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누나...나 진짜 무리야...더는 안 나와..앗..으앗.."

"그건 걱정하지 마♥"

"아..으아...그런 데다...치유 마법...쓰지 마아.."

"후후..."


어쩌다...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창문 바깥으로 천천히 터오는 동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사정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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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오늘 운수가 좋더라니..."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온 동굴 속에서,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출구를 찾아 전력질주 하고 있었다.


한 때, 세상에는 '마왕' 이란 것이 존재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 순수하고 거대한 악은

서로 허구한 날 다투고, 싸우던 여러 종족마저 단결시킬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강대한 세력을 떨치던 마왕군이었지만

종족의 연합군에 숫자를 다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고,

오랜 시간의 싸움 끝에 결국 토벌되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다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마왕과의 전쟁이 남긴 영향은 세상에 남아 여러 문제를 야기했다.

마왕의 부활을 기도하는 집단과 마왕군의 잔당이 남아 있었고,

마력의 영향을 받아 변화된 짐승과 몬스터들도 생겨났다.

그렇게 생겨난 수많은 일들을 처리할 방법을 고민하던 대륙의 국가들은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 내기에 이르니, 그것이 '모험가 길드' 다.


이런 저런 일들을 국가가 일일이 나서서 하기에는 성가시고,

절차도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니,

모험가라는 이름의 해결사 집단에게 이러한 문제의 처리를 맡기고,

지역마다 길드를 두어 위임 관리하는 방식.

나쁘게 말하면 준 정부기구를 만들고 짬때리는 방법.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이 방법은 금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어찌보면 전쟁 용병이나 다름없는 험한 일도 많았지만,

위험한 의뢰를 수차례 해낸 모험가를 국가에서 추앙해주고,

의뢰를 하면서 생긴 부산물이 또다른 수입이 되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도 나오고,

의뢰 도중 유적지를 발견하는 경우도 생기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 수련을 목표로 하는 사람,

유적지나 고대 마법을 연구하는 사람, 역사학자들...종족, 나이 불문하고

여러 사람들이 이 일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모험가들의 모험담이

구전으로, 때로는 책으로 여기저기 퍼지면서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곤 했다.

물론 소문으로 부풀려진 부분도 많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나도 어렸을 때의 꿈으로 인해 모험자가 되었지만,

나는 경우가 조금 달랐다.


그 날은 신기한 날이었다.

거리는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고,

수많은 군중이 거리로 몰려들었다.


"엄마, 오늘 무슨 날이야?"

"글쎄...오늘 임금님이 오신다고 하더구나."


수도와 다소 거리가 있는 여기에 높으신 분의 행차는 드문 일이었다.

더욱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행사까지 여는 경우는 더 드물었고,

왕이 이 도시에 오는 것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었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군중 속으로 섞여들어갔다.


"우와아.."


군중 속을 파고들어보니, 시청 거리 중앙으로 병사들이 도열해 군중들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내 눈이 빛났다.


그리고 그 사이로, 한 무리가 호위를 받으며 등장했다.

그들 중 몇 명은 구경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몇 명은 묵묵히 그저 앞만 본 채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눈에 띄었다.


".........."


누가 봐도 이 사람이 오늘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그 사람에게서는 무언가 예사 사람과는 다른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건장한 체격.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미소를 잊지 않은 얼굴.

가슴팍의 가죽 보호대에 새겨진 수많은 흠집과 얼굴의 흉터가

그가 얼마나 산전수전을 헤쳐 나왔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백발이 살짝 섞인 금색 머리가 햇빛을 받아 빛났다.

절도, 품격이라는 말은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싶은 사람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들은 시청 시계탑 광장으로 올라가 있었다.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와 함께, 국왕이 건물 발코니에 등장했다.

이후의 연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장면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자네의 노고를 온 국민이 기억할 것이다."

"과찬이십니다."

"모두 보아라! 이 자가 바로 이 나라의 영웅이다!"


국왕의 외침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 사람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의 함성.

일제히 울리는 나팔 소리와 흩날리는 꽃잎.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의연하고 강인한 사내의 모습.

이 모든 것은 어리고 순수한 소년의 꿈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원래는 부모님의 작은 농장을 물려받을 예정이었기에,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하셨다.

농장을 물려받으면, 부자는 아니어도 

충분히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굳이 위험하고, 손에 피를 묻힐 지도 모르는 일,

어쩌면 더럽고 위험한 일에 휘말릴지도 모르는 세상에 뛰어들겠다 하는데

어느 부모가 반대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 의지는 확고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막 성인이 된 나는 길드에 정식 모험자로서 등록되었다.

풋내기였기에, 그렇게 어려운 의뢰는 내려오지 않았다.

옛날에는 위험하건 말건 본인이 수락하면 ok였지만,

유사시 행정처리하고 가족에게 통보하고 사후 처리하는 게 더 힘들어서

제한을 두게 되었다는 게 그들의 말이었다.


그렇게 오늘은 공용 창고로 개조하기 위한 동굴 순찰 의뢰를 하는데....


"어?"


바닥에 독특한 발자국이 있었다.

짐승...들개처럼 보이는 발자국이었다.

하지만 무게가 엄청난지 동굴의 돌바닥이 살짝씩 파여 있었다.

퇴치하지 않고는 창고로 쓰긴 어렵겠지.


"윽...냄새..."


나가기 위해 돌아서는데,

어딘가에서 심한 구린내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우웩...."


들개의 것으로 보이는 배설물의 더미가 한 구석에 쌓여 있었다.

양으로 보아 한두마리가 아닌 무리인 듯했다. 

그게 아니면 설명 될 수 없을 정도의 양이었다.

하지만 분명 발자국은 많지 않았는데...?


"일단 길드에 보고해야...다음번에 방지 대책도 세워야 한다고..."


중얼거리며 뒤돌아서려는 내 뒤통수에 미지근한 액체가 떨어졌다.


툭. 툭.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이라기엔 미지근했고, 끈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뒤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내 본능이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하...하하..."


슬쩍 뒤를 돌아보자, 난 마주치고 말았다.

캐르베로스.

지옥의 광견이라 불리는 몬스터.

머리가 세 개에 덩치는 작은 오두막 만한...

한 마디로 말해 나는 개밥밖에 안 되는 적수였다.


나는 들고있던 횃불을 그 녀석의 머리에 집어던지고는 나 살려라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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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려어!!!!!!!"


이미 여러 차례 점검했다매!

확인차 하는 개꿀 의뢰라매!

그런데 저런 괴물이 왜 여기있냐고!!


쿵! 쿵!


뒤에서 잔뜩 화가 난 캐르베로스가 달려오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무작정 도망친데다, 이제는 횃불도 없어서,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 길이 맞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으아아아아!"


다행히 운이 좋은 건지, 저 멀리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여기만, 여기만 빠져 나가면 살 길이 있을 지도 몰라.

희망이 가슴 속에서 부풀어올랐다. 하지만.


"아."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쿵쿵대는 발소리가 점점 커져왔다.

난 죽음을 직감하며 눈을 감았다.


난 여기까지구나...

그냥 부모님 말이나 들을 걸...

아직 연애도 못 해봤는데..


"디지."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케르베로스는 엄청난 기세로 벽에 머리를 박더니, 기절해 버렸다.


"괜찮으세요?"

"살...살았...다."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살았다는 안도감이 듬과 함께, 나는 기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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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들었을 때는, 길드 건물의 침대 위였다.


"아, 깨어났다."


옆에는 3명의 파티로 보이는 일행이 앉아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죠?"

"뭐...우리가 너를 구했다고 해야 하나."

"비명소리가 숲 바깥까지 메아리쳐서 말이지."


전사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도 살았으니 다행이구만.

미동도 없길래 충격으로 죽었나 했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 안 그런가?"

"그러게요...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그 괴물은 어떻게 됐나요?"

"우리가 잡아서 처리했지.

지금 길드에 보고 중이야."


옆에 있던 덩치 작은 여성이 한 마디 거들었다.

마지막에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마법사시군요."

"맞아."

"멋지네요."

"그럼그럼."

"키는 작지만 말이지."

"죽을래?"


내 칭찬에 우쭐해하는 그녀에게

남성이 딴지를 걸었다.


"그럼 보수를 받아볼까."

"보수...요?"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호리호리한 남성이 다가와 얘기를 꺼냈다.

망토 안에 살짝 보이는 단검으로 보아, 도적 출신인 듯했다.


"목숨을 살려줬는데, 성의 표시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어...얼마를 원하시는데요?"

"500. 금화로."

"...네?"


금화로 500이면 고향의 부모님의 농장을 10개를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아무리 목숨의 은인이라지만...


"전 풋내기라 그런 돈 없는데요."

"허허...이것 참. 다시 숲 속에 던져놔야 하나?"

"장난은 그만둬. 우리가 사과해야 하는 입장인데."


문이 열리더니, 장신의 아름다운 여성이 들어오며

그 남자를 제지했다.


"넌 꼭 사람들한테 그런 장난만 치더라.

질리지도 않아?"

"뭐 어때, 요즘은 나쁜 남자가 인기라더라."

"미안해요, 우리 의뢰 때문에 큰일 날 뻔했네요.

몸은 괜찮나요?"

"아, 괜찮...아요."


사정을 듣자 하니, 그들은 원래 그 캐르베로스를 토벌하는 의뢰를 받았고,

그것을 토벌하는 도중에 놓쳤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마침 의뢰를 받은 그 동굴에 자리를 잡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그 때,

마침 추적하던 그들이 소리를 듣고 찾아올 수 있었다고.


그녀는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고,

나는 괜찮다며 그녀를 말렸다.


"그래도...우리 때문에, 끔찍한 경험을 했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하고 싶어요.

만약 모험자를 그만둔다고 한다면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그건 길드에서 할 일이지, 우리가 할 일이 아냐."


아까 장난을 친 남자가 그녀를 태클을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반발했다.


"애초에 우리 잘못이었는데, 그렇게 박정하게 말할 수 있어?"

"어쨌든 우리가 살려냈잖아. 그럼 끝 아니야?

당장 네가 사과도 했고."


나는 동료에게 화를 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그녀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

"혹시...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 있나요?"

"아, 또또 저런다. 남자들은 작업 멘트가 어떻게 하나같이 똑같냐?"


내 발치에 앉아있던 마법사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뭐, 우리 에리나가 예쁘긴 해~~

이런 발칙한 것도 가지고 있고 말이야."

"야! 나 진짜 화낸다?"


그녀의 이름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었다.

뭔가 기억이 날듯, 말듯하면서도 나지 않는게 내심 답답했다.

마침 그녀의 귀걸이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오른쪽에만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귀걸이는 루비를 가장한 모조 보석이 박혀 있었고,

그마저도 낡아서 칠이 반쯤 벗겨져 잇었다.


"귀걸이를 오른쪽에만 하셨네요?"

"아, 그게...어렸을 때 소꿉친구한테 선물받은 거라서요.

낡긴 했지만 도저히 버릴 엄두가 안 나더라구요."

"아주 순정파가 따로 없네 그냥.

왠지 고백해오는 남자들을 죄다 차더라니."


마법사 여성은 놀리듯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무시한 채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튼, 동료들이 반대하더라도 상관없어요.

만약 이번 일로 모험자를 그만둘 거라면 꼭 말해주면 좋겠어요.

제 사비를 내서라도 보상할 테니까.."

"괜찮아요."

"네?"

"꿈이 있거든요."


나는 내가 모험자를 꿈꾸게 된 그날의 기억을 말해주었다.

그들의 반응은 각각 달랐지만, 예상 범위 내였다.

한 명은 비웃고, 한 명은 로망 있다며 호탕하게 웃고, 한 명은 심드렁했다.

하지만 내 눈앞의 그녀는 좀 다른 반응이었다.

놀라며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어...괜찮으세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눈물에, 그녀를 제외한 이 방안의 모두가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내게 물어왔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이름이 어떻게 돼요?"

"지오에요. 지오 에슈타인...우왓."


내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는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드디어 찾았어...얼마나 걱정했다고.."


사정을 들어보니, 그녀는 내 소꿉친구였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이유는, 그녀에 관한 내 기억이 봉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그녀가 끼고 있는 그 귀걸이도, 

내가 모험자를 결심하게 된 그날 시장에서 사와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녀는 서큐버스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의 정체가 들키자,

남편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가 자신을 강제적으로 매료시킨 것인지...

그녀의 종족 상 다른 남성들과 문란한 관계를 가지지 않았는지...말이다.


결국 남편은 이별을 통보하게 되었고,

그렇게 헤어지게 되면서 그녀의 어머니는

주변인들에게서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다 봉인했다.

그리고는 살던 마을을 떠났다.

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녀는 언젠가 만나게 되리라고 믿으며,

계속해서 그 귀걸이를 끼어 온 것이었다.

기억해낼 일은 없겠지만...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녀가 치유사가 된 것도, 모험자가 될 거라는 내 말을

기억하고 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다만 3년이 다 되도록 찾을 수 없으니,

이미 사고를 당한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고...


그렇게 인연이 닿게 된 그녀의 억지로,

나는 이 파티에 수습 개념으로 끼게 되었다.

혹시라도 봉인이 풀리기를, 자신을 기억해내주기를 바라며

간간히 어렸을 때의 추억을 얘기해주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효과는 없었다.


"미안해요. 전혀 기억이 안 나서..."

"괜찮아. 솔직히 기대는 안 했어.

그리고...지금부터 쌓아 나가면 되는 거니까."


그녀는 누구나에게 상냥했고, 속이 깊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화를 내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어찌보면 내가 반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에게 고백을 했고,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눈물을 흘리며 고백을 받아주었다.

다른 동료들 반응은 이미 커플이나 다름없었으면서 뭘 이제와서 새삼스레...였다.

그리고 오늘 밤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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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했어?"

"조금...."

"후후...귀여워라...사실은 나도."


여관의 침대 위에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있었다.

서로의 첫 경험. 좀처럼 긴장하는 일 없는 그녀이지만,

그녀도 긴장한 듯 했다.


사락.


얇은 천이 흘러내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잠옷이 흘러내렸다.

나는 넋 놓고 그녀의 아름다운 알몸을 쳐다보았다.

혼혈이어서일까, 평소 입던 옷에서도 티가 났지만,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아름다운 몸이었다.


"뭐해...안 벗고. 나만 부끄럽게 만들 거야?"

"아..하하.."


그녀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옷을 벗었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고,

그녀는 재밌다는 듯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심호흡까지 할 일이야?"

"추태를 보이긴 싫으니까..."

"그래도 그렇게 흥분해준 걸 보니까...뭔가 기쁘네."


그녀는 내 얼굴을 잡고서는 깊게 키스했다.

서로의 존재를 느끼듯이 혀를 얽고, 입술을 눌렀다.

그녀는 숨이 찰 때까지 계속 밀어붙였다.


"푸핫...하..."

"이제 돌이킬 순 없겠네...♥"

"이런 걸 알아버리면...그렇게 되겠죠.."


그녀는 다시 나를 끌어당기더니,

내 귀를 막고 다시 한 번 혀를 얽어왔다.

혀가 얽히는 소리, 내 심장의 고동, 애달픈 

그녀의 숨소리가 뒤섞여 머릿속에 울렸다.


"....어때?"

"이런거 몰라...이게 뭐야..."

"후후...효과만점이네. 엄마한테 배워두길 잘했어."


몸을 뒤덮는 듯한 처음 경험하는 쾌감에 나는 딸국질하는 사람처럼 떨었다.

사고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분명 전희를 더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여성을 자신의 것으로...

각인시키고 싶다는 충동이 나를 장악했다.


"괜찮아...같이...행복...해지자?"


그 말에,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내 것을 그녀의 안에 집어넣었다.


"?!!"

"으...하아.....앗...♥ 드디어...이어졌어..."


키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쾌락이 등줄기를 타고 달렸다.

이미 연인을 기다리다 못해 홍수가 나버린

그녀의 안은 저항없이 부드럽게 끝까지 내 것을 받아들였다.


"으...아앗...하아...으.."


이미 기혼자인 쟝 씨(전사 아저씨)에게 먼저 조언을 들은 나는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그녀의 안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고,

동정이었던 내가 버티기엔 무리였다.

그렇게 몇 번 움직이지도 못하고, 내 첫 경험은 허무하게 끝났다.


"크...아...."

"아♥"


나는 힘없이 그녀의 몸 위에 엎어졌고,

그녀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괜찮아...그럴 수도 있지..."

"으으..."


내가 눈물을 글썽이자, 그녀는 나를 아기 다루듯 달랬다.


"처음인데 잘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난 괜찮아. 오히려 그 정도로 좋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아직 밤은 길어. 이제 시작이니까."

"하지만 다시 설 때까지 기다려야..."

"그건 걱정하지 마."

"응?"


마법을 쓸 때 나는 특유의 빛과 함께,

내 것은 바로 건강해졌다.


"어...어?"

"치유 마법이야. 

이런 쪽으로도 쓸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효과 발군이네♥"

"잠..잠깐만...누나.."

"이번엔 내 쪽에서 갈게♥

가만히 있어도 되니까..."

"나 지금 민감한...흐잇?!"


누나는 내 위에 올라탔다.

스위치가 켜졌는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오늘을 잊을 수 없는 날로 만들어 줄게♥"


그렇게 긴긴 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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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하..으아..."

"너무 좋아...좋아해.."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나보다 장신의 미녀가 알고보니 소꿉친구였던 누나였고...

내 연인이 되어서 지금 내 위에 올라타고 있다.


질척이는 물소리. 흔들리는 누나의 가슴.

헐떡이는 숨소리와 상기된 표정...

모든 것이 너무 자극적이다.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떡해...너무 귀여워..."


살짝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팔로 얼굴을 가리니,

누나는 내 젖꼭지를 괴롭히며 속삭였다.


"왜 가려? 부끄러워? 난 좋은데..

더..더 보고싶어.."

"거..긴...안...으앗...그렇게 하면...또..금방..."

"참지 말고...응..♥"


그녀가 내 팔을 치워도,

나는 저항하지 못한다.

무장해제 상태가 된 나는 그저,

누나에게 먹힐 뿐이다.


"아....으..아...누나아.."

"아...또 왔다...♥"


몇 번인지 모를 절정에 달하고,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부드럽게 내 위에 엎어지고,

다시 키스한다.


"사랑해...진짜 좋아해...너무 행복해.."


폭력과 부드러움은 보통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이 둘이 공존하는 건 모순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겪는 건 상냥함의 폭력...부드러움의 폭력이다.

저항할 수 없게 만들고, 취약하게 만든다.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만 할 수 있도록.


"누나...그런 건..또 어디서..."

"다 엄마한테 배웠지.

좋아서 배운 건 아니지만...

배워두길 잘했어."


쉴 새도 없이,

그녀는 또 가슴 사이에 내 것을 가둔다.

뇌가 타는 것만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탁액이 뿜어져 나오고,

몇 번인지도 모를 정액이 그녀의 몸에 흩뿌려진다.

청초하기 그지 없던 그녀의 몸을 내 것으로 더럽힌다.

배덕감과 비례하는 쾌락이 다시금 내 몸을 지배한다.


"하아...네 냄새로 내 몸이 한 가득..."

"......"


내가 말없이 숨만 몰아쉬자,

그녀는 살짝 걱정이 되었는지

내 옆에 누웠다.


"그...내가 말하기도 좀 뭐하지만...괜찮아?"

"으...응..."

"미안해? 나도 처음이라 너무 흥분했나 봐.."

"처음...맞...아?"

"응?"


나는 헐떡이면서도 그녀에게 물었다.

나도 안다. 이건 내 꼴사나운 열등감이라는 것을.

이미 수없이 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거절했다고 했지 않은가.

나 때문에. 그럼에도...


"처음이라기엔...너무 잘하잖아...

나 이전에...누구 있었던 거 아냐?"


누나는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내가 말해놓고도 후회했다.

제일 피해야 할 말...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다.


"응...처음이야. 정말이야.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응.

이해할 수 있어.

미안...나 혼자서 너무 신났지?"

"...아니야."


나는 다시 말했다.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도....솔직히 말한다면.


"그냥...화가 났어.

누나만큼 능력 있지 않으니까...

실수만 하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이게 꿈이 아닐까,

언젠가 나를 떠나는 거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내가 있어서."


그녀는 나에게 아까운 사람이다.

혈통의 영향이 있든 없든,

그녀는 미녀다.

지나가던 사람이 뒤를 돌아보게 만들 만큼.

그리고 능력 있다.

그녀의 치유사로서의 명성은 나라에서도 알아줄 정도다.

이제 풋내기 티를 겨우 벗어가는..

아직도 실수하는 나와는 다르게.

그래서...무섭다. 그녀가 떠날 까봐.


"누나는 누구에게나 상냥하니까...

들이대는 사람도 많았잖아.

그냥...다른 남자와 얘기하고 있는 누나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져서...그래서..."

"질투했어?"


나는 화나있을 누나의 표정을 생각하며 그녀의 눈을 보았지만,

그녀는 전혀 그런 표정이 아니었다.


"화...안 났어?"

"으응...전혀."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그 정도로 나를 좋아해 주는구나..해서 솔직히 기뻤어.

말했잖아. 우리 부모님은 혈통 때문에 이 사랑이 진실된 것이 맞는지를 의심한 끝에 헤어졌다고.

사실...나도 너가 그럴까 봐...그렇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어.

내 사랑이 진실인지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나도 내가 모르게 너에게 무언가를 했을 지 모르니까."

"그럴 일은 없어."

"응? 꺄악-"


나는 누나 위에 올라탔다.

내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증명해줄 셈이었다.


"나는...그런 바보같은 사람이랑은 달라.

설령 누나가 내게 뭔 짓을 했다고 해도...

내가 사랑이라고 믿으면 그게 사랑인 거야.

그러니까...내 곁에 쭉 있어주세요."

"응...고마워."


"와 줘?"


누나는 두 팔 벌려 나를 기다렸다.

나는 그에 부응하듯, 누나를 껴안고...내 것을 처박았다.

 

"흐으..누나...누나...좋아해...진짜..."

"나도...좋아해...이제 절대...놔주지 않아.."


따뜻한 감촉이 내 등을 감쌌다.

누나의 날개가 내 몸을 안아주듯 감싸왔다.

혼혈이기에 날개는 한 쪽 뿐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일까...진심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떠나지 않을 테니까..그러니까...

이번엔 네가 마법을 걸어줘...내가 너를 잊을 수 없도록.."

"응...누나는...이제 내 거니까..."


진심을 다한 피스톤.

한 쌍의 수컷과 암컷은 비로소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

페이스는 높아져만 가고...신음과..키스와..숨결이 말을 대신했다.


"누나...누나아...받아줘...내 전부를..."

"응...받을게...한 방울도 안 남길 테니까..전부..."


절정의 순간, 나는 내 모든 것을 누나의 안에 쏟아냈다.

누나는 아플만큼 나를 껴안았다.


"하아...하아..."


완전히 탈진해버린 나는 그녀의 품에 무너진 채 숨만 헐떡였다.


"...그런 표정은...반칙이야...놓아주기 싫어지잖아..♥"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이마에 키스했다.

그리고는 아이를 어르듯 등을 쓰다듬었다.


"이젠...진짜...진짜 무리야...더는 안 나와.."

"그건 걱정하지 말래두..♥"

"읏?!"


거짓말같이 내 것은 다시 서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조금 화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깐 아니라매..."

"그저께 토벌에서 위험하다고 했는데도 말 안 듣고 앞으로 뛰쳐나가서 다쳐왔잖아."

"그건...어쩔 수 없잖아. 쟝 씨 없을 땐 내가 전위 해야 되는데."

"굳이 그렇게 안해도 될 상대였어. 그러니까..."


"벌이야♥"


밤이 끝나려면 아직 멀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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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짹-


창밖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새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아, 일어났어?"

"아...."


나 기절했구나.

창 밖을 보니, 해는 이미 중천이었다.

그렇게 수없이 착정당했건만, 몸에는 근육통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더 놀라운 것은 누나는 전혀 힘들어보이지 않고 개운해 보였다.


"이런 게...어떻게 가능한 거지..."


몸을 만져보며 놀라워하는 나를 보고 누나는 귀엽다는 듯이 웃고는 내 옆에 앉았다.


"있잖아, 치유마법의 원리가 뭐라고 생각해?"

"어...갑자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하는 내 얼굴을 보고는 다시 한 번 웃더니 말을 이었다.


"다른 마법들과 기초 원리는 동일해.

다만 독특한 점은, 술자의 생명력을 소모한다는 거지.

간단히 얘기하면, 술자 본인의 생명력을 마나를 비용으로 환자에게 주입하는 거랄까."

"어라? 그럼..."

"체력이 엄청나게 좋아야 하겠지? 그래야 효율도 좋고. 더 많이 사용할 수 있으니까.

뭐, 겸사겸사 서큐버스 자체가 생명력을 다루는 데 전문이기도 하고...뭐, 아무튼."


그녀는 일어서더니, 내귀에 속삭였다.


"그저께처럼, 또 말 안듣고 다쳐서 오면...밤에...뭔 말인지 알겠지?"

"어? 응! 응!"


나는 부모님한테 혼난 직후의 아이처럼 고개를 거세게 끄덕였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나갈 채비를 했다.


"천천히 준비하고 나와. 알았지?"

"응...."


어젯밤의 일을 돌이켜 보자니,

앞으로가 걱정스러웠다.

낮과 밤이 이렇게 다른 사람일 줄은....

앞으로 잘 해나갈 수 있을까....


"다치지 마. 내 마음도 아프니까.

상처는 내가 낫게 해주겠지만.

네가 다칠 때마다, 나는 마음에 상처가 생긴다구."


그녀의 걱정섞인 당부의 말에,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녀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 나는

앞선 걱정을 떨쳐버렸다.

그런 것 쯤이야, 사랑 앞에선 아무 적수가 안 되니.








난 약속 지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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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잘 쓴 지는 모르겠는데

너희들을 꼴리게 했다면 대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