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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표를 수정한 뒤에도 나는 학생부 종합 전형을 노려왔다. 내신이 많이 낮아서 교과전형으로는 모의고사 성적에 비해 훨씬 낮은 대학이 적정이었으며 글씨체가 심각한 악필이었기에 논술전형 역시 노릴게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리라는 학문은 여러 학문과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전까지 쌓아왔던 교과활동들을 써먹을 수 있었으며 그동안 하고 있던 교사 동아리와 아동복지 클러스터 역시 지리교육과 입시에 매우 요긴하게 쓰일 수 있었기에 목표를 수정했다고 딱히 커다란 디메릿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학생부 종합 전형을 위한 준비를 계속했다. 1학년 때 영재학급에서 했던 것처럼 팀을 꾸려서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광촉매 현상을 활용한 수소 생산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고 거기서 배운 보고서 쓰는 방법을 바탕으로 한국지리와 세계지리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중국의 지형에 대한 보고서를 제작하거나 중국의 지리교육 실태에 대해 발표하고 페임랩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도농복합시 제도와 특례시 제도에 대해 발표하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채워넣었다.


보닌이 썼던 연구보고서 표지


 생기부가 채워져가니 나는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때마침 모의고사도 잘 나와줬으며 장난으로 넣었던 해군사관학교 시험도 붙었기에 이대로라면 인서울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8월이 지나면서 이는 불안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인서울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은 인서울에 가야겠다는 압박으로 바뀌어갔고 이 압박이 나를 옥죈 것이었다. 결국 나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9월 모의고사를 배탈과 함께 대차게 말아먹었다.


 

나에게 인서울을 가야한다는 목표를 심었던 해군사관학교 합격


 9모를 말아먹고 나니 그동안 인서울이나 한국교원대는 가야겠다고 압박감을 느낀 것들이 다 꿈처럼 느껴졌다. 나의 목표는 다시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에서 경북대 지리교육과로 내려갔으며 마지노선도 동국대 지리교육과에서 강원대 지리교육과로 내려갔다. 때마침 원서접수기간도 그쯤이었던지라 나는 담임 선생님에게 나의 1학년 목표 대학을 이야기하게 된다.


"쌤 저 그냥 수시로 충대 쓰고 나머지 대학 다 안돼면 그리로 갈게요"


 그러자 담임쌤은 나의 모의고사 성적을 보면 지거국 이하로 원서를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나에게 충대 대신 고려대 지리교육과에 원서를 넣기를 권했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담임선생님이 이렇게 나오시니 지거국에 원서를 넣을 생각은 절로 들어갔으며 우리는 암묵적으로 인서울에만 원서를 쓰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지리학과가 극히 드물었던지라 원서를 낼 곳이 없어 수시원서 6장을 다 채울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학교도 적은데 인서울로 한정해버리니 그 수가 더욱 적어져버린 것이다


 이 때 페임랩 때 특례시와 도농복합제도에 대해 발표하던 것을 눈여겨보던 학년부장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쓰는 것을 권했으며 내 친구들은 자율전공학과에 원서를 내는 것을 추천했다. 나는 그들의 조언에 따라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 고려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경희대학교 지리학과, 서울시립대학교 도시행정학과, 건국대학교 지리학과, 동국대학교 지리교육과에 원서를 내면서 나의 수시 원서 6장을 채우는데 성공했다. 


 수시 원서를 쓰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9모때 모의고사를 심하게 망치면서 목표가 낮아진 것도 있지만 수시 원서가 주는 안정감 또한 컸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수능을 맞이하니 고려대까지 노려볼만한 성적이 나왔고 그에 따라 나는 1차를 붙어도 면접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마침 썼던 대학들 모두 1차에서 광탈해버렸고 자연스럽게 나는 정시로 눈을 돌렸다.


2022 수능 성적표


 그런데 쉽게만 생각했던 정시에도 문제가 생겼다. 원래 서울대 지리학과,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경희대 지리학과는 가군, 고려대 지리교육과, 건국대 지리학과는 나군이었으니 나는 나군에 고려대를 지르고 가군에 경희대나 교원대 둘 중 하나를 택하면 됐었다. 하지만, 서울대가 나군으로 옮기면서 고려대, 경희대, 교원대가 같은 군에 속해버렸으며 그 결과 나는 고려대에 원서를 낸다면 떨어지고 건국대에 가거나 나군에 건국대가 아닌 서울대를 쓴다면 아예 다군인 중앙대 경영학과로 가버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현실은 나로 하여금 고려대를 쓸지, 경희대를 안정으로 쓸지 고민하게 만들었으며 때마침 재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엄마까지 가세하면서 이 고민은 나를 심적으로 괴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고민은 예상외로 쉽게 해결되었는데 바로 수시이월이 엄청나게 발생한 바람에 고려대가 안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려대가 안정이 돼자 나는 가군에 고민할 것도 없이 고려대를 넣었으며 이참에 나군에는 스나이핑으로 서울대 역사교육과에 원서를 넣었다. 비록 스나이핑이기는 했지만 나는 입시의 마무리를 잘 짓고 싶어서 담임 선생님께 교직적성면접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그 요청에 응하신 담임 선생님은 교대 쓴 애들과 학년부장 선생님 그리고 그 애들의 담임쌤들까지 모두 불러모아 졸업생인 우리들의 면접을 정성스럽게 지도하셨다. 


면접 준비하는 보닌의 모습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전은 없었다. 아무리 면접을 잘봤어도 정시전형이니만큼 수능 성적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으며 스나이핑으로 쓴 학교였기에 다른 경쟁자에 비해 성적이 딸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는 면접 전형이 없는 고려대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안전빵으로 넣어서 예상 커트보다 점수가 높았던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는 예상대로 합격한다.


예상은 했지만 떨어져버린 서울대...


그렇게 나는 길고 긴 입시를 마무리했으며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에서 나의 20대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