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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절, 밤을 새면 온몸, 그중에서도 특히 허리가 아프다는 건 상식이다.

  

  황륜대제를 준비하다가 밀레니엄의 학생들과 밤을 새며 다 같이 골골 앓던 일이 얼마 전 일이었기에 딱히 나이를 탓할 것도 없지만.

  

  다만 내가 악질이라 생각하는 점은, 밤을 샐 때라면 모를까 해가 떠오를 때가 되어서도 고통이 밀려온다는 점이다.

  

  다들 개운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설 때, 나만은 유일하게 허리에서 뚝 소리가 날까 두려워 그러지 못한 일이 얼마 전이다. 

  

  그리고 밤을 샌 오늘의 아침.

  

  나는 한 손으론 계속해서 허리를 두들기며, 다른 한 손으론 연이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아무래도 젊은 게 좋긴 좋은 모양이다.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밤 따윈 밥 먹듯 새버려도 쌩썡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온몸이 무겁고 나른하다.

  

  안 그래도 답답한 몸을 더 답답하게 만드는 양복을 벗을 생각 따윈 하지도 못했다. 그럴 시간이 있었으면 차라리 커피를 하나 타왔을 테니까.


  "아오…"

  

  안 되겠다.

  

  이대로 가다간 또 유우카한테 꾸중을 들을지도 모른다. 건강관리니, 뭐니 하면서. 다크서클까진 괜찮겠지만 아무래도 허리를 짚고 있는 건 무리겠지.

  

  일방적으로 꾸중을 듣기 전, 자그마한 빠져나갈 구석이라도 만들기 위해 파스라도 붙이려 자리에서 일어나 선반을 뒤졌다.

  

  "파스가 어디 있더라… 아니다, 다 썼었나."

  

  선반을 뒤적거리던 도중, 요새 들어 업무가 격해진 탓에 틈만 나면 파스를 붙인 일이 생각났다. 그만큼 다 쓴 지 오래거나, 남아봤자 몇 개 남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만큼, 깔끔하게 기대를 접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뒤져보기야 하겠지만, 차라리.

  

  "당번인 학생한테 오는 길에 파스 좀 사 와달라고 할까. 오늘 당번이…"

  

  그리 생각하며 슬쩍 눈을 돌려 당번표를 확인하니, 꾸준히 당번표에 이름을 적어두는 학생의 이름이 보였다. 타카나시 호시노. 날짜를 확인하고 곧장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거리는 기본 벨소리가 몇 번 채 울리기도 전에 휴대폰 너머로 졸음으로 가득 찬, 나긋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선생, 웬일일까, 이 아저씨한테 전화를 다 하고. 혹시, 이 아저씨가 보고 싶어졌어? 으헤~ 곤란하구만~』

  

  "아니 뭐, 쌓인 일이 많아서 호시노뿐만이 아니라 누구든 보고 싶긴 한데. 별일은 아니고, 오늘 당번이지? 혹시 오는 길에 약국 좀 들러줄 수 있어?"

  

  『안 그래도 샬레로 가고 있었다고. 30분 정도면 도착할 거야. 근데 약국은 왜? 선생,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그럼 안된다고. 이 아저씨도 마음이 아프니까.』

  

  전화가 길어질 것 같은 예감에 전화를 스피커로 돌리고, 선반 깊숙한 곳을 향해 손을 옮겼다. 케케묵은 먼지가 손에 잡힌다.

  

  이 먼지도 금방 닳아 없어질지도 모른다. 정말 아저씨라도 되는 것처럼, 호시노는 통화만 하면 은근슬쩍 잡담을 시작해서 끊기 곤란하게 만드니.

  

  『그러고 보니 말이지 선생, 저번에 간 수족관에서 이벤트를 한다고 하던데.』

  

  "그래? 무슨 이벤튼데? 어, 잠."

  

  호시노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려던 도중, 발을 삐끗하고 말았다.

  

  넘어지기 전에 간신히 선반을 부여잡아 버티는 데에 성공하긴 했으나, 요동치는 허리에 들이닥친 통증을 막을 방법은 없는지라 그만 신음을 흘렸다.

  

  "커헉!"

  

  『…선생?』

  

  그 순간, 활발하게 떠들던 호시노의 나긋한 목소리는 어디 가고 단번에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이제는 이 목소리도 익숙하다.

  

  나름의 걱정의 표시란 건 알고있었지만, 그것에 감사하기도 하루 이틀. 요즘 들어 뭔가 불편하다는 티만 보여도 자주 이러다 보니 곤혹스럽기도 했다.

  

  너무 분위기가 확확 바뀌면 이쪽도 괜찮은 건 맞나 오히려 걱정스러운데. 오죽해서 이유도 여러 번 물어봤지만 제대로 대답해 준 적이 없었다.

  

  "아니, 아픈 건 아닌데 요즘 잠을 통 못 자서 그런가, 몸이 좀 무거워서. 방금도 뭐 좀 찾다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음, 그러니까 올 때 파스 좀 사다 줄래? 돈은 샬레에서 줄게." 

  

  『으음, 그런 건가. 잠깐 누워 있으라고, 선생. 금방 사서 갈 테니까.』

  

  "좀 힘들 것 같은데. 아직 일이 쌓여있거든. 밤을 새도 끝이 안 보이네."

  

  『안돼. 원래 그럴 때 더 쉬어야 하는 법이라고, 선생? 바쁜 몸이니까 쉴 때는 제대로 쉬어둬야지. 그럼, 아저씨가 갈 때까지 꼼짝 말고 누워 있으라구~』

  

  내가 대꾸할 틈도 없이, 뚝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액정의 불빛이 꺼진 핸드폰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도중, 허리의 통증이 쉴 새를 주지 않고 다시금 찾아왔다.

  

  이대로 의자에 앉는 것도 무리일 거라 느껴, 어기적 걸으며 호시노의 말대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푹신하긴 하네, 끌끌."

  

  푹신함이 온몸을 휘감았으나 너무 빠져들진 않았다.

  

  이대로라면 십중팔구 드러눕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상쾌한 저녁을 맞이하고 말 테니까.

  

  안 그래도 요즘 호시노에게 등 떠밀려 같이 낮잠을 습관처럼 자버린 탓에 오후만 되면 잠이 솔솔 쏟아지는데, 자칫하다간 생활패턴이 아예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호시노가 언제부터 이렇게 적극적으로 낮잠을 권유했더라. 원래도 은근슬쩍 느긋하게 보내자는 등 얘기하던 아이긴 했지만, 이 정돈 아니었는데.

  

  그렇게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를 들으며 대충 시간을 떼우다 보니, 어느새, 눈앞에 해맑은 색들이 가득했다.

  

  무성한 벚꽃을 연상케 하는 허리까지 닿는 기다란 분홍빛 머리카락, 노을을 닮은 주홍색과 푸른 하늘 같은 푸른색을 가진, 색이 다른 두 눈동자.

  

  그리고 그런 얼굴에 언제나 나른한 표정이 걸려있는 학생. 타카나시 호시노. 

  

  다짜고짜 눈앞에 얼굴을 들이댄 호시노는 나른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 선생, 아저씨가 왔다고~"

  

  언제 들어도 점심쯤의 햇살 같은 느긋한 목소리였다. 입꼬리를 슬며시 올린 호시노를 마주 보며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30분쯤 걸린다고 하지 않았어?"

  

  "으음. 뭐, 확실히 느긋하게 걸어오면 그 정도였겠지만, 선생이 아파하는데 여유를 부리기도 조금 그래서?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그 말처럼 뛰어왔다는 표시를 숨기지 않는 호시노의 뺨은, 조금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피곤하다는 듯 봉투를 든 손으로 눈가를 비볐다.

  

  "자, 여기. 선생. 파스하고, 간식거리도 조금 사 왔어. 같이 먹자고?"

  

  "그래, 좋지. 어차피 잠깐 쉬어야 할 것 같기도 했어. 근데 일단… 파스부터 붙이고. 그새 더 아파졌네."

  

  고개를 숙인 호시노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몸을 일으킨 그 짧은 순간.

  

  그 잠깐 사이에, 허리에 전해져오는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그래도 이 정도면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돈 아니지만, 당분간 누워있긴 해야 할 정도.

  

  탁자 위에 여러 간식거리들과 파스를 올려두는 호시노로부터 파스를 건네받아, 부욱 찢고 파스를 붙이려던 찰나.

  

  잘못하면 파스는 붙이지도 못하고 괜히 비명만 지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자칫 잘못될뻔한 순간에, 식은땀을 흘리며 호시노를 불렀다.

  

  "호시노, 손이 안 닿아서 그런데 대신 붙여줄 수 있어? 부담스러우면 그냥 내가 할게."

  

  그리 말하면서 양복 셔츠를 살짝 올리고 뒤를 돌았다. 몸을 돌리기 직전, 셔츠를 말아 올리는 내 행동에 눈을 크게 뜬 호시노의 모습이 보인 것도 같았다.

  

  "으헤?! 선생, 이 아저씨한테 그런 건 좀 이르다고 할까 뭐랄까… 아니아니, 선생이 부탁한 거니깐 어쩔 수 없는 건가~? 응… 곤란하구만~"

  

  등 너머로 들려오는 당혹감에 찬 것 같은 호시노의 목소리. 얼핏 듣기로는 아무리 호시노라도 당황한 듯 조금씩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은 듯, 자신만 믿으라는 것처럼 의기양양한 콧소리와 함께 등에 시원한 감촉이 느껴졌다. 고작해야 파스를 붙이는 일인데 말이지.

  

  "그럼, 이 아저씨가 붙여줄… 선생. 이거 뭐야."

  

  그러나 그 시원한 느낌은 잠깐 사이에 사라지고, 왜인지 얼어붙을것만 같은 차가운 분위기가 등 뒤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느껴진 그 분위기에 당황하여 반사적으로 답했다.

  

  "응? 왜, 뭐가 있나?"

  

  "이거, 이거."

  

  아까와는 다른 느낌으로, 떨리는 호시노의 목소리. 호시노가 말했다고는 상상도 못 할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어 조금은 익숙하게 느껴졌다. 언제였더라. 그래, 분명 에덴조약 당시 사오리의 총에 맞았을 때 다른 학생들에게 들었던 것 같은…

  

  "아."

  

  "…총상. 이잖아."

  

  "잠깐만, 호시노. 내가 설명할 수 있어."

  

  "왜 말 안 한 거야? 아니, 왜 그런 거야? 언제, 누가. 선생, 응?"

  

  "잠깐만, 우리 잠시만 진정하자. 파스는 내가 붙일 테니까 우리 잠깐 서로 간의 거리를 두는 시간을 가져보자."

  

  "선생. 지금 파스가 중요해? 그리고, 거리를 두자고? 나는 그게 몸에 그런 상처를 낸 사람이 할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걸까?"

  

  낮게 가라앉은 호시노의 목소리와 함께 몸을 지그시 누르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가볍지만, 동시에 무겁다. 호시노가 온몸을 이용해 내 몸을 지그시 누르려는듯 껴안았다. 양복 위로 등을 타고 흐르는 괴리감과 무게가 부담스럽게만 다가왔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몸을 끌어안은 호시노의 팔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이유 모를 떨림이 가득한 그 손의 떨림을 멎게해주기 위해 일단 손을 부여잡고 내 어깨에 머리를 올린 호시노를 돌아보며 진정시키려 했다.

  

  "난 괜찮아, 어차피 시간이 오래 지난 거기도 하고. 그보다 호시노, 날 걱정해 주는 건 고맙긴 한데…"

  

  말을 들은 호시노는 싱긋 웃어 보이더니, 돌연 눈동자에서 생기를 지우며 초췌한 눈빛으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평소에는 생기 넘치고 발랄했던 그 두 눈동자가, 지금은 빛을 지운 눈동자가. 가까이 있었다.

  

  호시노는 그 상태에서, 입꼬리를 내리지 않고 천천히 웃음기 가득한 입을 열었다.

  

  "음, 이것 참. 정말이지 선생답구만~ 이럴 때도 항상 아저씨 같은 학생들부터 생각해 주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선생, 선생의 그런 점이 이 아저씨를 이상하게 만든단 말이지."

  

  "그건 또 무슨 소리."

  

  끝맺지 못한 말을 뒤로하고. 호시노는 내 몸을 감싸고 있던 두 팔 중 한 팔로는 내 손을 마주잡고, 남은 한 팔로는 나를 소파에 도로 눕혔다.

  

  그쯤해서는 어안이 벙벙해져 뭐라 말할 생각도 못 하고, 그저 조용히 호시노의 움직이는 입을 바라봤다.

  

  호시노가 소파의 푹신한 커버를 등지도록 눕혀주었기에 고통이랄 건 없었고, 조금은 흥분한 것 같은 호시노의 얼굴을 바라보는 데에 문제도 없었다. 

  

  "선생, 몇 주 전에 갑자기 뒤로 넘어지면서 쓰러졌었잖아? 이틀 연속 철야에 과로 때문이라고 듣긴 했지만, 그래도 엄청 걱정했다구? 안되지, 맨날 학생들만 걱정하고 말이야."

  

  짚이는 부분이 있었다. 아비도스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 방문하려다가 몰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쓰러졌던 일.

  

  그래도 호시노의 말처럼 심각한 건 아니고, 제대로 잠을 못 잔 것 뿐이었는데.

  

  "잠깐만. 그때 그건 그냥…"

  

  순간, 더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호시노가 내 입을 상냥하게 가로막았다.

  

  입을 가로막은 손을 눈치채자마자 곧장 팔을 들어 저항해 봤지만 헛된 저항에 불과했다. 애초에 내가 학생들을 힘으로 이길리가 만무했으니.

  

  허무하게 제압당한 팔과 열띤 호시노의 눈동자를 망연자실하게 보고 있자, 호시노가 남은 자신의 팔을 더듬어 내 복부를 쓰다듬었다. 뭔가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그것도, 이렇게 아픈 몸으로 말이야. 으헤~ 안 된다구, 아저씨는 속상해. 선생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그때처럼 또 쓰러지진 않을까. 그렇게 걱정하는데도 자기 몸을 돌볼 생각은 없으면서 우리를 걱정해 주기만 하지. 아저씨, 이상해질것 같았다고."

  

  부드러운 손길이 내 몸을 맴돌다가, 어느 한 지점에 멈춘다.

  

  에덴조약 당시 몸에 남은 상처. 이제는 약간의 간지러운 느낌밖에 들지 않는 오래된 상처.

  

  "그래도, 걱정 말라구, 선생?"

  

  호시노의 얼굴에 맺힌 땀 한 방울이, 연분홍빛으로 물들은 뺨을 타고 흘렀다.

  

  "이제, 내가 지켜 줄테니까. 두 번 다시는 잃지 않아."

  

  뭔가 괴로운 일을 떠올리는 것처럼, 호시노는 멍한 눈빛으로 중얼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눈을 감았다 뜬 호시노는 간드러지는, 촉촉이 젖은 눈동자로 복부에 난 상처를 쓰다듬으며 나를 내려보았다.

  

  "이런 총상 따위,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아저씨가 항상 지켜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러니까 선생?"

  

  들뜬 목소리와 함께, 호시노의 손길이 내게 닿는다.

  

  "잠깐만, 눈 감고 있으라고? 아저씨가 선생을 지킨다는, 증거를 남길 테니까."

  

  그 말과 함께, 호시노는 넥타이를 풀고, 얼굴을 맞부딪히려는 것처럼,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서 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