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그건 로마 신과 그리스 신이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의 신에서 시작했기 때문임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격신의 형태를 띔


이들은 초월적인 존재들이지만 인간의 의식과 형태를 가지고 있고, 이 '인간의 의식을 가졌다'는 점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의 모습과는 다르게 불완전한, 소위 말해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임


그렇기에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은 어느 한 부분씩 결함을 가지곤 함




아레스는 꽤 공정하고 자신이 인정한 이들에게는 축복이든 뭐든 다 퍼주는 은근히 관대한 신이지만, 자신의 신격에서 나오는 천성적인 난폭함과 잔혹함 때문에 무례함을 패시브로 켜고 다녀서 평소의 평판은 나락임


아테나는 지혜롭고 다재다능한 만능 신으로 묘사되지만 그 때문에 꽤 독선적인 성격을 보이고, 다른 신과의 관계를 타산적으로 생각해서 자신의 신도가 피해를 입고 자신이 굴욕을 당할 때 지혜를 쓰지 못하고 쩔쩔매기도 함


그 외에도 포세이돈은 자신의 자손과 관한 일이면 무조건적으로 싸고돌고, 아프로디테와 제우스는 과도한 난봉질, 헤파이스토스같은 경우는 그냥 외모 등 모든 신들이 결함을 하나씩 가지고 있음




하지만 로마 신화의 신들은 그리스 신들이 가지는 것과 같은 결함을 가지지 않음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추상적인 개념 그 자체를 신으로 섬기는, 이른바 개념신 신앙을 가졌기 때문임


신들에게 인격이 부여되지 않았기에, 특정 개념에서 나오는 가치와 미덕이 숭배의 대상이었기에 로마의 신들은 상당히 넓은 영역의 신격을, 그것도 긍정적인 모습만을 드러내었음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로마인들이 그리스와 교류하며 그리스의 문물을 접하고 그리스 신화를 자신들의 신앙에 접목하여 정립한 로마 신화의 신들은 똑같은 인격신의 형태를 띄게 되었음에도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다른 모습을 띄게 됨


이미 있는 개념적 신에 비슷한 인격신의 껍데기를 뒤집어 씌운 것이기에 같은 인격신의 모습을 하더라도 그리스 신과는 다르게 결함을 드러내지 않는 것




마르스는 아레스의 껍데기를 덧씌워졌지만 군인과 전사의 미덕을 상징하는 신이었기에 아레스와 달리 잔혹하고 난폭한 면모가 없고


미네르바와 벨로나는 각각 아테나의 지혜의 여신으로서의 겉모습과 전쟁의 여신으로서의 겉모습을 얻었지만, 미네르바는 문명 전반을 상징하는 신, 벨로나는 마르스의 짝으로 지휘관의 미덕을 상징하는 신이었기에 아테나와 달리 독선적이고 강약약강인 면모가 사라짐


넵튠은 바다 그 자체의 개념이었기에 포세이돈의 껍데기를 얻고도 극단적 팔불출이라는 단점이 사라졌고


베누스는 아프로디테의 모습을 얻었지만 단순한 성애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사랑을 상징했기에 정숙하고 모성애적인 면모를 보이도록 탈바꿈하였음




그러니 로마 신이 그리스 신의 본모습이니 신앙에 따라 열화가 일어난 것이니 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음


두 신화의 신들은 전혀 별개의 존재이며 우리가 아는 지금의 로마 신들의 모습은 원시적인 로마 개념신의 겉에 그리스 신의 외형을 덧붙였을 뿐이니까