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흐으흠♪”


콧노래를 부르며, 미드가르드와 요툰헤임을 가르는 산맥을 걷는다. 아니, 걷는다고 표현했지만 그건 나의, 브륀힐드의 기준이며 실제로는 발걸음마다 몇 미터를 도약하는 괴물 같은 속도다.


“···그런데 씻고 올 걸 그랬나?”


나는 잠깐 멈춰 선 뒤 내 모습을 확인했다.


새로 만들어진 완갑과 대퇴갑, 경갑은 가죽 위에 에보니 강철을 덧씌운 걸작이며 흉갑은 우리 눈물콧물 짜는 변태 여신님 덕분에 윗가슴을 그대로 노출했지만 아래 복갑은 제대로 되었다.


즉, 섹스어필과 실용성 사이에 있는 갑옷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깔끔한 새 갑옷 안에, 사용자가 동료들의 피로 목욕하고 나온 꼬라지라는 것이다.


피 냄새가 진동한다. 마침 마랑은 말 그대로 갯과이니 냄새도 뒤지게 잘 맡으며 날 피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의문이 들었다. 놈들은 펜리르 이후 나타난 제대로 된 늑대 괴물이다. 다리 한짝이 병신이거나 내장 대신 독사가 들어있어 침마냥 독을 뱉는 것이 아닌 생물로서 하자가 없는 늑대.


늑대 본연의 기능을 하는 스펙괴물.


암컷과 수컷이 있으니 자연스레 나오는 것은 새끼이다.


늑대의 습성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놈이 인간의 마을, 그것도 전사들로 이루어진 전투마을로 내려와 마을 사람을 모조리 물어갔다. 마을을 지키는 가장 강한 전사에서 가축까지 전부 물려갔으며 인명 피해만 세 자릿수.


놈의 덩치. 암놈까지 감안을 하더라도 너무 많았다.


“새끼, 그것도 제대로 된 둥지까지 차렸겠지.”


자세를 낮춘다. 마치 짐승처럼 네발로 기며 땅을 코에 박으며 그 냄새를 깊게 들이쉰다.


나의 냄새를 제외하고 땅의 물의 나무와 꽃 동물들의 살냄새가 아주 미약하게 느껴지며 그중에서도 미묘한 피 냄새를 감지했다.


“큿!”


발키리의 후각인지 펜리르의 후각인지 헷갈리는 코의 성능 덕분에 머리가 아찔해졌지만 방향은 정해졌다.


등에 걸린 도끼를 손에 쥐며 걷는다. 이번에는 평범한 인간의 보폭으로 천천히, 내가 확실하게 그쪽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중천에 떠 있던 솔이 스콜에 의해 퇴장하며 마니가 하티에게 도망치는 광경이 미드가르드에 전시된다.


달빛이 내리는 어두운 숲. 진짜 짐승과 사냥꾼의 영역과 시간.


그 시간의 끝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은.


“크르르르릉!”


내게 눈 하나를 잃고 여기저기 상처 입은 마랑.


내 모습을 기억하는지 아니며 그저 새로운 사냥꾼의 등장에 경계하는지는 모르지만


——!


마랑의 입에서 나온 거대한 충격파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땅이 엎어지고 나무가 뽑힌다.


당연히 발키리 또한 그 충격파로 고막이 터지며 약한 녀석들은 내장까지 곤죽이 되는 충격파였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기에, 아무런 피해 없이 도끼를 들어, 내 기준으로 5시 방향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땅속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고!”


카가가각!


에보니 도끼와 다른 마랑의 이빨이 격돌하며 불똥이 튄다. 


힘과 힘의 싸움.


순간 밀릴 뻔했지만 나는 도끼를 비틀어 녀석의 이빨 사이를 베었다. 


얕은 상처. 하지만 마랑을 물리기에는 충분하였고 곧장 그 자리를 피했다.


콰가강!


반 박자 뒤에 마랑이 내가 있던 자리로 도약해 땅째로 씹어 먹었다.


동료가 다치거나 밀려났는데 주저 없이 공격했다. 거기다 피해를 입은 녀석도 군소리 없이 나를 노려본다.


그나저나 밀려난 녀석의 젖이 발달한 것을 보니 저쪽이 암컷이다.


“그래, 타고난 사냥꾼이다 이거지?”


녀석은 대답 대신 입에 머금은 바위를 내게 던졌다. 


피하면 안 된다. 피해도 되지만 그건 흔해 빠진 행동이며 그 정도는 저 사냥꾼들에게 읽힌다.


콰앙!


바위와 내 육체가 충돌한다. 하지만 그보다 한 박자 먼저 에보니 도끼를 내 손에 떠나보내며 나는 그 온전한 충격을 견딘 채 땅에 널브러진 통나무를 들어 돌진했다.


뿌리에 묻은 흙들이 떨어지며 시야를 방해했지만 그 사이로 확실히 마랑이 당황하는 ···것도 잠시 놈은 그대로 돌진하고 몸을 비틀며 뿌리가 가는 부분을 돌파하며 나에게 발톱을 세운 앞발을 날렸다.


타앗!


그러나 앞발을 손으로 짚어, 뜀틀을 뛰는 자세로 넘었다.


시야가 넓어진다.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오는 암컷 마랑.


공중에서 무기 없는 인간을 향한, 확신에 찬 공격.


하지만 녀석에게는 모르는 것이 있다.


우리, 에인헤랴드와 발키리의 무기와 육체에는 각각. 무엇에도 간섭, 방해받지 않는 마법이 하나 있다.


선배의 경우에는 무기의 가열.


에이르는 번개창.


괸둘은 문자 그대로 마법지팡이기에 연산가속의 마법이 있다.


그리고 나의 마법은 공격적이지 않지만 실용적인.


“회귀. 늑대 주둥이로는 정확하게 의사소통 못 하지?”


허공에서 유형하던 나의 도끼는 주인의 부름에 응답해 화살처럼 빠르게 내 손에 쥐어졌고 그 반동으로 회전하며 암컷 마랑의 주둥이를 양단했다.


“···오우!”


깨끗하게 잘렸다. 심플하기 그지없던 내 육체에 걸맞게 강한 육체에 감탄했고 자연스럽게 그 감탄에 우리 찔찔이 여신님에 대한 감사로 바뀌었지만 그것도 곧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콰직!


“···씨발!”


암컷 마랑은 주둥이가 잘렸지만 그것은 두개골을 자르지 못했고 결국 잘린 주둥이를 끝까지 밀어 넣어 내 왼팔에 완갑을 뚫고 팔뚝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물렸다. 과거와같이 마랑에게 물린 채로 땅에 박히고 그 치악력으로 이리저리 날 휘두르며 살점을 끊으려고 했다.


브륀힐드의 육체는 이것을 간신히 버티지만 나에게는 수컷 마랑이 아가리를 벌리는 것에 대한 대처가 필요했고 결국 결단을 내렸다.


촤악!


마라의 공격으로 헐거워진 팔을 도끼로 끊는다. 그 순간 내 몸은 자유를 찾았고 수컷 마랑은 흩날린 내 핏방울만 먹었다.


한쪽 팔 밖에 남지 않았지만 당장은 암컷 마랑을 끝장내기에 충분했다.


도끼의 중간을 잡고 추진을 위해 쭈그려 않아 점프와 함께 마랑의 턱에 도끼를 찔러 넣었다.


이미 잘린 근육과 뼈로 인해 수월한 작업에 결국 나의 도끼는 속도와 질량으로 마랑의 뇌에 도달해 그것을 유린했다.


“하나 처··· 씹!”


순간 다리에 말뚝 여러 개가 파고는 어마어마한 고통과 함께 내 육체가 다시 휘둘리며 부유감과 함께 물수제비처럼 몇 번이나 튀어 바위에 박혔다.


“아이고 두야.”


결국 다리 하나까지 잃었다. 눈에 들어간 피를 닦아 붉게 물든 시야를 원래대로 돌리니 수컷 마랑은 축 늘어진 암컷 마랑의 시체를 보았다.


잠시 냄새를 맡고 툭툭 쳤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우우우우우우!!!”


서글픈 하울링과 함께 마랑의 몸에 연기가 나고 상처 부위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재생은 아니고, 폭주구나?”


몸이 성치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내가 죽고 난 뒤 썼으니 연속으로 쓴 것이기에 죽는다. 에인헤랴르 중에서도 그런 것을 가진 녀석이 있기에 안다.


사지 중에 두 개가 없는 상태로는 상대 못한다.


내 육체에 내장된 마법 육체구현을 발동했다.


재생과 달리 횟수에 제한이 있지만 잃어버린 장기와 신체를 그 무엇보다 빠르게 구현할 수 있다.


부가적으로 구현된 육체에 대한 조정이 가능하다.


잃어버린 다리와 팔이 생성되면서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한 판 승부.


그것을 직감한 나는 마치 점멸하는 마랑의 도약에 심장과 혈류를 폭발적으로 도핑시켜 육체의 한계에 도달한 끝에 도끼를 내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앙!!!


이 순간, 나의 도끼는 토르의 묠니르처럼 번개와 폭풍을 내뿜었고 마랑과 장작처럼 쪼개었다.



***



“쓰읍, 조정이 필요하겠는데?”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육체의 움직임이 내 상상과 현실이 어긋나고 있었다. 전사들과 마랑으로 시운전을 했지만 아직 부족했다.


“그런데, 여기가 둥지구나.”


나는 구석진 동굴을 들여다보았다. 시체 썩은 내가 났지만 겨우 이것으로 날 막을 수 없었다.


동굴 내부에는 역시나 백골들이 쌓여있고 걸음을 옮길수록 더 많아진다. 그리고 푹신한 짚과 솜으로 만든 둥지에 있는 것은.


“에게?”


내 허벅지보다 조금 큰, 새끼 강아지 무리였다.


혹시 다른 새끼인가 싶싶었지만 마랑과이 같았고 그 기척이 묘하게 비슷했다.


“진짜 인체의 신비네. 너희가 커서 그렇게 된다고?”


대답은 없었다. 모두 어미의 다음 밥을 기다리며 자고 있었다. 가슴이 아프지만 녀석들을 죽여야 했다.


결국 굳게 마음먹고 도끼를 들어 올린 순간.


“···삐익? 삐익! 삐익!”


강아지 한 마리가 눈을 뜨고, 나를 향해 밥을 달라며 기어 왔다.


“그래서, 마랑 새끼들을 챙겨왔다고?”


“응. 꼬우면 브륀힐드 하던가.”


스릉.


내가 도끼를 선배의 목으로 들이대자 선배는 주름이 생길 것 같은 얼굴에서 순식간에 사람 좋은 얼굴로 변했다.


‘하늘 같은 후배님이 말씀하시는데 불만이 있겠니?’


“좆같은 새끼.”


“따옴표.”


“아.”


댕컹!


나는 선배의 목을 잘랐다.

여름이었다.


이후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공동으로 키우기로 합의(?) 본 뒤 내가 키우는 마랑은 복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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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은 후속편입니다.

사실 참가는 했지만 수상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2등이라니.


주최자 님께서 저의 발키리를 선택하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이 후일담을 바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