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쓰레기 수거일은 목요일입니다


(틋챈 펌 링크 )


https://arca.live/b/tsfiction/102164643
https://arca.live/b/tsfiction/102165896
https://arca.live/b/tsfiction/102166263



선행 및 참고한 리뷰 : https://arca.live/b/tsfiction/104269472



전제 :


  1. 본문에서는 타쓰라는 약칭으로 부르거나, ‘작품으로 대신하여 지칭하겠음

  2. <타.쓰.>에 대한 스포일러 존재함.  

  3. 작성자가 피폐물에 대한 이해전반이 부족할 수 있음.

      



 나름 괜찮은 머리수려한 미모모두가 남부러워할 만큼의 집안관심과 애정에 대한 갈증.

 

 채워지지 않는 욕망찰나로도 만족할 수 없는 공허함어느 한 순간의 삐끗거림

 

 브레이크 없는 추락자살 시도자기파멸의 욕구죄의 근원과 어설픈 대면정신병동 입원

 

 

 핵심적인 부분은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지만화소(motif)만을 나열하는 식으로 조잡하게 요악해보았습니다. 저기서 크게 어긋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에서 TS는 작품의 시작이자 시발점에 해당하지만그 속성을 좀 더 깊게 파고들자면 전생의 속성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작품에서 TS라는 소재를 빼고 본다면,


 이런 구조와 매우 흡사한 플롯을 지닌 소설이 있습니다.

 

 이미 해당 작품에 대한 타 리뷰에서도 다뤄진 소설이기도 하고유명한 만큼 떠올리신 분도 있을 거 같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죠.

 

그런데 <인간실격>의 오바 요조와 <..>의 주인공은 유사하게 보일지 몰라도그 근원은 전혀 다릅니다.

 


솔직히 말해서견주는 것 자체가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서사물은 욕망의 원리에 기반합니다.


주인공이 어떤 욕망을 쫓느냐, 그 주변 인물들은 어떤 욕망을 바라느냐에 따라서 이야기가 형성됩니다.


홍길동은 가족 구성원의 하나로 떳떳하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으로 갖가지 기행을 펼쳤고,


오로지 부와 명예만을 욕망하던 토니 스타크는 일종의 사고를 당한 이후, 그 욕망을 철회함과 동시에 아이언맨이 되었으며,


또 뭐가 있을까, 아. 욕망의 방향성과 작용 원리를 따지는 게 무의미한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의 청이도 있겠네요.


하여튼 간에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인 만큼, 인간의 삶을 필연적으로 모방할 수 밖에 없는 서사물도 욕망의 투영과 성취의 과정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겁니다.



오바 요조의 욕망은 인정욕구와 애정욕에 가깝고, '한초연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주인공'(이후 한초연으로 지칭)도 같습니다.



추구하는 욕망이 일반적이지 않고 보편적이지 않을 수록 독자는 그에 대한 설명을 원합니다.


저녁을 먹는데 부걱스를 하던 치킨스를 하던 피자스를 하는 건 흔하디 흔한 욕망이지만


나는 곧 뒤져도 부걱스를 해야한다


치킨스를 하는데 닭뼈까지 씹어먹는다 


뭐 이런 이질적인 요소가 있다면 설명이 필요하죠.


얘는 왜 이걸 바라지? 꼭 그걸 가져야만 해? 굳이? 


<인간 실격>은 첫 번째 수기에서 오바 요조의 그러한 내력을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어떠한 성격이었는지. 유년 시절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어떤 '나쁜 짓'을 당했는지.



<타.쓰.>에서는 간헐적인 순간에서의 점멸하는 듯한 내적 묘사와, 


말미에 이르러서야 '흔하디 흔한'으로 수식한 지난 생의 내력을 토로합니다.



이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독자는 무의식적으로 작중 인물을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설령 완전한 공감까지 못하더라도, 그 모든 행위를 묵인하고 옹호할 수는 없더라도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식의 이해.

거기에다가 찰나일지언정 인물에 몰입한다면 훌륭한 소설 속 인물이겠죠.



<인간실격>에서 명장면으로 꼽히는 게 "인간, 실격." 그 구절이라고들 하지만 


설득력있고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더 있으며, '첫 번째 수기'도 그러합니다.


<인간실격>이 읽히고 칭송받는 건 오바 요조라는 인물의 속성이 당시 전후 일본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여러 사람들에게, 특히 (홍보 문구를 빌리면) 청춘과 젊은이의 불안함을 짚어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완전 몰입은 불성설이지만, 이 인간의 종말을 슬퍼해줄 수 있었기에 좋은 작품으로 읽었습니다.



한초연은 아닙니다. 


한초연의 내막이 상세하게 설명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왜 그런 동기를 품게 되었는지 설명된 적이 없습니다. 


그 독백과 묘사는 절절하고, 애처롭고, 질척거리며 계속 가라앉지만,


모두 자기합리화와 자학적 - 그것도 스스로의 방어기제로만 보입니다 - 인 내용의 점철일 뿐입니다.


여기서 얘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 순 있는데 그거에 공감은 어렵습니다.




오케이.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억까에 억까를 거듭 덧칠해서 <타.쓰.>의 진가를 몰라보는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바 요조와 한초연의 차이는 '뿌리'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각각이 어떤 잎을 틔우고 어떤 열매를 맺었느냐에 더 큰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오바 요조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건 '익살'이었습니다.


강한 페르소나를 덧씌우고, 어떻게든 내면을 감추려고 노력했습니다.


거절은 생각도 않고, 모두를 안심시키고자 했으며, 남에게 친절하고자 했습니다. 

건달에게도, 창부에게도. 


그것이 불가하게 되었을 때, 자기 혐오와 인간에 대한 선천적인 공포, 무능함에 시달리고,


세상이 더한 억까(부조리)를 제시하고서도 대항조차 못하다가


술과, 마약에 까지 손을 대었다가 결국 '인간 실격'이 되고 맙니다.



한초연의 시작은 엇비슷해보입니다. 


여학생의  탈을 썼으니, 지금 갖고 있는 환경과 집단에 어울리고자.


이전 생에서 얻지 못했던 사랑을 지금은 누리고자, 


많은 이들과 친해지고, 사랑받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좌절되었을 때,


한초연이 가하는 폭력의 방향은 바깥입니다. 




이 지점에서 <타.쓰.>와 견주어볼 건 더 이상 <인간 실격>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교양이 얇고 독서 편력이 짧은 편이라 다양한 작품을 견줘보기가 어려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이건데.... 사실 비교가 죄송스럽죠.


'악이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밀도있게 관찰한 <종의 기원(2016)>에 비하면 한초연의 폭주는 깊이가 빈약합니다.





그러면 좀 더 대중적이고 유명한 작품. 내재적인 아픔을 무?고한 바깥으로 내보인 수작.



그래요. 


거듭 얘기하지만 비교가 실례스럽습니다. 





'하나의 트리거가 아슬아슬하던 일상의 붕괴'라는 플롯의 구성은 


그나마 <종의 기원>에 더 가깝기는 한데. 과격한 맛은 더 좋을지 몰라도, 


앞서 말했다시피 난행은 피상적이며 깊이가 부족합니다. 



그 고통과 동기, 욕망의 기원이 <JOKER(2019)>와 흡사해보이기는 해도


아서 플렉이 저 옷을 입고 저런 분장을 하게 되기까지의 여정.


저 우스꽝스러운 꼴을 보고도 우리가 절대 비웃지 않는 이유.


한초연의 폭주와는 궤가 다릅니다. 




정리하자면, 한초연은 그 동기와 욕망이 독자에게 호소력 있게 제시되어있지 않는데,


자기 합리화나 표면적인 자학으로 점철한 내면 묘사를 짊어지고 


도덕률의 파괴, 사회적인 매장과 살해, 치명적인 육체 손상을 입히면서도 


끝내 자기 죄악과 대면할 용기도 의지도 없는 


'인물'이 아니라 수단, 추악함을 종합하려는 수단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다른 작품에 비해 유독 불쾌하다. 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쓰다가 든 생각인데,


말미에서 등장한 '흔하디 흔한 이야기'라는 과거 내막이 진짜 설명하려는 전부였다면.


정말 작가의 의도가 거기에 있다면.


<타.쓰.>에 더 이상 공감도 이해도, 체면치레의 좋은 말도 못하겠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이 모두를 파멸하는 것'에 보편성을 부여하려고 한 의도라면 진짜 그거 잘못된 겁니다.


 '사회성 결여'? 장애 수준의 사회성 결여도 말을 못하면 못했지 저짓거리는 안합니다. 

 

 애정 결핍도, 한 부모 밑에서의 핍박도, 학창시절에서의 학교폭력도.


 절대로 저런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거든요.


 그러면 한초연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봐야하는데,


 그걸 짐작할 단서도, 이해할 여지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히 불쾌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가치에 대해서 말을 아끼는 거기도 하고..

 




 그래서 <타.쓰.>가 못 쓴 작품이냐?


 "계속 쓰여졌고 쓰여질 이야기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이야기에 대한 타자의 기대는 ‘더 허둥거려. 더 비참해져. 읽는 사람이 잠시 딴청 부리게 만들어.’입니다. 일반적으론 단숨에 다 읽었다는 말이 글에 대한 찬사겠지만 타자는 이런 이야기에 대한 좋은 찬사는 읽기 힘들어서 잠깐 멈췄다는 말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유감이지만 한 번에 다 읽었음을 고백하겠습니다. (물론 무슨 해석인가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 타자의 특수한 입장이 주된 이유겠지만) 욕이 튀어나오는 장면이 없군요."

 

 문체를 보시면 짐작하시겠지만, 이영도 작가의 평(https://britg.kr/award/2020fanfic/) 중 하나입니다. 


 네, "쓰면서 재미있으셨습니까? 그러셨기를 바랍니다."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는 그 팬픽 평론. 


 비교적 덜 유명한 부분일텐데, 저는 피폐물이 갖추어야할 요소나 피폐물에 대한 찬사는 저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숨에 읽었지만, 몇몇 분들은 읽으시면서 읽기 힘들었을 수도 있고, 딴청을 부릴 수도, 욕이 튀어나올 수도 있었겠죠.



 터무늬없는 폭주를 감싸는 필력만큼은 인정할만합니다.


 "#1, #2, #3, #5, #4"의 도치 구조도 좋았구요. 자해 장면도 의도적으로 선택적 배제를 실행한 것도 눈여겨볼만 했고.


중간 중간에 일부러 건조하게, 생기없는 조화처럼 짐짓 유쾌한 척하는 부분들도 괜찮았구요.


 어쩌면 단편자삭웹소설에 이런저런 작품들을 끌어들여 설명하게 한 것이 대단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원래는 작품론적, 반영론적, 효용론적, 표현론적 접근 이렇게 생각했다가 

 이게 무슨 의미인가 + 빨리 털어버리고 싶어서 그냥 썻습니다


 오타 지적 반박은 당신 말이 옳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