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지난 이야기
어쩐지 힘이 솟는다.
상처 없이 이길 마법이란 걸, 여우가 알려주었다.



*


여우가 알려준 마법은 상황에 무척 적합한 마법이었나보다.


탄을 맞은 안경잡이 마법소녀는 변신 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약물로 쓰던 힘도 사라진 상태였다.



"안 돼요."



약물을 새로 꺼내려 들기에 곧바로 막아섰다.



"그으읏, 놔요!"


[놓으란다고 놓겠어?]



나는 재빨리 약물을 빼앗아서 바닥에 내던졌다.



"이제 힘도 잃었는데 포기해요!"


"못해요. 동생을 위해서라도."


"언니?"



느닷없는 핑계에 동생 본인이 등장하셨다.


바닥 꺼지는 그 함정에서 이제야 올라왔구나!


우리 막내 점원은 다소 지친 기색은 보였지만 상처는 없었다.


언니는 우리 막내 점원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이상하다. 내 눈이 잘못됐나."



다시 한번 동생을 보고는 나와, 제 동생을 번갈아보았다.



"어떻게 된 거에요?

동생은 당신들한테 져서 끔찍한 꼴을 당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살까지 보기 좋게 오르고."


"데려다가 밥 먹이고 일 시켰는데요."


"일이요?"


"손님한테 차 내주게 하고, 꽃도 팔고.

우리 찻집 안 와봤어요?"


"예전에 가봤죠.

아, 그 일.

아하. 그 일...."



여성이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순순히 두 손을 올렸다.



"무조건 항복합니다.

되도록이면 인도적으로 대해주세요."


"무조건?"


"무조건."


[무조건?]


"무조건."



갑작스러운 전황 변화였다!

민간인과 주먹질을 하고 싸워야 하나 하던 염려는 창졸간에 사라져버렸다.



"동생이 안전하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요.

바로 항복했을 텐데."


"당신 방금까지 당신한테도 목적이 있다 어쩌고 했잖아요."


"목적보단 동생이 더 소중해요."



눈이 진실된 것치곤 자못 오그라드는 코멘트였다.


위험한 시스콤이었다.


참, 쟤 원작에선 브라콤이었잖아.


풀어야 하는 의문이 있었다.


소장실을 나오며 갖가지 질문을 던졌다.



"마법소녀는 언제 된 거에요?"


"샤샤가 마법소녀가 될 때쯤요."



동생이랑 비슷한 시기였구나.


가만, 원작에선 분명....



"죽은 동생을 살리고자 마법소녀가 된 게-."



조용히 중얼거렸는데 언니 귀에 들렸나보다.


언니는 시퍼래진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거구나.


그걸 했고, 소생엔 실패했구나.


그래서 샤샤 목 뒤에 문양이 있었구나.


へ가 아니라 7이었구나



"다 왔어요. 여기에요.

괴수가 데리고 온 혼령은 대부분 특별한 구석이 있어서 여기 이렇게 모아뒀어요."



끼익하고 문을 열자, 그곳에 실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아이고 이게 누군감."


"아저씨!"



귀신 아저씨였다.



"아저씨 찾느라고 시간 엄청 걸렸어요!"


"알았네. 와줘서 고맙구만.

발키리 아가씨."



오호- 하더니 전前 마법소녀가 한마디했다.



"친근하게 구는 것치곤 호칭이 어색하네요.

서로 이름은 몰라요?"


"우리가 좀 어중한 관계여서 그려."


"그러고보니 아저씨 이름 못 들었네요.

아저씨 이름 뭐에요?"


"나? 듣고 웃을 거 같은데."


"안 웃을 게요."


"이남주. 부모님이 한국분이라 이름이 이렇다네."



이남주.


이남주?


이 게임 남주 이름 아니야?


근데 남주는 젊었는데?



"아, 앗, 아저씨 왜 그렇게 늙었어요?"


"아가씨 말이 심한 거 아닌감?"



나는 인게임에서의 기억을 되짚어서 물었다.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죽은 거 아니었어요, 아저씨?"


"내가 아가씨한테 그런 말을 했남? 아가씨 별 일을 다 아는구만.

근데 아닐세. 죽을 뻔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힘내서 살려주셨다네."


"의사가 어떤 분이었는데요?"


"좀 장난이 심한 분이셨다네.

날더러 내가 살아야 대전쟁이 일어난다나 뭐라나 하셨어.

내가 미대 떨어진 콧수염도 아닌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네.

이름이 인상적이신 분이었는데, 분명히 이름이...."



아저씨가 끔뻑끔뻑 눈을 깜빡였다.


아저씨들은 왜 저거 하는 걸까?


저러면 기억이 더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까?



"아 맞아! 로키! 로키였어!

꼭 신화에 나온 이름을 대시길래 짓궃은 분이라 생각했지."



아.


로키라면 나도 안다.


나 마블 봤다고.


그 이마가 넓은 신이잖아.




*



「그래서 그 일로부터 시간이 꽤 경과했어요. 계절도 몇번 바뀌었고요.


그간 떠날 채비도 하고, 인사도 천천히 했어요.


가끔 자연발생하는 악령들이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저와 릴리가 때려잡고 벨 아저씨가 어디론가 끌고 가셨어요.



"지하에 임시 저승을 새로 만들고 있단다.

헬헤임까지 가게 하기엔 너무 멀잖니."



벨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어요.


아마 악령은 그쪽으로 끌고 가는 거겠죠.



"극락왕생하면 다시 만납세."



성불처를 망설이던 귀신 아저씨도 제 소개로, 벨 아저씨네 임시 저승으로 갔어요.


당연히, 저와 그간의 회포를 푼 이후에요.


아저씨 만나느라 이 긴 고난을 치뤘는데 바로 보낼 수야 없죠.



"아직 공간이 부족해서 대량 수용은 불가능하고, 가는 방법도 나 빼곤 모르지만...."



벨 아저씨가 말을 흐렸지만, 어쨌거나 새로운 저승이란 건, 새로운 희망이 생겼단 거에요.



"뭐, 지금은 임시잖아요 아빠.

공간이야 넓히면 되죠.

이 마을도 처음엔 코딱지만 했는데."



집주인은 그렇게 축하했어요.


제 예상이지만 어쩌면 전에 일렀던, 찻집에 찾아온 주정뱅이 아가씨도 그리로 데려간 걸지도 모르겠네요.


악당 마법소녀 자매의 언니쪽은 투옥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눈치로 보아서 오래 잡혀있지 않을 듯했는데, 동생이 하루에 3번씩 면회를 찾아가곤 해요.


지독한 시스콤입니다.


동생쪽이요?


동생쪽은 의외로 투옥기간이 매우 짧았습니다.



"아르바님 떠나면 절 도울 마법소녀가 한명은 필요해요."



그런 명목의 진정서였습니다.


짧게나마 투옥되긴 했으니 어쨌거나 전과범이네요.


나온 후에는 마법소녀 릴리가 왕창 부려먹고 있습니다.


유능한 알바라고 좋아하더군요.


벨 아저씨는 틈이 날 때마다 여우와 수다를 떠는 게 인생의 낙인 모양입니다.


여우도 입이 유순해져서 둘이 대화할 때면 두 죽마고우 노인이 서로 옛 추억을 더듬는 거 같아요.


며칠 전에 나눈 잡담 중 인상 깊었던 걸 떠올려보자면....



"그건 그렇고 선대 레긴레이프 녀석, 참 정신 나간 놈이었지."


[자넨 만나본 적 있나?]


"나야 젊었을 때 자유로웠으니까. 자넨 없나?"


[만나본 적 없는데. 난 젊었을 때 왕하고 있었잖아.]


"그랬지 참."


[어떤 놈이었나?]


"여장이 잘 어울리는 남신이었지.

여자한테 인기가 많았고, 본인도 여자 좋아해서 하루에 9명씩 상대했다던 걸.

허구한 날 자기 부하들 꼬셔가지고."


[9명? 절륜한 녀석이로구만.]


"사실 9명이란 건 허풍이야.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지.

아무리 놈이라도 9명은 불가능했어."


[현실은 어땠는데?]


"7명 정도 했지."


[절륜한 놈이로구만.]


"놈이 나한테, 자긴 예전에 알브헤임의 요정왕도 한번 유혹해서 넘어뜨렸다고 했어.

그때도 8번 했었는데, 거기까지가 한계였다고 하더구만."


[요정왕, 그 콧대 높은 여자를?]


"에잉, 그 전전대 말일세."


[전전대면... 아, 그 걸레?]


"자넨 애 앞에서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여하간, 그때 요정왕이 쓰던 자위 기구도 기념으로 받았다던 걸."


[그걸 왜 받아. 정신 나간 녀석이로군.]


"듣기론 뿔피리 형식으로 가공해서 발키리 부대에 뿌렸다는데, 어딨는지는 죽은 미미르나 돼야 알겠지."



뭐, 그랬습니다.


도무지 사용처를 알 수 없었던 뿔피리의 불편한 진실....


왜, 게르만 땅 떠나올 때 주셨던 선물 있잖아요.


요정왕의 뿔피리.


그게 그런 사연이라고 하더군요.


마법소녀 릴리는 이젠, 만사 싱글벙글입니다.


하루에 3시간 남짓 깨어있는 아버지래도, 곁에 있단 게 무지 행복한가봐요.


벨 아저씨가 하루 대여섯시간쯤 활동 가능하게 되면 그때 본격적으로 마을에, 아저씨의 부활을 알릴 셈인가봐요.



"그때까진 저만 독차치할 거에요."



틈이 날 적마다 벨 아저씨한테 가서 안겨있는 폼이,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업한 친구에게 화분 선물한다던 손님 기억하세요?


이번에 그 친구 분이 벌린 사업이 성공했다나봐요.


이 작은 마을에서 사업 성공을 했다면 대단한 거겠죠.



"숟가락 얹을 만한 방법 없을까요...."

 


가게에 오면 늘 그리 물어보곤 합니다.


"숟가락 선물해드릴까요?" 하면 "그런 의미 아닌데요"하고 되받아치더군요.


저와 여우는 마을을 떠날 예정입니다.


헬헤임으로 가서 저승의 성불 사업을 재개할 수 없는지 물어야 하거든요.



"내가 언급한 임시 저승은 어디까지나 임시고, 이게 잘 되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닐 거란다.

지금은 일단 헬헤임에 의존하는 편이 최상이겠지."

 


-라고 벨 아저씨가 말했기에, 저희가 가기로 했어요.


어차피 이제 이 마을에 볼 일이 더 남아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벨 아저씨는 산양 얼굴의 가면을 넘겨주며 "이걸 보여주고, 서리거인의 새로운 왕이 보내서 왔다고 말하렴"라고 했어요.


벨 아저씨가 수락해줄 거라며 호언장담을 했으니 문제없이 들여보내주겠죠.


출발 날짜는 며칠 후에요.


걱정 마세요, 이번엔 따뜻한 옷도, 음식도 왕창 챙겼어요.


얼어죽을 뻔한 경험은 1번이면 족해요.


더 말하고픈 내용은 많지만 자야할 시간이에요.


편지는 이쯤에서 줄일까 합니다.


벨 아저씨가 "발키리는 이렇게 편지 쓰더라"하던 방식을 따라서, 이 글은 까마귀 발에 묶어서 보냅니다.


까마귀한테 사람 제대로 찾아가라고 마법도 여러번 걸었으니 잘 찾아갈... 가... 가겠죠?


사실 마법은 아직도 너무 어려워서 확신이 없어요.



[네가 쓴 마법식은 너무 허접해서 동네 초등학생이 이불에 그린 오줌이래도 믿겠다!]


"그... 아무리 마법식은 부가적인 것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신경을 안 쓸 필요는 없단다.

조금 더 신중을 기해보자꾸나."


"선배 마법식 쓰다 코코낸내했군요?"


"그, 그, 그... 누구나 처음은 있죠."



제 마법식을 본 분들의 솔직한 반응이었어요.


위에서부터 여우, 벨 아저씨, 막내 점원인 샤샤, 그리고 릴리.


참고로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 삐약이한테도 보여줬는데, 셋다 배를 잡고 바닥에 뒹굴었어요.


다들 참 못되먹은 성격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보기엔, 분명히 훌륭하게 썼는데 인정하기 싫어서 이러는 것이리라 봐요.


그럼 이만 편지 줄일게요.


여우가 [불 끄고 밤에는 잠 좀 자자]며 아우성이거든요.


아, 같이 보낸 건 제가 만든 쿠키에요.


제 요리 다들 끔찍하다는데 여우는 칭찬하거든요.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어서 보내는 거에요.


언니도 한번 먹어보고 평가해주세요.




-사랑을 담아서, 왕이.



무릎까지 꿇고, 두손으로 정중하게 편지를 받아읽던 헤르표투르 부대의 대장이 상자에 들어있던 쿠키를 들었다.



"이거... 란 말이지?"



아무래도 빛깔이 수상쩍어 입에 집어넣기에는 공포스러운 외관.


하지만 왕이 보낸 이상, 입에 대는 게 신하된 자의 도리였다.



"이걸 어쩐다?"


"이바아아 헌병감... 딸꾹! 술, 술, 술 남누운 거... 있나?"



갑자기 막사를 찾은 이는 술 취한 라드그리드 부대의 대장이었다.


헤르표투르 부대의 대장은 군기를 다 잡을까 하다가 민폐 동료를 맞았다.



"술은 없고, 안주 있어."


"앉, 안자... 안자?"


"안주. 쿠키야. 우리 왕이 보내줬어."


"쿠키이! 왕이며언... 우리 꼬마 와앙?"


"그래그래. 어서 한입 먹어."



정신이 온전치 못한 라드그리드 부대의 대장의 입에, 헤르표투르 부대의 대장이 쿠키를 쑤셔넣었다.


취하여 헤실헤실 웃던 라드그리드 부대의 대장은, 쿠키를 깨물고 정확히 5초 후에 사색이 되어 막사를 뛰쳐나갔다.



"읏, 으웁, 구우웨에게엑!"


"별로야? 이상하다.

분명히 맛있단 의견도 있었다고 써져있었는데."


"영국 놈들이나 그따구우 평가를... 딸꾹, 하겠지이! 구우웨엑!

이게 마시써어? 이게에? 우웁웨엑!"



헌병감에게 등이 두들겨지는, 구토 중인 군사軍師.


일반 병사들이 보기엔 골계인 광경이었다.



"뭐야 재밌는 일 있어? 나도 끼워줘!"



괼 부대의 대장이 신나서 달려왔다.


아홉개의 바다와 아홉개의 산호를 건너, 꼬리 말린 돼지들이 자리잡은 산맥 너머에서,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


내개 해냈어 세상에
... 근데 뭐 빠뜨리고 회수 안한 떡밥 있나. 왤캐 불안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