장을 보냈다.


그러나 우나푸와 스발린케는 아버지와 달리 훨씬 영리했다. 자신을 조롱하는 모형 사이에 진짜 신이 섞이 걸 알아맞히는 건 물론이고 자신이 앉을 의자가 뜨겁게 달아오른 것까지 눈치챘다.


그러자 신들은 시발바의 시련을 내렸다. 


시발바에는 시련을 위한 감옥이 가득한데, 암흑으로 가득한 어둠의 집, 추위로 가득한 한기의 집, 맹수로 가득한 재규어의 집이 그 예시였다.


쌍둥이들이 위의 시련을 통과하자, 신들은 이번엔 괴물 박쥐로 가득한 박쥐의 집에 쌍둥이를 집어넣었다.



쌍둥이는 바람총을 쏘며 박쥐와 싸웠으나, 가장 거대한 괴물 박쥐 '카마조츠'(Camazotz)가 우나푸가 방심한 사이 그 머리를 뜯어버렸다.


신들은 우나푸의 머리를 시합 때 공으로 쓰겠다고 조롱했다.


스발린케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동물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코아티가 가져온 수박을 형의 목에 붙여, 형을 임시로 살려냈다.


우나푸가 움직이는 것에 신들은 당황했으나 어찌되었든 시합이 시작되었다.


스발란케는 일부러 공(우나푸의 머리)를 경기장 밖으로 던져버린 뒤, 토끼를 불러 신들의 시선을 돌렸다.


그 사이 스발란케는 우나푸의 머리를 찾아 원래대로 몸뚱아리에 붙였고, 이후 공놀이는 쌍둥이의 승리로 끝이 났다.


애초에 신들은 쌍둥이를 살려줄 마음이 없었으므로, 그들을 불에 태워버린 뒤 그 재를 강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쌍둥이는 다시 살아나, 공연꾼으로 위장하고 다시 시발바를 찾아갔다.


스발란케는 우나푸를 죽였다 되살리는 방식으로 신들을 매혹한 뒤, 자신도 똑같이 해보라는 신들을 그대로 죽이곤 되살리지 않았다.


쌍둥이 형제는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했고, 시발바의 입구에서 나오는 순간 우나푸는 태양이, 스발란케는 달이 되었다.


쌍둥이는 이후 인간들과 관계해 400명의 자식을 탄생시켰으며 그 자식들도 이후 밤하늘을 수놓는 별이 되어 천공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이 우나푸와 스발란케 이야기는 마야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이야기였으며, 학자들의 연구와 복원이 계속되며 내용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마야와 3인의 용사>는 이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되었다.


다만 이야기의 분량을 위해 잉카와 아즈텍 신화도 섞였으며, 달라진 부분이 상당히 많다.



우선 최종 보스 역할인 '저승의 신'은 위의 운-카메와 부쿱-카메 대신 아즈텍의 사신 '믹틀란테쿠틀리'(Mictlantecuhtli. 애니 속에선 '로드 믹틀란'으로 등장.)로 바뀌었다.



로드 믹틀란의 최종 페이즈 모습은 쌍두사인데 이는 메소아메리카의 쌍두사 유물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며 작중에서도 위 사진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는 장면이 짧게 나온다.


로드 믹틀란이 부리는 병사들은 악마 대신 무려 콩키스타도르의 스켈레톤으로 변경되었다.



또, 저승의 여신 스퀵이 쌍둥이 형제의 어머니란 부분은 원전에서도 저승의 여신이자 믹틀란테쿠틀리의 아내인 '믹테카시우아틀'(Mictecacihuatl. 애니 속에선 '레이디 믹테'로 등장)이 주인공의 친모이자 조력자로 등장하는 걸로 일부 각색되었다.



원전의 중간 보스인 카마조츠, 카브라칸, 부쿱-카퀵스 모두 등장하나 셋 다 나중엔 주인공과 협력해 믹틀란테쿠틀리와 싸우는 역할로 등장한다. 오히려 원전에선 조력자로 나왔던 우라칸이 애니 속에선 악역으로 등장한다.


그 외 아즈텍의 신이나 메소아메리카 일대의 미신 속 존재, 카리브의 해적까지 중앙아메리카에서 나올만한 건 다 소재로 등장하니 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