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사내가 술잔에 술을 채워주며 말했다.


"흠... 말도 아니고 소라? 그런데 어찌 마패겠소! 우패가 아닌가! 크하하!"


네오전주의 모든 야광을 발밑에 두고 살아온 이선달, 그 역시 들어보지 못한 말이라.

술기운에 기분이 좋아진 선달은 차오른 술잔에 달빛을 띄우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게 그 마패오."


선달은 사내가 꺼낸 마패를 보았다.

하지만 일반적인 마패와 달리 홀로그램이 아닌 금속으로 된 실물이었다.

처음보는 물건에 김선달는 안주를 먹는 것도 잊고 마패를 스캔했다.

신조선의 공인이 찍힌 인증서가 눈에 들어왔고, 그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이건 국가가 인증한 진품이다.'


순식간에 소문에서 보물로 바뀐 귀중한 마패에 선달의 눈에 탐욕이 서려왔다.

어떻게 하면 저 마패를 가질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어제 담금주마냥 술에 담궈버린 상단주처럼 만들어서 가질까?

아니다, 이런 귀중한 물품을 보여준 것이라면 뒷배가 있을 터.

뒷배를 보고 잡아먹을 수 있다면 마패와 그들이 가진 귀중한 보물들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으리라.


사내는 그런 김선달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내는 다시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이 마패는 보다시피 보통 마패가 아니오."


선달은 그의 말을 들으며 다시 술잔을 비웠다.


"이 마패를 본 이들은 벌을 받고 죄를 뉘우친다는 소문이 있소."


"흠..."


선달은 육전을 마저 씹어먹으면서 생각했다.

소문은 어느 보물이나 도시전설처럼 붙기 마련이었다.

대부분 헛소문에 불과하고 악소문이 붙기도 하였다.

하지만 악소문일지라도 되려 그 보물의 가치를 높혀주기 마련이었다.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선달은 사내의 뒷배를 캐내기 위해 그가 마패를 꺼낸 이유부터 들어보기로 하였다.


"바라는 것은 없소."


사내는 탁자에 마패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내의 말에 선달은 탁자 위의 마패를 보며 다시 고심했다.

보물을 단순히 자랑하기 위해 자신에게 보여준 것은 아닐 것이다.

요구조차 없으니 대체 의도가 무엇일까?


"이 마패는 조정에서 발행한 것으로, 이 마패를 본 자는 이승에서 살아갈 자격을 잃소."


사내가 선달의 상념을 깨고 말을 이었다.

선달은 그 말을 듣고 그가 왕의 사람임을 깨달았다.


"하늘이 건재함에도, 백성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내는 마패를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모를 잃은 아해가 조정의 징을 두드려 너의 악행을 하소연하였으니,

전하께서 백성에게 귀를 기울이셔 그 소리를 들었다."


선달은 무언가 잘못됨을 깨닫고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니! 그게 아니오! 내 말을 들어보시오!"


그럼에도 사내는 마패를 그의 눈높이까지 들여올려 그의 눈에 각인시켰다.

다섯 마리의 소가 그려진 마패, 그 위로 집행이라는 단어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이선달, 너의 악행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았다.

전하께서 암행어사 도깨비로 하여금 너에게 오체분시형을 내리시니.

죄인 이선달은 이를 받들라."


암행어사, 소문으로만 치부했던 이야기었다.

왕의 명령만을 다르는 무자비한 사냥개.

그들이 자신의 목을 물러 온 것이었다.


그제서야 선달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처음보는 사내는 자연스럽게 자신과 술을 마실 수 있었단 말인가?

자신의 뇌가 해킹당했음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늦었다.

도깨비의 등 뒤에 일렁이는 다섯 마리의 황소가 분노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으니.


선달은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황소들이 달려들어 그의 사지와 목을 매달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내달렸다.

뜯어질 듯한 고통을 느낀 선달이 비명을 질렀으나 그의 저택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남은 벌은 저승에서 받게 될 것이다."


도깨비의 말과 함께 선달은 여섯조각이 나 땅바닥에 굴러다녔다.

도깨비는 술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잘먹고 가오."


그 말과 함께 도깨비가 사라졌고 아무도 모르게 꺼졌던 CCTV가 켜져 홀로 조각난 시체를 찍었다.

그럼에도 네오전주의 밤은 고요하기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