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주의)

어느 날 노주의 한 양반 댁에서 건장한 사내아이를 출산하게 되니, 기골이 장대하고 울음소리부터 비범한 기색이 역력한 것이 마치 붕새와 같다하여 골붕(骨鵬)이라 이름 지었다. 골붕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배우는 재주마다 습득하는 데 이틀을 넘기지 아니 하였고, 학문에도 밝아 어린 나이에 사서삼경을 깨우치니 이를 보고 주변의 모두가 훌륭한 벼슬님이 될 것이라 칭찬하였다.


하지만 이런 골붕에게도 단점이 없지는 않았으니, 귀가 얇고 여복이 없어 그가 과거에 급제하여 임금 옆에서 십 여 년을 보필할 때까지도 훌륭한 배필 하나 얻지 못하여 시름하니, 임금이 이를 가엾게 여겨 그에게 점남품(占南品) 대개골(代塏骨)의 관직을 하사하며 고향 노주로 돌아가 평민의 목소리를 들어 살피고 좋은 배필을 얻어 살라 명하였다.


그러나 골붕이 노주로 돌아와 나랏일에 힘씀에도, 골붕의 입신양명에 자극 받은 양반집들은 죄다 살림이 좋아졌다 싶으면 너나 나나 짐을 싸 상경하기에 이르니 괜찮은 배필이다 싶은 처자가 있더라도 며칠 지나면 가족과 함께 떠나고 없었다. 때문에 노주에 양반 댁이라고는 골붕 댁과 그 옆 집 나 대감의 집뿐이게 되었으니, 골붕은 일이 끝나면 매일같이 나 대감과 술판을 벌이는 것밖에 달리 일이 없었다.


하지만 나 대감 댁에서 술판을 벌이는 일도 골붕에게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으니, 필시 나신(懦身)이라는 이름 그대로 나약한 기생오라비 따위의 풍채밖에 되지 않는 나 대감에게는 몹시도 과분해 보이는 지무가(地武加)라 하는 훌륭한 용모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라. 매일같이 술상의 시중과 담소를 나누어 본 지무가의 인상은 다만 지리에 어두워 보일 뿐 행동이 단정하고 고귀한 모습을 보이니 그야말로 현모양처의 상이더라.


결국 골붕은 애써 부러움을 참고서는 만취한 나 대감에게 “어찌하여 그리 좋은 배필을 얻었느뇨?”하고 물어보니, 나 대감이 대답하기를,

“나의 벗이여, 잘 들으시게. 사실 나의 아내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일세.”

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골붕은 이를 듣고 필시 좋은 아내가 없는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짐작하여 꾸짖으려 들었으나,

“우리 노주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알고 있는가? 그 곳에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산신령이 있는데, 그를 도와주면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잠깐 목욕을 하고 떠난다는 계곡까지 안내를 해줄걸세.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선녀의 옷을 훔치면 그녀는 하늘로 돌아가지 못할 테지. 그 다음부터는 자네의 노력에 달렸을 것이야. 우리 마을 김 씨와 박 장군도 내가 알려준 대로 하여 선녀와 결혼하고 살고 있다지.”


하며 술주정인 듯 아닌 듯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니, 골붕은 홀린 듯이 나 대감 집을 박차고 나가 평민 김 씨의 집안을 염탐하게 되건데, 과연 나 대감의 말대로 평민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귀여운 인상의 여인과 김 씨가 정답게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함께 식사를 청하니, 소소진(少甦眞)이라 하는 이 여인은 내조가 좋고 흥겨운 재주를 잘 부려 집안에 언제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하더라. 또한 그녀만 부릴 수 있는 신비한 요술 주머니를 가지고 있어 안에서 언제든지 만두, 탕후루 같은 음식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니, 김 씨의 건강과 생활고 문제도 해결되어 더 바랄게 없었다 하더라.


박 장군에 대해서는 한양에서도 자주 소문을 접하여 달리 확인할 필요가 없었으니, 그는 과거에 다소 무서운 인상의 연인과 혼인을 하며 일각에서는 그를 성능중(成能重) 또는 대개문(大蓋紊) 이라 우려하기도 하였으나 혼인 이후 고을 외곽의 쟁민(爭民)이라고 하는 오랑캐를 능히 토벌하며 매주 모의일보(募義一步)의 하사품을 받으니, 그 무서운 여인도 마찬가지로 선녀였다 하면은 그의 능력이 괄목상대해진 것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리라.


이윽고 해가 완전히 저물어, 골붕은 나 대감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믿고 노주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달려가니, 정말로 산짐승들밖에 없을 뿐일 곳에 신묘한 기운을 뿜어내는 어린 아이가 홀로 노닐고 있더라. 스스로를 고내리아(高來悧兒)라 칭하며 말을 걸어오는 이 아이는 정말로 산신령인 양 산짐승들을 부렸다 쫓았다를 반복하니, 그 모습이 솔직히 귀여운데 도와주면 다 퍼줄 스타일이었더라.

아무튼 고내리아를 도와 몇 번의 잡무를 해결하고 나니, 이윽고 고마움을 표하며 골붕에게 알 수 없는 문자로 적힌 종잇조각을 건네주는데, 이를 선인들은 선별 티켓이라 부른다고 하며

“원래 그대의 것……. 아무것도 아니오.”

라며 짧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 계곡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더라.


골붕은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배필을 그것도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뻐 한 걸음에 계곡까지 달려가던 중 어느 빛나는 해골을 발견하게 되니, 처음에는 그것을 수상히 여겨 다가가려 하지 않았으나, 그 해골이 갑자기 골붕을 보고 꾸짖기를,

“뉴비씹새들아 리세먹을거 존나 간단하게 설명함”

이라며 알 수 없는 말로 골붕의 관심을 끄는 데, 필시 이는 나 대감과의 대화에서는 없었던 상황인지라. 당황하여 그 해골을 망연히 보고만 있건데, 이윽고 그 해골이 이르기를, 남은 선녀들 중 지무유(地武劉)라고 하는 선녀야말로 최고의 배필감이라 하며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더라.


골붕 가만히 이를 듣고 있건데, 과연 이 해골이 하는 말이 적절해 보이는지라. 고이 해골을 모셔 들고 계곡까지 달음하니, 들은 대로 여러 선녀들이 바위 한 켠에 옷을 모셔둔 채 목욕을 즐기는 모습이 그야말로 황홀경이니 여기가 극락인가 하더라. 

골붕 이내 정신을 차리고 몰래 선녀들의 의복을 살펴보니, 다만 희한한 것은 이 선녀들이 입던 옷은 동양의 그것과는 달리 서양의 매이도복이라 칭하는 그것과 몹시도 닮아보였다는 것이다. 아무튼 여러 의복들 사이에서 지무유 이름 석 자가 쓰여진 것을 발견하게 되니, 고민도 하지 않고 그것을 훔쳐 멀찍이 달아나 다른 선녀들이 물러가기만을 기다리는 골붕이었다.


이윽고 목욕 시간이 끝나 자신의 옷을 찾아 먼저 귀천하는 다른 선녀들을 뒤로 하고 마침내 지무유라 하는 선녀 혼자서 당황한 채 남아있게 되니, 그 모습이 과연 가장 아름다운 선녀에 어울리는 자태이더라. 골붕은 매이도복을 품에 안은 채 나타나 자신과 결혼해주지 않으면 이 의복을 돌려주지 않겠다 협박하니, 지무유 이르되,

“그만하세요! 진짜 기분 나빠요!”

“친한 척하지 말아주세요.”

하며 진심으로 기분 나빠하는 것이 아닌가. 골붕 당황하여 고개를 숙이고 사정사정함에도 완고한 태도를 보이는 지무유를 보고 결국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니, 골붕의 말이라면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지무유였으나 지무가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이내 돌변하여 고분고분해 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이유도 모른 채 골붕은 일단 안심하여 지무유의 손을 잡고 하산하니, 이윽고 집에 당도하여 해가 떠오르기 전에 첫날밤의 거사를 치르고자 하였으나

“이런 차림 언니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라며 지무유 또다시 내빼는 태도를 보이니, 골붕 머리끝까지 피가 솟아올라 울그락붉그락해진 채로 방을 나가 이전에 주웠던 해골을 꺼내 소명할 것을 요청하니, 일전에 해골을 비추던 빛나는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그야 말로 껍데기만 남아 아무런 대답도 없더라.


그래도 선녀니까 함께 지내다보면 무슨 신묘한 능력이 있겠거니 가만히 지켜보고 있건데, 가끔씩 찾아오는 박동 잡목(搏動 雜木) 몇 번 잡아채는 것만 할 뿐, 틈만 나면 나 대감의 집에 찾아가 날이 새도록 집에도 돌아오지 않고 나 대감과 지무가를 곤란하게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주변을 둘러봐도 나 대감, 평민 김 씨, 박 장군 모두 아내와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갈수록 본인만 꼬운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 스스로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더라. 

계속되는 지무유의 가출에 관민들에게 집단속도 못하는 무능한 관리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은 덤이었으니, 이내 골붕은 얇은 귀로 자신의 정욕을 채우려고 섣불리 행동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머리를 삭발하여, 점남품 대개골의 관직을 내려놓고 노주를 떠나게 되었다 하더라. 


노주를 떠나는 골붕의 마지막 모습을 본 노주의 어느 시인은 골붕의 해탈한 표정이 마치 모든 욕망과 갈증이 다하여 비로소 높은 경지에 이른 자와 같았다고 평하며, 갈갈 고접(竭渴 高蝶)이라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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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덕겜 근-본 고전문학이 걸캎에는 없는거같아서 만들어봄


심심할때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