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는 홀연히 나타났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마지막만을 기다리던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용모는, 그 등장만큼이나 비현실적이였다. 비단처럼 내려오는 분홍빛 머리칼, 백옥같이 깨끗한 피부, 마치 만들어낸듯 정갈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


"다, 당신은...?"


 입을 여는건 얼마만일까. 잔뜩 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한때 숨쉬는것처럼 당연하게 여기던 그 행위는, 지금에 와서는 음절 하나 하나에 목이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내가 간신히 자아낸 언어에 그녀는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다만, 천천히 가죽장갑 낀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끔한 정장의 주머니에서 나온것은 우습게도 담배였다. 붉은 담뱃갑에 그려진 낙타가 눈에 띄었다. 그건 언젠가 내가 입에 달고다니다시피 했던 담배였다. 그 거짓말같은 우연이 이상하게도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엄지가 뚜껑을 밀어올린다. 안에는 두 개비밖에 없었다. 한개비를 꺼내 분홍빛 입술로 물고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기름 라이터로 불을 당겼다. 틱. 치직. 치직. 그녀가 만들어낸 첫 소리였다.


 한모금. 깊게 담배를 빨아들인 그녀가 연기를 내뱉고는, 나머지 한개비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무너져가는 몸상태에도, 난 지독한 흡연욕을 느꼈다. 받아들이려 손을 까딱여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 의사를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그녀는 담배를 내 말라붙은 입술에 물려주었다. 그리곤,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었다. 미미한 기름냄새가 열기와 뒤섞여 코끝을 어른거린다.


 아. 좋다.


 연기를 빨아들여주는 폐가 고마웠다. 담배를 내밀어준 그녀가 고마웠다. 이젠 그녀의 이상성따윈, 어찌 되도 상관 없었다.


 눈물이 흘렀다. 분명 독한 연기를 잘못 쐬어버린 탓일것이다. 한 방울, 한 방울 주름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은 이제 줄기를 이루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빳빳한 가죽의 감촉이 손에서 느껴졌다. 말라비틀어진 고목의 나뭇가지같은 손을, 그녀의 가죽장갑이 품고있었다. 가죽 너머로 느껴지는 자그마한 온기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나를 끌어안았다.


 눈물은 이제 흐느낌으로 변해있었다.


"...합니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가 점차 멀어져간다. 무디어진 오감은 이젠 아예 사라져가고있었다. 그녀가 왜 내 앞에 나타났는가. 이젠 모를리가 없다. 그녀는, 날 배웅해주러 온것이다.


"감사...합니다..."


 분에 맞지 않는,너무나도 상냥한 그 배웅에 감사를 표해만 했다. 내 감사가 닿았을까. 모르겠다. 내가 입을 열었는지조차 알수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녀의 따스한 손이 아주 조금 더, 꽈악 쥐어진것 같았다.


.

.

.

.

.

.

.


"아."


 방문을 연 간호사는 직감했다. 침대 하나뿐인 좁은 방에선 죽음의 냄새가 났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노인의 상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코는 방에서 풍기는 또 다른 냄새 또한 잡아냈다.


"...담배냄새?"


 황당한듯 크게 떠진 그녀의 두눈에, 시신 옆에 놓인 담배꽁초 두 개비가 비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