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님, 의무병 그루니에가 08소대에 도착했음을 보고드립니다.'


그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정직함과 올곧음 그리고 내가 보지못했을 상황을 헤어나온 이의 결의가 담긴 말투

지휘관으로써는 이런 병사가 듬직하고 또 필요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론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에 걸리기에 꺼림직했다.


'...다음부턴 그렇게 딱딱하게 대할필요는 없어.'

'아일랜드에선 작은 카페를 열어서 운영하고 있거든 그래서 모두가 날 점장이라고 불러' '그러니...'

'너도 나를 그렇게 부르렴'


그럼에도 그녀는 길고양이마냥 여전히 나를 쭈뼛하게 바라보는게 느껴졌다


'아, 그래 너는 사망한 사람이니까 이 기회에 새로운 사람이 되어보는건 어떨까?'

'예를 들면 이곳에 평범하게 들어온 점원이라던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속에선 그녀에게 대답을 강요하는 태도를 취해버렸다.

그렇다고 해줘, 난 더이상 병사를 만들기보단 사람을 만들고 싶어.


다행히 그녀는 알겠다고 했지만 예상하지 못 한 의문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제가 해야할 일이 뭘까요?'


이런, 너무 정직한 아이네 쉬고싶기도 할텐데 바로 자신의 역할을 찾다니


'글쎄... 혹시 요리는 할 줄 아니?'

다들 하는 일이 있었지만 주방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이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댔지만 정답이었던것 같다.

맑게 갠 표정속에 청량한 목소리가 들리고서야 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발걸음을 떼며 그녀와의 대화를 곱씹다 보니 

병상에서 일어서고 난 뒤로 줄곧 잃어버렸던 내면에 공간이 체워지는듯한 기분

발랄하게 돌아선 그녀의 발과 표정을 떠올리자 길을 잃은 헛소리가 무심코 튀어나왔다

'이기적인 제안이었어'


그 후 그루니에는 의무병으로써의 역활과 동시에 카페의 점원으로써 훌륭하게 맡은바를 다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지 않아도 그루니에가 다른아이들을 챙겨주기 시작하니 내심 어머니의 손길을 그리워하듯 나또한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졌다.

'지휘관으로써는 실격이구만'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 다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을때

머뭇거리는 몸짓과 얼굴로 모두에게 차를 대접하고 싶다며 그루니에는 내게 제안을 해왔고

나는 짧게 한숨을 쉬고 허가가 아닌 동의를 구했다

그녀의 대답은 또 yes.


마침 울린 손님의 경종과도 같이 마음이 흔들린다.


나와 몇몇 아이들은 별도의 숙소가 제공되어 그곳에서 생활했기에 왕왕 간식거리를 주거나 받았는데

그루니에가 오고나서 얼떨결에 그녀가 모두의 식사를 담당하기 시작해버렸다.

그만두게 하려 주방에 들어서려는 순간 웃는얼굴로 콧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엿보고 난뒤로 아무말 하지 않기로했지만


딱걸려버린 상황속에 역시나 그루니에는 내게 제일 먼저 의견을 물어보러 왔다.


'점장님?'

'혹시 점장님께서는 제가 요리를 대접해드리는게 싫으신가요?'

'입맛에 안 맞으시다거나...'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건 반칙이라고 생각해'


'네?'


'아냐, 그냥 혼잣말이었어.'

'네가 만든 음식은 내가 맛본음식중에서 가장 따듯했어 계속 맛보고 싶을정도야.'


'과찬이세요! 그렇게 좋아하신다니 저 정말 기뻐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우직하게 서서 지켜보는 느낌을 아마 그녀는 평생 모를거다.

저 아이는 전장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환자들을 돌보고 급하게 수술을 준비하려는 그녀의 손에 너무 많은 피가 묻었는데

어째서 자신은 둘러보지 않는걸까. 

창을 보니 비가내리기 시작했고 이 빗소리에 들리는 내 조급함은 부디 느끼지 말길 기도하고 기도했다.


'ㅇ..ㅅ...취'

계절이 옷을 바꿔입으려는 모양이다. 잠버릇이 한몫해준덕에 감기에 걸린것같은데...

걱정스레 옆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소녀가 그루니에가 아니길바랬지만 역시나

오후에 약을 사러가도 괜찮겠냐고 물어왔다.


'응... 부탁할게, 네것도 다른아이것도 부탁해 내가 둔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아니에요, 점장님은 충분히 저희들에게 많은 관심을 두고 계신걸요?'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황송하네요.'


'점장님도 참 그렇게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아, 참 오전에 본부에서 송신된 점장님의 검강검진 결과를 받았어요.'


'아, 그런일도 있었지? 충분히 난 건강한데 이상하게 다들 그 주제로 화제라니까.'


'점장님. 몸은 미묘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기때문에 사소한것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여야해요.'


'그러는 너야말로 자신의 몸을 신경쓰도록해 한창인 여자아이에게 듣기엔 아직 난 그리 늙지않았어.'


'하하, 점장님도 참 신경써주셔서 감사하지만 전 제 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답니다. 이정도는 괜찮아요.'


-쾅-

몸이 먼저 움직여버리는건 예나 지금이나 나쁜 버릇이란건 알았지만 큰일이다.

20여센치 정도나 차이나는 소녀를 구석에 몰아넣어버리다니 범죄 그 자체였지만 해야할 말은 하고싶었다.


'따듯하기 때문에 차가움에 대해 민감할 줄 아는법이야.'

'네가 날 깊게 보는 만큼 나도 널 깊게 보고 있어 쉬운사람은 아니지만 가끔은 날 의지해도 좋아...'

'설령 모두가 잠들어버린 새벽이라도 어깨정도는 양보해줄테니까.'


'점...장님?'


'미안해. 내가 좀 몽롱해서 그만 몸이 휘청거렸나봐.'

서둘러 간격을 벌리려고 했지만 그녀의 손이 나를 붙잡았다.


'이렇게 보니 점장님의 눈동자색은 참 맑네요.'


'그런가? 난 네 눈동자색에서 길을 잃는데.'


'네? 제 눈색이 이상한가요?'


그 순간 오늘 내일하는 세계의 존망보다 당장 앞에 있는 소녀의 입술이 중요한건 인간으로써의 아집이지.


조용히 포개진 둘사이의 간격이 침묵을 이끌었지만 그 아우성이 누구보다도 시끄럽게 속에서 두근거렸다.


'이제 알겠지? 너... 날 소중히 대한다면 놓지 말아줘.'

'누구보다 약하면서 손을 뻗는건 너답지만 그리 간단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많아'

'어떤 사람은 심각한 상황속에 담겨져있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타고난 운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해'

'우린 결국 인간이니까'


머리가 식기 시작하니 모든 상황이 부끄러워졌다.

진작에 그녀에 대한 마음은 알아차렸기에 지휘관으로써, 남자로써 거리를 두려고 했건만.


'점장님'


'어...응?'


'뭐 드시고 싶어요?'


'갑자기... 무슨?'


'그냥... 개인적인 질문이에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그럼 그루니에 네가 좋아하는걸로.'

'너랑 같이 마주보고 먹는건 흔치 않은 기회니까 너무 붕 뜬 대답이었나?'


'아니요. 오히려 기뻐요. 그럼 우리가 같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봐요.'

...

'그리고 이제야 이름으로 불러주셔서 고마워요.'


그 순간 앞에 있던 소녀가 여자로 변했단걸 알게된건 몇 분의 시간이 흐른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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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아, 뭔가 촉이왔는데 쓰고나니 현타옴.

1시간 동안 썼지만 짧음 니들이 생각하는 그루니에랑 내가 생각하는 그루니에랑 비슷하면 좋겠다는 이기심은 남겨놓고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