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수 돌릴 때마다 덜컹덜컹 비명을 질러대던 튼녀네 자취방 세탁기

오늘 아침부터 1차로 이불과 시트 

2차로 이틀 치 밀린 수건과 각종 옷가지 등등  

인정사정없이, 아주 무자비하게 달려버린 탓에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끼긱, 켁...! 임종


하필이면 탈수 전에 죽어버린 터라 

베란다엔 세탁기의 눈물로 인한 홍수가 나버리고 말았는데...

튼녀는 이건 혼자선 도저히 답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급한 대로 엄마에게 엉엉 울며 헬프콜을 쳤대

전화 끊은지 20분도 안 돼서 날아온 튼녀네 엄마 

매서운 눈총과 우다다 쏟아지는 잔소리를 견디며 튼녀는 빨래를 주섬주섬

물에 젖어 흥건한 빨래들을 엄마와 함께 영차영차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수동 탈수를 마친 뒤 

"내가못산다못살아대체빨래를어떻게하면베란다가이렇게된거니?애초에세탁기꼬라지가그랬으면진작A/S나불러서수리나할것이지미련하게버틴다고저오래된세탁기가살아나겠니?이렇게픽뒤져버리지?아이고또뭔빨래를이렇게산더미처럼쌓아뒀대야이화상아!너이렇게살라고엄마가자취허락해준줄알아!?어휴엄마는그때만생각하면속에천불이나천불이!그때집밖으로못기어나가게뜯어말렸어야했는데!!!그냥자취때려치고지금이라도집에돌-"

"아! 엄마 쫌!!!"


아주 정답고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며 세탁물을 트렁크에 실던 도중

"아줌마!"


"어떤 씹...!"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중노 상태의 튼녀 고개가 조건반사처럼 휙!

자세히 보니, 그 공격적인 워딩의 화살은 튼녀에게 날아든 것이 아니라 

청과트럭 아저씨가 잔돈 받는 걸 까먹고 가신 아줌마를 향해 소리치는 거였대


아하!


오해였구나! 

인과 분석을 마친 튼녀가 뻘쭘한 얼굴로 세탁물을 다시 들고 돌아선 순간


엄마와 눈이 딱! 맞아버린 게 아니겠니?


엄마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으로 튼녀를 지그시 바라보셨고

어딘가 짠한, 그 눈빛을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아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튼녀


'하아... 왜 돌아봤지...'

튼녀가 돌아본 이유는 그저 뒤에서 소리가 들려서


단지 그뿐인 이유였지만! 다른 이유가 아니라, 분명히 그런 이유였지만!!!

화끈화끈 뜨거운 수치심과 억울함이 손을 꼭 잡고 튼녀 얼굴을 신나게 내달렸대...

"씨발, 나 아줌마 아닌데..."

튼녀는 울먹울먹 애꿎은 입술만 우물우물 씹으며 갈 곳 없는 분을 삭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