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라이브 팬픽 – 스파이시토마토

 

혼돈과 희망의 크리스마스

 

“아이리스.”

“후우. 후우. 왜, 베이.”

 

하코스 벨즈는 공부하던 책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아이리스가 텔레비전 앞에서 운동 게임, 링피트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스쿼트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벨즈는 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내일 뭐 할 거야?”

“비이이이이이익―”

“약속 없으면 그… 나랑…”

 

벨즈가 뺨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점차 줄어들었다.

 

“데, 데이트…”

“―토리!!”

 

아이리스가 링피트를 들고 만세 했다.

 

“야! 내 말 좀 들어!!”

 

벨즈가 테이블을 치며 성질냈다.

 

“아, 미안. 무슨 말 했어?”

“…내일 시간 있냐고.”

“시간? 잠깐만. 확인 좀.”

“왜 그래? 무슨 중요한 일 있어?”

“콘서트가 있나 싶어서. 그런데 없네. 매니저도 별말 없는 것 보니까 그냥 집에서 쉴 것 같은데.”

“그래? 그러면 내일 같이 놀까?”

“어? 지금도 같이 살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있어?”

 

벨즈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너 내일 무슨 날인지 몰라?”

“……무슨 날인데?”

 

설마 벨즈 생일이던가?

아이리스가 서랍에서 12각 주사위와 30각 주사위를 꺼내 굴렸다.

2와 29가 나왔다.

 

“오늘은… 12월 24일. 그럼 베이 생일은 아니고… 그럼….”

 

벨즈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이리스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몰라? 쉽잖아.”

“우리가 여섯 번째 재결합한 지 1주년 되는 날인가?”

“……아니.”

“그러면 12번째 재결합 한 달 기념일?”

“그런 거 아니야.”

“설마 또 이혼하는 거야? 이제는 이혼 기념일까지 만들려고?”

“아니라고, 이 짜식아!”

 

벨즈가 소리 질렀다.

 

“크리스마스야! 크리스! 마스!”

“히익!”

 

아이리스가 부들부들 떨더니 다급히 주방으로 뛰어갔다.

그러곤 두 손에 식칼을 꼭 쥔 채 나왔다. 아까 전처럼 떨지는 않았지만 흥분했는지 동공이 커진 상태였다.

 

“그놈이 온다! 그놈이 와!”

“…누구?”

“산타! 그 비열하고 비겁한 녀석! 내가 반악마라고 어렸을 때는 철저하게 무시하더니 조금 유명해지니까 사인을 받으려고 몰래 집에 침입했던 변태 아저씨!”

“어… 그래. 네가 산타를 되게 싫어하는 건 알겠어.”

 

벨즈의 몸이 바닥 아래로 사라졌다.

그리고 아이리스 위 천장에서 나타나 식칼을 빼앗았다.

 

“앗.”

“그만. 위험해.”

“그렇지만 난 무기가 없으면 너무 불안한 걸….”

“내가 있잖아, 아이리스.”

“베이….”

 

벨즈는 꼬리로 식칼을 잡았다. 몸의 상하가 바뀐 상태에서 아이리스와 눈높이를 맞췄다.

손을 뻗어 아이리스의 턱을 장난스럽게 잡았다.

 

“산타는 없어. 있더라도 너를 해치지 못해.”

“베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어. 크리스마스처럼 좋은 날, 같이 데이트나 할까 하고.”

 

그제야 아이리스는 긴장을 풀고 눈을 깜빡였다.

 

“지금까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낸 적은 없었잖아.”

 

아이리스와 벨즈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알아주는 커플이었지만, 변덕스러운 성격 탓에 자주 헤어지고, 또 자주 만났다.

그러다 보니 함께한 시간이 은근히 적었다.

 

“그런 거야?”

“그런 거야.”

 

아이리스가 벨즈의 양 볼을 잡았다.

뒤집힌 머리카락 덕분에 훤히 드러난 이마에 코끝을 비볐다.

 

“그런 거면… 그래. 같이 놀까?”

 

벨즈가 히죽히죽 웃었다.

 

“그래. 좋지.”

 

아이리스가 살짝 까치발 들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살짝 닿았다.

 

툭-

 

벨즈의 꼬리가 벼락을 맞은 것처럼 경련했다.

떨어진 식칼이 바닥에 꽂혔다.

 

“그럼 오늘은 집에서…”

 

* * *

 

“사나! 고마워!”

“별말씀을! 그런데 베이. 누구랑 먹을 거야?”

“있어, 히힛.”

“오오. 하코타로. 뭔가 심상치 않은데?”

“응, 그런 거 아니야. 이나도 도와줘서 고마워어.”

“가라, 하코스. 그 앞이 지옥이라도 나아가는 거야!”

“푸핫! 뭐라는 거야.”

 

벨즈는 사나의 빵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손에는 사나와 이나가 힘을 합쳐 만든 케이크가 있었다.

일주일 전에 부탁해서 만든 특별한 케이크였다.

크리스마스에 먹을 거라고 하니까 두 사람이 맡겨만 달라고 당부했기에, 몹시나 기대되었다.

친구들 중에서 요리 실력과 미적 감각이 가장 뛰어난 두 사람이니까.

 

“이건 몰래 집에 숨겨두고… 데이트 끝나면 같이 먹어야지.”

 

아이리스와는 저녁에 밖에서 따로 만나기로 했다.

같이 사니까 같이 나가도 좋겠지만, 가끔은 상대를 기다리는 설렘도 필요한 법이다.

 

“오케이. 됐다. 오, 토마토!”

 

케이크를 냉장고에 꽁꽁 숨겨둔 벨즈는 토마토를 먹으며 옷장을 열었다.

미리 봐둔 옷을 꺼내 거울에 비춰보았다.

 

“흠. 뭔가 마음에 안 드네.”

 

분명 일주일 전에는 예뻤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벨즈는 급하게 다른 옷들을 꺼내 비교했다.

결국 약속 시간이 될 때까지 고민하던 그녀는 처음 꺼냈던 옷을 선택했다.

빠르게 씻고 나와 옷을 입었다.

흰 스웨터에 가슴 위가 쥐 모양으로 뚫린 옷이었다.

바람이 통하면 추울 복장이었지만, 혼돈의 화신에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적당한 오픈으로 느껴지는 색기가 마음에 들어서, 벨즈는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머리카락을 점검하고 코트를 걸친 벨즈가 집을 나섰다.

시간을 보니 지금쯤 아이리스도 나오고 있을 것이다.

 

[벨즈 : ㅇㄷ?]

[아이리스 : 가는 중]

[벨즈 : 늦지 마라]

[아이리스 : 오케이리스]

 

간단한 연락 후, 예상대로 벨즈가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폰을 두드리며 한참을 기다리자 뒤늦게 아이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희망. 강림.”

“…거참 늦게 오셨네요, 희망 씨.”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고치느라.”

“…….”

 

과연.

그렇게 변명해도 될 정도긴 했다.

오늘따라 꾸민 모습이 예뻐 보였다.

검은 폴라티와 흰 숏 팬츠. 다리를 감싼 검은 스타킹과 흰 코트.

단순한 색 배열이었지만, 아이리스가 입으니 여신의 복장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매일 집에서 무방비한 상태만 보다가 저렇게 전력으로 나오니 화낼 마음도 사라졌다.

 

“흥. 무슨 바코드냐?”

“왜 그래, 베이? 얼굴을 붉히곤.”

 

아이리스가 벨즈에게 가까이 달라붙었다.

 

“몰라.”

“정말 어쩔 수 없네.”

 

부끄러워하는 벨즈의 뺨을 콕콕 찌르며 입김을 불었다.

 

“오늘 예쁘네, 벨즈.”

“……너도.”

 

결국 아이리스를 떨쳐내지 못한 벨즈가 항복 선언했다.

 

“그래? 그렇게 봐주니 다행이다. 그럼 갈까?”

“…응.”

“무슨 일일까. 베이가 이렇게 부끄러워하다니.”

“시끄러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벨즈는 아이리스가 낀 팔짱을 풀지 않았다.

 

* * *

 

“거, 거리에 산타가 이렇게나….”

 

산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이 호호호, 거리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거기 아가씨들. 산타 아조씨가 비밀 소원 들어줄까?”

“끼아아악! 저 산타 놈을 죽여라!!”

“그만! 그만! 그만!!! 상대는 그냥 인간이라고!!”

“히익! 죄, 죄송함다!”

 

두 사람에게 다가왔던 산타는 아이리스가 폭주하자 황급히 사과하며 도망쳤다.

벨즈는 진땀을 흘리며 산타킬러… 아니, 아이리스와 예약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없어 조용하고 따스한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휴우. 하마터면 사고 칠 뻔했어.”

“그러다 오메가가 알면 큰일 나.”

“하지만 난 산타 놈들은 용서할 수가 없어.”

“…내가 미안해. 그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 있을걸.”

“오, 베이.”

 

아이리스가 고개 숙인 벨즈의 손등에 손을 덮었다.

 

“그런 말 하지 마. 오늘 너 덕분에 즐거웠어.”

“…정말?”

“응. 눈사람 만들기도 좋았고, 트리 앞에서 찍은 사진도 봐. 잘 나왔지?”

“…그러네.”

“아이쇼핑하는 것도 재밌었어.”

“그런가. 다행이네!”

 

벨즈가 기운을 차리자 아이리스는 미소 지었다.

 

“내 인생 최고로 좋은 크리스마스였어.”

 

진심이었다.

 

“고마워, 벨즈.”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했다.

 

“…나도 고마워, 아이리스.”

 

두 사람은 웃으면서 데이트를 끝마쳤다.

 

“으아! 역시 집이 최고지.”

“정말 그래.”

 

아이리스는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벨즈는 하이힐을 벗고 손을 씻었다.

 

“아이리스.”

“왜?”

 

씻으러 들어가는 아이리스를 불러 세웠다.

모처럼 예쁘게 꾸몄는데 벌써 지워버리면 아깝지 않은가.

 

“케이크 먹자.”

 

벨즈는 샴페인과 크리스털 잔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비장의 케이크를 세팅했다.

 

“와! 언제 이런 걸 준비한 거야? 나는 아무것도 못 했는데. 이러면 괜히 미안한걸.”

“아냐.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뭐.”

 

그럼 열어볼까. 벨즈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케이크 상자를 잡았다.

 

“사나 베이커리? 사나가 만든 케이크네?”

“응. 이나도 같이 도와줬어.”

“와! 그러면 정말 맛있겠…”

 

마침내 케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HAPPY X-MAS ♥

 

상큼하게 예쁜 붉은 글자와.

 

HO! HO! HO!

 

인자한 미소를 지은 산타클로스가 루돌프와 함께 선물을 뿌리고 있…

 

“으아악!”

 

콰직!

 

산산조각 났다.

 

“끼아아악! 미안! 미안! 미안!!!”

“산타는! 모두! 죽어야 해!!”

“아이리스! 내가 미안해!!!”

 

주먹으로 케이크를 내려친 아이리스가 발작을 일으켰고, 벨즈는 통곡하며 그녀를 안아 말렸다.

 

“Kill the Santa!!”

“그마아안!!”

 

……….

……….

……….

 

이후 몸에 묻은 케이크는 서로가 사이좋게 닦아줬답니다.

 

“…그래도 맛은 있네. 산타 주제에”

“하아. 하아. 그러게.”

 

왜인지 숨을 헐떡이며 힘들어하지만, 나쁜 분위기는 아니네요.

 

“아, 피곤하다.”

“씻지 말고 그냥 잘까.”

 

이렇게 혼돈과 희망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꼭 껴안은 채 곤히 잠에 빠졌답니다.

 

희망과 혼돈의 크리스마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