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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나는 영재학교 입학을 목표로 하게 되었으며 영재학교에 떨어진다면 과학고를, 과학고에 떨어진다면 비평준화 일반고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 진학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경기과학고와 같은 우수한 과학고에 진학하기 위해 정보를 알아보다 보니 경기과학고는 이름과 달리 과학고가 아닌 영재학교이며 영재학교는 과학고등학교에 원서를 넣기 전 원서를 접수해서 영재학교에 떨어지더라도 과학고에 지원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자 1차 목표 영재학교, 2차 목표 과학고로 목표를 수정한 것이다. 


구분
영재학교과학고등학교
관련 법령영재교육진흥법(이것 때문에 고등학교가 아닌 기타교육기관으로 분류됨)초,중등 교육진흥법
지원이중지원이 허용되며 전국단위로 선발함. 단, 광주과학고는 광주광역시에는 과학고가 없는 관계로 정원 내 모집의 50%를 광주광역시에서 선발하며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역시 지역전형이 존재함. 또한, 사배자전형은 정원 외에서 선발함이중지원이 허용되지 않으며 광역단위로 선발함. 단, 과학고가 없는 세종특별자치시와 광주광역시 거주 학생의 경우 대전동신과고, 충남과고, 충북과고, 제주과고, 전남과고, 전북과고, 경북과고 등에 지원할 수 있음. 또한, 정원의 20% 정도를 사배자전형으로 채워야 함
입학전형3월에 원서를 넣고 4월에 2차 시험전형을, 여름 즈음에 3차 캠프 전형을 시행해서 선발함8월에 원서를 넣고 1차 면담, 2차 면접전형으로 선발함. 그래서 과학고에 떨어지면 다시 원서를 낼 수 있음.
현황경기과학고, 광주과학고, 한국과학영재학교,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등 8개교경기북과학고, 한성과학고, 인천과학고 등 전국 20개교

보닌이 고입을 치렀을 때의 과고와 영재학교의 차이 보닌의 기억에 의존해서 쓰고 그동안 바뀐 것이 있어 틀릴 수 있으니 양해 바람


 하지만, 나는 영재학교에 진학하기에 많이 부족했으며 애석하게도 내 주위 환경 또한 나를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애초에 동네 자체가 학구적인 분위기도 아니었기에 나는 과학고의 존재를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알 정도였으며 주위 어른들도 수원 농생명과학고를 과학고라고 말하는 등 과학고 진학에 도움이 돼지 않는 인물들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쓰는지, 시험과 면접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서 접수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잘 알지 못했으며 알더라도 나에게 관심도 없었기에 알려주지도 않았다. 결국, 이 모든것은 각종 입시설명회에 참석하여 발품을 팔거나 학교 선생님들한테 자기소개서나 면접을 봐달라고 조르거나 아니면,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기출문제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걸로 공부해야 했다. 학원이라도 다녔다면 좀 나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때 당시 공교육만으로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데다가 과학고 대비가 가능한 학원은 당시 중학생이 다니기에는 너무 멀었기에 나에게 얻어지는 정보는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중 3 당시 내가 갔던 설명회


  그렇게 어찌저찌 정보를 모으고 기출문제를 인터넷에서 뒤져가며 영재학교에 지원할 준비를 마쳤다. 여기서 나는 아주 큰 사고를 쳐버리는데 바로 생기부에 학교장 직인을 받기 위해 교장실 문을 연 것이다. 당시 우리학교는 신생학교도 아닌데 과학고나 영재고는커녕 영재교육원도 여태까지 1명 보낸 학교였으며 담임 선생 역시 나의 입시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었기에 원서 접수 날이 되었음에도 별 준비를 해주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마감 날짜는 하염없이 다가왔으며 결국 나는 교장실 문을 여는 결단을 내리고야 만 것이다. 


 교장실 문을 열자 곧바로 담임 선생이 교장실로 불려왔고 그 이후 원서는 순조롭게 쓸 수 있었...기는 개뿔 여기서 일이 또 터져버렸다. 바로 담임 선생이 원서를 어디에다 넣을지에 대해 혼동해버린 것이었는데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원서를 낼 때 나는 세종 영재학교와 대전과고, 광주과학고에 원서를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담임이 세종 영재학교와 서울에 있는 과학고인 세종과고를 혼동했는데 당시 세종 영재학교는 생기부 4부를 우편으로 보낼 것을 요구했으나 세종과학고는 그렇지 않았기에 결론적으로는 제출 서류를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원서 접수 거의 마지막 날에 생기부를 더 뽑아야 했으며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대전과학고, 광주과학고, 세종 영제학교에 원서를 내는데 성공했다.


 

당시 원서접수 화면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원서를 접수하는데 성공했고 2학년 때 날 가르치시던 선생님들이 정성껏 써준 추천서로 1차 서류전형까지 가뿐하게 통과했지만, 2차 시험이라는 고비에서 고꾸라지고 만다. 당시 나는 어떻게 공부해야 했는지를 전혀 몰랐으며 그때 당시 의존할 수 있었던 것은 교과서와 참고서 그리고 인터넷에 굴러다니던 기출문제 쪼가리들이었다. 학교에서 기출문제를 공개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어떻게 답안을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하는지조차 몰랐으며 그렇게 장렬히 탈락하고야 만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과학고등학교에 원서를 낼 준비를 한다.


 과학고등학교 입시 역시 쉽지 않았다. 일단 무엇보다 내가 살던 지역이 경기도인지라 미친듯이 불리했다. 앞서 이야기했듯 과학고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있는 과학고등학교만 쓸 수 있다. 하지만, 경기도의 인구는 1300만명에 달하는데 반해 과학고는 경기북과학고 1개, 정원은 경상북도와 동일한 100명이었다. 그러다보니 경쟁률은 타 시도에 비해 3배 가량 높았다. 나는 과학 선생님을 졸라서 면담을 준비하고 추천서와 자기소개서를 점검받는 등 그때 당시로써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 드높은 경쟁률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이번에는 1차 면담전형에서 떨어지고야 말았다.

내가 떨어졌던 경기북과학고 출처-꺼무위키


 과학고등학교에 떨어지자 주위 아이들의 취급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기어갔다. 원래도 소소하게 돈을 뜯는 등 그닥 취급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영재교육원도 붙을 정도의 수재(그 학교 내 한정)라 딱히 심하게 건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과학고에 떨어지고 나서 농고나 정보고에 떨어진 놈들도 대놓고 무시하거나 불합격을 비아냥대는 등 취급이 영 좋지 못했다. 결국 나는 마지막 남은 카드였던 비평준화 고등학교에 명운을 걸게 된다.


 그래도 비평준화 고등학교 입시는 나름 수월하리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떨어졌을 때 어디에 원서를 쓸 지는 다 정해놨었기 때문인데 바로 공주사대부고와 화성고등학교였다. 공주사대부고의 당시 컷은 약 4%, 화성고등학교의 컷은 192점이었고 내 내신 점수는 194.1점으로 상위 2.5%에서 3.3% 가량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공주사대부고에 붙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떨어지더라도 화성고는 붙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내신은 체육 점수가 깎여버린 바람에 193.5로 깎였으며 그에 따라 백분위도 4.1%로 낮아져 버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당시 자사고, 외고, 국제고 후기고등학교 전환으로 이들 학교에 떨어지더라도 비평준화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둘 중 하나만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으며 그에 따라 화성고의 커트라인은 194.3, 공주사대부고의 커트라인은 2.5%로 급등하면서 나는 둘 다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나는 당시 친척이 넌지시 추천해 줬던 평택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었으며 이전 커트라인이 내 내신에 비해 한참 낮았던 학교였던지라 얼마 안되어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볼 수 있었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그렇게 2018년 12월 나는 평택고등학교에 합격하여 그리도 바라던 합격을 축하한다는 문구를 보게 되었다. 물론 이 문구를 제외하고는 축하해 주는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재도약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