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바이에른은 눈에 띄게 노쇠해진 육신을 내려다보며 헛웃음 지었다.


악의 기수는 도망쳤다.

그가 부리던 악룡, 파프닐은 그와 그의 동료의 분전 끝에 목이 잘려 쓰러졌다.


‘세상에, 내가 전설 속의 고룡... 그것도 그 유명한 파프닐의 목을 벨 수 있었을 줄이야.’


그렇게 생각한 바이에른이 쿨럭, 하고 피를 토했다.


악룡의 목을 벤 대가는 엄청났다.

이미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만, 악룡의 마지막 저주가 그를 좀먹고 있었다.


마지막 생명력 한 방울까지 짜낸 일격.

껍데기만 남은 육신이 저주, 그것도 악룡의 저주를 이겨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바이에른은 재차 쿨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시야에 부러진 그의 애병, 인의가 보였다. 예지는 아직 멀쩡했지만, 날이 조금 상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인의와 예지를 다듬고 싶었다.

남자는 도끼든 검이든 양손에 쥐어야 한다면서 만들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건 그의 몫이 아니었다.


“지크, 지크프리트. 너 거기 있냐?”


그렇게 말한 바이에른이 고개를 젖혀 지크프리트를 바라봤다.

허약하고 유약하지만, 고결한 성품을 지닌 얼간이 바이킹.

절대 물러서지 않고 꺾이지 않으며 끝없는 여정 끝에 그와 함께 파프닐을 공략한 용살자.


“넌 바이킹 말고 기사를 했어야지...”

“바이에른...!”

“피를, 맞았냐? 용의 피를...”


지크프리트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에른은 바이킹답지 않은 이 미청년을 바라보다가 투덜거렸다.


“그 빌어먹을 할배가 말한 예언 기억나? 나는 노인이 되어서 침대에서 죽을 거라고 했지. 발할라에 못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말하지 마. 저주가... 네 몸을 좀먹고 있어.”

“훗,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군. 이렇게 백발이 된 채 침대 비슷한 것에 누워 있잖아.”

“말하지 말라니까...!”

“내 몸은 내가 더 잘 알아, 지크. 근처에 드루이드도 없는데 어떻게 살 수 있겠어.”

“...”


지크프리트가 눈에 굳은 결의를 담았다.

바이에른은 잠시 그걸 보다가 씩 웃었다.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발할라에서 함께 보자, 내 친우여.”

“헛소리 지껄이지 마. 우린 피의 맹세를 했다고. 함께 발할라에 가기로 했잖아.”

“그건...”

“만약 오딘을 만난다면 네 여정을 함께 하기 위해 다시 내려보내 달라고 할게.”


그렇게 말한 바이에른은 눈을 감았다.


후회는 없었다.

이세계에서 펼쳐진 두 번째 인생은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보람찼다.

그리고 이 세계의 오딘도 그가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어떻게든지 여정을 함께할 방법이 있을 게 분명했다.


“후후...”


웃음과 함께 마지막 숨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이내 빛이 찾아왔다.

바이에른은 눈앞에 나타난 금발 청안의 미남을 보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안대를 쓴 남신은 황금 창을 든 채 무엇이 그리 웃기냐는 듯 마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계의 전사, 폭풍수염이여... 반갑네.”


누가 지혜의 신 아니랄까 봐.

바이에른은 오딘이 그의 출생을 꿰뚫어 봤다는 것에 신기해하면서도 곧장 본론부터 꺼냈다.


“나 아직 발할라 못 가. 친구 여정 지켜보기로 이미 맹세가 다 끝났거든.”

“피의 맹세라. 골치 아픈 걸 맺었군.”

“최고신 오딘께서 직접 창안한 맹세를 본인 손으로 깨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것도 그렇지.”

“여정이 끝나고 같이 발할라에 데리고 올 테니까... 지금은 되살아나야겠어.”


오딘은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다.


바이에른은 주먹을 불끈 쥐며 씩 웃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그가 원하던 게 아니었다.


“그건 도리에 맞지 않아.”


그렇게 말한 오딘이 말을 이었다.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지.”

“허, 그럴 리가 없잖아.”

“물론, 예외는 존재하겠지.”


오딘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바이에른은 오딘의 하나 남은 눈동자가 불타는 듯한 착각을 받으며 침을 삼켰다.


“폭풍수염 바이에른, 한 가지 제안하마. 넌 신의 위업에 도달한 몇 안 되는 전사다.”

“...아하?”

“신이 되어라. 대신, 네 기억을 복제해서 발키리로 만들어 내려보내겠다. 그렇게 한다면 친구의 여정을 지켜볼 수 있겠지.”

“과연...”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바이에른은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딱히 조건을 수정하거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기회는 이미 주어졌다. 남은 건 수락할지 아니면 거절하고 파멸할지를 고르는 것뿐이었다.


“좋아. 그러면 난 어떤 신이 되는 거지?”

“이제 바이슨의 아들, 폭풍수염 바이에른이 아니라 벼락포효 바이에른이 될 거다.”

“...좋아! 그렇게 하지.”

“에인헤랴르의 장군이자 신이 된 걸 축하한다, 바이에른. 앞으로 천둥이 칠 때마다 바이킹들은 네 이름을 부르게 되겠지.”

“그것참 좋군... 그런데 발키리는 어떻게 만들지?”

“네 손을 보거라.”


바이에른은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혈기 넘치던 청소년 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그와 함께했던 애병, 인의와 예지가 그의 손안에 쥐어져 있었다.


문명인은 머리에 도끼가 박히지 않아서 무례하다.

그러니 이 쌍검은 인의와 예지를 심어주는 검이다.

그렇게 주장하며 수많은 악당을 베어 넘겼던 기억이 아직도 아른거렸지만, 이젠 보내줘야 할 때였다.


바이에른은 인의를 검집에 넣었다.

그리고 예지를 양손으로 고쳐 쥐었다.

신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자연히 버려질 인간성을 그 안에 몽땅 집어넣었다.


“지크프리트, 기다릴게. 심심해 죽기 전에 꼭 와라.”


가볍게 중얼거린 바이에른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검에 담아 아래로 던졌다.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면서.




***




지크프리트는 눈을 떴다.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바이에른이 죽었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하지만 그가 직접 무덤을 만들고 그 몸을 묻었던 만큼 바이에른이 죽었다는 건 변함없는 진실이었다.


몸을 일으킨 지크프리트가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결전 전에 봐둔 호수로 가서 물을 마시고 변한 모습을 응시했다.

용의 피에 몸을 담근 덕분에 온몸이 우락부락하게 변한 건 며칠이 지났음에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바이에른이 봤다면 이제야 좀 봐줄 만한 모습이 되었다며 좋아했겠지만, 그로서는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여태껏 호리호리한 몸의 민첩함을 살려 적들을 쓰러뜨렸던 만큼 더더욱.


“후우...”


한숨을 내쉰 지크프리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래도 한동안 새로운 몸에 적응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전에 끝낼 일이 몇 개 있었다.

도망친 악의 기수를 쫓아 멱을 따버리는 건 어제 끝냈으니 남은 건 용의 유해를 먹어 없애는 것뿐이었다.


악룡 파프닐의 유해는 그 자체로도 이 땅에 저주를 뿌리내릴 터.

그 저주가 퍼져나가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건 악룡의 피로 목욕해 저주의 갑옷을 얻은 영웅, 지크프리트뿐이었다.


지크프리트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걸 식칼 삼아 남은 용의 유해를 잘라 삼키기 시작했다.

악룡의 피로 담금질 된 그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이미 며칠 동안 틈틈이 먹었던 덕분에 남은 용의 유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크프리트는 마지막으로 남은 용의 심장을 들어 올렸다.

죽은 지 며칠이 되었음에도 살아 있는 것처럼 맥동하는 그 붉은 덩어리를.


“...바이에른.”


잠시 친우의 이름을 중얼거린 그가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악룡의 심장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았던 바이에른과 그의 여정도 끝이었다.

바이에른은 죽었고 이제 그 혼자서 다시 여정을 떠나야만 했다.


발할라에서 보고 있을 바이에른도 그가 여기서 멈추길 바라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지크프리트는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꾹 참으며 입을 쓱 닦았다.

그리고 천천히 짐을 챙겨 발 닿는 대로 움직이려던 순간, 바이에른의 묘 쪽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아아아악!!!!!!”


지크프리트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에 있을 리 없는 여자의 비명이었다.

도대체 어떤 간 큰 여자가 이런 격전지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크프리트는 혹시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 황급히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알몸으로 있는 한 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그의 가슴께 정도 오는 키에 흰색과 잿빛이 섞인 머리카락을 지닌 붉은 눈동자의 미녀였다.

품에는 익숙한 검을 안고 있었는데 덕분에 몽환적인 느낌을 주었다.

지크프리트는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익숙함을 느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누구지?”


지크프리트가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바이에른의 분체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천계에서 지상으로 떨어진 직후인 탓일까.

머릿속이 무척 혼탁하고 새하얗게 변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누구기에 내 친우의 무덤 위에 서 있는 거지?”

“나, 나는...”


그렇게 더듬거린 직후, 그녀는 지금이 분기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검의 정령이자 발키리의 일원으로서.

인도할 영웅에게 불릴 이름을 정하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도.


하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할 수 없었다.

잠시 몇 초 동안 자기가 누구인지 생각한 그녀가 생각을 이어 나갔다.


바이에른이라고 말하기에는 본체가 이미 발할라에 있었다.

발키리라고 말하기에는 신에게 받은 이름이 없었다.

그러면 검의 정령, 일종의 에고 소드니까 검의 이름인 예지를 말해야 하나 싶었다.


“이... 예지...?”


라고 하기에는 아무리 검의 정령이라고 해도 조금 이상하니까 다른 이름을 고민해 보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이예지? 그렇군, 너는 내 친우... 바이에른이 쓰던 검의 정령...!”

“아니, 잠깐! 야!”


분체, 아니. 이예지가 허둥지둥 입을 열었다.

졸지에 바이킹들 사이에서 한국어 이름을 쓰게 된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영혼 깊숙한 곳에서 각인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이제 이예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주인인 지크프리트가 그 이름을 입에 담았기에, 검의 정령이자 발키리인 그녀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은 이예지가 한숨을 푹 내쉬다가 주먹을 꼭 쥐었다.


“지크, 이 얼간이 같은 자식! 아무리 모습이 바뀌었다지만, 사람도 못 알아보냐!”

“이 말투는... 설마, 바이에른?! 어떻게 된 거야!?”

“말하자면 복잡한데... 으음...”


머리를 긁적거린 이예지가 침음을 흘리며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잘하면 세 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피의 맹세를 맺었으니까 다시 살아날 수 있을 줄 알았거든?”

“다시 살아난 것... 아니야?”

“아니야. 내 본체, 그러니까 바이에른은 승천했어. 지금 여기에 있는 건 바이에른의 일부 같은 무언가야.”

“그렇군...”

“네 여정이 끝날 때까지 함께하기 위해, 오딘 님의 허락을 받고 땅에 내려온 발키리기도 하지.”


이예지는 지크프리트가 눈을 깜박거리는 걸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어떻게 잘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만약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면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했을지 막막했다.


“하여간 그렇게 됐어. 이번에는 널 두고 혼자 떠나지 않는다, 그 소리지.”

“아주 만족스러워.”

“설령 네가 영웅적인 최후를 맞이할 때도. 이번에는 같이 죽을 테니까, 그리 알아. 그리고...”


이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이미 몇 번 봐서 알고 있었지만, 지크프리트의 사타구니에서 그녀의 팔뚝만 한 크기의 남성기가 맥동하는 게 보였다.


그녀는 예전에 농담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지크프리트의 물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자를 찾으려면 아마도 고생 좀 해야 하리라는.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지크, 정말이지. 뭐 때문에 서버인 거야? 설마 나 때문에?”


그렇게 말한 그녀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바이에른의 몸이었다면 등짝을 퍽퍽 내려치면서 놀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기도 했다.


그녀는 발키리.

영웅을 이끄는 한편, 그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시중은 낮의 것과 밤의 것, 둘 모두를 의미했다.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사실에 당황한 지크프리트의 남성기가 하늘을 찌를 것처럼 맥동했다.


이예지는 그 사실에 쿡 웃는 한편, 천천히 자그마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남자였기에 익히 알고 있는, 남자라면 무조건 기분 좋을 수밖에 없는 애무를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전생하기 전에 봤던 여러 교보재가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직후, 그녀는 발키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손을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윽...!”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지크.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짜낼 테니까.”


그렇게 말한 이예지가 앞뒤로 왼손을 흔들었다.

그러는 한편, 오른손을 펼친 그녀가 귀두를 손바닥으로 자극하며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일말의. 이러는 게 맞냐는 바이에른으로서의 생각은 금세 조각이 되어 사라졌다.

직전까지 남자였던 주제에 암컷처럼 이러는 게 맞냐는 생각보다 발키리로서의 본능이 우선시되었다.


그녀는 발키리였다.

영웅이 그 위업을 마칠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신의 사자이자 검의 정령이었다.

지크프리트가 성욕을 해소하지 못했다면 그 성욕을 온몸으로 받아주는 게 자연의 도리였다.


그렇기에 이예지의 이 행위에는 일말의 망설임이나 부끄러움도 없었다.

이내 그녀는 자그마한 입을 벌려 지크프리트의 남성기를 핥았다.


‘이걸 삼킬 수 있을까?’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혀부터 내밀었다.

귀두부터 시작해서 남성기의 기둥을 핥기 시작한 그녀가 재차 입을 벌렸다.

입이 빠질 것 같겠지만, 어떻게 삼키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남성기를 삼킨 직후, 남성기가 재차 맥동했다.


“우붑...!”


이예지는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정액에 다소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기회라는 걸 알아차렸다.


이건 정액이라는 형태로 분출된 지크프리트의 번뇌와 성욕이었다.

영웅을 완전무결하게 만들지 못하는 이 사악한 액체는 먹어 없애는 게 옳았다.

그리고 그 편이 지크프리트를 좀 더 기쁘게 해줄 것 같았다.


그 판단 아래, 이예지는 망설임 없이 꿀꺽꿀꺽 정액을 삼키기 시작했다.

비리고 쓴 데다가 무언가 역겹기까지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발키리로서 영웅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이내 정액을 모조리 삼킨 이예지가 고개를 빼내어 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직도 건재하다는 듯 하늘을 찌를 것처럼 분기탱천한 남성기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아직도 만족하지 못했나 봐? 지크, 영웅호색이라더니 정말로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이, 이건...”

“괜찮아. 난 발키리니까. 온몸으로 네 번뇌와 성욕을 받아줄 수 있는 신의 사자라고.”


지크프리트가 입을 뻐끔거렸다.

아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그러는 게 분명하다고 이예지는 생각했다.


“왜 그래? 망설이면 진다니까. 지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건.”

“설마 여자를 안는 게 처음이라서 당황한 거야? 처음부터 가르쳐 줄까?”

“그게 아니라...”


머뭇거린 지크프리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이에른, 아니... 이예지 너를... 다치게 할 것 같아서... 그래.”

“...다치게 할 것 같다고? 나를?”

“...응. 아시다시피 지금의 나는 몸이 이렇게 변했고.”


이예지는 눈을 흘겼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난 발키리라고. 괜찮아. 그까짓 것조차 못 버틸 것 같아? 악룡의 화염도 버텼는데!”

“그, 그러면...”

“그러니까 얼른 넣어 보라고. 봐, 여기야.”


그렇게 말한 이예지가 직접 두 손가락을 이용해서 여성기를 벌렸다.


“이 안에 자지를 집어넣으면 된다니까?”

“...정말로, 괜찮겠지?”

“당연하, 직...!”


우그윽, 하고 신음을 흘린 이예지가 숨을 헐떡였다.


이미 어느 정도 대비는 하고 있었다.

영웅에게 밤 시중을 들기 위해 달아오른 몸이라면.

...적어도 무척 수월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정없이 배 위로 부풀어 오른 남성기의 윤곽이 보였다.

이예지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최대한 붙잡으려고 애쓰며 힘겹게 숨을 쉬었다.

장기가 짓눌러지는 듯한 감각은 악룡의 저주와는 색다른 느낌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쾌락이 느껴지기도 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압도적인 수컷의 질감.

발키리로서 그 어떤 상황보다 행복한, 눈앞의 영웅이 그녀에게 욕정하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에 힘입은 그녀가 천천히 양팔로 지크프리트의 상체를 감았다.

그리고 온몸으로 팔뚝만 한 지크프리트의 남성기를 버텨내기 시작했다.


“...♡!”


악룡의 피를 몸에 묻히고 그 유해를 먹은 탓일까.

지크프리트는 이내 이전의 그 사람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고 거칠게 그녀를 범하기 시작했다.


서로 사랑을 나누는 행위라기보다는 일종의 강간에 가까운 행위.

하지만 이예지는 그런 거친 왕복 속에서도 쾌락을 느끼며 새하얗게 변하는 의식을 최대한 붙잡으려고 애썼다.


그녀는 발키리였다.

영웅이 온전히 성욕을 해소할 때까지 버텨야 할 의무가 있었다.

주인이 잠들기도 전에 먼저 쓰러지는 하녀가 어디 있겠는가.


“하, 으읏...!”


다행히 그녀는 버틸 수 있었다.


“으, 아하앗...”


재차 신음을 흘린 이예지가 그녀의 안으로 울컥거리며 쏟아지는 정액을 느꼈다.

이 정도 양이라면 임신하고도 남았으리라는 생각도 잠시.


아직도 지크프리트의 남성기는 하늘을 찌를 것처럼 솟구쳐 있었다.

그건 곧 그가 미처 성욕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뜻이었고 발키리인 그녀는 그걸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후우...”


남성기를 빼낸 지크프리트가 숨을 골랐다.

그러나 아직 표정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는 게 보였다.


이예지는 곧장 행동했다.

팍, 하고 지크프리트를 밀쳐 넘어뜨린 그녀가 재차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아래로 내려 엉덩방아를 찧은 지크프리트를 내려다봤다.


그녀는 후들후들 떨리는 팔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지크프리트가 일어서기 전에 그 위에 걸터앉아 남성기를 재차 그녀의 몸으로 받아들였다.

서서 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몸 전체가 관통되는 듯한 충격이 그녀의 몸을 뒤흔들었다.


“으, 그으윽...!”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린 이예지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허리를 흔드는 한편, 고개를 아래로 내린 그녀가 투덜거렸다.


“이름이... 이예지가 뭐야, 이예지가.”

“...싫어?”

“어색하잖아! 그런 이름은 애병의 이름만으로 족하단 말이야... 응, 그읏...”

“그렇군.”

“그러니까... 그렇게 불러줘.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이예지는 잠시 머릿속으로 적당한 이름을 고민했다.

마침 지크프리트라는 이름에 어울릴 수밖에 없는 이름이 하나 있긴 했다.


“크림힐트. 크림힐트... 라고.”

“...좋아, 알겠어.”


지크프리트가 그렇게 말한 직후, 이예지는 이내 사정이 머지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다시 한번 온몸으로 지크프리트의 번뇌와 정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걸로 시작이자 끝이었다.

두 사람은 첫 정사를 통해 발키리와 영웅으로서 맺어졌으니까.


다음 날 아침, 뒤처리를 끝낸 이예지와 지크프리트는 다시금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변변찮은 옷이 없던 탓에 알몸에 망토만 둘러야 했던 이예지가 투덜거렸지만, 이것도 썩 나쁘지 않다며 씩 웃었다.


한편, 발할라에서는 바이에른이 오딘의 멱살을 잡았다.

오딘은 본인이 다 설명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바이에른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잠재울 수 없었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그것보다 술이나 먹으면서 저 두 사람의 여정을 축복하며 지켜보는 건 어떤가.”

“...쯧, 어쩔 수 없지.”


바이에른은 천천히 손을 놓고 오딘이 건넨 술잔을 받았다.

그리고 죽기 직전 맹세했던 것처럼, 두 사람이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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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