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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아 있는 자신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팔미미한 수준의 두통.

 

그리고 약간의 이질감과 함께사내는 눈을 뜬다.

 

……여긴.”

 

처음 보는 낯선 공간에 본능적으로 움직이려 한 그였으나손목에 묶여있는 수갑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철컥날카로운 금속음이 유달리 귀를 맴돌았다.

 

굳이 추가적인 정보를 인지할 필요도 없이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이는 그의 두뇌 회전이 빠른 탓이 아니라상황이 너무나 노골적인 까닭이라.

 

감금……당한 건가.”

 

정답과 함께 우선 크게 한숨사내는 일그러진 호흡을 가다듬어 평정심을 되찾으려 했다꽤 효과가 있었는지그의 호흡이 고르게 되는 일은 금방이었다.

 

이어그는 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지금 주어진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는 자신이 ’ 이곳에 끌려왔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때문에 그는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주변 사물을 눈에 담으려 애썼다이 과정에서 알아낸 사실은 다음과 같다.

 

이곳은 칙칙한 색이 유독 인상적인 적당한 크기의 공간사람 두셋이 지내기에 부족함 없었다거듭 말하듯색이 조금 칙칙한 것만 배제한다면.

 

책상 위에 보이는 여러 도구 역시 눈에 들어왔다손톱깎이가위식칼 등평범한 가정집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물건이었지만고문에 사용하기에도 안성맞춤이라는 사실을사내는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욕실 비슷한 것이 있었으니 더더욱당장이라도 한 걸음 다가가면 피비린내가 자욱할 것이다사내는 그리 생각했다.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구나.”

 

다음으로는 굳게 잠긴 철문아무래도 저곳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사내의 생각을 깊이 자극했지만잠금장치를 보고 단념하는 것 역시 금방이었다.

 

그 외는 별거 없었다그나마 바닥이 조금 푹신한 재질이라는 정도조금의 쓸모도 없는 사실에 그는 멋쩍은 웃음을 그리는 게 최선이었다.

 

당연하지만누군가와 연락할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지금 이 공간에 실재하는 것은 오롯이 그뿐이었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는 게 최선이었다.

 

…….”

 

그렇게 멍하니 자신을 감금한 주인공이 찾아와주기만을 기다리길 10그리 긴 시각은 아니지만사내에게는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던 그 찰나.

 

문이 열리고.

 

즉시 정신을 다잡은 그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이 방에 찾아온 무언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안타깝게도익숙한 존재였다.

 

금발과 옅은 베이지 사이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머리칼은 두 갈래로 갈라져 허리까지 내려온다그리고 회백색을 띠는 꽃 장신구 하나.

 

또 별빛 서리를 담아 빛나는 푸른 눈여기까지 말하면 더 이상 언급하는 게 시간 낭비였다그는 망설임 없이 눈앞 존재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크론슈타트.”

 

일어났나 보네지휘관 동지.”

 

최근의 북련 진영 소속으로 자신의 모항으로 오게 된 여인말에 담긴 감정은 그리 짙지 않았다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적어도 그가 아는 크론슈타트는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이 짓거리를 한 게너야?”

 

물론 그것과 별개로 사실 여부 판단은 중요한 문제였다.

 

맞아전부내가 한 일이야.”

 

보기 좋게 정답그가 던진 질문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유는?”

 

더욱 선득한 목소리막 벼려진 칼날 이상으로 날카로웠다눈매 역시 그것과 닮아가고 있었다피식마주한 크론슈타트가 슬며시 웃었다.

 

유능한 지휘관인 당신을우리 북방 연합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 한마디로 지휘관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처한 상황은 물론이요주변에 놓인 도구들의 용도까지푸하하아무래도 제대로 당했다는 생각에 사내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최근 이리저리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던 건 다 이런 공작을 위해서였나지휘관이 생각했다.

 

늘 상 그랬듯 그녀의 허당끼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 생각하고 방치했는데이런 식으로 돌아오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네가 모항에 온 지 한 이 주쯤 됐나전부 계획한 일이었어?”

 

……여기까지 왔으니 말해야겠지.”

 

이어 한 걸음그녀가 지휘관에게 다가간다의자에 앉아 있는 탓에 그녀가 일방적으로 내려다보는 구도가 되었지만기세만큼은 전혀 눌리지 않았다.

 

그 눈빛에는 조금의 긴장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흡사 짐승의 그것과 비견될 수준이었다.

 

맞아나는 북방 연합의 특별 지시를 받고이 모항에 잠입했어전부 당신을 포섭하기 위해서.”

 

큭큭지휘관이 웃었다감추려는 기색은 하나도 없이 노골적으로상대방이 어떤 방향으로든 불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며.

 

물론그녀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미리 물을게북방 연합에 오는 게 어때지휘관 동지대우는 절대 섭섭하지 않을 거야.”

 

당당한 표정몸짓그리고 목소리확신이 가득 찬 행동은 아름다웠지만그에게는 전혀 다르게 비쳐 보일 따름이었다.

 

때문에 대답 역시 정해져 있었다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주일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함께했잖아내가 뭐라고 답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믿는데.”

 

에둘러 빙빙 돌려 말하는 표현사내가 기분이 나쁠 때 사용하는 방식이었다크론슈타트는 그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지라그의 뜻이 무엇인지도 해석할 수 있었다.

 

……그래그럴 거 같았어하지만.”

 

허나 그조차도 예상한 듯크론슈타트는 천천히 팔을 제자리로 돌려놓고이번엔 얼굴을 들이밀며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 내게 수단은 차고 넘치니까.”

 

득의양양한 미소는 그녀가 세운 계획에 대한 자부심이요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그가 입꼬리를 쓰게 올렸다.

 

다시금 탁자 위로 시선을 돌린다손톱깎이가위그리고 식칼 및 기타 등등어째서 불길한 예감은 어찌하여 틀리지 않나조용히 생각했다.

 

……어디 맘대로 해 봐손톱을 뽑던손가락을 자르던어디 한 군데 도려내던너희들의 뜻대로 되는 일은 없을 거야.”

 

이런 상황에 상대방을 도발하는 행위는 썩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유능한 지휘관인 사내가 그 사실을 모를 리는 절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말하지 않는다면 내면에 차오른 부아를 감당해낼 수 없었기에배신감이 너무 깊었기에그는 참지 못하고 뱉어버리고 말았다.

 

절대로.’ 짧은 한마디를 덧붙인 지휘관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앞으로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며 의지를 굳건히 다지기 위함이었다.

 

적어도 이렇게나 추잡한 짓거리를 한 상대의 뜻에는 놀아나지 않으리라그의 마음이 한 층 단단해지는 그 순간.

 

……그게 무슨 소리야그렇게 나쁜 짓을 내가 왜……?”

 

그녀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진다.

 

“?”

 

거짓 한 점 없이진심으로 당황하는 표정몸짓그리고 목소리그걸 보는 지휘관 역시 적잖게 놀랐다.

 

상황을 모르고 서로의 얼굴만 본다면 되려 크론슈타트가 피해자인 것처럼 보일 지경그 정도로 크론슈타트는 지레 놀라고 있었다.

 

저 손톱깎이는 뭔데저걸로 내 손톱 뽑거나 맨살 갈아버릴 생각 아니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그렇게 심한 짓을 내가 왜!”

 

빼액몸서리치며 소리 지르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 그가 알고 있던 크론슈타트가 맞았다갑작스레 변해버린 분위기에 그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혼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저게 여기 왜 있는 건데.”

 

그냥 지휘관 동지 손톱이 조금 긴 거 같아서……살짝 다듬어 줬지.”

 

……저기 가위는?”

 

나중에 밧줄 풀 때 빨리 하려고……?”

 

그럼 저기저기 식칼은 뭔데!”

 

차례차례 격파당하는 질문에 이번에는 오히려 지휘관의 언성이 높아졌다이쯤되면 탁자 위의 물건이 고문 도구이길 간절히 바라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혹시 배고프면 보르시라도 만들어주려 그랬지……감자는 미리 깎아놨어배고프면 언제든 말해.”

 

보기 좋게 빗나간다.

 

크론슈타트가 길고 고운 손가락을 뻗었다그 끝에 존재하는 것은 보기 좋게 껍질이 벗겨진 감자 무더기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눈치챈 사실인데그의 손목에는 가죽이 덧대어져 있었다이는 행여나 수갑에 상처를 입지 말라는 그녀의 소소한 배려라.

 

결국 정확한’ 상황을 인지하게 된 그의 눈동자가 차게 식었다정확히 말하자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게 더 바른 표현이었다하아옅은 한숨은 더.

 

크론슈타트나 오늘 해야 할 일 많은데 풀어주면 안 될까…….”

 

걱정하지 마여기 오기 전에 내가 전부 해놨으니까!”

 

납치해서 묶어놓은 주제에 뭐 저리 성실하며 당당한 걸까설마 여기서 대기하지 않고 깨어나는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이유도 저것 때문인가.

 

지휘관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고실제로 그러했다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골머리를 썩이던 도중그녀는 주섬주섬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읽어봐북방 연합에 오면 좋은 점을 내가 정리해 놓았어!”

 

빽빽이 늘어진 글자만 보아도 열심히 적어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안타깝게도 필체가 너무나 엉망진창이라그로서는 전혀 해석할 수 없었다.

 

와중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당당한 것 역시 그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크론슈타트미안한데 말이야……글씨가 좀……그래서 못 읽겠어…….”

 

힐끔힐끔그녀의 얼굴과 종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는 결국 조금 쓴 진실을 고하기로 했다이렇게라도 미리 이야기해야 나중에 필체를 교정할 거라는 계산 역시 깔려 있었다.

 

나중에 글씨체 교정 클리닉이라도 소개해 줘야 하나지휘관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좋아그럼 내가 읽어줄게.”

 

그런 지휘관의 고민을 조금도 모르는 크론슈타트는 망설임 없이 종이를 펼쳐 눈앞에 두었다허나 시간이 흘러감에도그녀의 입은 열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인상도 찌푸리고 있었다짧은 정적 끝에크론슈타트는 종이를 구겨 뒤로 던져버렸다.

 

그만큼 해독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하하하웃으며 합리화하는 모습.

 

…….”

 

지휘관은 조금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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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섹스합니다. 원래 통으로 쓸라 했는데 생각보다 호흡이 길어져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