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다.

마음대로 신사 밖을 나가면 안된다는게 이럴땐 참 힘들다.

이런 재미도, 내 또래도 별로 없는 곳엔 나와 놀아줄 사람 또한 없다.

이제 없는거지만



무녀가 할 수 있는거라고는 기도와 청소를 제외하면 마룻바닥에 누워서 간식이나 먹는 일뿐이다.

사실 하나 더 있긴 하다.

별로 내키진 않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이 이상한 책. 요즘은 통 말이 없다.

차라리 잘 됐다. 적어도 멍 때리는것보단 재미있겠지.



"...여기까진 전에 읽었고,"

"...공허와 조우......"


......벌써부터 재미없다




"...의... 형상..."


"에서의...이게 뭐야..."



".........이건 창조라는 뜻이네"


"그리고....어...잠깐"


창조?

이거 내가 할 수 있는건가?




"어디보자...에 손을 뻗는다고 생각하고,"


"그걸 가져와서 뭉친 다음...어 됐다."


검은 구체가 잠시 흐릿하게 생겨나더니, 이내 다시 사라졌다.

아직 미숙하기 때문일까.


"잘 안되네...아 다음 장에 이어지는구나"


"만들고자 하는것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라...흠흠"


뭘 만들지?

뭘 원했더라?


아, 그래.



"내 지루함을 떨쳐줄 무언가."

"나와 놀아줄 무언가."

"내 곁에 있어줄...무언가."


구체적인 형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간절히 바랄뿐이다.

눈을 감고, 차분하게.

그렇게, 정성을 들여 빚었다.


손에 무언가 만져진다.

잠시만

대체 뭐가 만들어지는거지?

이거 괜찮은건가?

위험한거 아니야?

느낌 이상한데?

움직이는데?

조금 물컹거리기도 하ㄱ 히이익 뭐야 이상해



...

......



"...이게 대체 뭐야...?"




그것은,

검은 빛의, 사람 머리보다 조금 크고, 하얀 눈과 두 귀를 가진...




"...문어인가?"



아직 미숙해서 그런건지, 공허로부터 비롯된 피조물이라서 인지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채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을 띈

문어...?

맞아......?



'이게 내 지루함을 떨쳐줄 수 있다고?'


'그냥 꾸물꾸물거리기만 하는 이게 어떻게?'


라고 생각한 순간, 그게 시선을 돌렸다.


"응? 이거...과자? 줄까?"


제일 작은 조각 하나를 줘봤다.

그것은 촉수를 뻗어 과자를 입으로 추정되는 부분에 가져갔다.


"잘 먹네...이것도 줘볼... 어 잠시만!"

"쿠키는 내가 먹으려고 한건데..."


얘는 왜 하필 저걸 먹을까.

문어도 맛있는게 뭔지 아나보지


"내 쿠키...아껴둔거......응?"


그게 쿠키를 다시 꺼내 내게 주었다.


"뭐야, 먹은거 아니었어?"


"Wah"


"히야악 뭐야 말했어"


"...나 먹으라고? 입에 들어갔다 나온거 아니야?"

"침은 안 묻어있는데"



아까부터 같은 모습이라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사과하고 싶어하는듯 하다.


"음...그럼 반 나눠먹자. 여기."


쫑긋 귀가 올라갔다. 기뻐하는걸까


"맛있게 먹네. 다 줄걸 그랬나?"


벌써 다 먹은 듯 하다. 입가에 부스러기가 묻은 채로

나를 바라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Wah!"


뭔 상관이야.


누군가와 이렇게 간식을 나눠먹은게 얼마만인가.

그저 그뿐이지만, 지루함 따위는 잊은지 오래다.

친구가 생긴 기분이다.

...친구? 문어가?

둘다 맞긴한데....

아 참, 이름도 안 붙여줬었네

어떻게 지을까...

대충 지을까? 내가 창조준데 뭐 어때

아냐 그래도 친군데 잘 지어야지

문어친구...문어...친구...아 그래


"타코다치. 네 이름이야"

"난 이나. 잘 부탁해"



"Wah!"

"그래, W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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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밖으로 함부로 나가면 안되는 이유가 더 생겼다.

어차피 하루종일 여기 있으니 딱히 변한건 없지만,


"나 왔어~"

"Wah!"

"간식 가져왔다고 이렇게 반기는거야? 그래 그래 알았어 기다려봐"


다른게 있다면 이 녀석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청소, 기도, 간식, 독서의 반복이지만

같이 놀 상대가 있어 이 반복도 싫지만은 않게됐다.




"...섬에 평안과 안녕을"

"...수 있기를"


기도를 할 때면 타코다치도 나를 따라 눈을 감는다.

기도가 뭔지는 아는걸까?

어떤 기도를 할까?

보나마나 '쿠키를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 같은거겠지.


"Wah"

"끝났어? 그래 가자 가자"


청소를 할 때는 내 머리 위에 앉아있다.

이상하게 하나도 무겁지 않다. //때문일까?

예전에 한번 청소를 시켜본적이 있는데, 그런 얇은 촉수로 청소는 무리였다.


이렇게 하루하루, 타코다치와 나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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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청소가 꽤 힘들어서, 신사의 어른들이 대신 해주신다.

나는 간단한 뒷정리만 하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날이었다.


"나 왔어~"

"wah"

"응? 왜 그래?


힘이 없어 보인다. 요새 추워져서 그런가?


"담요 줄게 잠시만~"


개어놨던 담요를 둘러주었다.

...두를 수가 없다.


"어......?"



촉감이 애매하다. 푹 꺼지는 듯 하다.


"뭔가 좀...반투명해...?"



촉수는 여전히 꾸물거린다. 하지만 움직임이 꽤 둔하다.


"왜...왜 이러지...잠깐만..."


쿠키를 줘 본다. 겨울이라 더 많이 먹어야 하는가보다.


"wah"




다 먹었다. 다 먹었는데, 그런데, 그대로다.


"어어...왜 그래...어디 아파?"


아픈거야? 그냥 아프기만 한거지? 그런거지?


"어...어떻...게 해야..."


"wah"


불안을 달래주려는걸까.

살짝 더 흐릿해진 모습으로 말해봤자 불안이 점점 커져갈 뿐이다.

...잠깐


문득 처음 창조를 했을 떄가 떠오른다.

이상한 감촉, 꾸물거리는 촉수...아니, 그 전에

형태가 불완전했던, 검은 구체.

분명...흐렸는데...


아.

안돼.




"어쩌지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하지"


홀린듯 책을 집어 페이지를 넘긴다.

창조에 대해 고작 그것만 써져있진 않을것이다.

분명 내가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에 해결책이 있을것이다.

마치 쫓기는것처럼, 미친듯이 책을 읽는다.


"wah..."


더 흐려졌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에 손을 뻗고,"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제발...


"가져와서...가져와서..."


"...안 돼"


가져오긴 했으나, 새로운 창조만 될 뿐. 선명해지진 않는다.


"왜...왜 이런거지...안 써있는데 이런건..."


굳이 써져있을 필요는 없다.

나는 이미 이유를 안다.



"내가...아직 미숙해서 그런거지...?"

"책 꾸준히 읽을걸..."

"조금만 더...신경써서 빚어줄걸..."


후회가 밀려온다.

쓸데없는 후회가.

그 무엇도 타코다치를 살릴 수는 없다. 후회 또한 마찬가지다.


"wah..."


눈가에 촉수가 닿는다.

자기는 괜찮다는듯, 처진 귀를 하고선, 표정의 변화 없는 저 땡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닦아준다.


"...고마워"

"wah"


나는 직감한다.

곧 이별의 때가 올것을.

이젠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는듯 하다.


"타코다치..."

"미안해."


타코다치를 꼬옥 껴안았다.


"내가 좀 더 잘 했어야하는데...미안해..."


촉수도 나를 껴안는다. 불투명한 감촉이 느껴진다.


"그리고...그리고..."


"......"


미안하다는 말을 해봤자 소용없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을 하면, 완전히 떠나버릴것만 같다.


"타코다치..."

"wah"


그러나 해야한다.


"그동안 고마웠어."


"같이 옆에 있어줘서, 기도해줘서, 나와 놀아줘서"


"나를 즐겁게 해줘서"


"나와 함께 쿠키를 먹어줘서"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웠어. 타코다치."


"wah"


대답해줘서 고마워


"...그래, wah."




타코다치를 더욱 껴안는다.

촉수가 점점 희미해진다.



"...흑...흐윽..."


눈물이 터져나온다.



"...으윽...가지 마아...."


"너 가면 나 혼자란 말이야...가지마......"


"가지마...제발...흑...가지마......"



촉수는 더 이상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


"제발...제발..."

"......"


"없어..."


최대한 웃어보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흑..."


이제 wah라고 해주는 검은 문어친구는 없다.


"...흐흑...흑..."


나와 함께 추억을 쌓았던 문어친구는.



"...으아아아아아!!"


타코다치는 이제 없다.


방 안엔 통곡하는 소리만이 있을 뿐이다.


내 탓이다.


"내 탓이야..."


내 탓이다......











Ina





"...어?"








"뭐야...?."






...

......


품에는 검은 입자만이 남아있다.

방 안이 썰렁하다.




---------------------




많은 시간이 지났다.



 에 더 가까워진건지, 고리와 날개가 생겨났다.



...그래도 여전히 기도, 청소, 독서의 반복일 뿐이다.

아, 독서는 오늘로 끝날듯하다.






"...으로......한다..."



"......다 읽었다"



타코다치와 이별했던 그 날, 입자를 쿠키와 함께 상자에 넣어두었다.

땅에 묻어주면 흩어질까, 혹시나 돌아왔을때 배고프진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상자를 열었다. 입자는 아직 남아있고, 쿠키는 보기에는 멀쩡하다.



...... "


눈을 감고, 원하는 것을 떠올린다.



"......에서......"

가져온 뒤,



"......"


공들여 빚어낸다.


빚어내고,


빚어낸다.



빚어낸다......





...

......






"...된건가...?"



분명 창조는 성공했다. 다만...



보라빛의, 가느다란 눈을 가진, 두 귀와 고리가 있고, 촉수가 짧은...

문어...

문어다.

문어는 맞다.



"그때 그 애가 아니야...어 잠시만!"


"상했을지도 모르는데 먹으면 어떡..."



"WAH"


" !! "


방금 WAH라고 했다.

이번엔 확실히 표정을 드러내보이면서,

두 귀를 쫑긋하면서.

내게 방긋, 웃음지었다.


ㅡ We Are Here


"너...너..."


"타코다치...!"


타코다치를 와락 껴안았다.

비록 전과 다른 모습이어도, 표정을 지을 수 있어도, 촉수가 짧아도, 분명 쿠키를 좋아하는 나의 친구,

나의 타코다치이다.


"타코다치이이...으으흑...흑....으흑...."


비록 촉수가 눈물을 닦아주진 못했으나, 상관없었다.


"됐어...됐다구...흐아아...."


아니, 오히려 이 눈물을 보이고 싶다.

이건 내가 너를 좋아했던 만큼, 너를 기다렸던만큼.

너를 바랬던 만큼 흘리는 것이라고.

전해주고 싶었다.




Ina



"응....? 훌쩍"


"Wah"


"...그래,"


"WAH. 돌아와줘서 고마워."


"...쿠키 더 줄까?"


두 귀를 쫑긋한다. 내게 다시 한번 웃음을 짓는다.

짧은 촉수를 파닥인다.


"Wah!"


We Are Happy


"그래, 타코다치."


"We Are Happy, now."



"자, 여기 쿠키."


받은 쿠키를 촉수 대신 입으로 반을 나눠준다.


"으, 이번엔 침 묻었네..."


"Wah...?"


"후훗, 괜찮아."



"쿠키 고마워, 내 문어 친구, 타코다치."


"WAH!!"


"그래, WAH!!"




-공허의 피조물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