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안풀리는 날이었다.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무언가 해보려고 시도하면 새로운 일이 연속해서 터지고 수습하기 급급하다 결국에는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날.

딱 그런 날이었다.

어지러운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 괜히 건너편 부서의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마 같이 탈탈 털린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자리로 돌아온 조민환 대리가 마치 벌레라도 씹은 듯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잠깐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컴퓨터를 붙잡고는 무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분명 보았다.

무언가를 검색한 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온화해지고, 훨씬 침착해지고, 삶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찬 듯이 변하는 것을.

조민환 대리는 그 후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일과를 진행했다.

그날 이후에 나는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행동이 굼뜨고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핵심적인 질문에 유연하게 빠져나가는 능력이 없어 손해를 보는 일이 잦았고, 부서 사람들은 대놓고 그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39세의 독신, 만년 대리의 취급이 그랬다.

불합리한 상황이 닥치면 그는 잠깐 웃어 보이고는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자리에 가만히 돌아갔다.

중요한 건 그다음 상황이다.

그는 힘겨운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를 자신의 사무용 컴퓨터에 검색해 본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안정을 되찾고,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이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변화시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정말 미치도록 궁금했다.

궁금증이 나날이 자라 통제가 어려울 즘,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그의 당황이 느껴졌다.

그는 마치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그래도 악의 없는 호의를 거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그와 친분 관계가 정립되고 그를 따로 형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될 즘, 드디어 그에게 질문을 건넸다.

사실 형에게 궁금한 게 있다. 자리에서 지켜보니 형이 컴퓨터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나면 표정이 바뀌더라. 그게 뭔지 알고 싶다고.

나의 질문에 그의 표정이 굳는다.

잠깐의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생각할 말을 고르는 듯했다.

이후 그에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로 의외였다.

끝나고 자기 집에 들르지 않겠냐고. 그러면 이야기해 주겠다고.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의 표정은 사뭇 어두웠다.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긴, 내성적인 그에게 있어 집에 회사 사람을 들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그의 집은 회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허름한 구축형 빌라.

투룸형의 혼자 지내기 좋은 공간.

누군가가 방문한 일이 정말로 없는 듯한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그가 익숙한 자세로 컴퓨터를 켰다.

즐겨찾기 목록을 눌러 어떠한 사이트에 접속했다.

[보건복지부 장사정보 서비스 무연고 사망자 공고]

“어? 형님 이런 사이트 왜 보세요?”

나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다음 이어지는 그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기분전환으로..”

이런 걸 왜 보는 거지? 사이코패스인가?

굉장히 불쾌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해당 사이트에는 무연고 사망자의 출생연도와 이름, 등록기준지의 주소와 현재 주소, 사망 장소와 원인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이런 사이트가 있다는 것이 한 편으로 충격이고 그걸 취미 삼아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질문을 하라.

그것이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얻은 진리였다.

“형님, 좀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제가 잘 몰라서요.”

“나 설명 잘 못하는데...”

“...”

“누군가는 이 사람들 죽음을 알아줘야 할 것 같아서...”

의외의 좋은 대답이 나와 놀랐다.

"추모를 위해서?"

"...."

무언의 긍정인가.

생면부지인 사람의 죽음에 공감을 하고 그의 사후를 위해 기도해 준다?

어디 가서 쉽게 들어본 적 없는 성인군자의 이야기.

...그런 사람이었다고?

어딘가 위화감이 들었다.

"혹시..."

먼저 침묵을 깬 건 그였다.

"산재물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산재물이요?"

"아버지는 폭군이었어."

"폭군?"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정보들에 흐름을 따라가기 버거웠다.

"그 섬에서 아버지는 대장이었어. 모든 사람이 아버지의 말을 믿었거든. 아버지가 말하는 건 전부 정답이었고, 거역하면 안 되는 거였어."

"..."

"아버지는 싸움을 굉장히 잘해서 동네에서 아버지를 이길 사람이 없었지. 그런 사람이 신내림도 받았다고 하니 믿어져? 흉흉한 일들이 많았단 말이야."

"예를 들면 어떤..."

"산재물을 정할 수 있었어. 다들 재물이 되는 걸 피하기 위해 아버지의 눈치를 봤지. 간이며 쓸개며 다 떼 줄 기세였어."

그의 목소리가 조금씩 격양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산재물을 거부하는 이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어. 한 번은 옆집 아저씨가 산재물이 되는 걸 거부하자 아버지는 아저씨가 신벌로 독사에 물려 죽을 것이라고 했어. 다음 날 불쌍하게도 독에 감염되어 송장으로 발견되었지."

그는 내가 듣든 말든 계속해서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참 잔인한 사람이었어. 특히나 어머니에게. 자녀들은 7명이나 낳아놓고 가정에 무관심했지. 어느 날 아버지가 밖에서 새로운 여자를 한 명 데려왔어.  아버지의 외도는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렇게 대놓고 데려올 줄은 가족들 아무도 몰랐던 거지."

"그럴 수가..."

"어머니는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오열했고, 큰 형은 아버지를 때렸어. 우리 중 아무도 감히 행동에 옮기지 못했던 일이었지. 그 날밤 아버지의 신벌이 있었고 어머니와 큰 형은 칼에 찔려 사망했어."

"아..."

나는 그저 추임새 밖에 넣을 수 없었다.

그가 침을 한 번 크게 삼키고 말을 이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죽었어. 정확히는 어느 날 사라졌지. 누가 그랬는지는 아무도 몰라. 우리 형제들 일 수도 있고, 원한을 품은 마을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우리 가정에 평화가 찾아온 거야."

"참 다행이네요."

"아니."

그가 나를 바라봤다.

초점이 어딘가 나간 이상한 시선으로.

"아버지에게 미쳐 풀지 못했던 우리들의 분노는 모두 그 여자에게로 향했어. 우린 아버지에게 받았던 학대를 모두 그 여자에게 풀었지. 어느 날 새벽이었어. 그 여자가 별안간 괴성을 지르기 시작한 거야."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소리쳤다.

"들어라! 너희 아버지 예언은 사실 내가 지시한 거다! 내가 신내림을 받았다! 내가 진짜다! 내가 진짜다!"

그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미성으로 변했다.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내 말을 이해하는 너희에게 저주를 내리겠다! 너희는 빠른 순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최대한 비참한 형태로 친한 사람들 앞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도망가 보아라! 도망가 보아라!"

미칠 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 자리에서 둘째 형이 죽었고! 이제는 두 명 남았다! 저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저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도망가 보아라! 도망가 보아라! 도망가 보아라!"





나는 무언가를 깨닫고는 그의 기세에 눌려 황급히 문을 박차고 도망갔다.

그 뒤로 그와 다시는 말을 섞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몇 달이 지났을까.

어느 날 그가 사라졌다.

직장의 그 누구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나는 오늘도 그 사이트에 접속한다.

무연고 사망자 목록을 확인한다.

그러고는 안심한 듯 깊은 한숨을 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결말을 위해 이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