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용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진다.
개념글 모음


타아아앙ㅡ!


“…”


벼랑 끝에 내 몰려, 양자택일을 강요받은 가련한 귀쟁이년.


수 많은 망설임의 기로 속에 내린 선택은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었다.


“흠.”


다만, 자신의 머리가 아닌…


“어느정도 예상 한 일이다.”




애꿎은 벽에다가 말이지.


“…”


“역시 목숨이 달려있으니 까오는 좆도 아닌 걸 느꼈나?”


“…”


굳게 닫힌 채, 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당대표년의 입술.


그리고, 완전히 질려버렸음을 상정하는 눈빛.


그 눈빛은 불합리한 상황의 어처구니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네 년의 선택은 이해 된다. 여태껏 족장 새끼 똥 닦으면서 지금 위치에 올라섰으니…여기서 허무하게 끝내고 싶진 않겠지.”


“…”


“하지만 이해는 이해고 결과는 결과다.”


“…”


“뚝배기에 쏜 게 아니니, 규칙대로 네 년의 패배다.”


“…하아!”


깊은 탄식과 함께 탁자 위로 총을 내려둔 당대표년.


“이제 날 어떻게 할거야?”


감정은 납득할 수 없으나, 이성은 납득해야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오롯이 할 수 있는 건 체념섞인 한숨 뿐이었다.


“이런! 누가보면 드럼통에 공구리 쳐서 깊은 바닷 속 용왕님께 보내겠다고 착각하겠군.”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 따먹기라니…역시, 당신은 들은 것과 같으면서도 다르네.”


“무슨 풍문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풍문은 풍문에 불과하니까. 뭐, 그건 둘 째 치더라도…”


그렇다.


짧고 굵은 내기는 이 몸의 승리로 끝났으며, 당대표년은 스스로 암컷패배 선언을 했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저 년의 머릿속을 뽑아 먹을 만큼 뽑아먹어서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는 일.


시장의 집에서 시작해서 고블린년의 신문기사, 그리고 민초에 타락한 사채업자년까지…


이 모든 일련의 과정 속에서 미처 맞추지 못한 ‘마지막 퍼즐’ 을 끼워 맞출 때다.


“어이, 여우년. 종전에 ‘자진 납치’ 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나?”


“그렇다만. 그나저나 가만히 있게나, 붕대 고정이 재대로 안되니까 말일세.”


한 편, 이 몸의 뚝배기 보수공사에 들어간 마왕년.


나름 정성스레 치료해준 것은 고마우나, 이상하게 구멍난 관자놀이에서 여우 특유의 아밀라아제가 코 끝을 찔렀으니…


“캬악! 퉤엣! 이제야 고정이 잘 되는구나.”


“…”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원래 같았으면 그 즉시 땅바닥에 대가리를 쳐 박았겠다만…


지금은 저 여우년의 객기에 태클 걸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더 중요한게 목전에 있으니까.


“…여우년, 잘 보고 배워라. 자진 납치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한다.”


투우우욱ㅡ!


여우년이 자아낸 찝찝함을 뒤로, 당대표년에게 시선을 다시 향한 이 몸.


이윽고, 그 년을 향해 자그마한 선물을 하나 건내줬다.


“귀쟁이년, 받아라.”


“…이건?”


“네 년의 몸뚱아리에 맞을 지 모르지만 들어가라. 아니, 안 맞더라도 몸을 구겨서라도 들어가라.”


“보따…리?”


그렇다.


당대표년에게 준 선물은 다름아닌 보따리.


예닐적 지나가던 아라크네를 협박해서 만든, 신축성 및 탄력성이 우수한 보따리다.


“다만 종족감수성 시대에 걸맞게, 길쭉한 귓때기는 보자기 밖으로 삐져나오는 건 봐주겠다.”


“…”


“어서 안 들어가고 뭐하지? 네 년이 정적들을 공구리 쳤던 방식으로 들어가면 된다.”


“…”


나름 친절하게 사용방법까지 알려줬으나, 저 귀쟁이년은 그저 보따리를 바라보기만 하는건가?


아무래도 담갔던 입장에서 담겨지는 입장으로 전락 된 게 어지간한 충격이 된 모양일까?


느닷없이 보따리에 들어 갈 팔자가 된 굴욕에 사로잡힌건가?


뭐, 어느정도 공감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만…어쩔 수 없다.


패배자의 말로란 이렇듯 잔인한 법이니까.


“어이, 귀쟁이년. 망설이지마라. 그런 식으로 망설이면 강제로 구겨 넣을태니까.”


“…크읏!”


결국, 짜증섞인 탄식과 함께 보따리를 펼쳐든 당대표년.


여전히 낯색은 ‘내가 왜 이딴 짓거리를 해야하지?’ 라고 대변하고 있으나, 알 바 아니다.


귀쟁이년이 아무리 싫다고 발악해봐야 패배 한 이상, 정해진 운명에는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니까.


“…좋다. 이제야 말을 잘 듣는군.”


보따리에 들어가 여러모로 험상궂은 일을 치뤄야 할 그런 운명에 말이지.


.

.

.

.

.


털컥ㅡ!


“후우! 이정도면 아무리 발악해도 풀리지 않겠군.”


잠시 후.


보따리를 업은 채, 뒷골목 어귀에 위치한 폐건물로 발걸음을 향한 이 몸과 마왕년.


본격적인 심문에 앞서, 보따리를 천장 골조에 연결된 쇠사슬에 대롱대롱 매달아뒀다.


마치 성야를 맞이해, 트리에 달아둔 선물 주머니처럼 말이지.


“용사여, 이것이 자진 납치라는게냐?”


“그렇다.”


한 편, 여전히 자진 납치에 대한 의문증을 해결하지 못했는지 묘한 낯색을 풍기는 마왕년.


실로 그 모습은 흘러빠진 찐빠마냥 죽탱이를 날려버리고 싶었다만…


생각해보면 저 빡통사리년은 아직 견습 용사신분이라 모르는게 당연하다 싶어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로 했다.


“잘 들어라. 모름지기 납치라고하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에 의해 자율권을 빼앗긴 걸 의미한다.”


“그렇지.”


“그런데 저 귀쟁이년은 제 발로 보따리에 들어가는 것으로 자율권을 이 몸에게 양도하지 않았는가?”


“으음, 그렇구나. 비록 그대가 들어가지 않으면 죽일 기세로 야리긴했다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연유로 자진납치라고 하는거다. 훌륭한 용사라면 반드시 숙달해야 할 기본 덕목이니 젖탱이에 잘 세겨 두도록.”


“…그대가 그리하다면야…”


부스럭ㅡ!


“으음?”


부스럭ㅡ! 부스럭ㅡ!


한 참 열띤 강의를 진행하던 와중, 귓가에 들어온 부스럭거리는 소리.

 

부스럭ㅡ! 부스럭ㅡ! 파다다닥ㅡ!


그 소리와 함께 보따리 입구에서 삐죽 튀어나온 얼굴은 이 몸과 마왕년의 시선을 사로잡게 만들었다.


“벌써 눈을 뜬건가? 제법 내구도가 훌륭한 년이로군.”


또한, 잡설은 멈추고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푸하! 허억! 허어억!! 허어어억!!!”


“몰골이 말이 아니군. 그래, 네 년이 공구리쳤던 상대의 심정을 이해하겠는가?”


“허억! 허억!! 으으으…!!!”


“호오? 눈빛에 독기가 서려있군. 그렇다고 하서 야리지말도록.”


“…당신, 나한태 이런 식으로 해도 무사 할거라 생각해?”


사람 하나 잘근잘근 씹어버릴 듯 한, 살기로 점철 된 표독스러운 낯색과 어조.


거기에 악역이라면 빠질 수 없는 클래식한 협박 문구.


수십 번, 수백 번 이런 상황을 겪었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똑같은 행동양상을 보이는게 참으로 신기했다.


어디 악당 전용 교과서라도 있는게 아닌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꼬우면 복수하던지. 이 몸이 그런걸 두려워 할 줄 알았나?”


“뭐라고?”


“고작 네 년 하나 복수한답시고 설쳐봐야 눈 하나 껌벅거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말 기억하고 있을게.”


“엘프여, 대화 중에 미안하다만 짐이 그대에게 하나 충고하겠네.”


그 때, 이 몸과 당대표년의 대화에 난입한 마왕년.


“허튼 생각 품지말게나. 괜히 복수한답시고 깝치다가 세계수 꼭대기에 알몸차림으로 매달리기 싫다면 말일세.”


예닐적 이 몸에게 덤비다가 깨진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씁쓸함이 물씬 풍긴 조언을 건냈다.


매우 진심어린 조언을 말이지.


“무슨…말을?”


“짐의 말 뜻 그대로일세. 용사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미친 모쏠아다새끼라네.”


“…”


“자동권총으로 복불복 내기를 한 걸 봤으면 알지 않겠나? 용사를 일반적인 범주에서 보면 안된다네. 저 자는 모쏠아다새끼니까.”


“…”


도대체 저런 쓸대없는 첨언은 왜 붙이는가 싶지만, 그래도 귀쟁이년의 아가리를 다물게 만들었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래나 저래나 이젠 본론으로 넘어가야하니까.


“…아무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암컷타락 시킨 시장은 어디에 팔아넘겼지?”


“암컷…타락시킨 시장…?”


이 몸의 말이 끝난 동시에 묘한 시선을 보낸 당대표 귀쟁이년.


그 시선을 보아하니,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몸이 묻고자하는 이가 누군지 바로 알아 챈 모습이었다.


“오토 체이스, 당신…그 사람 하나 찾겠다고 이 난리를 피운거야?”


“그렇다, 이 몸의 대업을 이룩하기 위해서 그 녀석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변변치 못한 녀석이 말이야? 족장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이해 할 수 없어.”


“이해하고 나발이고 묻는 말에나 대답하도록. 시장은 어디에 있지?”


“…족장에게 보냈어. 애당초 그 사람을 납치하라는 건 족장의 특별 지시였으니까.”


“그렇군…그렇다면, 암컷 타락도 족장의 특별 지시를 받아 수행 한 건가?”


“맞아.”


도대체 시장은 뭐하는 녀석이길래 족장이 특별 지시 할 정도일까?


도대체 시장은 무슨 짓을 했길래, 드럼통에 공구리질 당한 다른 피해자와 달리 ‘암컷 타락’ 이라는 짓을 당한걸까?


분명히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여타 다른 피해자들과 특별한 무언가가 말이다.


예로들면, 천 년에 한 번 열리는 세계수 열매를 훔쳤다던지


혹은 학창시절 괴롭힘시킨 상대처럼 깊은 원한이 서린 경우처럼 말이다.


그런게 아니고선 그런 잔악무도한 짓이 오고 갈 리 없을태니까.


“족장과 시장은 무슨 사이지? 듣고보니 보통 관계는 아닌 느낌이 드는데 말이야.”


“…대답하기 앞서, 믿고 안 믿고는 당신 판단이야. 하지만 난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아.”


“흐음?”


저렇게 밑밥을 까는 꼬락서니가 왠지 예사롭지 않다.


말 그대로 자신의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일지, 진담으로 받아들일지 스스로 판단하라는 뉘앙스니까.


그리고, 보통 이런 뉘앙스 속에는 상정했던 것 보다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예로들면, 딸기 생크림 케잌에서 딸기를 뺏어 먹은 것 처럼 말이지.


“그래, 네 년의 말을 믿는다치고 대답해라. 족장과 시장은 어떤 관계지?”


“족장의…애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