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이른 아침에 난 잠에서 깨어났다.

온 몸은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고, 곧 꿈을 꿨다는 자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테마파크 어딘가에 놀러왔었다라는 배경이 있었던 것 같다.

꿈속의 나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놀이기구를 타고, 길가를 거닐며 음식도 먹고 기분 좋게 놀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뭐, 꿈이라는 게 대개 그렇듯이 깨어나고 보면 잔상처럼 기억에 남아 머릿속을 어지럽히기에 정확하게는 서술하기 어렵다.

잔상. 하지만, 이 꿈은 다른 꿈보다 잔상에 남았다.

시점은 이리저리 옮겨져, 나는 테마파크의 공원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나는 일행에게서 잠시 떨어져(이들이 현실에서도 인기 있던 유튜버라는 걸 기억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땅에 깊게 박힌 표지 하나를 보았다.


"청동오리를 조심할 것."


이상했다. 야생동물이 위험하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만, 이곳은 순전히 테마파크였다. 야생동물공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급기야 많고 많은 동물 중에서도 청동오리라니? 이상하고 기이했지만, 결국 꿈은 꿈이라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이상해졌다. 가장 먼저 달라진 점은 주변 풍경이었다.


사람들이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다.

무릎을 꿇고 엎드리듯이 몸을 웅크린 채로 눈을 가리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소리는 나지 않는다. 몸의 움직임도 없다. 이들은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한 두명도 아니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자세로 죽은 모습은 충격적이기보다는 의문부터 들었다.


왜 죽었지?


그 의문에 답을 주려는 듯, 그것은 어김없이 내 앞에 나타났다.

길가에 나타난 그것은 지금은 떠올리지 않는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일종의 문양이거나 물건이었을 수도 있겠다. 

허나 그것이 지금 이 사단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것을  꿈 속의 나도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을 쳐다보면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에 무딘건지 직업병인건지 도통 알 수는 없지만, 끝내주는 아이디어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보았다.


그 뒤에 장면은 테마파크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일행들은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앞에 선 채로 맞장구를 쳐주거나 웃고 있었다. 

하늘은 붉어져 있었고, 테마파크에서의 기이함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러다가 문득 시야 바깥에 눈에 띄는 게 들어와, 자연스레 시선을 그곳으로 돌렸다.

새였다.

꿈속의 나는 그것이 청동오리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오리는 날고 있지 않았다. 날개를 퍼덕거리지도, 앞을 향해 나아가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공원에 경고 하나가 떠올랐다.


"청동오리를 조심할 것."


나는 단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자 바라봤던 그것이 내 시선과 함께 내려왔다.

마치 잔상처럼, 내 눈 안에 박혀 있었다.

순간 극도록 불안해진 나는 뒤에 있던 일행에게 도움을 청하려 뒤를 돌았다.

(대충 기억나는대로 그림, 청동오리는 내 시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음)


근데 웬 걸, 그들 공원에서 만난 그들처럼 입을 벌린 채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그것을 봤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


두려움과 공포에 어떻게든 내 눈에 박힌 오리를 떼어내려 머리를 미친듯이 흔들었다. 


오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를 넘어, 열 마리, 스무 마리…  

그리고 이내 그것들이 내가 보는 세상을 전부 덮어버리면서 끝났다.



나를 반긴 건 어둠은 아니었다.

꿈틀거리는 녹색이었다.

오리들이 날갯짓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남은 건 소름끼치도록 비명지르는 내 목소리와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 고요한 정적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입을 벌린 채로 죽었던 이유를 그제서야 깨달았다.


---


오늘 꿨던 꿈

꿈 내용 자체가 희미해져서 최대한 기억나는대로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